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게시물은 영웅전설 영의 궤적, 벽의 궤적, 섬의 궤적1과 미야자와 겐지 저 '은하 철도의 밤'에 대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아무런 주저 없이 마구마구 폭로하고 있습니다.
영벽섬1 이해를 돕기 위한 문화적 트라비아, 열차편입니다.
영웅전설을 꾸준히 해온 분들이라면, 궤적 시리즈의 전통은 굳이 부차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아시리라 믿지만, 섬의 궤적을 통해 입문하신 분들도 계시기에 부연설명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시리즈의 역사와 전통과 평가는 저보다 더 자세히 아시는 분들이 많으므로 생략하지만, 본 글을 작성하기 위해 꼭 설명드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궤적 시리즈는 2편이 한 묶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영웅전설 궤적 시리즈의 첫 시리즈인 천공의 궤적은 FC(first chapter), SC(second chapter)으로 본 편이 구성되어있고, 외전 The 3rd(한국의 경우 아루온에서 TC 즉, Third chapter로 정발 되었습니다.)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이후 나온 영의 궤적과 벽의 궤적은 제목이 바뀌긴 했지만, 두 시리즈가 이어져 하나의 시리즈를 이루고 있으며, 섬의 궤적은 섬의 궤적과 섬의 궤적Ⅱ가 한 시리즈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우선 영웅전설 궤적 시리즈를 다음과 같이 크게 나누고자 합니다. 천공의 궤적, 영벽의 궤적, 섬의 궤적.
이 세 시리즈는 같은 회사에서 만든 같은 시리즈의 게임이다 보니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수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읽으시는 분들의 귀중한 시간과 저의 귀차니즘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중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만 추려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각 시리즈의 전편(FC, 영의 궤적, 섬의 궤적)은 비극이다.
의야해 하실 분들을 위해 설명해 보자면, 천공의 궤적 FC는 에스텔이 요슈아와 여행을 하며 성장을 해 나아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의 역할과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는 순간, 곁에서 에스텔을 계속 도와주었던 요슈아가 에스텔의 곁을 떠나버립니다.
영의 궤적은 로이드가 특무지원과 속에서 성장하며 자아를 찾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야기 입니다. 다만 로이드와 특무지원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벽을 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 결과 로이드와 특무지원과는 전부 죽어버립니다.(※ 이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영의 궤적의 본래 스토리는 이게 맞다는 것을 벽의 궤적을 해보신 분들은 모두 아시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섬의 궤적은 린과 Ⅶ반이 동료가 되면서 성장해나가는 스토리입니다. 린은 Ⅶ반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청소년 시기에는 알기 힘든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그런 경험을 통해 올바르게 내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며 동료에 대한 믿음과 유대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마치 린과 Ⅶ반의 모두는 제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속한 일개 학생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격동의 시대가 찾아와 린과 Ⅶ반의 모두는 뿔뿔히 흩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각 시리즈의 전편은 모두 기구한 비극입니다. 그리고 시리즈 후편은 이 비극을 뛰어넘은 주인공 일행이 노력해서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2. 영의 궤적과 섬의 궤적은 게임 시작 초반에 열차를 자주 보여준다.
2-1. 특히, 섬의 궤적의 경우 타이틀 화면이 열차 내부이며, 시나리오 전개에 따라 Ⅶ반 인물들이 한 명 씩 늘어간다.물론 영벽의 궤적과 섬의 궤적은 동시대 인근 지방의 사건을 별개로 보여주는 만큼 비슷한 소재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비슷한 연출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불신의 궤적으로 불리우는 궤적시리즈의 경우, 이런 연출은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미야자와 겐지 저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소설입니다. 한 작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 소설을 누가 언제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썼다는 사실을 구구절절 읊어야 하지만, 읽으시는 분들의 귀한 시간과 저의 귀차니즘을 존중하기 위해, 간략하게 스토리만 적어보겠습니다.
'은하철도의 밤'은 멀리 일을 나가시는 아버지 때문에 병든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사는 소년 죠반니가 어느 날, 친구 캄파넬라와 함께 은하철도를 타고 은하수를 여행한다는 내용의 동화입니다. 하지만, 은하철도와 은하수 여행은 어디까지나 비유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죠반니가 물에 빠지고 캄파넬라가 죠반니를 구하는 대신 익사했다는 전말이 있습니다. 즉, 캄파넬라와 은하철도를 타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사건은 죠반니와 캄파넬라가 물에 빠져 의식을 잃어버리고 죽어가는 과정을 암시하는 내용이지요. 물론 이 역시 비극입니다.
