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다녀온 일본자전거 여행기....[히로시마-도쿄] (1) 여행의 첫걸음
10년전 다녀온 일본자전거 여행기....[히로시마-도쿄] (2) 히로시마 관광
10년전 다녀온 일본자전거 여행기....[히로시마-도쿄] (3) 히로시마-오노미치
10년전 다녀온 일본자전거 여행기....[히로시마-도쿄] (4) 오노미치-오카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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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다녀온 일본자전거 여행기.... [1/4분량 정리] (6) 아카시해교-니시노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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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다녀온 일본자전거 여행기 [히로시마-도쿄](10)토요카와-후지에다
[이번 화는 사진이 많습니다! 스크롤 및 데이터 주의]
지난 내용은 상단을 참고해주세요.
여행 11일째,10일째 밤을 무박으로 달려 시즈오카 현 후지에다 시에 도달했습니다.
해는 이미 떴고 달리는 건 멈출 수 없죠. 이대로 후지산에 갑니다.
후지산에 오르기 전 짧게나마 고민을 했었던 것은, 남은 자금이 부족하지는 않고, 단지 부족한 건 체력과 시간뿐이었기에 후지산 등정을 강행할지 포기할지 였습니다.
만약 포기한다면 도쿄까지 남은기간 3일에 체력분배도 원활하여 원만한 마무리가 될 것이었고 여유가 된다면 도쿄에서 1일관광도 가능했을 것이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후지산을 지척에 두고 포기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강행하기로 했고, 그 결정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봐주시는 분들의 시간과 여유가 괜찮으시다면, 한 사람이 10년 전 어렸을 그 때, 스마트폰조차 없던 그 때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힘겨움을 이겨가며 완주했던 여행기를 재미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본문은 일기와 비슷한 형식으로, 존대가 없는 평어체입니다.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미리 감사인사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본 여행정보
목적:
히로시마-도쿄 자전거 일주
차종:
몬테규 바이크 파라트루퍼(16인치 프레임)
순수 여행경비:
항공료 제외 61만원
여행기간:
2008년 8월 11일~8월 24일 (13박 14일)
여행지:
히로시마(출발지)-도쿄(도착지)
경유지:
오카야마,교토,오사카,나고야,시즈오카,후지산 등 2번 도로와 1번 도로의 주요 도시
최종주행거리:1036.8km
11-1.열한번째날, 8월 21일, 맑음, 후지산에 입산하면서부터 흐림,안개,비
오전 10시 50분, 현재 무박2일째 주행중, 어제 아침 주행 시작 후 28시간 경과
이 곳은 후지에다 시 오카베 정, 도쿄 방향 상행 도로는 사실 1번국도를 타면 되긴 하는데, 거의 바이패스화 되어 있어 자전거로 가기에는 위험함이 높았다. 그래서 208번 지방도를 타고 굽이굽이 고갯길을 넘어가는 중이다. 아침 6시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도 없고 아주 조용한 마을의 모습이 고즈넉하니 좋았다.
시즈오카 시에 진입, 시즈오카 시는 건프라를 비롯한 취미생활 도시라 부를 수 있을만한 곳이지만, 지금의 내게 있어 이 곳은 빨리 밥먹고 스쳐지나가는 곳일 뿐이었다.
스끼야에 들러 우동하나를 뚝딱하고 냉큼 다시 출발
잠시 일기 본문 타임
[일기 본문 발췌]
-결국 무박으로 오카자키에서 시즈오카까지 달린 거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미친 것 같다. 거의 날아오다시피 했다.
그래도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지옥의 시마다... 제길 거기서 헤메지만 않았어도 벌써 후지인데 말이다.
-암튼 텐트 치고 풀기 귀찮고 시간없다는 사소한 이유로 지금 28시간 30분째 깨어있으면서 160km를 달리고 있는 건데...오늘 후지 찍으면 200km는 넘길 것 같다.
-후우...오늘 포함 4일 남았다. 시간, 참 빨리도 간다. 존나...자고 싶고 씻고 싶다. 못 씻은 지가 며칠째지...실내에서 자본게 언제더라...
