어릴 적 아버지께서 갑자기 집에 들여놓으신 286 컴퓨터 시절부터 제 PC 라이프가 시작됐습니다. 그 때 제가 네 살이었나...
5.25인치 디스켓을 넣은 채로 부팅을 해서 디스크 빼고 얘기하자 이 놈아(Reject Floppy Disk) 메시지가 뜨는 걸 집안 식구들이고 친지들이고 아무도 제대로 못 알아봐서 '니놈 새X가 컴퓨터를 망가뜨렸구나' 하면서 뺨도 맞아본 기억이 있네요...
여튼 그 이후로 친지들이 제게 Windows 3.1이 깔린 486 PC를 손수 조립해서 선물해준 걸 받아 7-8년 정도 애지중지하며 잘 써왔고... 이 때 부품들이 특이해서 여전히 뭐였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Voodoo 그래픽 카드에, 소리통 사운드 카드에, 오스카 수신 카드까지...
홈쇼핑에서 본 브랜드 컴퓨터를 쓰다가 4년 만에 버린 기억도 납니다. 애슬론 1700이었던 기억이 나고, 나머지는 원체 구려서 잘 기억도 안 납니다.
그러다가 iMac을 구매해서 6년 정도 써오다, macOS(Macintosh)에 싫증을 느낀데다 컴퓨터도 슬슬 연한(?)이 다 되어가서 PC로 복귀하자는 생각을 하고는 견적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가 작년 12월 초였습니다.
하지만 돈도 모자라고 해서 견적만 짜두고 '이대로 돈을 모으자'는 심산으로 한두푼 모으고 한 60% 선을 넘길 즈음에...
비트코인 사태가 터졌습니다. 코인광부 아재들 좀 죽었으면... orz
게다가 이렇게 허둥거리던 와중, 올 7월 초에 iMac이 사망(정확히는 그래픽카드만)하셨습니다; 하필 쓰던 모델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Mid 2011 27인치 모델이라...
이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급전을 끌어모아 계획에 가속을 붙이기로 합니다. 여러분은 급전 끌어서 컴퓨터 맞추지 마시고 여유 될 때 하세요. ㅜㅜ
... 그냥 컴퓨터 없이 어느 정도 살아도 되지 않냐, 싶었는데... 저한테 PC가 없는 건 핸드폰 없이 사는 거랑 동급이더라구요;
제가 컴퓨터를 새로 맞추고자 할 때 고려하는 점은 이 정도입니다. iMac은 이 조건들하고는 별로 안 맞는 이단아였지만 애정(?)으로 썼습니다.
1. 되도록 크기가 작아야 한다.
2. 한 번 맞추면 최소 5년 이상은 쓰므로, 처음부터 좋게 맞춘다. 부품 업그레이드는 그 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3. (지금 사는 집으로 옮겨오면서 추가된 조건) 통풍이 잘 안 되므로, 발열/통기에 주안점을 둔다.
4. 이 모든 걸 충족시키면서 최대한 돈을 아낀다.
근데 1번하고 3번이 서로 상충되는 조건이죠. 짱구를 잘 굴려봤습니다.
일단 처음에 생각해둔 조건은 Cougar QBX or QBX KAZE를 베이스로 한 소형 데스크탑이었습니다.
너무 작다보니 통기가 잘 안 된다는 얘기도 많았지만, 일단 작으니까! ... 어찌어찌 잘 되겠거니, 120mm 수냉 쿨러까지 끼우면 조건은 대충 되겠거니 하면서 실행에 옮깁니다.
... 그런데 케이스를 주문하자마자 연락이 옵니다.
판매자 : 고갱님, 이거 두 달 뒤에나 입고 되겠는데요.
나 : 어... 그럼 다른 데서 주문할게요.
다른 판매자 : 죄송합니다, 즈-희도 음-쓰요.
나 : 그럼 내가 직접 쇼부 칠테니 총판 전화번호 좀 알려주시요.
총판 : ... 죄송합니다.
나 : 에라이.
어쩔 수 없이 플랜 B로 넘어갑니다. 이 연락을 받았을 때 수중에 부품이 도착한 게 없어서 망정이지, 하나라도 도착했으면 좀 고민을 해봤을 것 같네요;
처음부터 케이스를 둘 정도 생각해뒀었는데, 이번에는 Defy B40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이것도 적당히 작은 편이라 조건에는 맞고, 수냉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이 케이스를 이용한 견적은, 작년 말 즈음에 오버클락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찾아서 견적을 내봤었는데...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길래 보류를 해뒀었습니다.
이번에 플랜 B로 바꾸고 나서도 용산의 업체들에게 견적을 제시하고 답변을 기다려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나왔습니다. 부품값에 공임비만 추가된 견적 치고는 꽤 나왔더라구요.
... 그래서 그냥 제가 직접 하기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PC를 손 본 지는 10년이 좀 넘은 듯한 가물가물한 기억 뿐인데 '컴퓨터 조립이요? 그거 레고 조립 수준 아니에요?' 하는 말에 솔깃해서 무작정 시도를 합니다.
