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지 않은 뭔가의 부국장,
그리고 그의 청춘.
그 회사 부국장이 또 시를 쓴다. 아니, 그런 자리
에 있음 하는 말 한마디가 모두 중요하지 않겠어요.
정오를 가리키는 벽시계. 불볕더위에 점심으로 먹은
육개장은 배 속에서 요동치고, 데스크 앞에 앉아 멍
하니 먼 산을 바라보는데.
에세이나 소설도 아니고 시를 또, 쓴다.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부국장의 넋
두리는 나무 걸상에 쭈그리고 앉은 현대인의 삶을
좀더 단조롭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모던한 스타일이
라고 그저 한탄해본다.
미친 거 아니에요? 사무용품이 부족한 것도 아니
고 도대체, 복사기 앞에서 투덜거리는 미쓰김은 종
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꾸역꾸역 결재 서류를 들이
민다. 주판으로 얼굴을 확! 하지만 오늘은 애석하게
도 그런 날이 아니다.
청춘의 문턱에서 별 중요하지 않은 뭔가를 하루
종일 끄적인다. 볼펜을 쥔 저 살찐 손모가지. 화들짝
놀라 회전의자가 빙글 돌고, 결국, 꼬인 수화기를 든
건 박대리였다. 사무실 철제 캐비닛을 열어 서류철
더미 위에 꾹.
민방위 사이렌 소리 같은 전화벨. 매일, 회사 앞
식당의 육개장은 끓어 넘치고 누런 갱지에 시를 쓴
단다. 정성 들여 한, 자 한자 볼펜으로 정서하는 빛
바랜 점심시간. 라디오에서 읽어주는 엽차 같은 시.
물론, 불볕더위에 땀은 흐르고.
책임은 안 지고 권리만 누리겠다고 선언하는, 그
번듯한 가르마. 거래처에서 돌아오자마자 난데없이
평지풍파를 일으켜보지만 포마드 기름이 뚝, 뚝.
하지만 사무실 벽에 걸린 벽시계는 초침을 꾹꾹 돌
리고.
책상을 탕, 내리치는 부국장의 뺨은 붉다. 갱지들
이 날린다. 벽시계가 삐걱거리며 돌고, 미쓰김과 박
대리는 침을 꿀꺽, 삼킨다. 역전 다방의 엽차 같은
맹한 맛이 사무실 가득 넘치고,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청춘이 간다. 오후의 불볕더위를 넘어,
사무실 낡은 소파 위를 지나
정성껏 눌러쓴 갱지, 글자들 사이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국장을 데리고 간다.
잘만 간다.
서정학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