*식생활과 관련된 이 여행의 특징
1.고칼로리,고당분 식생활의 연속이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무게는 줄어들고
3.똥이 거의 안나온다.
1에 대해:
워낙 에너지 소비가 많은 여행인지라 고칼로리, 고당분 식품이 아니면 현상유지조차 힘들다. 원체 신진대사 빠른 체질에 체력소모가 심하니 먹어서 버텨야지 뭐... 즉 연비가 안좋다. 음...대략 100km/2000~4000엔 정도?
2에 대해:
몸무게가 줄고 있다. 최종은 집에 가서 봐야 알겠지만 68kg가 떴었으니 줄고 있는 것 같다. 매일 땀을 한바가지를 쏟아내니 뭐...
3에 대해:
먹은 것의 98%는 모두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배변횟수가 줄면 여행자 입장에서 나쁠 게 없다. 좋다.
(사진 중앙부의 구름 너머에 후지산 정상이 보인다)
시즈오카 시를 관통해 동북쪽의 시미즈 구로 나오니 바다가 쫙 트인다.
일본 근해이긴 하지만, 일단은 태평양이다. 고갯길, 시내도로만 달리다가 이렇게 쫙 트인 바다를 보니 피로가 싹 가시며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전방에 먼 풍경에 구름 너머로 산이 하나 보인다.
방향을 확인해보니, 후지산이었다!!
후지산을 육안으로 처음 관측한 순간, 다시금 에너지가 폭발하며 흥분되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클라이맥스가 바로 저 곳에 있다.
가자!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좌측에 작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구글어스사진)
신기해서 찍어놨는데, 당시엔 뭔지 몰랐으나 지금 구글어스를 통해서 보니 언덕 위에 작은 저수지가 있고, 거기서 물을 내려보내면서 활용하는 시설 같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구글어스사진)
실제론 이렇게 쨍하게 맑지 않아 후지산이 명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이제 정말 지척이다.
후지 시 일부구간을 거쳐, 드디어 후지산의 관문 후지노미야 시로 입성했다. 여기서부터 후지산 자락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으려나...?
별도로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후지노미야 시도 산자락 도시 특유의 독특함이 있었는데, 도시 전체가 고저차가 있어 도시 입구 지점은 표고 85m, 도시 출구(후지산 방향) 지점은 375m로 도시를 관통하는 동안 계속 힘이 들었다(...)
아무튼 후지노미야를 지나니 벌써 2시가 넘었고, 아까부터 산 전체를 뒤덮고 있던 적란운이 여기저기서 쿵쾅대기 시작했다. 폭우나 번개를 맞을까봐 불안해졌다...
기울기 차이는 보시다시피...앞으로 이런 끝나지 않는 오르막이 45km 정도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이후로는 이런 풍경의 연속이다. 다이렉트로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은 각도가 가파라 불가능하므로, 이렇게 숲을 관통하는 오르막이 쭉 이어지다가 180도 꺾고, 다시 쭉 이어지다 180도 꺾는 구조의 반복이다.
산맥 산이 아닌, 화산 특유의 완만한 경사로 인해, 평지의 숲을 관통하는 도로와 흡사한 모양새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라산 상층부를 관통하는 도로를 달리면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나무의 바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규모가 남다른데, 그 크기에도 불구하고 빽빽함 또한 차원이 달랐다.
지나가다가 발견한 풍이로 추정되는 갑충, 예쁘다.
고도 771m 지점, 밑을 내려다보니 벌써 까마득한 느낌이 든다. 한라산 자락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드디어 1000m, 이치고메(1합목) 도달.
어서오세요. 일본일의 산에,
일본일은 닛폰이치라고 읽는데 일본제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 최고점에 오르게 되었군...나중에 일본 최서단, 일본 최북단도 찍게 되지만 그건 나중이야기...
[일기 본문 발췌]
- 기본적으로 9~10%로 추정되는 가파른 오르막이 끊이지 않고 있기에 라이딩은 엄두도 못내고 걸어서 끌고 올라가느라 중간 휴게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해가 져버렸다.
