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의 징발과 농사 방해로 버마와 인도차이나 반도,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필리핀에 기근이 창궐했다.
일본군은 약탈을 일삼아 밭에서 익어가던 곡식을 망쳤을 뿐더러,
이듬해 뿌릴 씨앗조차 거의 남겨두지 않았다.
동남아 일대에 쌀을 공급하는 거대한 곡창이었던 미얀마는
종전 무렵에는 정말 최소한의 수확량밖에 수확하지 못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비시 프랑스 식민당국이 일본인 감독들의 승인을 받아
고정 가격을 매기고 할당량을 정했다.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일본 육군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들쑤시며
프랑스인 관리들이 나타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이었다.
북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농부들이 쌀 대신 황마를 강제로 심어야 했기에 상황이 더더욱 비참했으며
일본군이 상선을 거의 다 징발했기에 남쪽에서 쌀을 수송해올 방도조차 없었다.
그 결과 1944~45년의 통킹 대기근으로 200만 이상의 농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이 지역을 의도적으로 구제하지 않았는데
왜냐면 호치민의 항일 공산당 조직 배트민이 미국 oss의 지원으로 이 지역에서 점점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앤터니 비버 "제2차 세계대전"
붕괴하는 현지 농업
대전말 대본영
약탈 중독증에 시달리는 병사들
분노로 흉폭해져 배트민이 된 농민
게릴라(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