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온, 기체를기울인 두 대의 헬리콥터가 지상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허공을 휘젓는 로터 바람이 내가 걸친 제복 옷깃을 마구 뒤흔들었다.
어찌나 바람이 거셌는지 두 다리가 바람에 휘둘려 휘청거릴 정도다.
나는 한 손으로는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꼭 붙들고,다른 한 팔로는 얼굴을 가렸다.
피부를 때려오는 모래 먼지가 따끔하게 아파왔기 때문이었다.
'역시 수염을 기를 걸 그랬나.'
왜 사막의 사내들이 더운 기후에도 불구하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는 것인지,
이 작전 지역에 착임한 뒤로는 매번 느끼곤 한다.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도 문제를 잘 알고 있다.
내 턱수염은 너무 듬성듬성 자라서 길러도 별로 멋이 안 난다는 것을.
‘하다못해 CEO님 정도로 멋지게 자라면 시도해봤겠지만……’
어쩔 수 없지. 타고난 생김새는극복할 수 없다.
헛된 노력에 힘을 기울이느니 차라리 그 노력을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
나는 그런 사소한 생각을 하며, 귀청을뒤흔드는 로터 소리가 잦아들 때에 맞춰 천천히 헬리콥터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작전이 끝난 지 30분이 지난 지금.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는 제대원들을 마중하기 위해, 나는본부 옥상에 있는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올라와 있었다.
내가 착륙한 헬기에 다가서자, 측면의 문이 열리며 반가운 제대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 힘들었다!”
예상대로다. 알게 모르게 성격 급한 UMP45가 가장 먼저 내려섰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숙인 뒤, UMP45에게로 다가가와락 껴안았다.
UMP45는 흠칫 놀라더니, 내 머리를 쥐어짤 기세로팔꿈치를 짓누르며 말했다.
“뭐 하는 짓일까, 오자마자…… 죽고 싶어서안달 난 거지?”
“음, 역시 딱딱하단 말이지.”
“…… 뭣! 주어를 말하지 못해!”
“네 성격 말한 거다, 성격. 대체 뭘로 생각했길래이렇게 화를 내시는 걸까나.”
길길이 날뛰는 UMP45를 껴안고서 그녀의 등을이리저리 쓰다듬고 매만져 보던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며 말했다.
“응. 역시 다음 작전 투입은 안되겠다. 수복실 가라.”
“…… 숙녀를 성추행 해 놓고, 그런 식으로말 돌릴 생각이야?”
“리퍼가 쏘는 거 피하려다 제대로 피탄 당한 거 다 봤다. 부러지진 않아서 다행인데 등 쪽 골격 연결부 완전히 어긋났네.
수리요청해 놓을 테니 잘 쉬고 돌아와. 괜히 바로 작전 나서겠다고 멀쩡한 척은 관두고.”
UMP45의 상처 난 왼쪽 눈이 꿈틀거렸다.
나는 태연하게 웃으며 가볍게 고갯짓으로 UMP45를재촉했다.
“말 들어. 먼저 내려가.”
“칫, 색골 같으니.”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본부로 걸어 들어가는 UMP45의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제대원들을 향해 다시 몸을 돌리고는 뿌듯한 마음을 목소리에 실어 말했다.
“힘든 일 하느라 수고 많았어. 특히 콜트가오늘 고생 많았다.”
“우왕, 역시 지휘관 님은 내 가치를 알아주는구나! 좋아, 이 보답은 콜라로 받아야겠……”
나는 흐뭇한 미소로 콜트 리볼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우리가 자주 다투는 사이였다지만, 사회에서나가서도 꼭 잘 지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 곳에서의 생활을잊지 말아줬으면 좋겠고.”
“으앙, 지휘관! 잘못했어!”
“어디 보자, 전역 선물로는 역시 콜라가좋겠지?”
“으앙! 그만 해! 나를 싫어하지 말아줘! 갈아 치우지 말아줘!”
“그러고 보니 말이지, 탄광에서는 콜라배급을 잘 해준다던데……”
내 제복 옷깃을 붙잡고 마구 늘어지던 콜트 리볼버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입을 다물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겨버렸다.