게다가 기온도 급격히 떨어져 1000m를 넘긴 시점에서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추가로 비도 내리기 시작)
- 여벌옷이 없던 나는 급히 자전거 캐링케이스를 풀어서 몸에 둘러 체온을 보존했다.(방수에 바람도 안통한다. 더플백과 흡사한 재질인데 보다 튼튼하다.) 안 그러면 잠든 것도 아니면서 체온저하로 죽을테니까, 근데 이미 정신도 오락가락, 무박으로 200km를 달린 육체적 피로가 장난이 아닌 상태였다. 쓰러져 눕고는 싶지만 100m 앞이 보이지 않고 차가 쌩생 다니고 주변에 인공물이나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이 곳에서 쓰러지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살고자 하는 의지로 바뀌었다.
여기서 죽으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으로, 체온 유지를 위해 뒤집어쓴 캐링케이스 안이 후끈후끈한 상태에서, 그 열을 동력 삼아(내 체온이지만) 죽어라고 걸었다.
- 결국 서쪽구간 캠핑 포인트를 발견하고 거기서 먹을 것과 캠프장을 확보했다.
- 지금까지의 이 상황은 적어도 지금까지 한 여행 중 제일 힘든 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직 내일의 후지산이 남아 있다.
-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일단 초콜렛과 감자칩, 콜라로 밤새 떨어질 기온에 대비해 열량을 쌓고, 땀에 젖은 윗도리를 벗고 잘 것이다. 안 그럼 감기 걸리기 딱 좋으니까...
37시간 30분만에 잔다...
살아남아서 다행이다...
2008년 8월 20~21일 소비금내역
사용내역(20일) | 사용액 | 잔액 (엔) | 비고 |
19일 잔액 | 25360 | ||
암바사 비스무리한 음료 | -150 | ||
규동 | -330 | ||
치킨 | -168 | ||
치킨(다리) | -125 | ||
펜 | -95 | ||
콜라 | -125 | ||
데카비타 | -147 | ||
돈코츠 컵라면 | -278 | ||
아쿠아리우스 비타민가드 | -189 | ||
오렌지 주스 | -147 | ||
라이프가드 음료수 | -100 | ||
자판기 밀크커피 | -150 | ||
오렌지 아이스크림 | -104 | ||
주스 | -104 | ||
사과 요구르트 | -104 | ||
음료 | -105 | ||
포도주스 | -110 | ||
인터넷 까페 | -805 | ||
초코 아이스크림 | -62 | ||
사용내역(21일) | |||
규동 | -330 | ||
生복숭아 아이스크림 | -295 | ||
음료수 | -147 | ||
냉동 아쿠아리우스 | -110 | ||
스끼야 규동 | -450 | ||
아이스크림 | -150 | ||
오렌지 주스 | -105 | ||
컵라면 | -195 | ||
음료수 | -125 | ||
아쿠아리우스 2L | -248 | ||
블루베리 요구르트 | -100 | ||
복숭아 아이스크림 | -126 | ||
딸기 요구르트 | -110 | ||
캠프장 식료품(콜라, 감자칩 등) | -810 | ||
캠프장 이용료 | -1600 | ||
합계 | -8299 | 17061 |
열번째 날~열한번째 날 이틀간, 증액된 총예산 59000엔의 14%인 8299엔을 사용했다.
싸구려 음식과 음료수의 승리
식사라고 부를 수 있는 걸 8번 먹고, 그 사이사이에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등 시원한 액체들을 평균 3회씩 먹었다.
그러나 정보갱신을 위한 인터넷 사용과, 캠프장 이용료로 숙박비가 지출되어 최종적으로 1일 약 4150엔 정도 사용케 되었다.
무박 이틀간 달린 덕인지, 진도를 팍팍 빼고 있다. 그러나 최종 코스, 후지산 정상이 남았다.
결전의 날, 22일이 다가온다.
2008년 8월 20~21일 주행거리
220.2km
(토요카와-후지산 서쪽 캠프장)
총 주행거리
880.8km
현재 고도 11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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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열두번째날, 8월 22일, 흐림, 구름 속
오전 8시 기상, 11시간 40분 잤다. 여행 중 제일 오래 잔 것이다. 너무 충분히 자서 캠프장 사용료가 아깝지 않군...
