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칼이 꽂힌 기분이었어요."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출시 이후 8 여 개 팀을 거치며 경력을 쌓아왔던 “Hooligan” 박종훈 선수는 프로 무대가 얼마나 냉정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런 종류의 배신은 충격이었습니다.
Holligan은 메시지를 응시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다른 선수랑 하기로 했어. 미안해.”
Hooligan은 이번 HGC 코리아에 진출하지 못하면 히어로즈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이 팀이 예선에서 패배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어서이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팀에서 방출당할 줄은 정말 몰랐죠. 전세계의 모든 히어로즈 선수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예선전이 고작 5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누가 설마 이 시점에서 그렇게 매정할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첫 시즌을 우승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은퇴당할 처지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충격에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엔 화가 났죠.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순진함과 그 상황이 슬펐습니다. 그가 모두 모여 점심이나 먹자고 해맑게 추진하고 있었을 때 사실 팀에서는 그를 교체할지 말지를 논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 팀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팬으로서도요.
Hooligan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은 더욱 놀랍습니다. 고작 8개월 전이었죠. 팀에서 쫒겨난 직후의 Hooligan 은 예선 직전에 급하게 새 팀을 찾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세계 최고의 팀들 중 하나에서 뛰고 있습니다. 2년 가까이 각종 무대에서 얼굴을 비쳐온, 실력적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있는지 의문이었던 베테랑 선수의 행보라고는 믿기가 힘들죠. 그래도 생각해보면 히어로즈는 짜릿한 역전승이 참 자주 나오는 게임이긴 합니다. 도저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상황에서 Hooligan은 차근차근 상황을 풀어냈습니다. 신속하게 이틀 만에 새롭게 GG팀을 구성하고, HGC로 진출하고, 1단계에서 본인의 진가를 보여준 뒤 마침내 L5 입단 테스트를 제의받고 통과한 것입니다.
저는 비 내리는 토요일 종각역에서 L5의 Hooligan 선수를 만났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8월의 가랑비 아래Hooligan 선수는 흰 줄무늬가 가로진 밝은 파란색 폴로 셔츠를 입고 서 있었습니다. 옛 서울의 중심부에서 e스포츠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것에 어떤 아이러니가 있었다면 -- 조선 시대의 왕궁을 코앞에 두고 최신 게임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이니까요 -- 선수와 저에게는 전혀 인지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근처 소박한 카페로 향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의 Hooligan은 그리 훌리건답지 않습니다. 전 거의 모든 한국 히어로즈 프로 선수와 이야기를 나눠봤고, Hooligan은 가장 예의 바른 선수들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제게 보여주는 모습 한정으로는 말이죠. 지난 이스턴 클래시에서 첫 국제 대회 트로피를 가져왔으니 조금은 더 호탕해졌으리라 예상했지만, Hooligan은 오히려 더 겸손해진 것 같았습니다. 나이 (만으로 23세, 한국 프로 선수들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죠)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성실한 자기 수련의 결과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대중에게 좋은 인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 전에는 온라인에서 평판이 나빴다고 Hooligan은 설명했습니다. 물론 그가 훌리건이 아니라고 해서 또 아예 신사까지는 아닙니다. 가끔 튀어나오는 거친 말이나 짓궂은 눈빛은 한 꺼풀 아래에 있는 보다 요란한 기질을 살짝씩 드러내죠. 하지만 어차피 팬들은 그가 신사가 되길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L5 팀의 별명 중 하나는 '노잼파이브'입니다. 별명이 붙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전 선수들이 ("Noblesse" 채도준 선수와 "NaCHoJin" 박진수 선수가 있었던 작년 로스터 기준) 죄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예의바르고 지루한 대답만 쏟아내곤 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Noblesse와 NaCHoJin 선수가 은퇴하고 Hooligan 선수와 "SDE" 김현태 선수로 교체되자 많은 L5 팬들은 팀의 경기력이 어찌될지 걱정했지만, 한편으로는 Hooligan처럼 마이크웍이 좋은 선수가 팀에 합류했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품기도 했습니다.
