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도 여남시 시내의 건물들에는 불이 밝게 켜져 있다. 대부분은 야근에 고통받는 회사원들 때문이리라. 잠시 그 불이 켜진 방들 중 하나를 들여다보도록 하자. 잠시 우리가 들여다 볼 건물에서는 한 여자가 책에 둘러싸인 채 컴퓨터 화면을 돌려보고 있다.
그의 이름은 홍미경, 여남중앙고등학교의 체육 교사다. 그가 눈이 실핏줄로 시뻘개지도록 들여다 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에는 '액션 듀얼'의 듀얼 영상과 온갖 규칙, 교육 과정이니 뭐니 하는 것들로 빼곡했다.
액션 듀얼.
코나미가 <유희왕 ARC-V>를 방영하면서 애니메이션 홍보를 위해 제작한 규칙의 듀얼이다. 그 뒤에는 물론 '나날이 발전하는 솔리드 비전 기술과 듀얼의 호환성 과시', '엔터테인먼트 듀얼리스트들의 꾸준한 로비', '듀얼 대회의 시청자 확보' 등 여러가지 시커먼 목적들이 존재했지만 그것까지 알아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신작 애니메이션 제작에까지 여러 악영향을 미쳤던 ARC-V 애니메이션의 처참한 몰락에도 아랑곳없이, 어찌저찌 액션 듀얼은 <유희왕 VRAINS>가 방영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공적 규칙으로 자리잡았다. 화려한 볼거리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프로 듀얼계에서는 '어디까지나 눈요깃거리에 불과하다'며 엔터테인먼트 듀얼계와 확실히 선을 그은 채 프로 듀얼을 계속했지만, 적어도 인터넷 스트리밍 열풍을 제대로 붙잡지 못했던 엔터테인먼트 듀얼계에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진 것만큼은 분명했다.
액션 듀얼의 채택과 동시에 코나미는 아시안 게임 진출을 잠시 미뤄둔 채 각국의 교육 기관에 다시금 로비를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유희왕 오피셜 카드 게임, 통칭 '듀얼 몬스터즈'를 체육 과목으로 채택하기 위해서였다. 플레이어 전부가 솔리드 비전 속에서 역동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발상은 TCG 역사상 처음이었으며, 코나미 또한 듀얼 몬스터즈의 적극적 사회 진출을 어느 정도 염두하고 규칙을 제작했다. 그러나 두둑한 돈을 받아들고 코나미의 제안을 받아들인 일본(체육 과목 내에 '전략 게임'이라는 단원명으로 바둑과 장기를 포함한다는 조건 하에 받아들였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후 바둑의 기세가 위태로워졌기에 일본기원에서 로비를 끊었으나 바둑은 여전히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과 미국(미국은 <리그 오브 레전드>와 <매직 더 개더링>을 포함한 e스포츠 과목이 이미 일부 주의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은 유독 이 '중독성이 있는 사행성 게임'의 정규 교육과정 투입을 꺼렸다. e스포츠의 발상지이자 전자 회사들의 기술력을 통해 e스포츠에 솔리드 비전 기술을 도입시켜 경기 중계를 더욱 화려하게 만든 나라였지만, 정작 게임을 극도로 천시하고 배척하는 나라 또한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 교육부에게 듀얼 몬스터즈는 학업을 방해하는 불손한 게임에 불과했다. 그러한 풍파 한가운데에도 학생들의 숨구멍을 뚫어주기 위해 더 다양한 운동을 체육 과목에 포함시키려는 이들이 있었다.