오늘은 대망의 정상정복의 날이다. 기다려라 후지산!
캠프장은 이렇게 단촐하지만, 풀밭의 쿠션감이 아주 좋아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일기 본문 발췌]
- 차가운 습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제대로 깨달았다.
'걸친' 거라곤 상체 체온유지를 위해 걸쳐놓은 츄리닝 바지뿐인 상황에서 캐링케이스를 이불삼아 덮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기는 뼛속 싶이 파고들었다.
- 춥다, 정말로 춥다. 추워서 죽을 것만 같다.
- 플라이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다. 이슬이 아주 비 온 것처럼 맺혀있다. 다행히도 감기에 걸리진 않은 것 같다. 캐링케이스 덕분이다.
- 몸을 움직여보는데 뽀각 소리가 난다. 온몸이 쑤신다. 무박 36시간 라이딩의 피로에 등산피로까지 있으니...
캠프장 주변 주차장, 나 말곤 아무도 없다... 이런 날씨에 차 갖고 일부러 올 사람은 딱히 없나 보다.
배가 너무 고파 식사를 하고자 캠프장 메인건물을 찾아갔다. 온도계가 있어 확인을 해보니...
20도... 8월 말 치고는 확실히 낮다. 고도도 있고, 구름이 태양을 가려 직사광선이 차단되서 그런듯 하다.
새벽엔 19도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 오지게 추운 이유가 있었다.
개점은 했는데, 사람이 없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식등반기간이 7~9월인데 애초에 5합목까지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한다. 즉, 나처럼 하드코어하게 오르는 사람은 애초에 별로 없어서 캠프장이 딱히 쉼터 역할을 하지 않는데다가, 캠프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바에는 오늘같은 날씨에 캠프장에 방문할 일이 없으니 없는 것이 당연...
소중한 아침식사
따끈한 국물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여행 중 먹는 모든 음식은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 모든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추위에 떨며 먹는 뜨끈한 국물의 맛은...말할 필요가 없다.
이따 등정에 먹을 초콜렛을 하나 더 사고선 짐 챙기고 출발했다.
서쪽 주차장, 고도 1280m
2시간 가까이 지나도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점점 가시거리가 짧아진다는 것...
계속 끌고 걷고 또 걷고.... 걷다가 도달한 이 곳은 152번 지방도 분기 지점
여기서 저 152번을 타면 후지산으로 오르고, 그대로 진행하면 동쪽으로 빠져 도쿄로 간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오르기 시작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니고메(2합목)
속도계는 과습으로 인한 고장 방지를 위해 비닐 보호를 한 상태
이젠 정말 가시거리가 50m 이내가 된 것 같다. 차량이 이따끔씩 지나가는데, 한번 지나갈때마다 공기의 흐름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안개가 짙다.
본격적인 굽이굽이 길을 오르게 되었는데, 아래를 보니 바로 방금 지나온 길이 보인다. 경사도는 정상에 가까워갈 수록 점점 더 높아진다.
난간이 없다면 충분히 위험할 고저차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산고메(3합목)
남한에서는 도달 할 수 없는 높이에 이르렀다.
욘고메(4합목) 사진은 패스하고 바로 고고메(5합목) 도착, 후지노미야 방향에서 올 경우, 고고메는 이 곳에서 찍게 되는데,
후지산을 오르는 4가지 등산로 중 정상에 제일 가까운 지점에 있는 고고메이다.
이 지점부터는 경사도 급격히 증가하고, 포장도가 아니기 때문에 자전거를 더 이상 가져갈 수 없다.
GPS, 헤드마운트 백과 탑백을 탈거하고 자전거는 적당한 곳에 묶어두었다. 누군가 저걸 훔쳐간다면....그대로 끝이다. 운에 맡길 수밖에
5고메까지 오면서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무사히 올라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여행 마지막까지 아무 사고 없기를 기도한다.
5고메는 서쪽 캠프장 식당과는 달리 사람들도 꽤 있었고 판매 식품도 더 많았다. 여기서 후지산 정상을 앞두고 마지막 식사를 한다.
