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 10일 광주직할시 북구 청옥동
제 4수원지 상류에서
시신이 발견 되는데
시신의 상태가 참옥 했습니다
시신의 얼굴이 심하게 상해 있어고
왼쪽 눈알은 돌출되었고
얼굴은 검은색으로 심하게 변색된데다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부어 오른 상태 였죠
시신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일주일전 실종된 이철규(당시 25세, 전자공학과 4학년)
의 시신 이였습니다
이철규는 1985년
11월 반외세독재투쟁위원회 활동을
시작해 독재 정부와 언론 사학재단과
투쟁을 하는 학생 운동의 리더중 한명 이였습니다,,
1989년 이철규는 국보법 위반 혐의로
광주 전남지역 공안합수부에 수배중이었는데
5월 3일 9시경 후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우들과
무등산장 쪽으로 가던 중
청옥동 제 4수원지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았고
경찰들에게 끌려 갑니다
동료들이 막으려고 했으나 경찰들은 총으로
그들을 위협한 다음
이철규를 차에 태웠고
그 모습이 이철규의
생전 마지막 모습 이였습니죠
동료들은 이철규가 소식이 끊기자
어떻게든 그를 찾기 위해
경찰서도 가고 언론에도 이 일을 알렸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일주일후 이철규는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 됩니다
5월 11일 검찰 주도하에 부검이 실시 되었으며
부검에 참가한 국과수 법의학자 이원태 박사는
사체의 허파나 장기내부에 물이 별로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조선대 의대 서재홍을 비롯한 다른 교수들도 정황상 ■■에 의한
익사나 실족사로 보기 어렵고
우측 종아리와 옆구리에 각각 요철 모양의 흉터와
어깨나 상체에
광범위한 근육출혈 흔적이 있기에
폭행과 고문에 의해 사망한거라고 발표 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은 이철규를 조사 한후 풀어 줬으며
국과수에 재부검을 요청했고
국과수는 5월 14일 몸의 각 장기에 플랑크톤이 발견됐다며
익사라 발표했고, 검찰도 국과수 발표를 근거로
단순 익사라고 공식발표 하죠
유가족들과 학생들은 이 발표를 믿지 못해
계속 시위를 벌였지만
검찰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일방적으로
실족사에 의한 익사라고 발표 합니다,,
당시 언론을 이철규의 사인에 대한
기사나 방송을
내려고 했으나
정부의 방해로 실패 했고
89년 유족들이 시체 재부검을 위해
미국 인권의사회 소속 법의학자 로버트 커쉬너가
한국으로 왔으나
검찰의 방해로 시신도 보지 못했습니다
단 사진을 본 로버트 커쉬너는 이 시신은 절대 익사가
아닌 고문에 의한 시신이라고 얘기 했죠
결국 이철규의 시신은 89년 11월 4일 조선대에서
'민주국민장'으로 장례식이 치루어 집니다
당시 학생운동 하던 분들이
이철규의 시신이 찍힌 사진을
벽에다 붙여서
이 시신이 어디가 실족해서
익사한 시신 이냐며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곤 했는데
저도 어릴적 이철규의 시신
사진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공권력이 사람을 죽인경우라 봅니다
둘다 죽일놈들이니 그놈이 그놈입니다.
정답입니다. 12.12로 나라의 근간을 망친 개.새.끼들이죠!!!
둘다 똑같은 인간 쓰레기 들이죠,,
아,이때는 물태우 였겠네요??? ㅡㅡ;;;;; 죄송합니다.
공권력이 사람을 죽인경우라 봅니다
전대갈 개.새.끼!!!!
아따 hangyoona
아,이때는 물태우 였겠네요??? ㅡㅡ;;;;; 죄송합니다.
아따 hangyoona
둘다 죽일놈들이니 그놈이 그놈입니다.
김늘빛
정답입니다. 12.12로 나라의 근간을 망친 개.새.끼들이죠!!!
둘다 똑같은 인간 쓰레기 들이죠,,
편하게 죽게 놔두면 안됩니다. 그 인간폐기물들은요!!
저런,.
그냥 의식이 멀쩡한 채로 물에 던졌을 수도 있죠. 미국에 있을 때 친구가 코스트가드 출신이었는데 일반 익사체의 시신이 저정도라고 합니다. 강물속에서 많은 나무가지들이 많아서 멀쩡한 몸도 여러군데 구타같은 흔적이 생긴답니다. 그리고 얼굴이 검게 썩어 변하는 것도 백인에게 일어나고, 눈이 튀어나오는 것도 일반 익사체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다만 이렇게 물에 멀쩡한 사람을 던져도 저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누가 그렇게 했는지 그 정권은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