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 옛 JRPG의 향수를 한 번 더, 로스트 스피어
한때는 '일본식 RPG'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RPG'라고 하면 무조건 일본 개발사에서 만든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실제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받던 장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서양 개발사의 RPG가 대세가 되었으며, 이와 구분하기 위해 '일본식 RPG', 'JRPG'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JRPG'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90년대 일본식 RPG의 분위기를 살리면서 제작된 작품이 있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의 '제물과 눈의 세츠나'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PS4와 PS Vita, 닌텐도 스위치와 PC로 발매된 이 작품은 하나의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세츠나'라는 이름으로 시리즈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3 2017 스퀘어 에닉스 부스에서 프로젝트 세츠나의 신작 '로스트
스피어'에 대해 개발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프로젝트
세츠나의 신작이라고는 하지만 전작과 로스트 스피어와의 스토리적 접점은
전혀 없는, 별개의 작품입니다. 90년대 황금기를 누렸던 일본식 RPG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개발된 로스트 스피어의 키워드는 '기억'입니다.
세계의 모든 것에는 기억이 깃들어 있으며, 각 개체가 가진 기억이 닳아
없어지면 기억의 백지 상황 '로스트' 상태가 됩니다. 기억을 다루는
신비한 힘을 가진 주인공 일행이 로스트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로스트
스피어에 대해 소개하는 하시모토 아츠시 디렉터.
데모 시연은 로스트 스피어의 첫 마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세이브 포인트도 있고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뜨는 NPC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마을에 있는 건물에는 들어가서 조사를
해볼 수 있고 무기점과 아이템 상점에 쉴 수 있는 여관도 존재합니다.
반짝거리는 사물은 조사해달라고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아주 익숙하고
조금 낡았다고도 느껴지는 전통적인 일본식 RPG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심지어 4명이 줄을 맞춰 이동하는 것까지.
이제 월드 맵으로도 나가봅니다.
월드 맵에서도 반짝거리는 장소를 조사해서 아이템 등을 구할 수 있지만
전투는 월드 맵에서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제 전투를 하려면 던전으로
이동해야겠죠. 참고로 월드 맵을 이동하고 원하는 곳에 가면 이름이
뜨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방식은 '크로노 트리거'와 매우 흡사합니다.
스퀘어
에닉스가 만든 RPG에서 빠질 수 없는 전투 시스템인 ATB 시스템이 2.0
버전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전투가 이루어지는 방식 또한 크로노 트리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던전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유유자적 어슬렁거리는
몬스터와 접축하게 되면 전투 화면으로 따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자리를 잡고 전투가 발생합니다. ATB 게이지가 모두 차면
행동할 수 있고 플레이어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서 전투 커맨드를 입력합니다.
각각의
공격은 범위의 형태도, 크기도 다릅니다. 전투 음악이 매우 영롱한 느낌이라
꽤 신기하며, 시연 버전은 PC로 구동되었는데 아기자기한 느낌의 전투는
로딩 없이 바로바로 진행되었습니다. 통상 공격 말고 특수 스킬도 존재합니다.
다만 아직까지 개발 버전이란 것을 감안해도 호쾌한 맛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비슷한 전투 방식의 크로노 트리거가 적절한 끊어치기 연출 등으로 손맛
있는 전투를 구현해냈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입니다.
전작에서의 세츠나(찰나) 시스템이 이번
작품에도 이어져서 SP 게이지를 모은 다음 공격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추가 입력하면 공격을 연이어 할 수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임팩트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옛 JRPG 처럼 중반부가 넘어가고 스킬도
다양해지고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으면 더 나은 모습이 될 지 궁금합니다.
전투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려는 월드 맵 곳곳이 하얀 색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바로 로스트 상태가 발생한 것이며, 이는 주인공 일행이 처음으로 로스트와
마주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아마 기억을 되돌리면 새하얀 곳은 사라지고
다음 마을로 이동할 수 있게 되겠죠.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니 이미 마을
전체가 하얗게 된 상황. 당황해 하는 주인공 일행을 비추는 카메라가
위로 쓱 올라가고 타이틀 로고가 뙇 박히면서 데모 시연은 모두 끝이
납니다.
이번 작품은 전작과 달리 PS Vita로는 나오지 않고
PS4와 스위치, PC 버전만 개발됩니다. 하지만 플레이 콘텐츠 자체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하시모토 아츠시 디렉터는 설명했습니다. 또한
전작의 플레이 타임은 순수하게 클리어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20시간
정도였지만 이번 작품은 좀 더 늘어서 30시간 정도의 분량이며, 물론
서브 퀘스트 클리어 등 파고들기 플레이까지 감안하면 플레이 타임은
대폭 늘어나게 됩니다.
일단 전작과 스토리 상의 접점은 전혀 없어서 전작을 플레이하지
않아도 로스트 스피어를 100% 즐기는 것은 가능합니다. '세츠나'라는
단어가 시스템에 등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스템 중의 하나로 단어가
이어지는 것뿐이라고 하시모토 디렉터가 이야기했습니다. 다만 전작과
이야기가 바로 연관은 없지만 몇몇 부분에서 추측을 하고 상상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약간 남겨두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작을 발매하고 나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는데, 전투 도중에 적과 아주 조금 더 가까우면
공격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서 답답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번 작품에서는
전투 도중 이동할 수 있게 변경되었습니다. 여관을 만든 것도 전통적인
RPG인데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추가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시연 버전은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아직 국내 정식 출시는 미정인 상태입니다.
프로젝트 스피어 세션을 마치면서 하시모토 아츠시 디렉터는 아직도 적지 않은 게이머들이
90년대의 일본식 RPG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상상해가며 플레이하는 즐거움을
원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프로젝트 세츠나를 제작한 이유와 앞으로도
프로젝트 세츠나는 시리즈로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프로젝트 세츠나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는
하시모토 디렉터는 로스트 스피어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했습니다.
이상원 기자 petlabor@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