홍미경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 사람은 엄연한 체육 교사이자 학생들의 선생으로서, 언제나 입시 교육에 지쳐 파김치가 되어가는 아이들을 생활체육을 통해 기운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또한 체육대학을 거쳐 체육 교사가 된 사람답지 않게 그는 훌륭한 너드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원래는 e스포츠를 체육 교육 과정에 끼워넣고 싶었지만, 역시나 직접 몸을 움직인다는 이점이 존재하는 액션 듀얼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체력 부문과 전략 부문은 따로 채점한다', '덱이 없는 학생에게는 견본 덱과 듀얼 디스크를 지급한다', '듀얼의 룰 이행은 AI에게 맡기되, 수행평가를 실시할 경우에 한해 자문위원 1명을 참가시킨다'같이 여러가지 껄끄러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지침들은 자신과 여러 동료 교사들이 이번 1주일동안 꼬박 밤을 새면서 겨우 해결해 왔다. 이제는 교육청의 공무원들의 마음을 돌릴 시범 교육만이 남았다. 그 시범 교육을 실시하는 곳 하나가 하필 자신이 근무하는 여남중앙고등학교였기에, 홍미경의 마음은 1톤짜리 아령 무더기에 깔린 것마냥 무거웠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마무리를 끝낸 홍미경은 이 한 마디를 생각하며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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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왕
Spirits of Glory
Rebel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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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솟아오르는 매
2017년 6월 21일, 1학년 4반의 체육 시간.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이 학생들을 노려보는 가운데, 여남중앙고등학교 체육관에서는 평소답지 않게 'FM'대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설명을 끝냈으니 액션 듀얼 시범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LP는 4000, 단판 듀얼, 필드는 수행평가용으로 선정된 액션 필드 중 무작위로 1개만 선택되며, 신 마스터 룰을 채용합니다. 호명하는 학생 2명은 앞으로 나와 듀얼 디스크를 장착해 주시기 바랍니다. 1학년 4반 31번 허영호. 1학년 4반 10번 레이 권." 두 명은 지난 주 월요일에 홍 선생에 의해 무작위로 선발되었다. 4반에 듀얼을 할 줄 아는 학생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허영호가 학교에서 듀얼을 하는 것도 참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급식 듀얼이 철폐되자, 그 동안 "베놈" 몬스터의 독으로 상대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는 악독하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듀얼을 해 왔던 영호에게도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남의 고통을 즐기는 듀얼리스트가 급식 듀얼을 주도하던 양아치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냐'고 말이다. 영호와 같은 팀인 애가 영호 자기랑 다를 바 없는 양아치 듀얼리스트를 쓰러뜨렸는데, 정작 영호는 아무 제약 없이 인성질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같이 듀얼을 해 주는 사람들이 팀 글로리어스 톱 친구들 말고는 없었다지만, 그 사건 이후 이묘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아이들이 영호를 '인성이 썩었다'며 피해다니기 바빴다. 그렇기에 영호에게 이번 듀얼은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풀 절호의 기회였다. 스스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허영호는 1주일간 레이 뒤를 따라다니고 여남시 듀얼리스트 데이터베이스까지 뒤지며 레이의 듀얼 스타일부터 성격까지 철저하게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저 자식을 고통에 몸서리치게 할 수 있을까?'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정작 레이 권도 오랜만에 액션 듀얼을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감을 철저히 숨겨 왔었으니까. 불치병과 함께 태어나 몸이 상당히 병약한 데다가, 수예와 인형 만들기가 취미다 보니 남들에게 들켜선 안 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어릴 적만 해도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던 레이는, 노력만 한다면 병세를 감춘 채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듀얼을 좋아하는 마음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자주 이사를 다녔던 탓에, 레이는 자신을 이해해 주던 친구들과 헤어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약한 몸과 '남자답지 않은' 취미. 여러가지로 남들에게 마음을 열 래야 열 수 없는 조합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액션 듀얼인데, 하필 상대조차 보통 상대가 아니라 '인성킹' 허영호다. 그렇기에 허영호가 레이 뒤를 스토킹하는 동안, 레이 역시 허영호에 대해 파고들었다. 양아치 녀석들도 성가신데, 괜히 그 녀석에게 찍혔다간 고등학교 생활에 장애물만 더 늘어나는 셈이었으니까.
"이야~ 레이 권!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듀얼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 내가 양아치들이랑 듀얼 하느라 바빠서 말이야~"
"그런 것 같네요. 시작하죠."
살짝 위에서 내려다보는 무심하지만 싸늘한 시선. 영호가 무례하게 인사말을 내뱉자 두 사람 사이에 묘하게 싸늘한 분위기가 돌았다.
"허영호 저 자식 또 시작이네. 일진이든 범생이든 일단 욕부터 하고 본다니까? 물에 빠져도 주둥아리만 동동 뜰 자식 같으니."
"맞아맞아! 저 녀석한테는 그레이돌 덱같은 인성 덱이 어울린다고!" "베놈 덱도 인성 더럽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가?"
독한 성격답게 원래대로라면 이 수군대는 소리를 박수 삼아 즐겁게 듀얼을 시작했어야 했지만, 영호는 레이가 도발에 넘어가지 않자 껄끄러운 듯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한 방 먹는 경우는 예전부터 가끔 있었으니 그냥 넘기자'고 결정했다.
'범생이 자식, 역시 예상대로 순순히 넘어가질 않는구만. 뭐, 클라이맥스 대사는 당장 꺼낼 만한 말이 아니니까…. 일단 두고 보자고.'
두 명이 듀얼 디스크 연동을 끝마치자 둘 사이에 '액션 필드 설정'이라는 창과 함께 수많은 액션 필드 카드가 눈 앞을 스쳐지나간다. 마침내 선택된 필드 하나를 보자 두 사람의 희비가 엇갈린다.
[AF(액션 필드)-미래도시 하트랜드](*)! 엑시즈 소환을 지원하는 액션 마법 카드가 많이 생성되는 것으로 모자라, 원작을 오마주하는 의미에서 "RR(레이드 랩터즈)", "퍼니멀", "에지임프", "데스완구" 카드가 존재할 경우 보너스 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액션 카드까지 존재하는 필드였다. 하필 최악의 궁합이라니, 영호의 얼굴에 주름살이 제대로 구겨졌지만, 영호는 아닌 척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남을 괴롭히는 데에는 모름지기 이런 디메리트가 붙어야 더 재밌어지는 법이라면서.
