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진구와 요요기 공원에서 벗어나 하라주쿠 번화가로 들어갑니다.
일본 여행 할 때만 해도 지하철 역 앞에 있어서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 각광받던 스누피 타운.
지금은 오모테산도 힐즈로 이전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이 당시에는 스누피에겐 볼 일 없으면서 하라주쿠에서 놀려고 친구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지요.
다케시타 도오리의 좁은 골목길. 10~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의류점, 식당, 액세서리 상점, 스티커 사진샵 등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메이지 진구 가기 전에 아침 일찍 찍었던 사진이라 한적해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길바닥 보기가 힘든 장소입니다.
그닥 길지 않은 거리이지만 워낙 많은 상점들이 정해진 고객층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곳이라
특히 여학생들이라면 하루 종일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즐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엔 입구의 저 조형물 모양도 바뀌었던데, 여행 다녀온지 한참 지나서 리뷰를 올리다보니
왠지 여행기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 다큐멘터리 포스팅을 올리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습니다.
다케시타 거리는 패션의 거리이기도 하지만, 크레페 전쟁이 벌어지는 치열한 전장이라는 사실처럼 말이죠.
엔젤하트와 마리온 크레페를 비롯해서 수많은 크레페 가게들이 화려한 메뉴를 앞세워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면서 진열장에 올라와 있는 다양한 크레페를 구경하고, 몇 번 메뉴를 주문할 것인지 미리 선택 해 놓습니다.
주문을 받으면 종업원들이 그 자리에서 반죽을 얇게 펴서 굽고, 선택한 토핑을 착착 바르고 올려서 둘둘 말아줍니다.
무난한 크림+달달한 소스+과일 계열의 크레페도 있고, 간단하게 식사 대신 먹을만한 샐러드나 치즈, 고기가 들어간 메뉴도 있습니다.
걸어다니며 구경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간단하게 딸기 치즈케이크 크레페를 하나 입에 물고 걸음을 옮깁니다.
다케시타 도리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도고 신사.
일본 해군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을 신으로 모신 곳입니다.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함대를 모조리 수장시키면서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끌었던 인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나를 영국의 넬슨 제독과 비교하는 건 몰라도,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는 감히 견줄 수 없다"는 말을 한걸로 유명하지요.
굳이 도고 신사에 들른 이유는 도고 헤이하치로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도자기, 나무그릇, 조각상에서부터 전통 의상이나 인형, 책, 심지어는 장난감까지.
조금이라도 일본 전통 문화가 녹아있다고 생각될만한 것은 다 모여있는 벼룩시장입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도 많지만 저렴한 가격에 전통 기념품을 구입하려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습니다.
금발에 파란 눈을 한 백인 관광객이 무슨 시골집에서 갓 뜯어낸 듯한 나무 문짝을 조심스레 들고 가는 풍경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벼룩시장 옆 쪽에는 메이지 신궁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는 듯한 신랑 신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인력거를 타고 환하게 웃고 있는 신혼부부와 하객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전통혼례식에서 꽃가마 타고 사진찍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구나 싶기도 합니다.
도고 신사에서 나와 다시 다케시타 도오리를 걸으며 구경을 계속 합니다.
수많은 의류 상점들을 보며 느낀 건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컨셉이 뚜렷한 것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는 교복의 영향 때문인지 학생들이 입는 사복도 너무 튀지 않는 평범한 것이 대세인데 비해
다케시타 도오리의 옷들은 정체성이 심하게 뚜렷합니다.
일명 고스 룩이라고 불리는, 좀 어두컴컴하고 왠지 뱀파이어 추종자들이나 입을 법한 옷들이 있는가 하면...
바로 옆 가게에서는 블링블링하고 귀여움이나 청순미를 강조한 듯한 옷들을 쌓아놓고 판매중입니다.
공주풍의 로리타 패션 계열 중에서도 좀 캐주얼한 리즈리사 체인점이네요.
고스 옷가게와 아마이로리 의류점이 바로 이웃해서 딱 붙어있으니 이건 뭐 빛과 어둠의 대결도 아니고...
다케시타 도오리를 다 빠져나와서 캣스트리트로 넘어가기 전에 폴 스미스 매장에 잠깐 들러줍니다.
패션에는 하나도 관심없는 인간이지만 가끔씩 딱 꽂히는 패션 아이템이 있는데, 이번에 홀린 물건은 폴스미스 레인카 반지갑.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진 미니로버가 어찌나 갖고 싶던지...
