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였구만.”
무언가 몸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레이무는 그리 웅얼거리며 잠시 몸을 비척거리는 채로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배후에는 바위가 있어, 위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중얼거렸다.
“그래서였어.”
그래서 알아챈 거였어. 마지막으로는 입을 앙 다문 레이무가 숙인 고개를 곧 위로 솟구었다. 마미조와 순간 눈을 마주치자 말을 꺼내려 들었다. 하지만 이번의 순번은 그녀의 차례가 아니었다.
“때문에 알 수 있던 것이었네. 자네가 요괴임을.”
“난 인간이야.”
“그렇지. 지금의 자네는 인간이야. 어떤 수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일세.”
“시끄러워.”
레이무가 다시 시선을 숙였다. 한 손으로는 제 얼굴을 움켜쥐었다. 입을 앙 다물도록 하는 턱 근육에는 괜히 힘을 잔뜩 주었다.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스스로 드러낼 수도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들켰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때문에 부끄러운 과거가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알아채주기를 원했던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말하고 다녀.”
“으응?”
“실컷 말하고 다니라고. 하쿠레이의 무녀가 살인자라고. 한 번으로 모자라, 두 번이나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나는 자네를 규탄할 생각은 없네.”
“아니야, 차라리 말해. 그렇게 소문을 퍼트려. 그냥 날 고립시켜버리라고.”
결국에 들은 마음은 죄책감일까. 레이무는 자신을 옹호해주기보다는 나무라기를 원했다. 마미조로서는 레이무의 태도가 이해는 가더라도, 공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했던 총 두 번의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 사유가 충분했다. 모두가 결코 어겨서는 안 될 환상향의 규칙과 관련하여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한 번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것뿐이며, 또 한 번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 아닌가.
“요괴로 변해버린 인간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뭐가 당연해! 도대체 뭐가 당연한데! 인간을 죽이는 게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냐고!”
빠득빠득 갈리고 있는 이 사이로 눈물이 비집어 들어갔다. 레이무는 눈물과 함께 숨을 삼키더니 이내는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꾹 틀어막았다. 자신에게 있어 살인이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하쿠레이의 무녀를 자처했는데. 뭣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쿠레이의 무녀가 되지 않도록 했는데.
복수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신과 같은 이들이 결코 나오지 않도록 하려 한 것이었는데.
“자네는, 자네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원하나보군.”
“…….”
“무얼, 이해는 가네. 인간이란 정에 연연하여 살아가는 생물이야. 그렇기에 잃는 것에 슬퍼하고 또한 분노하지.”
예상보다 좀 더 격렬한 반응이긴 했지만, 일단은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은 상태였다. 마미조는 이제 레이무를 끌어들인 제대로 된 이유를 밝히기로 했다. 협상을 위해서.
“때문에 자네를 불러낸 것이야.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려 드니 말일세.”
“무슨 소리야.”
“모토오리 코스즈는 알고 있겠지.”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레이무가 덜컥 고개를 들어올렸다. 오기 전 아큐와 이야기를 나눌 때 주제로서 주고받았던 이름, 그 이름이 어째서 지금 나오는지. 레이무는 휘둥그레 뜬 눈으로 마미조를 보더니 말했다.
“너.”
“그 아이가 능력마저 개화했으니, 조짐은 자네도 눈치 채지 않았나 싶네만.”
“네 짓이야?”
“아니지. 나는 오히려 지키는 쪽이네.”
레이무가 금방이라도 덮칠 듯한 기세여서 마미조는 우선으로 답했다. 그럼에도 적의는 가시지 않아, 눈물자국 어린 얼굴은 아직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미조는 이야기를 조금 더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능력의 개화는 곧 요괴화의 조짐이나 다름없지. 스즈나안은 원래가 요기가 충돌하는 경우가 잦은 장소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만.”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죽이고 요괴로서 부활한다. 요기의 충돌이 강하거나 잦은 장소에 머물러 변화한다. 요괴의 고기를 먹어, 그 뼈를 녹이는 독기로부터 살아남는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요괴가 되는 방법. 코스즈의 경우에는 바로 두 번째의 경우였다.
“너, 의도가 뭐야.”
“자네와 협력하고 싶어서이네.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말이지.”
마미조가 살짝 다리를 꼬았다. 손가락으로는 가볍게 깍지를 꼈다. 씨익, 미소를 짓더니 이야기를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뜬금없다 생각될지 모르지만, 자신의 목적과는 아주 큰 연관이 있는 이야기를.
“자네, 몇 년 전부터 요괴의 방침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아는가?”
“뭐?”
“지금까지는 공포의 존재로서 군림하려 들던 요괴들이, 은연중으로만 수수께끼의 소문을 퍼트리는 식으로 방식을 바꾸었다는 것을 말일세.”
마미조가 품에서 신문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땅에서 츠쿠모가미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 둘은 요괴가 마을에 정체불명의 소문을 퍼트리는데 사용되는 것들이었다.
“자네는 요괴와 맞서려 들기에 변화를 체감하긴 힘들지 모르지만, 분명히 요괴들은 변화했네. 헌데, 변화에는 이유가 따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레이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로 답을 기다리던 마미조는 이내 손가락으로 레이무를 가리켰다.
“바로 자네 때문일세. 대요괴조차 결코 범접할 수 없는 힘을 휘둘러, 역으로 요괴들에게 공포란 감정을 각인시켜 버린, 이번 대의 하쿠레이인 자네 말이야.”
“그래서 뭐.”
“자네가 존재하고 있기에 요괴들이 변화했다는 소리일세. 또한 발톱을 숨기고 있다는 것일세. 그렇다면, 자네가 죽어버리는 순간 환상향이 어찌 될지는 뻔하지 않겠는가?”
