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기의 술수에 센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카기 따윈 순식간에 없앨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후배와 상인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는 낌새를 보이면 통증이 전해져 온다. 그리고 후배와 상인 둘 중 하나가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이다. 카기는 센라가 자신 정도는 손쉽게 죽일 힘을 가졌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미세한 움직임조차 잡아내어 부하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낸 결과였다.
결국, 어찌해볼 방도 없이 센라의 몸엔 수많은 화상 자국들이 새겨져 갔다. 푸른 불길에 휩싸인 부적에 의해서였다. 청화적이라 불리는 그것은 치명상까지 주지 못했지만, 센라의 체력을 착실하게 줄여갔다. 금과 토의 힘이 깃든 청화적이 요력을 태우기 때문이었다.
청화적은 그런 이유 외에도 결정적으로 떨어진 위치에서도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점이었다. 때문에 카기는 굳이 위험을 감수해야할 검격 보다는 청화적을 이용한 요격을 택한 것이었다.
"감탄할 정도의 의리로고. 저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요괴가 어지간히도 소중한 모양이지?"
카기는 솔직한 감정을 담아 그렇게 물었다.
연이은 청화적에 몸이 망신창이가 되어가면서 까지 누군가를 지키려 하다니, 오니가 아무리 정이 넘치는 요괴라고 해도 대단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제 목숨이 더 소중한 게 인간이다. 그것은 요괴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저 오니는 어떠한가? 혹여나 인질이 된 요괴와 상인에게 해가 갈까봐, 아무리 공격을 당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카기 자신은 참으로 치졸하고 비열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가 센라였다. 제아무리 비겁하다 손가락질을 당한들 수단과 방법을 고를 만한 상대가 아닌 이상, 자신이 할 일은 한 가지 뿐이었다.
"자비를 베풀어 조금이라도 빨리 그 목숨을 걷어가 주마."
이 구역질 날 정도의 비열한 짓을 조금이라도 일찍 끝내는 것. 이미 청화적을 던지느라 많은 영력을 소모한 카기는 당장이라도 휘청댈 것 같았지만, 그런 내색 하나 없이 소매 속에 손을 집어넣어 넉장의 부적을 끄집어냈다. 그리고는 땀방울이 송글 맺힌 얼굴로 낮게 진언을 읊조렸다.
영력이 주입된 부적이 옅게 빛나더니 곧장 센라에게로 쏘아졌다. 날아가는 도중에 푸른 불길에 휩싸인 부적은 무방비하게 서있는 센라의 팔과 쇄골, 가슴, 옆구리에 닿자마자, 폭발하듯 강한 불꽃을 만들어내며 소각되었다. 센라는 낮게 신음하며 비틀 거렸다.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해도 벌써 수십이 넘는 청화적을 맞았다. 불태워진 요력도 만만치 않아 그라고 해도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힘겨워하는 자는 카기였다.
"정말 질릴 정도로 괴물이네."
센라의 끝을 모를 요력에 카기는 입 밖으로 튀어 나오려는 욕을 간신히 참아 넘겼다. 센라는 일반적인 요괴라면 최소 오십 명은 태워 없앨 정도의 공격을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이쪽이 먼저 쓰러질 기세. 카기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털썩 하고 방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 모습에 센라가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벌써 지친 거야? 난 아직 끄덕없는데."
"구라치고 있네. 너도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잖아."
"내가 쓰러질 때쯤이면 넌 이미 뒈져 있겠지."
그러게 받아친 센라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 카기는 코웃음 치고는 품속에서 부적 한 장을 꺼냈다. 그 부적은 여태 청화적으로 던졌던 것과 조금 다른 주문이 적혀져 있었다. 붉게 쓰여 진 상형문자에 영력이 깃들자, 옅게 빛나더니 푸른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센라는 여태까지와 같은 시시한 공격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달랐다. 카기의 손을 떠나 공중으로 떠오른 부적이 한층 더 강한 불꽃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영험한 검이 갈랐다. 숨을 천천히, 길게 들이쉬고 내뱉은 카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센라에게 칼을 겨눴다.
"네 말대로 청화적 만으로는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이젠 칼질을 하겠다고?"
물음에 카기는 하하, 웃음으로 답했다. 부적을 가른 칼은 청화적의 불길이 깃들어 푸르게 불타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비장의 수이리라. 카기는 푸른빛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검을 겨눠 쥔 자세로 천천히 센라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에 센라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영력을 주입한 것만으로도 요력을 단절하고 강철 같은 육체에 상처를 줬던 검이다. 그 도신에는 청화적과 같은 금과 토의 성질이 깃들어 강력한 파마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괴물 같은 센라라도 저것은 치명적이었다. 카기가 그 비장의 수를 이제야 꺼내든 이유는 센라가 충분히 지쳤다고 판단해서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눈으로 쫒기도 힘든 불시의 공격에 당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그런 염려를 없애기 위해 자신조차 지칠 정도로 몰아 붙였던 것이었다.
검의 사정권 까지 다가간 카기는 조용히 센라를 노려보았다.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도 작은 방심도 하지 않기 위해 긴장의 끈을 한층 더 조이면서 칼을 든 양팔에 힘을 넣었다.
쉭-.
검날이 공기를 가르며 위에서 아래, 대각선으로 그어졌다. 이어 조금의 낭비도 없는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우에서 좌로 한 일자를 그리는 베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반격을 경계한 후퇴. 그 일련의 행동은 범인이라면 눈으로 쫒는 것도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다. 칼날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다시 경계 자세를 취한 카기는 누구라도 인정할 정도의 검의 고수였다.
