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는 어찌보면 참 사소한거였어.
오랜 히키니트 생활을 청산하고
사회 첫 직장도 얻어서 크진 않지만 먹고 살 만큼은 될 정도의 월급 받고
인생 처음으로 회사 선배도 생기고, 동기도 생기고, 회식이란 곳도 가보고.
이제 나도 이 세계를 살아가는 첫 걸음을 내딛었구나
하고 생각했었어.
이미 직장을 다니던 친구들도 축하해주면서
넉달 뒤에 일본여행이나 같이 가보자고 했지.
나는 낚시갔다 온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드렸어.
아버지는 나보고 말씀하셨지.
"니가 생각이 있는 놈이냐. 집안 꼴이 이런데 어딜 놀러 갈 생각을 하고 그러냐."
하하.
어이 없고 화가 나더라.
아버지께서 말한 집안 꼴이란건
아버지와 어머니 불화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내쫓은 일이고.
아버지는 심적으로 힘들다는 명목, 일자리 구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친구분과 종종 낚시도 가고 그랬거든.
그래서 나는 당연히 발끈했지.
"그 집안꼴이란거 만든건 아버지고, 아버지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왜 나는 지금 당장도 아니고 넉달 뒤에 놀러가는것조차 안되냐. 항상 아버지는 이미 놀러간 뒤에 나중에서 내게 보고하지만 나는 언제나 아버지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지 않느냐."
그렇게 이야기가 길어졌어.
평행선에 가까운 이야기였지.
아버지는 기어코 내게 심한말을 하겠다고 선언하시고는 말씀하셨어.
"넌 나랑 맞먹으려고 드는데, 너는 사람 아니다. 넌 사람으로 안 보니까 자꾸 나랑 동등하려고 오르지 마라."
그래.
아버지 라는
그 인간은
나를
사람으로 조차 보고있질 않은 거였어.
하하하.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방에 들어갔어.
아버지 였던 그 사람은 대리운전 일을 하러 나가고.
나는 방에서 짧게 마지막 인사를 적었어.
'사람이 되러 떠납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던 옷을 입고
모자도 쓰고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틀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창가에 걸터앉아
졸피뎀 100알을 먹었어.
하루 1알인데 석달을 넘게 안먹고 모아왔었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집은 창문에 창살이 없었거든
창문을 열고 두 다리를 창밖에 내밀고
아, 혹시몰라 실패할까봐 걱정되서
블라인드 치고 걷는 줄을 목에 칭칭 감았어.
그리고 꾸벅 꾸벅
검과 마법과 모험이 기다리는
이세계를
결과는 뭐, 여기에 글을 쓰는 걸 보면 알겠지만
그로부터 며칠뒤에 병원에서 깨어났어.
몇주도 아니고 고작 며칠.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로
바닥이 흙이엇는데 물에 젖은데다가 다리부터 떨어졌다나?
그 덕에 두 다리가 박살이 났지.
부러진 정도가 아니라.
아, 허리도 부러졌나봐. 척추도 수술을 했대.
그리고 칭칭 목에 감았던 블라인드 줄 있지?
그거 덕분에 살아남은건지, 이빨과 턱이 다 부숴져있더라.
그게 몇 달 전이야.
나의 여행길은 실패했어.
하지만 다른 꿈을 꾸게 되었지.
비록
건강한 신체와
못난 나를 받아준 첫 직장과
사랑한다 생각한 아버지란 사람에 대한 마음을
잃었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