인간이란 수명이 짧아, 금방 쇠해버리는 존재. 그렇기에 요괴는 인내하는 것이다. 이번 대의 하쿠레이가 죽을 때까지. 그리고 그 순간이, 요괴들이 숨겨왔던 발톱을 드러내어 욕망을 분출하려는 때.
“나도 한때는 그랬네. 자네의 강함이 무서워, 잠시 정체를 숨기고 살고 있었지.”
마미조는 말을 마치더니 킥킥 웃어대었다. 하쿠레이 레이무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기다린다. 요괴들의 그 기대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위의 이야기는 모두가 하쿠레이가 인간이기에 성립되는 것이었으니까.
“허나 자네는 요괴이지 않은가? 그리고 요괴로서의 자네도 어중이떠중이들은 결코 도달조차 못할 경지에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수명조차 한정지을 수 없지.”
쿠다키츠네의 때 느꼈던 이질적인 요기. 그 때문에 알아보기 시작했던 레이무의 과거. 그렇게 알아낸 것은 하쿠레이 레이무가 요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마미조는 레이무와 협력하길 원하게 되었다.
하쿠레이 레이무는 절대로 쇠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인간으로서의 하쿠레이 레이무가 죽는다 하더라도, 요괴로서의 하쿠레이 레이무가 이름을 바꿔가며 또 군림할 테니까.
“그래서 일치감치 결정했네. 자네와 손을 잡기로.”
“내가 요괴와 협력을 하라고?”
“자네라면 당연히 거절하려 들겠지.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겠네.”
거절이야 예상했다. 그녀의 복수심은 모든 요괴를 향해있었으니까. 하지만, 복수를 위해서라 할지라도 레이무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 존재함을 마미조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손가락을 살며시 들어 올리며 제안했다.
“모토오리 코스즈, 그 아이가 요괴가 되는 것을 막아주도록 하지.”
“…….”
마미조를 바라보는 눈에서 적의는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눈 너머로 망설임과 주저가 보여, 마미조는 쐐기를 박았다.
“그 아이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지 않은가?”
“뭘 원하는데.”
“요즘 어린애들이 너구리를 괴롭히는 일이 잦아서 말일세. 그렇다고 저항하다 인간이 다쳐버리면 자네가 퇴치해버릴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고.”
“뭐 어떡하라고.”
“퇴치에 유예를 주었으면 좋겠네. 죄를 넘겨달라는 소리는 아니고, 수습이나 피해자와 타협을 할 정도의 시간을 어느 정도껏 주었으면 한다는 게야.”
“…….”
“동족이 가벼운 죄에도 속속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나로서도 마음이 아프니 말일세.”
“……어느 정도는 감안해 주겠어. 하지만, 아이를 납치하거나 죽이는 등의 중죄를 저지르는 순간 타협은 없다.”
“고맙구먼.”
껄껄, 마미조가 너털웃음을 했다. 벌컥 일어나 레이무에게 슬그머니 다가서더니 허리춤의 호리병을 열어 잔과 함께 술을 따라주고는 물었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이 있네만.”
“뭐야.”
“자네의 둔갑 방식은 도대체 무엇인가? 쿠다키츠네의 때에서는 힘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보였다만, 지금은 전혀 요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말일세.”
“난 인간이라 했을 텐데.”
“……밝히지 않고 싶은 것은 알겠으나, 늙은이의 호기심이란 것이 워낙 왕성하니 말이지. 이왕 들킨 것, 속 시원하게 말해보는 것이 어떤가.”
마미조가 술을 따라 마시며 레이무의 눈치를 슬그머니 보았다. 레이무는 술을 마시지 않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수면만을 양껏 주시하기만을 하였다. 말해주지 않겠는가? 마미조가 다시 물었다. 레이무는 잠시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인 나와 요괴인 나는 달라.”
“음, 반인반요란 소리인가?”
“아니.”
레이무의 무녀복이 슬그머니 어깨까지 내려갔다. 몸을 온통 옭아놓는 실에 꿰여져있는 부적들이 보였다. 레이무는 손톱으로 실을 끊더니 부적을 가지런히 모아 손에 쥐어들었다. 한 순간에 끝난 마미조의 둔갑과는 달리, 레이무의 변화가 서서히 시작되었다.
“지금의 난 인간이야.”
그 말을 하는 레이무의 머리칼은 흑색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보랏빛으로 변색되었다. 짙은 호박색과 비슷하던 갈색의 눈도 머리칼과 똑같은 색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마미조는 그녀의 몸으로부터 서서히 흘러나오는 요기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레이무는 완전히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 색을 확인하더니, 그제야 말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은 요괴고.”
“……허허.”
마미조는 쿠다키츠네의 때 레이무의 요기가 드러났던 이유를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질적인 요기를 찾아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요기를 풀었던 것이었을 터다. 요기의 이질감은 요괴가 더 잘 아니까. 마미조는 그 사실을 알아챈 천운에 감사하다가도 헛웃음을 터트렸다.
“인간으로서의 나와, 요괴로서의 나는 다른 존재야.”
레이무는 그리 말하며 뽑아든 머리카락으로 끊어진 실을 이었다. 다시 부적다발을 몸에다가 빙빙 둘러매기 시작했다. 요기는 봉인에 천천히 억눌려 존재를 잃어갔다. 원래대로 돌아온 머리의 색을 확인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러니, 날 요괴라고 하지 마.”
========================
그러니까
구작 레이무는 요괴고
신작 레이무는 인간입니다
레이무 요밍아웃;
겐지도 나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