Hooligan 선수는 자신이 딱히 재미있거나 두드러지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중 앞에서 말하는 걸 그리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고등학교 때 전교 부회장이었어요. 사실 그때 게임이든 공부든 둘 중 하나를 더 열심히 하는 게 나았을텐데, 저는 정말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좋아했어요." "sCsC" 김승철 선수나 "Jeongha" 이정하 선수같은 조용한 다른 팀원들에 비하면 Hooligan 선수는 거의 토크쇼 스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Hooligan 선수보다 히어로즈 프로 무대에서 더 커더란 구멍을 채워야 했던 선수는 없었습니다. 두 단계에 거쳐서 “Rich” 이재원 선수와 “merryday” 이태준 선수를 대체해야 했던 MVP Black의 “KyoCha” 정원호 선수가 떠오르긴 하지만, 그건 연이은 포지션 변화의 난이도가 문제였지 사실 구멍의 크기 자체는 더 작았습니다. 두 선수 다 정말 뛰어나고 중요한 선수였지만 MVP Black의 척추는 언제나 KyoCha 선수 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Noblesse하면 L5고 L5하면 Noblesse죠.” 한국 캐스터들이 항상 하는 말이었습니다. 빈말도 아니었습니다. 같은 팀 선수들과 상대 팀 선수들 모두가 매주 그 사실을 확인해주었으니까요. 그들은 계속해서 Noblesse가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사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런 화려한 찬사에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Noblesse가 정상에 있는 동안 감히 공개적으로 그런 의견을 내는 이들은 극소수였습니다. 설령 Noblesse가 "히어로즈계의 Faker"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점은 분명했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Noblesse가 히어로즈에 더 이상 뜻을 두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는 여전히 뛰어난 선수이자 L5팀의 지주로 인정받았습니다.
Hooligan은 HGC 2단계가 시작될 때 L5 팀에 합류했습니다. 그 뒤로 매 경기마다 Hooligan은 시험대에 올려지게 되었죠. 과연 그가 Noblesse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캐스터들과 팬들은 그야말로 끝도 없이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중요한 질문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Hooligan이 어느 정도의 부담감을 짊어지고 게임해야 했는지는 상상하기 참 어렵습니다. MVP Black을 꺾고 이스턴 클래시를 우승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거나 실력의 증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Hooligan 선수는 그 부분에 대해 놀랍게도 초연했습니다. 그가 L5로 이적하고 크나큰 부담을 느낀 것은 맞았지만, 이는 Noblesse 선수의 뒤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아니라 최고의 팀, 기대치가 높은 팀에 합류해서 느끼는 부담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Noblesse 선수의 자리를 어떻게 메꿔야 할지 고민한 적은 없습니다. 어떻게 이겨야 할지만 생각했죠. 하지만 Noblesse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예요. 뛰어난 실력과 인성을 모두 갖춘 정말 몇 안 되는 프로 선수죠. 제가 응원 메시지를 보냈을 때 저에게 치킨을 사주기도 했어요! 나중에 저도 치킨리그에서 치킨을 얻어내서 보내줬어요."
"L5는 별나고 특별한 팀이에요.” Hooligan 선수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솔직히, 한 번도 팀 분위기가 나빴던 적이 없어요. 모두 정말 마음이 여유롭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요. 중요한 경기에 졌을 때도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경기 중에는 활발하게 소통하죠."
예전부터 L5 팀은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팀으로 유명했습니다. 휴가 때도 Skype로 수다를 떨며 워크래프트나 스타크래프트 사용자 지정 맵을 플레이하곤 했었죠. 새로운 L5도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후 내내 Hooligan 선수는 팀을 칭찬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L5 팀에 합류하고 나서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팀의 의견을 더 잘 듣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에요. 저 개인은 그렇게 많이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갑작스레 새로운 움직임이나 뭔가 대단한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에요. 그저 더 잘 어울리면서 어떻게 하면 Jeongha 선수나 sCsC 선수 같은 팀의 주력 선수를 잘 지원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을 뿐이죠."
그동안 많은 e스포츠 챔피언을 인터뷰했지만, Hooligan은 여느 선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겸손해서만은 아닙니다. 사실 겸손한 선수는 정말 많고, 그러한 겸손은 승자에게서 흔하게 보이는 모습이니까요. 그보다는 e스포츠라는 공간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태도가 유별나게 느껴졌습니다. 최근의 성과나("열심히 했고 플레이도 잘 했지만, 그래도 운이 좋았다는 기분이 들어요.") 부진했던 시기("생활비를 위해 알바를 많이 뛰어야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심지어 미래("은퇴하고 나면 아마 자격증 공부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를 이야기할 때도 Hooligan은 담담했습니다. 게임에 투자한 모든 시간, 흘렸던 모든 눈물, 그리고 이룩한 모든 영광, 이 모든 것은 사실 충분히 한순간에 잊혀질 수 있음을 잘 아는 사람의 태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순간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타이베이 길거리에서 갑자기 달려와 함께 사진 찍어 달라고 하던 두 명의 여성 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Hooligan 선수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해졌습니다. 전에는 한 번도 길을 걷다가 사진 요청 때문에 멈춰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팬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어요.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죠. 지금도 행복하고 감사해요.”
"6개월 전만 해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을 영원히 그만둬야 하는건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Hooligan 선수가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드랍 더 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