기묘하게도, 두 사람의 듀얼 디스크 역시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모양새였다.
레이의 듀얼 디스크는 점잖고 조용한 그의 성격을 대변하듯, 가장 대중적인 메인스트림 모델 KC 스탠더드 7의 검은색 모델이다. 하지만 그 스크린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레이드 랩터즈의 상징인 진홍색 'RR' 표식이 빛나고 있었다. 그 강렬함은 레이의 숨겨진 진면목을 어필하겠다는 듯이 언제나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반면 영호의 듀얼 디스크는 "베놈" 덱 사용자답게 KC 다이아몬드백 모델의 커스텀 제품이었다. 초록색 뱀 모양 솔리드 비전이 디스크 주변에 감겨 있다가, 듀얼이 시작되면 풀려나와 S자로 구부러지고, 뱀의 몸 사이에 생긴 빈 공간에 투명한 솔리드 비전이 구축되어 그 자리를 카드 존으로 삼는 식이었다. 확실히 멋지고 마법 & 함정 존까지 구현되어 있는 얼마 안 되는 듀얼 디스크지만, 뱀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데다 배터리가 압도적으로 빨리 고갈된다는 단점 때문에 그럭저럭 중고가형 가격에 팔리는데도 특유의 외형 때문에 사는 사람이 별로 없는 물건이었다. 영호는 재철과 그의 아버지에게 부탁해 배터리 성능을 최고급 모델에 버금가도록 향상시키고, 듀얼 외에도 뱀 모양 솔리드 비전을 [EM(엔터메이트)-윕 바이퍼]처럼 쓸 수 있도록 개조시켜서 쓰고 있었다. 기술적 이유 때문에 듀얼 도중에도 이 솔리드 비전을 풀어서 상대를 고문할 수 없다는 사실만 빼면, 영호는 여러모로 자신의 성격에 맞아떨어지는 이 듀얼 디스크를 좋아했다.
"선후공은 코인 토스로 정하는 건가, 좋아. 나는 뒷면이다." "그럼 저는 앞면이겠군요, 알아서 하세요."
솔리드 비전으로 된 동전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동전은 우자트의 눈만이 그려진 뒷면을 가리킨 채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안착했다.
"이제야 좀 운이 풀리는구만, 나는 후공을 하겠어. 지금까지 너나 나나 계속 서로의 뒤를 밟았으니까 우리 둘 다 후공 덱을 쓴다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레이는 '그나마 좀 낫다'며 씨익 웃는 영호를 바라보며 말 하나 없이 코웃음을 쳤다. 영호도 우거지상으로 화답했다.
여러가지 종류의 기계음이 삐빅대면서 솔리드 비전으로 거대한 미래풍 도시가 만들어지는 사이, 두 명의 투사가 칼과 방패를 집어든다. 효시의 울음소리는 성우들이 힘차게 녹음했지만 듀얼리스트 모두가 지겨워하는 그 함성이었다.
"결투의 전당에 모인 듀얼리스트들이,
몬스터와 함께 땅과 하늘을 넘나들며, 필드 안을 뛰어다닌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듀얼 최강 진화형!
액션---!"
"듀얼!" "듀얼."
[허영호: LP 4000]
[레이 권: LP 4000]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1턴- 레이 권: LP 4000]
"패에서 [RR(레이드 랩터즈)-버니싱 레이니어스]를 일반 소환하고 효과를 발동. 패에서 [RR(레이드 랩터즈)-미미크리 레이니어스]를 특수 소환하겠습니다." RR 덱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선턴 루트. 하지만 체육 시범 수업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벌써부터 저만치 건물 앞까지 뛰어다니며 액션 카드 1장을 집은 영호와 달리 레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야, 레~이 궈~언! 이거 시범이긴 해도 체육 수업이다? 명색이 액션 듀얼인데 나처럼 뛰어다니면서 액션 카드나 주우란 말이야, 범생이마냥 굴지 말고! 우리가 이렇게 미적지근하게 딱지 치다간 수업 시간에 듀얼할 기회가 영영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신경질 반 도발 반이 뒤섞인 영호의 외침에도 레이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러는 허영호 씨도 액션 듀얼의 교과 과정 편입이니 뭐니 하는 건 전혀 신경 쓰시지 않고 듀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또 또 또 저 녀석들, 한 마디를 안 지려고 아주!' 홍미경 선생은 그 말을 듣자마자 경악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제발 높으신 분들이 액션 듀얼 도입을 허락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애들 본인에게는 물론, 허영호 녀석의 성격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영호가 속해 있다던 '팀 글로리어스 톱'이니 뭐니 하는 아이들에게까지 부탁했는데! 저 아이들은 그야말로 몇 달 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었다.
