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농담도 하지만
정말 그때는 조울증까지 올 정도로 심각했네요.
한 달간의 장기 출장을 거의 끝마치고
돌아가기 바로 전 전 날...
삿포로 지점에서 송별회 겸 회식을 열어줘서
고기를 타베호다이로 배터지게 먹었던 날이었습니다.
먹고나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지하철을 탔죠.
삿포로 지하철도 이제 한 번만 타면 마지막으로 타는거네
이제 간다! 하면서 숙소에 갔고, 티비로 온천을 찾아가는 프로를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삥---삥--- 지진입니다 지진입니다
왼쪽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리고 오른쪽에서는 같이 출장갔던 동생이 "형 지진!! 형 지진!!"
순간 잠에서 깨서 옆을 돌아보는 순간
드르르르르르르륵 하더니 몸이 들썩들썩 하더라구요;;;
그 와중에 안무너지는 일본 내진설계..ㅋㅋ
진동이 조금 멎었나 하고
티비를 켜서 속보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팟 하고 전기가 나갔습니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이게 뭔 일인가...
나카지마 공원에는 외국인들이 가득 나와있었고, 주변에 빛이라고는 고급 호텔의 비상등 뿐이었습니다.
일단 물도 필요하고 잠시 들어가서 좀 쉬자 하면서
숙소로 들어가는 길.
해가 뜨고 있더군요.
미리 사놨던 콜라를 따서 마셨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출장 간 두 사람 중에
저는 출근이라서 숙소를 나섰는데...
지하철 역이 굳게 닫혀있더군요.
회사에 연락하니 일단 정상화되면 연락달라하시고, 일단 식수부터 해결하자 하면서
막 돌아다니다가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저희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냉동, 유제품을 제외하고는 전품 100엔에 팔고 있길래, 초코바, 빵, 과자, 음료수를 왕창 구매했습니다.
일부는 숙소에 남겨두고 일부는 들고 나왔죠.
편의점은 대부분 닫았습니다.
열었다 해도 먹을것들은 동이 난 상황...
신호등마저 꺼진 길을 걸어서 공중전화에 들어가보니 전화가 되길래 안부를 전하고...
구약소에서 폰 충전을 해준다길래 무작정 걸어가봤습니다.
근데 구약소에서는 문 앞에 "충전 금지"라고 써놨더군요.
대피소도 거의 풀방일거고 그냥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봅니다.
신호가 꺼진 도시에 경찰관이 신호등을 대신하고 있더군요.
밤이 되고 먹을걸 구하려고 나왔더니...
삿포로 최대 번화가 스스키노는 이미 불이 나간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일단은 잠을 자기로 했어요.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지만요.
다음 날 아침.
어차피 먼슬리 맨션인 숙소를 비워줘야 하는 날이라 택시를 잡고 회사로 갔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일단 회사에는 전기가 들어와서 일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기는 부분부분만 들어온 상황...
무엇보다 핸드폰이 안터져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여차저차 일을 마치고 넷 카페에서 쪽잠을 잤어요.
넷카페에는 컵라면, 즉석밥도 있고, 무엇보다 음료수가 무제한이라 좋았어요 ㅋㅋ
다음 날 아침 넷카페에서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부모님이 도저히 안되겠다며 한국에서 예약해주신 숙소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에어비엔비 방 하나가 남았었거든요...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공원에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로 했어요.
아, 까먹고 안썼는데, 지진이 온 것이 6일 새벽.
원래 제가 떠나야 할 날이 7일이었고,
비행기가 전부 결항되어 9일 비행기로 변경을 해 둔 상황이었습니다.
넷카페에서 쪽잠을 잔 시점이 7일 밤이었구요.
지금은 8일의 일을 적고 있습니다.
지진의 피해는 생각보다 컸어요.
오사카는 지진->태풍
홋카이도는 태풍->지진
재난이 끊이질 않았네요.
그 날 오후 시뻘건 하늘을 보며 설마... 설마...
제발 오늘만은 그냥 넘어가다오 하면서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요.
웃다가 울다가 슬프다가 재밌다가
정말... 정신적 스트레스가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어쨌든 에어비엔비 숙소에서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쉬고
아침에 일어나 나왔더니
편의점에 물건이 들어왔더군요!
오랜만에 먹는 쌀밥과 가라아게군...
얼른 먹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인터넷을 봅니다.
이 때는 한 30%이상의 건물이 전기가 들어와서 충전도 하고 와이파이도 썼어요.
다행히 JR도 정상화 되었더군요.
회사에 들러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비행기가 뜨는 순간까지도 긴장을 해서 목이 칼칼하더군요.
사진에는 ANA지만 저는 피치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무사히 돌아와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네요.
한동안 정신적 스트레스로 제대로 아무것도 못하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려봅니다.
길고 장황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네요...제 지인들도 오사카 로 여행갔다가 태풍때문에 한분은 신간선타고 시모노세키로 이동해서 거기서 부관페리 타고 귀국해서 부산에서 srt 타고 출근하고 한명은 오사카에 발이 묶여있다가 오사카에서 페리타고 귀국했는데 훗카이도는 지진이 심했었군요? 신치토세공항에서 돌아오신건가요? 거기도 공항설비가 무너져서 아사히카와 공항에서 출국들을 많이했다는 소릴 들었는데....무사히 귀국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날의 악몽은 잊고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휴... 저는 후쿠오카로 귀환하는 거여서 치토세를 쓸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돌아와서 이사준비가 한창이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