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 학교뒤 자취생
2011년 - 방으로 꾸민 지하실
2012년 - 미니어처 원룸
2015년 - 허전한 투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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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살 돈도 능력도 무엇도 없었지만 저는 나가고 싶었습니다.
스무살 무렵부터 인터넷으로 원룸 오피스텔을 들여다보며 어떻게든 독립 할 생각만 했었어요.
이유는 아버지가 싫어서였습니다.
흔한 이유죠.
그래서
2011년 첫직장을 잡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6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저는 다시 본가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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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악성 중피종이라는 희귀암으로 인해
대학병원에 입원한지 한달 반만에 가셨습니다.
죽음을 준비하기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다운 초라한 장례식이 끝났고
아버지는
병원에서 쓰신 5페이지짜리 일기겸 유서와
아끼던 중형차와
어머니와 17년간 김밥장사를 통해 모은 돈으로 재작년에 구입하셔서
정성스레 리모델링한 이 집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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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어머니는
제가 본가로 들어가지 않으면
이 집에 계속 사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들어왔습니다.
중문입니다. 혼자 살때도 중문 있는 집이 너무 부러웠었죠.
왼쪽은 화장실입니다. 욕조가 있어서 좋네요.
맞은편엔 거실입니다. 제가 들어온지 얼마 안돼서 짐정리가 아직 덜됐네요.
오른쪽에 보이는 문은 안방이고 왼쪽은 구 아버지방 현 제방입니다.
어머니는 장사 그만두시고 하루의 대부분을 쇼파에 앉아서 이모들과 통화하는데 시간을 보내십니다.
어머니 위로 4명의 이모가 있어서. 똑같은 대화내용을 4번씩 하십니다.
그럴꺼면 그냥 단체통화 같은걸 하시는게 나을거같은데 말이죠.
거실에서 왼쪽을 보면 주방입니다.
자취할때도 그닥 친해지기 힘든 공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냉장고 모자란다고 자취할때 쓰던것도 가져와서 추가했습니다.
거실사진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안방입니다.
어머니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밖에서만 찍었습니다.
거실 쇼파 옆 작은방이 제방입니다.
고양이 털때문에 애들은 방에 가둬둡니다.
마음이 좀 불편하지만 차라리 이게 낫습니다.
입구부터 정신없죠.
아버지 쓰시던 침대입니다. 베란다를 확장해서 작은방이 그렇게 작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리모델링 할때 단열에 신경쓰셔서 2중창을 4중창으로 만들어놨어요.
티비 밑에 함을 하나 만들었어요.
나무 잘라주는 업체에 주문해서 직접 다이했어요. 재밌더라구요.
아버지가 침대 헤드를 왜 저런걸 샀나 했더니 이유가 있네요.
기대어 앉아서 티비보거나 게임하기 좋습니다.
창밖이 숲이지만 나름 서울입니다. 서울부심.
책상은 이케아에서 사왔습니다. 대나무책상.
듀얼모니터 암을 하나 사야겠어요.
플스는 오래된 1005 입니다. 겁나 시끄러워서 슬림으로 바꾸고싶네요.
오른쪽에는 자취할때 쓰던 네트망 파티션? 같은겁니다.
잡다한걸 걸어놓기 좋은데 조금 지저분해보입니다.
저기 서서 면도하고 스킨로션 바릅니다.
침대에서 방문쪽입니다.
온갖 고양이짐들을 다 넣어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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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더 올리고 싶지만 8장밖에 안올라가네요.
이사오면서 짐을 70%는 버렸습니다.
기존에 있던 아버지 짐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공구를 모으는 취미가..)
대부분 다 버렸지요.
아무튼
적당히 잘 살고 있습니다.
다음 집은 언제 올리게될지 모르겠네요.
최소 3년은 살거같아요.
아버님께서 앞으로의 일상에 언제나 곁에서 지켜주실 겁니다. 하는일마다 건승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버님께서 앞으로의 일상에 언제나 곁에서 지켜주실 겁니다. 하는일마다 건승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버지가 저를 강제 어른모드로 바꿔주셔서 좀 부담스럽기도 하네요.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일년에 한두번정도 꿈속에서만 만나뵐수 있는 아버지...
저는 아직 한번도 못뵈었네요. 어머니만 몇번 보시고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어연 10년이 됐는데 아직도 가끔씩 꿈에서 뵙네요. 무의식적으로 한번만큼은 다시 보고싶다는 내면이 드러나는듯한 느낌? 어머니께서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불안하시지 않도록 다시 들어간다는게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셨을텐데 힘내시기를.
어머니가 심하게 털털한분이라 금방 적응하시네요. 정작 저는 이제 막 들어온거라 아부지 흔적이 보일때마다 생각나는데요.
화이팅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