'차라리 레이는 말이라도 잘 들었지, 허영호 저 자식은 "제 알 바 아닌데요~"라고 내 눈 앞에서 비웃더니만 또 저러냐!? 제발! 애들아! 부탁이야! 너희는 전혀 모를 윗사람들이 한참 지켜보고 있다고! 방금 한 명이 지금 니네 보면서 부적합에다 체크하고 있단 말이야!! 애들아!!'
아무리 속으로 말해 봐야 도 교육청 사람들까지 아이들을 지켜보는 와중에 난데없이 소리를 지를 수는 없는 노릇. 홍 선생은 속으로 통곡을 하면서도 내색 하나 하지 않은 채 두 학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혹스러운 건 또 허를 찔린 허영호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 영호가 기선을 제압당하면 듀얼 전체의 흐름이 흐트러지다 못해 눌려버릴 게 분명했다. 레이가 말을 돌렸다는 건 어느 정도 그 행동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리라.
"정확히 알고 있네. 나야 학교에서 듀얼을 할 수 있든 말든 간에 상대를 최대한 조질 수 있으면 그만이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너가 어떤 자세로 여기서 딱지를 치는 지야 알 바 아니니까, 아까 액션 카드 얘기나 계속 하자고. 왜 너한테 유리한 액션 필드가 나왔는데도 카드를 줍지 않는 거야? 심지어 여기서는 RUM이랑 다를 바 없는 액션 마법까지 스폰될텐데? 설마, 너 액션 함정이 무섭기라도 한 건 아니겠지?"
영호는 '이번에는 확실하게 팩트 폭력 박았다!'고 생각했지만, 레이 권은 이번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야…, 이번 턴 만큼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뭐, 뭐라고?!"
"저는 이 두 장으로 [No.39 유토피아]를 엑시즈 소환하겠습니다. 그리고 패의 [RUM(랭크 업 매직)-레이드 포스]를 버리고, [SNo.0 호프 제알]을 [No.39 유토피아] 위에 겹쳐 엑시즈 소환하겠습니다. 상대 턴 동안 효과의 발동을 완전 봉인하는 효과…, 이것으로 한두턴 동안은 당신을 막을 수 있겠죠. 허영호 씨, 이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될 겁니다. 턴 엔드."
'아뿔싸, 저 빌드를 까먹고 있었다니! 저대로 [RR(레이드 랩터즈)-포스 스트릭스]를 소환할 거라고 착각한 게 잘못이었냐!'
영호는 신 마스터 룰에도 충분히 대응하는 RR 덱의 선턴 빌드를 잊고 있었다.
영호가 방금 주웠던 액션 마법은 자신 필드의 몬스터 1장을 대상으로 하고, 턴 종료시까지 공격력을 1000 올리는 [Act.M(액션 매직)-하이 다이브](*). 타점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베놈과 덱에 전부에게 좋은 카드였지만 이 턴에는 쓸 수 없었다. 이래서야 '인베이전 오브 베놈' 이후로 '유저메이드 팩'에서 지원받은 "스타브 베놈" 펜듈럼 몬스터를 펜듈럼 존에 놓을 수도 없고, [베놈 스왐프]를 발동해도 이번 턴에는 효과로 베놈 카운터를 놓을 수 없으니 무용지물. 액션 마법을 주워도 이 턴에는 사용할 수 없을 뿐더러 액션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를 일. [SNo.0 호프 제알]의 효과 발동에 체인하여 [독사의 공물]을 발동해 호프 제알을 파괴하는 일이야 가능하지만, 어찌 되었던 효과 봉쇄는 그대로 이어지는 데다 일단 [독사의 공물]을 세트해야 하는 이번 턴에는 확실히 사용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결국 이 턴에 영호는 세트 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사면초가 신세가 되었다.
"젠장, 내 턴! 드로우!"
"[SNo.0 호프 제알]의 효과 발동. 이 턴 동안 당신은 효과를 발동하실 수 없습니다." 호프 제알의 대검이 영호와 레이 모두 눈을 가려야 할 정도로 밝게 빛났다. 빛이 잦아들자, 카드 효과에 반응해 영호의 듀얼 디스크 역시 흰색으로 변해 있었다.
[SNo.0 호프 제알] (ATK 3000→2000 DEF 3000→2000)
[2턴- 허영호: LP 4000]
"몬스터 1장, 마함 2장 세트하고 턴 종료! 치사하잖아! 이래서야 액션 듀얼인 이유가 없다고!"
영호가 아득바득 화를 냈지만 레이는 여전히 침착했다.
"제가 묻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저나 당신이나 액션 듀얼따위 신경 쓰지 않는 건 똑같지 않냐고. 그리고 이게 RR 덱의 선턴 전개법이라는 거야 허영호씨도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모를 리가 없지. 근데 액션 듀얼이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않고 퍼미션이나 거는 겁쟁이랑은 말을 섞기 싫은걸? 방금 세트한 카드 두 장 중에 한 장은 액션 마법 카드인 거 보이지? 거기 가만히 있어라~ 나는 또 카드 주우러 간다!"