점점 표정이 밝아진다.
여행 끝나고 사진 확인하면서 제일 신기했던 건, 여행 초반부와 후반부의 표정이 명확히 다르단 것이다.
초반부에는 체력도 보다 더 넉넉하고 여유가 있었을텐데도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던 반면, 후반부에는 갖은 고생과 피로가 누적되고 사진찍는 그 순간에도 상당히 고통스러운 상태였음에도 표정이 점점 더 밝아진다. 이후 나오겠지만 후지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밝아진다.
역시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사는 것이다.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몸으로 느끼며 점점 즐거워지고 있다.
비는 안오지만 어마어마한 습기가 육안으로 보인다. 정말 코앞도 안보인다. 등반을 시작하고자 하는 밤 9시 30분 경에는 날이 좋아야 할텐데...
최후의 만찬
사진만 보면 아무도 8월 하순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안개 뿐 아니라 비바람도 휘몰아친다. ㅎㄷㄷ...
5고메 기념품샵에서 부모님께 지인에게 드릴 선물을 구입,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입하는 선물이다.
선물을 결제하고 샵을 나서려는데, 샵 주인아저씨와 삼촌이 내 몰골을 보더니 '너 설마 그 옷으로 올라갈 건 아니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입고 올라가려는 것 맞다고 하니 깊은 한숨을 쉬며 '너 그렇게 가면 얼어죽는다;' 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삼촌이 뭘 주섬주섬 챙겨오시더니만, 자기 원래 입던건데 많이 낡아서 이제 안 입으니 이거 입고 올라간 다음 내려와서 알아서 버리란다.
패딩점퍼였다.
나중에 몸으로 느꼈지만, 이 옷이 아니었으면 깨어있는데도 체온 저하로 얼어죽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거의 생명의 은인이다.
내 목숨을 구해준 아저씨와 삼촌과 함께
기념품을 구입하고 5고메 임시숙소(개인실 형태로 되어있지 않고, 넓은 방 형식으로 된 공간에 침구류를 개인대여하는 시스템)에 입실해 중간점검 및 정산을 해 보았다.
22일 19시 15분 현재 잔액은?
2008년 8월 22일 소비금내역(중간정산)
사용내역 | 사용액 | 잔액 (엔) | 비고 |
전날 잔액 | 17061 | ||
서쪽 캠프장 라멘 | -650 | ||
초콜릿 | -150 | ||
커피 | -150 | ||
분실 | -103 | ||
5고메 임시숙소 침구대여료 | -5000 | ||
5고메 라멘 | -800 | ||
기념품 | -1050 | ||
콜라 | -200 | ||
합계 | -8103 | 8958 |
정상정복 시작 이후로는 추가 예산소요가 내일 아침까지 없을 예정이므로 일단 오늘 정산을 이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
남은 23~24 이틀간 8958엔이면 충분하려...나?
이후 개인정비로 세면을 하고 온 후 약간 잠을 잤다.
예정 출발시간은 밤 9시 30분
2시간 여 잤을까? 일어나서 시간을 보니 9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2시간을 채 못 잔 상황이지만 더 지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출발한다.
나는 일단 혼자였는데, 주변을 보니 해돋이를 노리고 밤에 오르기 시작하는 그룹들이 많이 있었다.
자전거 여행 중에는 혼자 달려도 그다지 심심할거나 힘들 것이 없지만, 등산은 또 문제가 다르기에 나도 등반 그룹에 끼기로 하고 적당한 그룹에 넉살 좋게 들어가 인사를 했다.
다행히 그룹 사람들은 나를 허물없이 받아들여주어서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그룹에 합류했다.
그룹 사람들은 한 회사에서 단체로 후지산 등반을 계획하고 온 사람들이었고, 모두 회사 구성원들이라 하였다. 연령은 다들 대충 3~40대로 추정
내가 한국인인 걸 알리자 구성원 중 한명이 자신은 중국인이라며 3국의 사람이 함께 다 모여있어서 재밌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다들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한 가운데, 등반 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등반을 시작했다.(중국인 그룹원은 윗 사진에서 사진상 내 우측에 있는 젊은 사람이다)
다들 헤드라이트라던지 등산복, 등산장비, 비상식 등 짱짱하게 챙겨왔는데 나만 허름한 츄리닝에 아쿠아슈즈, 낡은 패딩에 빡빡이다.
