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에 누나가 갑자기 저보고 너 버니 샌더스 보러 갈래? 이러길래 콜 했더니
재주 좋게 강연 티켓을 구해오더군요. 그래서 생각도 못했던 이벤트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옆나라 정치인이고 지금 미국 상황을 볼 때 이 사람의 비젼이 과연
저 나라에서 실현 가능하긴 한 것인가 + 나이가 워낙 많아서 미래의 대선에 나오긴 좀
거시기 하지 않나 싶기도 한 건 사실이지만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공짜표가
생겼으니 가야죠 ㅎㅎ
9시 부터 입장을 시작한다고 해서 9시 반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중이 길더군요.
일요일 아침에 맹근 줄... 이건 매우 귀한 것이로군요...
앞의 돔 형태의 건물이 오늘 강연이 열린 장소로, 1,730명을 수용할 수 있어 평소에는 강의실로
쓰이고 졸업식과 여러 이벤트 등에도 자주 사용됩니다. 1학년 수업은 저 곳이 3층까지 꽉 차죠 ㅎㄷㄷ
줄을 서고나서 한 5분도 안 된 때에 벌써 뒤에도 줄이 ㅎㄷㄷ
뜨또국에 샌더스빠가 이렇게 많습니다. 물론 저 처럼 팬이 아니라
그냥 어쩌다 오게 되서 사진이나 찍고 가려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저희 칼리지입니다. 유티 7개의 학부 칼리지 중 개인적으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요 (쑻)
밤에 오면 더 이쁩니다. 지붕은 150여년 전 화학실험을 하다 폭발해서 날아갔다는 괴담이
있는데 실제 왜 저렇게 생겼는지는 저도 안 찾아봐서 모릅니다 ㅎㅎ
줄을 길게 섰는데 운이 좋아서 좋은 자리를 받았습니다. 거의 가운데네요.
예전에 여기서 수업 들을 때도 이 자리엔 안 앉아봤는데 ㅋㅋ
이번 달 1일부터 신민주당을 이끌게 된 잭밋 싱 당수(파란 터번을 쓴 분)가 회장 안으로 들어오자
안이 열광의 도가니가 됩니다. 폰으로 놀다가 소리만 듣고 버니 샌더스가 들어온 줄로 착각했네요 ㅎㅎ
신민주당은 현재 의회에서 44석을 차지해 제 2야당인데 특이하게도 싱 당수는 하원의원이 아닙니다.
거기에 더해 첫 비백인계 당수죠. 트뤼도 정권이 들어선 이래 캐나다도 꽤 많은 것이 바뀌고 있긴 합니다.
그렇게 대략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샌더스 옹이 입구에 보이길래 찍었는데
오른쪽 할머니(?)가 씬 스틸을 합니다 ㅎㄷㄷ 손주 분이라도 찾은 것일까 얼굴에 반가움이
묻어나네요 ㅎㅎ
드디어 버니 샌더스가 입장합니다.
근데 호다닥~
이 분이 너무 빨리 걸어서 다 흔들렸...
예전에 미디어를 통해 봤을 때보다 좀 더 늙었다는 느낌이네요.
확실히 미국 대선 경선은 상당히 기를 빠지게 하는 이벤트인가봐요.
일단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아이돌 본 것 마냥 사람들이 휘파람 불고
기립박수 치고 난리였어요.
일단 한 번 얼굴도장만 찍고 잠시 퇴장
토론토 대학 총장이 오프닝을 엽니다. 근데 이후 샌더스 옹한테 돌려까기로 까였습니다 (쑻)
그 뒤는 온타리오 주 주지사 캐슬린 윈입니다.
죄송합니다. 주지사님 얼굴은 오늘 처음 알았...
좀 찾아보니 온타리오 주의 첫 여성 주지사이자
첫 동성애자 주지사라네요.
주지사님의 짧은 연설도 끝나고 드디어 샌더스 옹이 강단에 섭니다.
오늘 제가 여기 다녀온 이유 중 하나가 사진도 찍고 놀 겸,
유명한 정치인 강연도 들을 겸, 겸사겸사 다녀온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국뽕을 좀 맞으러 다녀온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강연의 주제가 "미국이 캐나다의 의료복지 시스템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였거든요.
Yo! 내 랩을 들어!
결과적으로 국뽕을 투여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아앗... 이 국뽕은 치사량이다...
뜨또국, 싸랑한다 우히힣 '3'
짧다면 짧은 강연이 끝나고 이제 토론을 시작하려고 자리를 잡습니다.
샌더스 옹의 상대는 토론토 대학의 다니엘 마틴 박사.
.
하지만 토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여성대학병원 CEO 분이 먼저 짧게 연설을 합니다.