허영호는 뒤돌아 뛰어가려던 차에 슥 뒤를 돌아보고는 한 마디를 더 내뱉었다.
"아, 그리고 그 몬스터 어떻게 치울 거냐? 아직 [미세스 레디언트]같은 땅 속성 링크 몬스터는 없는 거 알지? [디코드 토커]라도 꺼낼 생각이면 모르겠지만 너한테는 그렇게 전개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는 거나 알아둬~"
그 말을 듣고서야 레이의 얼굴에 처음으로 자그맣게 주름살이 생겼다.
"이거야 원. 말이 많으시군요. 제 턴입니다, 드로우!"
[3턴- 레이 권: LP 4000]
"[독사의 공물]은 [갓버드 어택]과 같은 다른 카드와는 다르게 '앞면 표시로' '필드에 존재하는' '파충류족 몬스터'라는 조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불발되는 카드. 몬스터 카드를 굳이 세트하신 지금에 그 카드를 쓰실 수는 없으시겠죠. 심리전을 유도하실 생각이시라면 제대로 실패하신 것 같습니다. 이대로 공격하겠습니다, [SNo.0 호프 제알]로 세트 몬스터를 공격!" 희망의 전사가 자신의 키를 훨씬 넘기는 빛의 대검을 높이 들어올린다. 그러나 종횡무진 뛰어올라 힘껏 휘둘러서 내리찍었는데도, 세트된 몬스터는 천지개벽은 커녕 아무 일도 없이 그대로였다. 그리고 칼날을 막아내며 몸을 웅크린 뱀 뒤편에는, 오늘 들어 환하게 미소짓는 허영호가 얼굴을 들이밀며 서 있었다.
"아이고 어쩌나, 그게 내 노림수였는데! 내가 세트한 카드는 [베놈 코브라]다!" "뭐라고요?!"
"원래는 네 RR 몬스터가 타점도 낮고 '특수 소환된 상대 몬스터'를 저격하는 카드들이길래 시험 삼아 딱 1장만 넣어봤는데, 타점이 마침 2천이 된 호프 제알 앞에서 이 카드를 드로우하게 될 줄은 몰랐지. 표정 관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구?
여기서 문제. 나는 [데미지=파충류]같은 카드를 덱에서 전부 뺐으니까 이 카드를 공격 표시로 변경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 너는 그 카드를 치우지 않으면 엑스트라 몬스터 존을 못 쓰겠지. 그리고 다음 턴에 효과를 쓰면 호프 제알의 타점이 내 "베놈" 몬스터들에 비빌 정도로 낮아질 거고, 쓰지 않으면 내 카드들에게 파괴될 거야. 어느 쪽을 고르고 싶어?"
이제야 입질이 온다는 듯 싱글벙글 웃는 허영호를 보자, 드디어 레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액션 카드를 주워야 할 때가 온 건가…. 오늘 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AF(액션 필드)-미래도시 하트랜드], 더 나아가 모든 액션 필드는 원래 대형 스타디움 정도의 크기에 맞도록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몇 달도 되지 않아 유저들의 수요는 치솟았고, 게임의 활성화를 위해 수많은 액션 필드가 추가되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리얼 솔리드 비전® 활성화 장치(Real Soild Vision Activation Device, RSVAD)가 보급되도 모든 듀얼 공간이 대형 스타디움만큼 거대할 수는 없는 일. 소형화 RSVAD 보급 계획 또한 수립되고 있었기에 2015년동안 코나미는 액션 필드의 크기를 소-중-대의 3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RSVAD에 달린 공간 인식 장치의 성능을 개선시켰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늘 잘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간이란 게 코나미가 정해놓은 기준에 언제나 완벽히 부합하지는 않는 법이니까. 이 체육관은 '중형'의 면적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가는 공간이었고, 그 결과 적당히 퍼져 있는 '중형' 기준의 카드 생성 지점이 상당히 몰린 모양새가 되었다. 이 액션 필드의 카드 생성 지점 절반 이상이 고층 건물 옥상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듀얼리스트가 아니라면 눈치채기 어렵지만, 지도를 외워 둔 듀얼리스트라면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현상 때문에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곳은…….
원래대로라면 카드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어야 할 '하트랜드 타워' 아래였다.
그 사실을 불현듯 눈치챈 레이와 레이의 시선을 쫓은 것만으로도 레이의 속내를 알아챈 영호는 누구 할 것 없이 체육관 반대편에 자리잡은 하트랜드 타워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원래 먼저 뛰기 시작한 건 레이 권이었지만, 체력 탓인지 이내 영호가 앞서나가고 있었다.