뭐...나이가 깡패니 잘 오르겠지 뭐 ㅎㅎ
등반중 아래를 내려다보니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점점히 올라온다.
이 당시의 나는 철면피 10강 수준이었는지, 넉살도 좋고 말도 잘 붙이며 놀았던 것 같다.
등반 도중 사진 찍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싶으면 냅다 가서 끼어서 찍곤 했다.
저 분들의 카메라에 찍힌 당시 나의 모습을 나중에 확인하셨을 때 나를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해지곤 한다.
'누구야 이 빡빡이 한국인은?!' 이러는 건 아니겠지...?
구성원 중 제일 고참급 아저씨, 부장님 직급 정도 되시려나...?
이 아저씨와, 요 윗사진의 연분홍 섞인 상의를 입은 아저씨가 중심이 되어 인솔을 하는 것 같았다.
플래시를 켜도 근거리가 아니면 빛이 닿지 않아 암흑으로만 나온다.
고도 2798m
올라가는데 그룹 내 젊은 사람들이랑 친해지니 뭔가 너무 재밌었나보다. 길바닥에 눕기도 하고 신났네...
아 형....제발....
(이 분이랑은 꽤 친해졌는데 올라가면서 경황이 없어서 연락처나 이름도 모름...)
어둠 속에 무언가를 찍은 걸까?
짜잔! 작성자였습니다!
...(...)
분명히 힘들텐데, 왜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것일까...?
7고메, 3010m
8고메 3250m
아래를 내려다보면 줄줄이 올라오는 사람들...
이 시점쯤부터는 내 체력이 폭발했는지 혼자 너무 빨리 올라가 버리는 바람에 그룹과 연결이 끊어져 자동적으로 그룹 이탈이 되어 버렸다.
이탈 직전 거리가 점점 멀어지자 아까 그 부장님(?) 아저씨가 '리 상 겡키??' 이랬을 때 '겡키 데스요~~~'하면서 뛰어올라갔는데, 그걸 마지막으로 부장님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21살의 체력이란....
사진을 찍어두진 않았는데, 한 고메 오를 때마다 판매중인 물건(산소캔, 물 등) 물가가 무시무시하게 치솟는다.
지상에선 비싸봐야 100~150엔인 음료수 한 병이 이 곳에선 200엔(5고메)-300엔(7고메)-400엔(8..?9고메였나?) 식으로 순차적으로 폭증한다.
하긴 납품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을 터....
9고메...3460m...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일행이 없어 셀카뿐...ㅠㅠ
술을 팔아...?
그 이전에 이 분들 출퇴근은 대체 어떻게 하시는 걸까....ㅎㄷㄷㄷ
어쨌든 3000m 이상의 고지대이기에 고산병 증상 등으로 힘든 사람들을 위한 산소캔...으로 추정되는 물건
나는 돈도 후달리고 딱히 필요를 못 느껴서 사지 않았다.
기념촬영
아닛 당신은?! 부장님?! 반가워요!
9고메에서 시간 때우고 있으려니 아까 일행들이 그 사이에 쫒아 올라와서 다시 그룹과 조우할 수 있었다.
어제 처음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마지막 스퍼트를 내는 사람들, ㅇ원본사진이 너무 어두워서 밝게 보정하였다.
정상 도착! 날이 이미 밝아오고 있지만 해돋이를 못 본 게 후회되진 않는 것이...이미 구름속에 갇혀있어 해돋이 따위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여느 산이 그렇듯이, 정상은 인원수에 비해 아주 좁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습도가 너무 높은 상태여서 플래시를 한번 켜고 찍어보면 ....
으아아 이게 뭐시여
정상 주변을 산책해본다. 풍경 하나하나가 이 세상 풍경 같지 않은 신기한 느낌....외계행성이 이런 느낌일 것이리라...