센라의 몸에 새겨진 검의 상흔은 결코, 깊지 않았지만 많은 양의 피가 배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두 번의 참격으로 붉은 몸은 더욱 붉어졌다. 센라는 창상의 고통과 많은 출혈로 당장 숨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점의 흐트러짐 없이 꿋꿋이 서있다. 그럼에도 두 눈을 형형이 붉히며 카기를 응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유를 읽지 않고 입 꼬리를 올리고 있다.
베인 상처로부터 흘려 내린 혈액이 다다미를 적셔갔다. 마치, 불사같은 센라의 위용에 코우와 헤이치로를 인질로 잡고 있던 퇴마사들은 큰 공포를 느꼈다. 실로 다 죽어가는 몰골이지만, 압도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그라는 상황이었지만, 그것이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서 강한 기백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째서 저 몰골이 되어서도 태연할까?
어째서 저 몰골이 되면서도 반격을 하지 않는 걸까?
정말 위험한 상황에 몰리면 기습적으로 반격을 가하지 않을까 경계했던 카기는 혼란스럽기 까지 했다. 저 오니는 정령 인질을 위해서 목숨까지 아깝지 않은 것일까? 그는 한낱 요괴가 그 정도의 의인이라는 사실이 용납할 수 없었다. 요괴들의 사회는 짐승들의 사회와 같은 약육강식이다. 약한 요괴는 강한 요괴에게 이용당하고 먹힐 뿐인 존재이며, 강한 요괴는 폭군으로 군림하는 것이 섭리다. 하물며, 오니는 강한 요괴의 대명사인 존재다. 그들이 내세우는 의리도 대등한 상대에게나 해당하고, 간혹 대등하지 못한 약한 자에게도 친근하게 구는 것은 변덕을 부리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정 깊은 상대라 해도 결국, 자신을 우선하는 것은 오니가 아니라도 당연한 행동일 것이다.
이해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머뭇거리고 있는 카기에게 센라가 턱을 들고 목을 드려내 보이며 말했다.
"뭐하는 거야? 베려면 여기 목을 베야지. 자, 얼른 베어봐!"
강한 불사력을 가진 요괴라도 목을 베이고서도 멀쩡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카기가 가진 영험한 기운이 서린 검이라면 확실히 그 목숨을 거둬갈 수 있을 것이다. 센라는 스스로 죽여 달라고 말하는 꼴이었지만, 카기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눈에 뻔히 보이는 도발에 순순히 걸려들 정도로 그는 우둔하지 않았고, 또 그러기에는 센라의 기백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 대범한 요괴, 오니. 그의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카기는 작게 날숨을 쉬며 각오를 다졌다.
차츰 사그라들던 검의 불길이 다시 강하기 일기 시작했다. 또 다시 참격이 이어지려던 그때, 쥐어 짜내듯 크게 외치는 목소리가 센라의 귀를 두들겼다.
"선배-! 죽을 생각입니까!"
인질이 되어 센라의 족쇄가 되어야 했던 요괴. 선배가 당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던 약한 요괴는 그렇게 외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선배를 위해 자신이 무얼 할 수가 있을까? 코우는 더 이상 족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 때문에 선배를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념들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그는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저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싸우라고요!"
생을 연명하는 것을 추구하고 반복해온 자신이 그걸 위배하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그 혼신의 외침에 카기가 비웃음으로 답했다.
"등신 같은 놈이군."
시선을 센라에게서 떼지 않으면서, 그는 코우에게 다그치듯 말했다.
"저 오니는 말이야. 단지, 네 녀석의 안위만을 위해 저러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무엇 때문에?
카기의 말에 코우는 그렇게 묻는 얼굴을 했다. 안 봐도 무슨 표정인지 안다는 듯 카기는 비아냥대는 투를 그만두고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 괴물 같은 오니는 말이지. 자신이 정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려고 저러는 거야.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긴 하지만."
훌륭해.
그 뒤에 조용히 읊조린 말은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고 공기 중에 흩어졌다. 우직하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해 나가는 모습은 설령 요괴라 할지라도 훌륭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바보 같아 보이는 법. 카기의 입에 쓴 웃음이 걸렸다.
카기가 멈췄던 발을 다시 옮기고 있을 때, 코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센라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란 말인가? 생각해보면 짚이는 구석이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신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약한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몇 번이나 말 했었다. 가장 최근에는 상인인 헤이치로를 호위하겠다고 했었는데, 그 말에는 그 신변을 보장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설마, 그런 걸 위해서.
그런 약속들이 자신의 목숨 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까.
지켜지기만 하는 존재는 결국, 센라의 약점이 되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 사실을 절감하고 있는 코우는 상인은 고사하고 스스로도 지키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보잘 것 없어 분노마저 느껴졌다. 코우는 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목숨의 위기를 느꼈지만 이 때 만큼 자신의 약함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결국, 약한 자신 때문에 선배가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그는 자괴감에 치를 떨었다.
그리고 묶인 상태로 안간힘을 써 몸부림쳤다. 지금 코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지만, 곧 무의미하게 끝날 수밖에 없었다. 어깨 죽지에 파고든 차갑고 시린 날붙이의 감각. 곁에 지키고 서있는 퇴마사의 칼날에 코우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뒤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는 그 상태에서 신음하듯 외쳤다.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여기서 자신이 죽는다면, 선배는 더 이상 자신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선배는 마음껏 싸울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가만히 죽음을 기다리지 않겠지. 코우는 그런 요량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것이겠지만, 쓸데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그 자신은 알지 못했다.
인질은 살아 있기에 가치가 있다.
그리고 코우가 죽는다 해도 헤이치로라는 인질이 있었다.
그런 단순한 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코우의 머릿속은 후회, 자괴, 원통함으로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