"헹, 여윽~시 범생이답구만? 내가 너보다 좀 늦게 뛰기 시작했는데 내 뒤에서 쫄랑쫄랑 따라오면 어떡하냐?" "알 바 아닙니다!"
두 명 앞으로 탑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 앞에 우수수 떨어진 액션 카드들이 보였다. 투사들은 속도를 높였다.
"아직 제 배틀 페이즈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Act.M(액션 매직)-전력승부 챌린지](*)! 이 턴에 공격을 실행한 엑시즈 몬스터 1장, [SNo.0 호프 제알]을 대상 지정! 이번 배틀 페이즈에 호프 제알은 1번 더 공격할 수 있고, 이 효과로 공격할 경우 데미지 스텝 종료시까지 상대의 효과는 봉인됩니다. 이런 카드를 주울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오늘따라 운이 좋은 것 같네요."
"허! 그래봐야 호프 제알의 공격력과 내 [베놈 코브라]의 수비력은 여전히 2000이라는 걸 까먹었나 보군. 그도 아니면 액션 마법 카드라도 주울 생각이냐?" "당연하죠, 공격력을 올려 주는 액션 마법이야 많으니까요." "그럼 1분 30초 안으로 주워 보시던가!"
'하트랜드 타워' 구역에는 액션 카드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레이의 반대편으로 돌아가야 액션 카드를 더 많이 주울 수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영호는 레이를 추월할 기회를 포기하고 레이의 뒤를 따랐다. 필드를 달려나가는 아이들을 보자 양복들도 다시 체크리스트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듀얼의 전개를 고찰하자면 겨우 선턴날빌 하나를 무너뜨리느냐 마느냐의 공방전일 뿐이었지만, 두 사람이 액션 카드를 주우러 질주하자 그 달음박질의 속도에 맞춰서 학생들이 서 있는 '객석'도 달아오르고 있었다. 클라이맥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째서 카드를 주울 기회를 일부러 포기하시는 겁니까?" "그야 니가 뽑은 전력승부 뭐시기 때문에 효과 발동이 막혔으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레이의 머릿속에 '지금은 배틀 스텝이니까 충분히 카드를 발동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턴이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레이에게는 더 머리를 굴릴 시간이 없었다. 마침 레이의 앞에 액션 카드 한 장이 보였다.
"제가 주운 카드는 [Act.M(액션 매직)-하이 다이브](*)입니다! 호프 제알의 공격력을 턴 종료시까지 1000 올리겠습니다!"
[SNo.0 호프 제알] (ATK 2000→3000 DEF 2000)
"[SNo.0 호프 제알]로 다시 한 번 [베놈 코브라]를 공격!"
다시 한 번 반짝이는 전사가 빛의 대검을 두 번 휘두르자, 코브라의 볏에 X자 흉터가 생겼다. 관객들이 흉터를 살펴볼 새도 없이 뱀은 빛무리가 되어 폭탄마냥 터져버렸다. "이것으로 제 배틀 페이즈는 끝났습니다." "다시 한 번 반짝이는 전사가 빛의 대검을 두 번 휘두르자, 코브라의 볏에 X자 흉터가 생겼다. 관객들이 흉터를 살펴볼 새도 없이 뱀은 빛무리가 되어 폭탄마냥 터져버렸다. "이것으로 제 배틀 페이즈는 끝났습니다." "하, 이 때를 노렸어! 함정 발동! [강제 탈출 장치]! 호프 제알을 패로 되돌린다!" "아직 체인을 걸 타이밍이 남아 있습니다!" 마침 레이는 다음 액션 카드를 쉽게 줍기 위해 다음 액션 카드가 있는 자리에 도착해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레이가 주운 카드는…….
"액션 함정 발동. [Act.T(액션 트랩)-유래없는 불운](*). 당신의 LP는 절반이 됩니다."
듀얼 디스크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무심한 대사와 함께, 레이 권의 LP(라이프 포인트)는 2000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또한 액션 마법 카드와는 다르게 액션 함정 카드의 발동은 시스템상 '카드의 발동' 및 '효과의 발동'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듀얼 로그 기록조차 없이 그대로 효과 처리만을 이행하기 때문에 체인을 거는 것도 불가능. [강제 탈출 장치]에 체인을 걸 수 있는 시간마저 지나버렸기에 효과 처리가 속행되어 [SNo.0 호프 제알]은 속절없이 패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레이 권 LP 4000→2000)
"프리 체인 카드를 어째서 그 때에 발동하셨던 겁니까?!" 어안이 벙벙해진 레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영호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너 멘탈을 제대로 흔들어놓기 위해서 2중으로 페이크를 쳤어! 아까 너가 내 세트 카드 보고 [독사의 공물]이라고 알아서 뇌피셜을 풀어주는 거 있지? 그래서 세트 카드 얘기를 안 하면서 니 뇌피셜에 니가 걸려들도록 블러핑을 깐 거야! 특히나 [베놈 코브라]가 드러났을 때부터 너는 필드에 새 카드를 늘어놓지 않으려고 애를 썼겠지? 그래서 일부러 액션 카드를 주우라고 주의를 딴 데로 돌려 놨었어. 그러더니 전력고갈 뭐시기를 줍고 나니까 니가 아주 기고만장해지더라? 그래~서! 이 타이밍에 강탈장을 발동했다 이 말씀!"
