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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재정 문제를 안고 있던 십자군 지도부는 교황에게 비잔티움 진격의 승인을 구했다. 하지만 교황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비잔티움에 개입으로 인한 문제와 비잔티움에게 원조를 요청하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다음 해 가을. 보니파키우스의 주도적인 역할로 십자군 지휘부는 알렉시오스에게서 다시 한번 약속을 받고 알렉시오스의 제안을 수용하였다. 교황청 내부에서도 비잔티움 진격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있었고 비잔티움을 발판 삼아 예루살렘을 해방할 수 있다면 십자군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교황도 묵인하며 넘어갔다.
1203년 여름. 6월 24일에 시작된 금각만 공격을 시작으로 힘겹게 콘스탄티노플의 공략한 십자군은 알렉시오스와의 약속을 지켰다. 지하 감옥에 유폐되어 있던 이사키우스 2세를 다시 황위에 앉히고 알렉시오스를 공동 황제로 추대하였다.
하지만 알렉시오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렉시오스 3세가 많은 재물들을 챙겨 도주하였고 알렉시오스 3세의 무능으로 국고를 탕진했기 때문이다. 결국, 알렉시오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의 시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귀금속들을 지속적으로 수거해갔다. 이에 반발한 콘스탄티노플의 시민들은 콘스탄티노플에 주거하던 베네치아 상인들을 공격하였고 베네치아 상인들의 보복이 이어졌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십자군은 길어져가는 주둔 기간으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알렉시오스는 십자군의 힘으로 황위를 얻은 것이니 십자군이 물러나면 다시 황위를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그런 이유로 알렉시오스는 십자군에게 조금 더 주둔 기단을 늘려달라 했고 이는 콘스탄티노플과 십자군에게 엄청난 불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이에 반대파 수장 무르츠풀루스Murtzphlus가 알렉시오스에게 당장 십자군에게 빚 상환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십자군의 오만방자한 행실에 남모르게 불만을 쌓고 있던 알렉시오스도 이에 동의하여 십자군에 대한 빛 상환을 중단할 것을 공표했다.
이는 엄청난 파문을 가지고 왔다. 단단히 무장한 숙련된 군인들을 코앞에 두고 약속을 어기다니? 십자군은 이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했다. 십자군을 수송하던 총독 단돌로도 알렉시오스의 뻔뻔한 성명에 폭언을 퍼부었다. 그러자 반대파가 들고일어나 십자군을 공격했고 십자군이 반격했다.
그리고 자신의 황위에 대한 걱정으로 알렉시오스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며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자, 반대파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이를 보지 못한 반대파들은 성 소피아 성당을 점거하고 카나바우스를 황제로 추대해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알렉시오스는 깜짝 놀라서 십자군을 자신의 궁으로 들어와 자신을 지켜달라고 요청하려 했으나, 무르츠풀루스가 먼저 황궁에 난입해 알렉시오스를 패위하고 스스로 알렉시오스 5세를 자처하며 성 소피아 성당으로 쳐들어가 황제로 추대된 카나바우스를 살해한다.
직후 십자군을 공격했지만 패배한다. 십자군은 알렉시오스의 복권을 원했지만 알렉시오스를 살해함으로써 십자군을 막을 마지막 카드를 스스로 버리고 말았다.
오랜 기간의 주둔과 약속의 지연과 배신으로 분노와, 증오와 적의를 품은 십자군을 막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4월 9일과 4월 10일에 이어진 총공세는 비잔티움을 무너트렸다. 그리고 도적 때로 변한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의 모든 걸 무너트렸다. 모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