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정보 게시판에 리디북스의 전자책 환불 불가 정책에 대한 글이 올라온 것을 보았습니다.
http://bbs.ruliweb.com/family/212/board/300277/read/2164675
요지는 "리디는 전자책 내용에 문제가 있을 때, 특히 페이지 누락등의 문제를 출판사가 수정해주지 않았을 때도 환불해주지 않는다" 라는 대목이겠는데요.
이 부분과 관련 논의에 대해서는 좀 더 정보가 필요할 듯 하여 몇 가지 적어봅니다.
0. 순수하게 실무적, 기술적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페이지 누락도 단순 실수일 수 있고, 관련 문제제기 처리도 관련 실무자들의 업무 과다로 미처 전달 안 된 것일 수 있습니다. 진행되고는 있는데 그냥 느리게 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리디에서도 수정 조치를 밟고 있는 중이라 환불 처리를 하기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도 그 나름대로 다 비판지점이 있습니다만, 이하는 그 외의 경우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1. 전자책시장에서 리디북스는 출판사에 대해 '을'이 아닙니다.
어느 쪽이냐면 ... '을'보다는 '갑'에 더 가깝습니다. 특히 서브컬처(만화, 장르소설) 분야에서는 그렇습니다. 일반서 전자책이라면야 한국이퍼브(Yes24, 알라딘), 네이버 북스, KPC 등도 잘 판매하지만 만화와 장르소설에선 리디의 비중이 더 높고, 이 분야 출판사와 리디의 관게에서는 리디가 '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리디의 발언권은 상당히 셉니다.
2. 그렇기에 리디가 전자책의 누락 내용 보완을 요구했을 때 출판사가 의도적으로 거부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만약 의도적으로 삭제한 페이지이거나(일러스트 등), 정책상 안 들어간 페이지일지라도 리디에서 요구하면 출판사 쪽에서는 기본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하여 보완 방법을 찾습니다. 의도가 아니라 단순 실수로 누락된 페이지, 누락된 내용이 있는데 출판사가 리디의 요구를 묵살한다 ... ?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3. 전자책의 표현 규제가 종이책 보다 강합니다.
이는 현 시점 한국 전자책 시장의 아쉬움이기도 한데요. 전자책은 기본적으로 종이책보다 표현규제가 강합니다. 종이책 버전으로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멀쩡하게 통과한 책인데 전자책 서점의 요구로 내용 삭제가 이뤄진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고,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입니다. 종이책에서 허용되는 표현도 전자책에서는 걸러지는 때가 잦고, 종이책에서 아무 모자이크 없이 나갔던 일러스트지만 전자책에서는 모자이크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업로드하고 났더니 이거 이거 이거 지워주세요 라는 연락을 받는 일도 흔합니다. 이런일들이 반복되면 출판사에서는 전자책 서점들과의 표현 수위 밀당에 지쳐서 본문 일러스트를 일괄삭제하고 출시하는 선택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종이책에 있는데 전자책에 빠진 페이지, 빠진 내용이 있다면, 전자책 사업자 쪽의 요구나 규제 수위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표현 규제 수준으로 따지자면 전자책 서점 중에서도 리디가 다른 서점보다 더 엄격합니다. 남성향 콘텐츠에 대해서는 더 엄격합니다. 다른 전자책 서점에서 문제 없이 통과한 컷이지만, 리디 버전에선 추가로 지적당하는 일 ... 있습니다.
4. 한국의 전자책은 왜 그렇게 표현 규제가 강하냐?
사실 이 부분은 1~3의 설명만으로는 약간의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데요. 리디북스와 전자책 서점들에 대해 조금 변호를 해보자면, 한국의 전자책 표현 규제는 '인터넷/디지털 콘텐츠 전반에 대한 규제 수준'을 따라가고 있는 정도입니다. 즉 리디북스와 전자책 서점들이 다른 인터넷 사업자들 보다 더 엄격하게 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인터넷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들은 왜 그러는 거냐 ... ? 꼰대냐?
근본적으로 ...
6. 한국은 종이책에서 허용되는 표현 수위와 인터넷/디지털에서 허용되는 표현 수위에 상당한 간극이 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종이책에 대해 더 폭 넓게 허용이 됩니다. 예컨대 ...
1) 종이책에 대한 규제는 군부독재 시절 부터의 예술, 표현, 언론의 자유 문제 등과도 연결되어 있어 관련 기관에서 쉽게 건드리지 않습니다.
2) 마찬가지로 종이책 출판사들도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에 민감하고 심의 기준이나 심의 결과를 놓고 심의 기관과 줄다리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 그런 이유로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잣대가 방송, 게임, 인터넷 관련 심의 기관들의 잣대보다 합리적입니다.
4) 관련 법제도도 종이책에 더 유연합니다. 단적인 예로 '아청법'은 종이책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 등의 요인이 있습니다.
그런 결과로 디지털 콘텐츠의 일종인 전자책에 주어지는 잣대와 아날로그 콘텐츠인 종이책에 주어지는 잣대가 상당히 달라졌고, 전자책 사업자들은 이런 간극 위에서 어느 정도 줄다리기를 하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접고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해야겠지요.
국내 전자책관련은 아직도 시스템적으로 아직 미흡한게 많은듯. 외적인 요인이든 내적인 요인이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