영호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레이는 아무 말 없이 "칫"하고 짜증을 내고는, 영호 앞에 떨어진 액션 카드 위로 액션 함정 카드를 던져버렸다. 액션 함정 카드의 디메리트를 상쇄시키기 위한 시스템으로, 액션 함정 카드를 주운 플레이어는 그 카드를 어딘가에 던지는 것으로 그 카드를 설치시킬 수 있다. ADS(Action Duel Supporter) 프로그램을 듀얼 디스크에 설치하거나 액션 필드의 구조를 외운 듀얼리스트들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기능이지만, 초심자들끼리 듀얼할 때에는 서로에게 혼란을 줄 수 있었다. '액션 함정은 1분 뒤에 습득자의 손에서 사라진다'는 규칙이 추가되기 전에는 액션 함정 카드를 잔뜩 손에 들고 있다가 함정 지뢰밭을 만드는 듀얼리스트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열~ 내가 액션 카드 줍는 걸 막아보시겠다고? 내 눈 앞에서 대놓고 그래봤자 이 카드를 안 주우면 그만 아냐? 잠시만. 어머나어머나, 너 설마 나한테 화 난 거야?! 관객 여러분! 제 엔터메가 드디어 상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의 띠용한 엔터메에 박수로 화답해주세요!" 관객들은 당연히 욕설로 화답했고 그에 맞춰 양복을 입은 채점관들도 펜을 바쁘게 움직였지만, 영호에게는 이 모든 일이 그저 요란한 박수갈채마냥 즐겁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레이 권이 드디어 분노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영호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메인 페이즈 2 돌입! 패에서 [RR(레이드 랩터즈)-버니싱 레이니어스]를 일반 소환하고 효과를 발동! 패에서 [RR(레이드 랩터즈)-미미크리 레이니어스]를 특수 소환하겠습니다!" "2장째냐?! 이제 그런 패턴 더 보기 싫은데?! 관객들도 지겨워하잖아!"
허영호의 도발을 어찌저찌 무시해낸 레이는 전개를 이어나갔다."2장으로 [RR(레이드 랩터즈)-포스 스트릭스]를 엑시즈 소환!" 강철로 된 때까치들이 또 한 번 검은 구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 안에서 휘날리는 무쇠 깃털과 함께 튀어나온 형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는 지혜의 상징, 부엉이였다.
"포스 스트릭스의 효과로 미미크리 레이니어스를 제거하고 덱에서 [RR(레이드 랩터즈)-파지 레이니어스]를 서치! 그리고 묘지로 보내진 [RR(레이드 랩터즈)-미미크리 레이니어스]를 제외하는 것으로 덱에서 [RR(레이드 랩터즈)-네스트]를 서치! 다음 제 턴이 돌아오기만 해 보십시오, 그 때는 제대로 끝장내드리겠습니다!" 신 마스터 룰 이전의 RR 덱에서 애용되던 선턴 루트. 영호의 베놈이나 레이의 RR이나 상대 몬스터가 있어야 빛을 발하는 덱이니만큼, 필드가 텅텅 빈 레이는 다음 턴을 철저히 준비할 생각이었다.
"푸하하하, 과연 한 턴을 버틸 수나 있을까?! 근자감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아냐?ㅋ 거기에 2서치라, 패를 원래대로 4장으로 되돌려놓다니! 보기 거슬려! 아까 주워 뒀던 [Act.M(액션 매직)-라이트닝 보텍스](*) 발동! 패를 1장 버리고, 필드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한다!" 천둥 소리와 함께 두 명이 있던 주변에 번개 폭풍이 내려쳤다. 강철 부엉이는 액션 카드들의 잔해와 함께 쇳덩어리로 부서져 흩날렸다. 또 한 번 레이 권의 필드가 비었다. 고철 덩어리와 탄 종이가 흩뿌려진 폐허만이 파괴의 흔적을 증언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참혹한 상황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허영호는 물론이고, 다시 몬스터 존이 비어버린 레이마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고맙군요, 선턴 빌드를 한 번 더 쓸 수 있게 해 주시다니!! [RUM(랭크 업 매직)-소울 셰이브 포스] 발동! LP를 절반 지불하고 묘지의 포스 스트릭스를 대상 지정! 랭크가 2 높은 엑시즈 몬스터, [사이버 드래곤 인피니티]를 엑시즈 소환하겠습니다!" 미래도시 한복판에 생긴 구멍은 마치 배가 고프다는 듯 또 다시 몬스터를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달아오르는 것처럼 붉디붉은 섬광을 비추는 흑백의 기계룡을 뱉어냈다. 어떤 효과든 발동했다 하면 무효화하는 억제력과 끝을 모르고 몬스터를 먹어치우며 강해지는 잠재력, 그야말로 '무한'이라는 이름에 더없이 어울리는 카드였다. 그 말은 즉슨 허영호에게 넘어서야 할 벽이 또 다시 나타났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 다시 퍼미션 계열 엑시즈 몬스터를 마주했음에도, 영호는 그저 성가신 몬스터에 불과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재밌는 구경이라도 했다는 것마냥 실실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 말을 하기를 정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안하게 됬다 레~이 궈~어언. 액션 카드를 좀 줍는 것 같길래 다시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너는 역시 겁쟁이야.