짧았는데요,
짧지 않았습니다.
...
드디어 마이크를 잡고 둘이 토론을 합니다. 사실 토론이라고 하기 보단 마틴 박사가 질문을 하면
샌더스 의원이 답을 하는 형식이였습니다.
강연과 토론에서 샌더스 옹의 논지는 평소랑 똑같은 레퍼토리였어요.
코크 브라더스를 조지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리고 멍청한 트럼프에게
헌법을 읽게 하고 대학도 의료도 약품도 모두 무료! 정부가 지원해야한다!
그리고 대학생들도 터무니없이 비싼 학비에 길들여지지 말고 투쟁해라!
이 때 대학 총장이 좀 뜨끔했을지도 모릅니다 (쑻) 물론 이 학교는 사립이라
별 소용은 없겠지만 ㅠ
올해로 캐나다의 의료복지 시스템은 55년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잊고 살지만 처음 서스캐처원 주에서 이 시스템이 도입되어 시행될 때는 아무도 성공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죠. 하지만 큰 성공으로 인해 오직 한 개 주에서 시행되던 복지 시스템이 곧
전국적으로 퍼져 연방 어디서건 캐나다인이라면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죠.
버니 샌더스 의원이 말하길 "이 세상 모든 의료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고 앞으로도 완벽해지진 못 할 것이나,
좀 더 나은 것이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보고 배우며 좋은 것을 도입하여 모두가 잘 살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캐나다의 의료복지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개선해야 할 점, 새로 도입해야할 것들이 많지만
투쟁을 멈추지 말고 정진하라"더군요.
위에서 먼저 소개한 잭밋 싱 당수가 얼마 전에 의료 뿐만 아니라 약품도모두 무상, 혹은 나라에서 비용을
지원하도록 하는 법안을 냈지만 통과되지 않았죠. 약품 외에도 비합리적이게 비싼 치과 비용, 무료나 부분적
지원이 되지만 자기 차례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의료복지의 시스템적 한계 등등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샌더스 의원
말 처럼 국민들이 깨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 누가 한국이 그 모든 일을 평화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이나 했습니까?
버니 샌더스 옹과 마틴 박사의 토론도 끝이 나고 둘 다 마이크를 내려놓자 크웨임 맥켄지 박사가
올라와서 짧게 연설을 합니다. 이 분은 웰즐리 연구소의 대표라네요.
짧았는데요,
짧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는 또 브로드벤트 연구소의 에드 브로드벤트 대표 분이 연설...
그래도 이 분은 박수와 환호를 많이 받았습니다. 내용도 지루하지 않았고요 ㅎㅎ
그리고 드디어 진짜 마지막으로 그레그 마칠든 교수가 클로징을 합니다.
사실 이 모든게 1시간 20분 정도로 전혀 길지는 않았지만 길게 느껴진 몇몇
분들의 연설은 좀 재미가 없었던지라...
샌더스 옹의 뒷모습
트럼프가 하도 깽판을 치고 힐러리도 실망을 줘서 샌더스 의원의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가능할런지 ㅎㄷㄷ
그리고 버니 샌더스 의원은 기립박수를 받으며 퇴장했습니다.
브로드벤트 대표의 말 처럼 정말 무슨 락스타 공연장 온 줄 ㅋㅋ
이제 모두들 집으로...
이벤트가 끝나고 뭔가 회장 안 분위기가 이랬습니다. 저는 샌더스 의원 팬은 아닌지라
잘 몰랐는데 뒤에 학생들은 평소의 샌더스 옹 연설은 이런데 오늘은 어쨌고 오늘의 목소리는...
오늘의 몸짓은... 평소엔 잘 안 읽고 줄줄 읊는데 오늘은 좀 많이 읽더라... 등등 빠순 빠돌이들이
곳곳에서 불꽃을 튀기며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ㅎㅎ
하지만 역시 저 처럼 그냥 단순히 별 생각 없이 어쩌다 온 분들도 계실 듯 ㅎㅎ
특히 옆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 샌더스 의원의 연설을 듣가 갑자기 저 한테
"샌더스 의원 말 처럼 너 같은 젊은이들이 캐나다의 미래야" 이러시는데 부끄럽...
아녜요, 전 그냥 집에서 쿰척거리는 거 좋아하는 덕후일 뿐인데...
그래도 의미있고 좋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오..... 저도 가고싶었는데.... ㅠㅠㅠ 좋은경험!
늘 듣던 연설 내용이긴 했지만 직접 보니 신선했어요 ㅎㅎ
뜨또국도 나름 살기 좋죠.. 다만 이민을 가서 치열하게 살고자 하기에는.. it쪽에 사람이라도 많이 뽑는다면야..
평화롭게 살긴 좋은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