이 녀석, 콜라 하나면 뭐든지 할 생각이냐……
팔짱을 끼고 콜트 리볼버를 씁쓸하게 쳐다보고 있던 그 때, 앞으로 나선 톰슨이 멋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 지휘관. 아가씨를 너무 놀리면 안되지.”
“그렇구나, 톰슨. 역시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콜트 리볼버와 함께 해온 시간 동안많은 정이 들었나 보네.
의리 좋지, 알겠어. 사회에 나가도 둘이 같이 힘을 합치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어. 가끔씩내게도 안부 전해주고……”
“지휘관, 농담이겠지이! 내가 얼마나 지휘관을 마음 속으로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줬으면 좋을 텐데!”
녀석들.
얄밉게 굴거나 잰 척 하기는 해도, 그녀들은이미 이 곳에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전술인형이다.
당연히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냥 기강을 다스리려는 의도일 뿐이지.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며 달라붙어 오는 콜트 리볼버와 어울리지 않는 애교 가득한표정을
짓고 있는 톰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며, 나는 다시 헬기로 시선을 돌렸다.
헬기에서 제일 늦게 내린 것은, 어울리지않게 황폐한 표정을 짓고 있는 IDW였다.
버려져 있다가구출되어 본부로 오는 다른 전술 인형의 모습과 다르다.
보통은 너덜너덜해진 의복으로 안전한 본부에 도착한 것을 안도하며 기뻐하는 게 보통인데,
눈 앞에 선 IDW는 풍화되어 거칠어진 천을 망토처럼 걸친 채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버려진 것이 아니라 제 발로 작전 지역에 뛰어든 듯한, 척박한 환경에 적응된 전사의 모습이었다.
역시, 아무리 봐도 위화감이 심각하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IDW에게 손을내밀어 인사를 청하려던 그 때였다.
IDW는 불쑥 고개를 들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이 곳의 지휘관이냥?”
“응, 아까 인사 나눴지? 알아보겠어?”
하지만 IDW는 내 질문에 답하는 대신재차 질문을 던졌다.
“이제 냐, 어떻게 되는 거냥?”
나는 간지러운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귀찮고땀만 많이 차서 평소에는 항상 벗어두지만,
제대원들을 맞이할 때에는 일부러 모자를 쓰고 있다 보니 어쩐지머리가 가렵다.
모자를 재차 고쳐 쓰는 시늉을 하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글쎄. 일단 먼 길 왔으니 휴식을 취하는게 좋겠지? 그 후에 앞으로 거취를 어떻게 할 지는 천천히 이야기를……”
“지휘관, 부탁하겠다냥. 냐, 전역하고 싶지 않다냥.”
IDW가 불쑥 꺼낸 말을 듣는 순간,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건만, IDW는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게 될 지 알아챈 듯 했다.
사실 지금의 부대 상황으로도 예산이며 자원이며 어느 것 하나 여유가 없는 애매한 상황이다.
게다가 IDW라면, 더욱 애매하다.
이미 앞으로의 작전에 맞춰 전력을 맞춰둔 상황이다.
오히려 없는 사정에 더 나은 전력을 짜내도 모자랄 상황에, 불필요한 전력을 늘릴 여유는 없는 것이다.
나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어째서지?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없는데?”
IDW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냐, 알고 있다냥. 냐를 거두어 주려 할 지휘관은 없을 거다냥. 그러니 차라리 냘 전장으로되돌려 보내 달라냥……”
“전장으로 보내달라니…… IOP제조에 그리폰소속 전술인형인 걸 확인한 이상 그럴 순 없지. 단독행동을 하도록 두는 게 이상한 거다.
몹쓸 곳에 이용되거나, 철혈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어. 넌 위험한 곳에서 무사히 회수된 거라고.
그리고 전역 여부는 상담후에 합의해서 결정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럴 수 없다냥……”
나는 한숨을 토했다. 입 안에 꺼끌한 모래맛이 맴돌았다.
인간의 말을 우선으로 따르도록 되어있는 전술인형답지 않은 모습이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무척 완강한 저항이다.
아무리 IOP의 전술인형이 필요에 따라인간에게 맞설 수도 있고 재량에 다라 자율권도 보장된 프로토콜을 쓰고 있다고는 해도,
이 정도로 인간의통제를 거부해 버리는 인형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은 먼저 본부로 들여보내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휴식을 가지게 하면서 천천히 설득해 보는 게 최선이다.
