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마을길 풀깎기 울력이 있으니
남자들은 예초기를 들고 나오라는
이장님 방송이 나온다
아침 여섯시가 못되었으나
그새 왱왱 왱왱왱 웽웽 웽웽웽,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 요란하다
오늘은 남자들만 울력을 하는 날,
애초부터 예초기도 없고
예초기를 돌릴 줄도 모르는 나는
여느 때처럼 빗자루 들고 나간다
두어해 전까지만 해도 나처럼
빗자루를 들고 나오는 노인이
두셋은 더 있었다 하나 이제는
먼저 가거나 아주 쇠하여,
이 마을에 남은 빗자루꾼은 나 하나다
핫따 일찍 나오셨네요 잉, 인사를 건네며
마을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씨익,
아, 안 나와도 된디 머덜라고 나왔디야!
하며 돌리던 예초기 돌려 풀을 깎는다
금수양반 종연이양반 바우양반
이장님 전 이장님 전전 이장님
예초기 뒤를 번갈아 따르며
길 안쪽으로 퉁겨진 풀을 쓸어낸다
등허리 축축하게 길을 쓸고 집으로 들다보니
안 쳐도 되는 우리 집 마당 앞 풀을
누군가가 참 깨끗하게도 싹싹, 쳐두었다
박성우
웃는 연습, 창비시선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