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
홀로 후덥지근한 자취방 방바닥에 눌러 붙어 있는 상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 것도 찾을 길 없는 내 인생. 누구도 불러주지 않고 찾을 사람도 없는 인생. 숨이 막힐 것 같은 원룸은 지금 내 인생과 다를 게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것도 없는 인생.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벌레가 방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넌 어디 갈 곳이 있구나.
저 벌레만도 못한 게 내 인생이었다. 이 무더운 방안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나갈 이유가 없었다. 창문을 열어도 방안은 숨이 막히게 더웠다. 대체 어디서 잘 못된 걸까? 의미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수능 때 그 문제를 맞혔으면?
그 여자애에게 말을 걸었으면?
일진들에게 맞고 다니던 때 고개를 치켜 들고 때리지 말라고 말했으면?
의미 없다. 의미 없어. 지금 내 인생은 그저 그런 외모에 그저 그런 대학에 아무것도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무것도 없는 침전물 찌꺼기 그자체이다. 어떻게 오게 된 대학에서도 나는 시간을 허비했다.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차라리 친구들하고 떠들고 놀았다면 더 나았을까? 아니면 유학이나 알바나 다른 활동을 알아봤다면?
다리 여러 개 달린 벌레는 벽을 타고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저 벌레가 부럽다. 타고 올라갈 벽이 있다면 나에게도 그런 게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공부는 나름 잘 했었는데.......
라는 생각으로 자위행위를 하는 게 하루의 일과에 끝이다. 방안에 틀어박혀서 시간을 때우는 게 내 생활의 전부다.
정말 죽고 싶어졌다. 한 번 죽어볼까?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내 몸은 방바닥에 눌러 붙어있는 상태였다. 이래서야 나 진짜 죽을 수 있는 걸까? 유서 일단 유서부터 쓸까? 나는 일어나서 내 책상 위를 보았다. 뒷면에 전공수업 필기가 있는 A4용지 한 장이 보였다. 수업 때 책을 안 들고 가서 눈치가 보여서 억지로 적는 척 했던 그 종이다. 나는 펜을 꺼내 들었다.
.......... 시작이 너무 힘들다. 수업 답인지도 제대로 못 쓰는 내게 유서는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할 일 없고 친구가 없어서 자살 합니다. 남은 재산은 –
쓸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나는 A4용지를 꾸겼다. 그리고 방바닥에 버렸다. 나는 자살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인터넷에는 자살을 하지 말라는 내용뿐이었다. 쓰잘데기 없는 인터넷은 내가 죽을 때도 도움이 되질 못했다.
손목을 긋는 건 – 피가 나는 게 무서워서.
목을 매는 건 – 끈 매듭 묶을 줄을 몰라서.
독극물을 마시는 건 – 그런 건 어디서 파는지 몰라서.
그냥 높은 데서 뛰어 내려야겠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제 죽을 건데 옷을 차려입을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3일 만에 방을 빠져 나오는 데 그 이유가 자살이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 이럴 때 쓰는 단어가 맞나? - 뭐 아무튼 요상한 상황이었다.
교양 과목 강의를 들으면서 그 수업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여기서 떨어져서 죽어버릴까? 생각했던 강의실이 있었는데. 그곳이면 내가 죽기에 알맞을 것 같았다. 그 끔찍했던 교양강의가 내 인생에 도움 되는 일을 해주다니 이거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학교 건물로 향했다.
총 20층 새로 지은 건물이었다. 여기서 죽은 사람은 내가 첫 번째가 될 것이다. 미래 없이 착취 받는 대학원생들은 자살에서도 1등이 되지 못하겠군. 건물 안에 앨리베이터가 가동하고 있었지만 마지막 죽는 거 내 몸을 더 써보고 싶은 마음에 나는 내 육중한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갔다. 몇 층이 좋을까? 사람은 일정 높이 이상에서 떨어지면 떨어지는 동안의 심장마비에 의해서 죽는 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럼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게 좋은 걸까? 나는 힘들게 13층에 올라왔다.
불길한 숫자. 마음에 들었다. 내 암울한 학창시절이 떠오르는 어두운 숫자다.
헥헥거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도 잠겨 있지 않는 강의실이 한 곳 있었다. 뒤 쪽 창문으로 학교 내 전망이 훤히 보이는 강의실이었다. 멋지게 뛰어내리기에는 내 몸집에 비해서 약간 작은 창문이었지만 뛰어내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창문을 열고 내 상반신을 들이밀었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밑으로 보이는 풍경에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나는 중심을 잃었다.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혹은 재미없고 불쾌한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을 받으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내 눈 앞에는 OMR카드가 있었다. 죽고나서도 시험을 치는 건가? 못치면 지옥으로 가는 걸까? 나는 주위를 둘어보았다. 어딘가 굉장히 익숙한 교실이었다. 그리고 내 앞과 옆에는 빼곡히 교복을 입고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죽은 사람들인 걸까? 나도 이걸 풀면 되는 건가? 나는 시험지를 집었다.
"학생 어디 아픈가요?"
감독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OMR에는 2014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지라고 적혀있었다. 이건 내가 망쳤던 그 수능 시험이다. 그리고 1교시 언어영역 문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