분화구쪽에 서 있는 외로운 토리이
정상에는 신사가 하나 있다.
많은 등산객들이 갖고 올라간 나무지팡이에 인두로 스탬프를 찍는데, 나는 지팡이고 뭐고 없어서 그냥 구경만 했다. 사람구경 꿀잼
이 신사 지점부터 회사원 그룹과는 바이바이했다.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요!
주변을 돌아보는데 왠 중장비가...?!
니들 어떻게 올라왔니...?
정상에서 방황하며 갈 곳을 찾지 못하던 차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상 최고점에 세워진 비석이 있단 얘기를 듣고 그 곳으로 가고자 정했다.
그러나 방향을 모르고 있었는데, 위의 저 아저씨가 왠지 그리로 가시는 것 같아서 따라가보기로...
난 참 이런 데서 감이 좋다. 아저씨를 따라오니 비석이 뙇
비석을 보고 감회에 젖고 나서, 기념비 옆에서 사진 한장 찰칵
드디어, 올랐다. 후지산.
2008년 8월 21일~22일 주행거리
(후지산 서쪽 캠프장-후지산 정상)
29km
(도보구간 12km)
총 주행거리(자전거)
897.8km
현재고도 3775.63m
사진이 무척 많고, 내용도 많기에, 내용을 소분해서 업로드합니다. 예전에 타 사이트에 이렇게 연이어 올리려다가 귀찮아져서 무산된 적이 있었기에,
나름대로의 데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미리 다음 업로드 일자를 써둡니다. 다음 업로드는 9월21일 0시 이전 또는 0시 부근입니다.
원래 서쪽 주차장까지의 분량만 올리려다가 분량이 너무 적어 정상 지점까지의 분량과 합산해 올렸습니다. 업로드가 늦은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화에선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도쿄에 도달합니다!
사후추신: 개인사정으로 21일 0시 업로드가 불가하게 되어 22일0시 이전 업로드로 변경하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얼굴에 웃음이 나오네요
생각해보면 마지막 사진 기준으로 다음날 출국인데...이젠 내리막길만 있다는 것에서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죠^^
대단하시네요 정말 ㅎㅎ 대박 ! 일본은 진짜 여기저기 다 다녀봤는데 아직 후지산은 가보지 못했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작성자님처럼 등반 해보고 싶네요 ㅎㅎㅎ
저는 이상하게 대도시가 별로 안땡겨서 직접 가는 자유여행은 모두 극점을 가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일본 최고점 후지산을 비롯해 일본 최서단 이시가키랑 일본 최북단 왓카나이를 갔었는데 크게 뭐 볼 게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좋았습니다.ㅎㅎ
샵 사장님한테는 추리닝차림에 후지산 올라가는 작성자를 보고 젊은 나이에 얼어죽으러 자전거타고 후지산정상 가는 외국인으로 보였겠네요 다들 차림이 패딩인걸보아하니 더욱 그런느낌이 드네요 사장님 기억에도 오래남았을 에피소드일것 같습니다. 진짜로 여행기보면서 화장실은 어떻게 했을까 궁금했는데 간이 화장실 가져가는것도 여행하기전에 생각하신적도 있었겠네요
만약 언젠가 후지산을 다시 방문했을 때 아직 계신다면 그때 얘길 하면서 혹시 기억나시냐고 여쭤볼 생각이긴 합니다.ㅎㅎ 화장실같은 경우 멘트를 안써서 궁금하셨겠군요! 일단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소변이 거의 안나왔습니다. 하루에 1회...남짓? 근데 그것마저도 보통 자고 일어난 아침에만 나오는 정도라서 노숙할 땐 풀숲 속에 누는 정도고 실내숙박에선 당연히 숙박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지요. 큰 건은 아예 일 본 적 없는 날도 있는데 보통은 2일 1회 남짓이고 주행 중에 경우엔 편의점 들렀다가 물건 좀 사고 양해를 구한 뒤 편의점 화장실을 자주 이용했습니다. 노숙할 땐 변의가 전혀 안생기더군요... 처치곤란이어서 그랬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