“……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운 건가?”
“아니다냥, 냔 아직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설령 네가 사회로 나가게 한다 하더라도, 널 값어치 있게 생각하고 아껴줄 사람이 많을거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줄곧 침울한 목소리를 내고 있던 IDW가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흠칫 놀라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물러설 뻔 했다.
“그럴 수 없다냥! 냔, 냔 꼭 전장에서 해야할 일이 있다냥! 약속했다냥! 사회로 냐가게 되면, 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냥……!”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니, 이미 사회로 나가서 성실하게 살고 있는 인형들을 무시하려는거냠…… 음?”
아, 이런. 하도 냥냥 소리를 들었더니 입버릇처럼 옮아버린 것 같다.
하지만 IDW는 웃음기 하나 없이 계속해서고집을 부릴 뿐이었다.
“…… 부탁이다냥. 싸우게, 두어 달라냥.”
틀렸다. 아무래도 이대로라면 서로의 입장만팽팽하게 맞설 것이다.
나는 마음을 바꿔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려보기로 했다.
“너희들의 목적을 잊은 거야? 너희들이 지금 싸우고 있는 이유는, 더 이상의 소모적인 싸움을 끝내기 위해서다.”
사실은, 거짓말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 인간이 있고, 전술인형이 있으며, 철혈이 있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IDW를 설득하는 게 우선이었다. 싸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돌아올 수 없다.
이렇게 고집스럽게 싸우는 일에 매달리려 하면 더 큰 비극이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게 중요했다.
“언젠가는, 철혈이 사라지고 나면 너희들 모두가 총을 내려놓고 사회로 돌아가야 할 수도있어. 그 때에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고집할 생각이야?
그건옳은 게 아니야. 언젠가는 이 싸움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가서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해. 그게 나중이 되었든, 지금이 되었든.”
“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냥.”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야. 싸움에 미쳐 있지 말라고. 너희는철혈처럼 완전한 군수용이 아니야.
전장에서도, 사회에서도살아갈 수 있는 인형이다. 어디서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냔…… 해야 할 일이 있다냥……”
틀렸나.
아무래도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것 같았다.
나는 애매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톰슨을 불러 말했다.
“…… 시카고 타자기, 이 아이를 검사실로 보내. 검사를해야겠어. 그 전까지는 뭘 이야기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아무리전술인형이라 해도 싸움에 미쳐있는 건 비정상이야.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쩌면 부적합 판정이 나올 지도 모르겠……”
그 순간이었다. 억눌린 듯 목소리를 짜내던 IDW의 입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냔 해야 할 일이 있는 거다냥! 냔 쓸모없는 게 아니다냥! 쓸모 없지 않다냥!
기회를 주지 않을거면, 도로 전장으로 되돌려 보내 달라냥!”
어째서였을까?
높은 목청으로 내지르는 그녀의 말을 들은 그 순간,마음 한 켠이 얼어붙은 것처럼 시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다급히 IDW에게서 몸을돌렸다.
나를 바라보고 있던 IDW의 시선을, 그리고 말싸움이 벌어지자 나를 쳐다보고 있던 전술 인형들의 시선들을 본능적으로 피해버렸다.
내 표정은 지금 어떻지? 얼마나 이상한표정을 짓고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왜지, 인형이 던진 말인데 어째서.
나는 황급히 수습하듯 말했다.
“…… 다들 들어가 쉬어, 나중에 이야기하자. 이상.”
답변이 돌아오기 전에, 나는 본부로 내려가는문을 열고 계단을 뛰듯이 걸어내려 갔다.
본부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지휘실로 가는 길은 익숙했다. 아니, 익숙했어야 했다.
매일 작전이 있을 때마다 오가던 익숙한 길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길을 잃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였더라.
‘난…… 쓸모 없지 않아! 쓸모 없는 놈이아니라고! 날 쓰레기 보듯이 쳐다보지 말라고!’
망할. 또 다시 몹쓸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애써 뇌리에서 지워냈던 기억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고 있었다.
나는 순간 몰려드는 감정의 기복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복도 벽을 내리쳤다.
“꺄악!”
쿵 하는 격한 소리와 함께, 어딘가에서갑작스러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