이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비극은 후대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안겨줘, 수도 없이 많은 작품에 모티브로 사용됩니다. 대표적으로 은하철도 999의 경우는 대놓고 '은하철도의 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여행의 종착지인 안드로메다 행성에서는 인간이 안드로이드로 개조를 당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모티브는 즉 인간성의 죽음과 죽음이 가지는 영속성,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인간이 영원해 지는 법은 죽음뿐이라는 뜻이지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는 주인공이 죽을 위기를 맞이해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 갈 때마다 전철 안에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의 무의식이 인식하는 죽음의 풍경입니다. 이 두 작품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일본 소설,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철도와 열차는 죽음을 암시하는 모티브로 사용돼왔습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때문이지요.
이전 궤적 시리즈를 해보신 분들 중,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궤적 시리즈' 역시, 이 '은하철도의 밤'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눈치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캄파넬라'입니다.
흔하다면 흔한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이 '캄파넬라'라는 이름은 천공의 궤적 시절부터 결사 : 몸을 먹는 뱀 - 우로보로스의 집행자로 나옵니다.
그리고 영의 궤적에서는 열차 안에서 잠에 깬 로이드가, 열차 안에서 꾼 꿈과 같은 상황에서 죽습니다. 죽을 뻔 합니다. 영벽의 궤적을 플레이 하지 않으신 분들 위해 부연 설명을 해보자면, 실제로는 죽지만, 에이도스가 인간에게 선물한 칠지보의 힘으로 인해, 로이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으로, 세상이 재편됩니다. (※ 로이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선을 선택했다는 표현에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만, 사용된 칠지보가 환의 지보이며, 이 환의 지보가 인식을 담당하는 지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재편이라는 표현이 옳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즉, 영벽의 궤적에서도 열차는 죽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섬의 궤적에서도 이런 암시는 변함이 없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보여주는 갈레리아 요새와, 5장에서 보여주는 갈레리아 요새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만,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구성인원입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없었던 사람이 5장에서는 추가되어있고, 이 추가된 인물로 인해 린과 일행이 살아남는 이벤트가 존재합니다. 즉, 새로이 추가된 인물이 없었더라면, 린과 일행은 그때 죽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으며, 이러한 차이가 생기게 된 이유는, 비슷한 시간과 장소를 배경으로 공유한 영벽의 궤적의 영향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섬의 궤적 프롤로그는 바로 영벽궤에서 로이드와 특무지원과가 죽어버리는 세상이고, 섬의 궤적 5장은 영벽궤에서 로이드와 특무지원과가 살아남는 세상인 것이지요.(※ 시간상 세상이 재편되는 시기가 훨씬 뒤쪽이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플레이어가 플레이 하는 세상은 결국 로이드가 살아남은 세상입니다. 새로이 재편된 세상에서도 갈레리아 요새에서는 린과 Ⅶ반 일행이 있으니까요.)
그러면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왜 타이틀 화면에서는 Ⅶ반만 열차에 타고 있는지 하는 부분 말이지요. 심지어 갈레리아 요새에서 죽을뻔 한건 린과 함께한 일행일 뿐, Ⅶ반 전체가 아닙니다. 그러면 왜 Ⅶ반 전체가 죽음을 암시하는 열차에 타고 있을까요? 그것도 실제로는 린과 함께 죽었을 지도 모르는 사라교관을 빼놓고 말이지요.
그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죽음관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8백만 신이 살고, 신불합일이라는 독특한 신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죽음은, 생명활동의 정지라기 보다는 이승에서의 이별이라는 성격이 더 강합니다. '은하철도의 밤'에서 캄파넬라가 죠반니를 두고 홀로 은하철도를 타고 떠나 은하수를 여행하게 되는 것 처럼 말이지요. 즉, 살아있는 사람은 모두 언젠가 저승에 가며, 먼저 저승으로 여행을 떠나는가, 좀 더 나중에 가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대상과 이승에서 이별했다는 사실에 대해 슬퍼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죽음에 대한 관념이지요.
그래서 저는 섬의 궤적 타이틀 화면이 2중적 암시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린과 Ⅶ반 일행이 (로이드가 죽은 세상에서) 죽은 사람이라는 뜻.
두 번째, Ⅶ반의 모두가 맞이 하는 이별.
궤적시리즈는 물론 팔콤이 만드는 다른 많은 게임에도 이와 같은 암시와 장치들이 있지만, 우선은 섬의 궤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열차에 대해서만 정리해 봤습니다.
섬의 궤적Ⅱ에 대해 이미 많은 정보가 공개된 상황이라서 뒤늦게 이런 소리를 써봤자, 별로 의미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섬의 궤적이 가진 재미를 조금 더 많이 알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려봅니다.
언젠가 여력이 있으면, 궤적시리즈 이해를 돕기 위한 문화적 트라비아 타로카드와 수비학에 대해서 정리해보고 싶지만, …장난이 아니더군요. (※ 특히 수비학 부분이 굉장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타로카드와 수비학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치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져와 보겠습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