결국 일본까지 와서 구입하고야 말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무슨 애들 장난감마냥 귀여운 지갑인데, 가격은 절대 귀엽지 않은 수준.
2009년 Bothside 반지갑인데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지요.
실제로 어떤 학생이 불량배들에게 걸려서 지갑에 있던 만원짜리를 빼앗겼는데, 정작 수십배 더 비싼 지갑을 보고는
"넌 지갑도 뭐 이런 찌질한 걸 갖고다니냐"며 도로 던져줬다는 일화도 있지요.
캣스트리트는 다케시타 도오리보다는 좀 더 한적하고, 가게들도 좀 더 연령층이 높은 고객을 대상으로 합니다.
길 사이에 무슨 안내문이나 가림막이 있는 것도 아닌데, 캣스트리트로 넘어가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랄까요.
쇼윈도에 진열된 옷들도 과하게 튀지는 않으면서, 그래도 뭔가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한 그런 느낌입니다.
그리고 좀 더 나가면 럭셔리한 가게들이 모여있는 쇼핑몰, 오모테산도 힐즈도 보입니다.
사실 이 곳은 패션 쇼핑몰로도 유명하지만 유명 건축가인 안도 타타오가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한 건물이지요.
그래서 굳이 의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건물 한 번 보려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폴 스미스 지갑을 사면서 이번 여행에서 패션 계통에 할당된 에너지는 모두 소모한지라,
오모테산도 힐즈는 겉으로만 한 번 보고 골목으로 들어와 화분이 늘어선 조그만 가게를 찾았습니다.
조그마한 상점 팻말이 그나마도 나무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키르훼봉, 아오야마 지점입니다.
Quil fait bon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날씨가 좋은 날,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
가게 이름에 걸맞게 인테리어도 왠지 프랑스 시골집 느낌이네요.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타르트! 그 중에서도 오늘날 키르훼봉의 명성이 있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인 과일타르트!
품절되기 쉬운 메뉴라던데 다행히 한 조각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내부 카페에서 먹으려면 거의 한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기에 미련없이 테이크 아웃으로 포장.
커피는 다음 목적지인 시부야 스타벅스에서 마실 예정이니까요.
시부야의 상징과도 같은 109 건물.
여기도 역시 패션 및 의류점이 가득한 건물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두타나 밀리오레 건물 느낌.
하지만 시부야까지 온 목적은 옷 쇼핑이 아니므로, 곧바로 스타벅스로 들어갑니다.
2층으로 올라가서 주문한 커피를 들고 한동안 기다렸다가 겨우 자리가 나서 앉았습니다.
키르훼봉에서 구입한 과일 타르트도 꺼내서 커피와 함께 먹어줍니다.
달달한 크림과 싱싱한 과일이 아메리카노와 잘 어울리네요.
지친 다리도 쉴 겸 천천히 간식을 먹으며 창 밖의 경치를 구경합니다.
시부야 스타벅스 2층 창가가 사람이 붐비는 이유는 바로 이 풍경 때문입니다.
일명 스크램블 교차로라고 불리는 삼각형 횡단보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자리이기 때문이죠.
유동인구가 엄청난 시부야 번화가 중심부에 위치한 횡단보도인데다 동시에 횡단신호를 받기 때문에
멈춰있던 사람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또 멈추고, 그러면서 자기 갈 곳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개미떼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현대인의 바쁜 삶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도 생각하게 되고,
바쁜 일본 여행 일정 중에 이렇게 잠깐 쉬며 사색에 잠긴다는 건 또 어떤 것인지 돌이켜 보게 됩니다.
시부야를 떠나기 전 역 앞에서 본 충견 하치코 동상.
주인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9년 동안이나 퇴근 시간만 되면 시부야 역 앞으로 주인을 마중나서 유명해진 개의 동상입니다.
하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지요.
주인 장례식 때 무덤 앞에 쓰러져서 우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유튜브 동영상도 있고, 이렇게 보면 개와 인간의 관계라는 게 참 밀접하구나 싶기도 합니다.
개가 주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주인을 공경하는 마음, 신을 숭배하는 마음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다고도 하니, 주인이 없어지면 그야말로 세상 무너지는 기분이 들겠네요.
이제 시부야 역에서 전철을 타고 다시 신주쿠 숙소로 이동. 짐을 찾아서 두 번째 호텔로 이동합니다.
빛과 어둠의 대결ㅋㅋ재밌네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