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왕 19년(기원전 1)
19년(기원전 1) 가을 8월,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쓸 돼지가 달아났다. 임금은 탁리(託利)와 사비(斯卑)를 시켜 쫓게 하였다. 그들은 장옥(長屋) 늪 가운데 이르러 돼지를 발견하고 칼로 그 다리의 힘줄을 끊었다. 임금이 이것을 듣고 노하여 말하였다.
“하늘에 제사 지낼 제물에 어떻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가?”
임금은 마침내 두 사람을 구덩이 속에 던져 죽였다.
9월, 임금이 병에 걸렸다. 무당이 말하였다.
“탁리와 사비가 빌미가 되었다.”
임금이 그를 시켜 귀신에게 사죄하게 하니 곧 병이 나았다.
十九年 秋八月 郊豕逸 王使託利 斯卑追之 至長屋澤中得之 以刀斷其脚筋 王聞之怒曰 祭天之牲 豈可傷也 遂投二人坑中殺之 九月 王疾病 巫曰 託利 斯卑爲祟 王使謝之 卽愈
[네이버 지식백과] 유리왕 [琉璃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21년(서기 2) 봄 3월,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쓸 돼지가 달아났다. 임금은 희생(犧牲)을 관장하는 설지(薛支)에게 명하여 뒤쫓게 하였다. 그는 국내 위나암(尉那巖)에 이르러 돼지를 찾아서 국내 사람의 집에 가두고 기르게 하였다. 설지가 돌아와 임금을 뵙고 말하였다.
“신이 돼지를 쫓아 국내 위나암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의 산수가 깊고 험한데다 땅이 오곡을 키우기에 알맞고, 게다가 고라니와 사슴, 물고기와 자라 등 산물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임금께서 만약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시면 백성의 이익이 끝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쟁의 걱정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 4월, 임금이 위중림(尉中林)에서 사냥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유리왕 [琉璃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두 상황의 차이를 뒤늦게 이해하게 됬는데
첫번째 상황 돼지가 달아남->잡았으나 돼지 상해를 입힘.->제물에 상해를 입히다니 너희들 죽어
두번째 상황 돼지가 달아남->잡았는데다 무사히 국내의 민가로 옮김->심지어 미래의 수도까지 물색함
이러니 두번째 상황에서 처벌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는 차이.
흥미로운 초기 고구려사 이야기입니다.
사람 목숨이 참..
삼국시대에 돼지를 많이 기르는 편이었나요? 저때를 생각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분홍돼지가 아니라 멧돼지였을텐데 기른게 아니라 사냥으로 잡은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