일단 직접 발품을 팔고, 최저가 업체들을 찾아 직접 사오고 인터넷 주문도 한 결과 얻은 부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상 제 생일을 전후한 때라 큰 맘 먹고 결행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모은 부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케이스 : Defy B40 Black (수냉쿨러용 브라켓 별도 추가)
CPU : AMD Ryzen 1700X
쿨러 : ID-Cooling FrostFlow Plus 240
메인보드 : Gigabyte AB350M-Gaming 3 (M-ATX)
파워 : Cougar STX650
SSD + HDD : 삼성 850 Pro 256GB + Seagate Barracuda 2TB
RAM : TeamGroup T-Force DDR4 16G PC4-21300 CL15 VULCAN Gray 8Gx2 (XMP 지원)
VGA : GTX1070 슈젯 (마침 구하던 시기에 조금 값이 떨어져서, 약간 무리를 하며 이걸로 낙점)
... 근데 한데 모아두고 보니까 도저히 조립을 할 엄두가 안 나는 겁니다. orz
일단 집 근처 컴퓨터 가게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근데 이 집에서는 이런 특수조립(?!?!?!?)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낑낑거리며 저랑 같이 어찌어찌 해보는데...
다 조립해두고 화면 신호가 안 나옵니다.
다행히도 가게에 있던 다른 부품들을 써가며 하나하나 시험을 해본 끝에 메인보드 불량이라는 걸 알고는 힘없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용산에 찾아가 초기불량 진단을 받고 판매처에 찾아가 교품을 받으려는데 재고가 없대서 집으로 보내주겠다는 말을 듣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 이 때가 첫 부품을 사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인데, 시간이 너무 아깝덥니다. -_-;;;
하는 수 없이 조립 과정에서 그대로 펼쳐두고 메인보드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이 와중에 고장난 iMac을 매입해준다는 곳이 있어서 찾아가 매각했습니다. 처음 샀을 때부터 정말 애물단지였네요...
구입하자마자 한 달 만에 메인보드 불량 판정 나서 영등포까지 찾아가 수리 받고, 또 고장나서 수리 받고, 또 고장나서 애플 본사 법무팀이랑 전화로 대판 싸우고;
이러다 소보원까지 끌어들여 일을 엄청 크게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한 그런 놈이었습니다. 오래 써보겠다고 사설업체 동원해서 SSD까지 붙였고...
에휴, 잘 가라. 다신 Mac 안 쓴다.
... 그리고 메인보드가 도착했습니다. 오자마자 작업 시작합니다. 뚝딱뚝딱.
세 시간 만에 완성했습니다. 짜잔.
이번엔 모니터 신호까지 잘 들어오는 걸 확인합니다. 만세를 부르며 드러눕습니다. 힘들어 죽는 줄... ㅜㅜ
이제 다 맞췄으니 컴퓨터를 놓을 자리... 를 만들려고 방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공사(?)를 합니다. 여기에 또 세 시간 정도 들여서 결국 어제 자정(오늘 0시)이 되어서야 완성.
드디어 다 끝났습니다.
왼쪽 모니터는 아는 분이 안 쓴다고 주고 가신 놈이라 감사히 받았고, 가운데 모니터(BenQ V2420H)는 산 지 몇 년 된 놈이라 그대로 쓰기로 합니다.
켜라는 PC는 안 켜고 플4를 켜고 사진을 찍어 봅니다. 사실 플4도 산 지 얼마 되진 않았네요... ㄹㄹㅁㅇㅌ를 통해서 받은 거라;
... 여기서 훈훈하게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메인보드의 초기 바이오스 문제가 있어서 XMP 메모리를 제대로 못 잡습니다. 덕분에 부팅이 50% 확률로 제대로 안 되더라구요.
운에 맡기고 겨우 부팅해서 Windows 10 Pro를 설치고 바이오스 업데이트를 하고 자잘한 세팅에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오버클럭까지 마무리 짓고 나니까 새벽 7시였습니다. -_-;;;
마지막까지 왜 이러나 싶더라구요. 에휴. ㅜㅜ
결과는 이렇습니다.
< 추가 >
불 끄고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사진에는 적/녹/청/백 4색인데...
적색인 메인보드부 LED는 소프트웨어 세팅으로 잘 안 바뀌는 걸 확인해서 그냥 두기로 했고...
녹색인 VGA LED는 지금은 무사히 흰색으로 바꿔서 쓰고 있습니다. 청색은 케이스 LED인데 기본 세팅이라 한동안은 저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뒤에 보이는 흰색은 수냉 쿨러 라디에이터 쪽 LED, 오른쪽으로 보이는 흰색은 200mm 시스템 쿨러 LED입니다.
- 끝 -
저는 여기 저기서 중고로 좀 싸게해서 컴퓨터 맞췄는데 그 이후로 비트코인 대란이 터지더라고요 얼마나 다행이던지...
케이스가 왠지 수족관스럽네요 ㅋㅋ 커엽당 :D
진짜 메인보드 고장이면 골치아파요.다 뜯어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