너가 까먹은 것 같아서 다시 알려줄게! 이 게임이란 건 말이야, 상대 LP를 0으로 만들어야 이기는 게임이거든? 근데 너는~ 방금 액션 카드를 조금 주운 거 빼면, 공격은 커녕 내 효과를 막는 데에만 미리미리 급급하고 있단 말이야? RR이 아니라 "PSY(싸이)프레임"이라도 굴리는 것처럼. 지금 장난하냐? 아니면 주워들은 얘기라도 있어서 내 베놈 몬스터들의 독에 당하는 게 두렵기라도 한 거야? 나처럼 비겁한 놈이라면 몰라도 너같은 범생이가 겁쟁이기까지 하면 안 되지! 누구 놀려먹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내가 생판 보지도 못 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내 감히 추리해보겠어. 너같은 겁쟁이를 낳은 너희 부모님도 겁쟁이 아냐?!"
"……너만은 간단히 죽이지 않겠다…!! 턴--!! 엔드으으으!!"
그 마지막 한 마디가, 지금까지 어찌저찌 화를 억누르고 있었던 레이의 임계점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패륜이라니, 그 누가 감히 짐작했겠는가? 단톡방에 '아, 이번 심사 제대로 망했다. 하필 인성 개떡같은 애가 패드립 쳐서 심사위원들이 다 감점 쓰고 있네. 여러분 전 먼저 갑니다.'라는 메시지를 적어내려가는 홍미경 선생은 물론, 체육관에 있는 사람 모두가 경악했다는 사실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레이 권은 자기 부모님을 건드리면 폭발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허영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드로우를 준비했다.
"자, 제 2라운드를 시작해보실까!"
극한에 다다른 분노와 광기의 격돌, 그 새로운 막이 한껏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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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호리두스입니다. 이번 편은 공백 제외 1만 2천자니까 이거저거 빼면 1만자겠군요.
지난 편을 썼던 게 10월 2일이군요. 건설 현장 (또) 끌려가기 하루 전 날이었잖아 이거 으아악
하튼 그 때 이후로 2달간 일하고 1달간 쉬다가 이제는 콩익이 되었는데, 괜춘한 곳에서 근무하느라 남는 시간마다 짬을 내서 썼습니다.
액션 듀얼을 드디어 다루게 되었네요. 오랜 만에 쓰는 거기도 하지만, 지난 편에 비하면 거의 즉흥적으로 글을 써나갔기 때문에 듀얼 로그가 상당히 부실하고, '듀얼 에피소드'라기보다는 액션 듀얼의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편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조언도 구해 보고 앜파 31-32화(33화랑 34화는 보다 말았습니다, 다음 편 쓸 때 참고해야겠죠)를 보면서 연구하기도 했지만 정작 본편에 반영된 건 별로 없어서 찝찝하기도 하네요. 드디어 허영호가 주연으로 처음 등장했는데 인성 구린 차현준이랑 뭐가 다르냐 싶기도 하고, 캐릭터 신청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레이는 캐릭터성에 살을 붙이다 보니까 어지간히 중2중2한 캐릭터가 되었군요. 쓰다 보니 트위터리안이 된 최화란보단 낫나
그래도 좋았던 점이 없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애니에 비하면 살짝 현실적 느낌을 풍기는 배경에서 '액션 듀얼'이 왜 존재하는지 설득적으로 묘사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냥 깡으로 설명을 때려박는다는 구리디구린 방법을 썼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결정이 최악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지만 그걸 쓰면서 '설득력이란 무엇인가' '개연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스스로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 편이었고.
베놈은 구멍투성이 카드군이라 오리카 카드군까지 새로 던져줬는데, 이번 편을 쓰면서 RR 선턴빌드 2개를 쫙 써버리니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RR은 OCG 쪽으로 밀고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메인 덱 몬스터 몇 장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네스트가 일만 잘 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으니 오리카가 안 들어가다시피 할 것 같군요. 하튼 다음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이만 총총
볼때마다 오글거리는 저 액션듀얼 대사.... 패드립은 어디서나 하면 안되는겁니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