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오브 워, 수염 난 ‘크레토스’ 머리카락은 없는 이유
산타모니카 스튜디오 ‘갓 오브 워’는 대대로 PS 진영의 액션을 책임지는 대들보였다. 거칠고 잔인한 스파르탄 ‘크레토스’와 신화적인 괴물들의 살을 베고 뼈를 부수는 격전. 정의와 영광이 아닌 복수와 불의로 이어지는 대서사시는 뭇 게이머의 피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크레토스’가 그리스 만신전을 초토화시키며 삼부작을 마무리한지 어언 8년이 지났다. 그간 여러 좋은 게임이 나왔으나 ‘갓 오브 워’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조금씩 아쉬웠는데, 드디어 그 스스로 전설을 잇고자 PS4 최신작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시리즈 전성기를 이끈 디렉터 코리 발로그가 복귀해 지휘봉을 잡았고, 이야기의 무대부터 시점 및 액션까지 모든 것을 바꿨다. 새 시작을 알리듯 제목은 담백하게 ‘갓 오브 워’. 복수에 눈이 먼 광전사에서 한 소년의 아버지로 변모한 ‘크레토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3월 6일(화) 강남구 모나코 스페이스에서 산타모니카 스튜디오 애런 카우프만 프로듀서와 대담을 나눴다.
● ‘갓 오브 워 2’ 끝으로 스튜디오를 떠났던 코리 발로그가 돌아왔다
카우프만: 코리는 산타모니카 스튜디오의 원년 멤버다. 떠나기 전 ‘갓 오브 워 3’ 초기 개발에도 관여했고 그 후에는 ‘툼레이더’ 리부트와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를 작업한 것으로 안다. 그사이 스웨덴에서 아들을 낳기도 했는데, 코리는 스웨덴어를 전혀 못하지만 아들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갓 오브 워’가 아버지의 이야기로 변화한 데는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스며든 셈이다.
● 신작을 그냥 ‘갓 오브 워’라고 지었다. 왜 부제를 붙이지 않았나
카우프만: 만약 ‘갓 오브 워 4’라고 했다면 전작과 이어져서 시리즈를 전부 해봐야할 것 같은 부담감을 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작은 그리스 삼부작을 해보지 않아도 즐기는데 무리가 없다. 그리스 신화가 ‘갓 오브 워’ 챕터 1이라면 북구 신화는 챕터 2랄까. 새시대의 서막을 여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 이번 작과 그리스 삼부작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카우프만: 새로운 ‘갓 오브 워’를 위한 주된 도전은 전투와 탐험, 서사를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갓 오브 워 3’ 이후 액션 RPG 장르가 이룬 많은 발전을 지켜보며 현세대에 어울리는 게임성을 구축하고자 했다.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지체없이 서사성이라 할 텐데, 아버지가 된 ‘크레토스’가 파괴의 순환에서 벗어나 미래를 개척하는 여정을 보게 될 것이다.
시스템적으로도 자유롭고 근접한 카메라 시점을 선택해 한층 전략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액션 연출이 가능해졌다. 특히 시점은 플레이어가 ‘크레토스’와 함께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의도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또한 무기뿐 아니라 방패와 맨손 등을 활용해 전투를 유연하게 풀어갈 수 있어 흥미를 더한다.
● 도입부에서 ‘크레토스’가 팔에 붕대를 감을 때 감정 묘사가 섬세했다
카우프만: ‘갓 오브 워’ 팬이라면 ‘크레토스’가 지닌 과거의 상처를 알 것이다. 이번 작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과거를 그저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며 전진하는 의지다. ‘크레토스’는 내면의 파괴적인 본성과 싸우며 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와 아들 ‘아트레우스’는 어머니의 유해를 북구 신화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으로 가져가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떻게 신이 되는지, 아들은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알려준다. 게임 내 많은 부분에서 이런 관계를 드러내고자 인물과 행동 묘사에 공을 들였다. 비단 코리 발로그뿐 아니라 팀원 모두가 삶의 경험을 작품에 담아냈다. 아울러 크리스토퍼 저지라는 배우가 ‘크레토스’를 연기했는데 정말 훌륭하게 감정선을 살려줬다.
● 그러면 ‘크레토스’의 광기어린 액션은 더 이상 볼 수 없나
카우프만: ‘크레토스’는 늙었지만 여전히 강력하고 거침없은 전사다. 그는 전쟁의 신으로서 분노라는 질병을 품고 있고, 따라서 전투 도중에 잠시 동안 ‘레이지 모드’을 발동 가능하다. 다만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모든 것을 파괴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 작에서는 아들을 위해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리고 혈육으로서 저주를 이어 받은 아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 ‘크레토스’가 북구 신화로 옮겨가게 된 경위도 나오나
카우프만: 게임 내에서 그가 북구에 정착하는 과정은 따로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플레이어가 현재의 ‘크레토스’만을 주시하길 바라는 의지의 산물이다. ‘갓 오브 워3’로부터 본편까지 알 수 없는 시간적 괴리가 존재한다. 그래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의 뱀(World Serpent)’이라는 존재가 세계관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긴 한다.
● 왜 하필 북구 신화를 다음 무대로 선택했나
카우프만: 신작 개발에 앞서 이집트부터 아시아까지 동서양의 온갖 신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북구 신화가 우리가 추구하는 게임 방향성과 가장 잘 맞는다고 판단했고, 직접 현지에 방문해 영감을 얻기도 했다.
● 과거에도 그리스와 북구 신들간에 무언가 교류가 있었나
카우프만: 글쎄, 앞으로 ‘크레토스’가 북구 신들과 만날 것은 자명하지만 더는 말해줄 수 없다.
● ‘갓 오브 워’가 그리스 신화를 다룰 일은 더이상 없는가
카우프만: 비록 그리스 만신전이 파괴됐지만 그곳의 신화 자체가 끝나버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언젠가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북구 신화를 구현하는데 개발 역량을 120% 집중하고 있다.
● ‘크레토스’의 수염이 인상적이다. 게임 도중에 자라기도 하나
카우프만: 이미 늙은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게임 내에서 변화는 없다. 속편에서는 바뀔 수도 있겠다.
● 못 본 사이 수염은 풍성해졌는데 어째 머리카락은 한 올도 없나
카우프만: …아무래도 원래 대머리인 모양이다. 사실 처음에는 둘 다 없었는데 오랜 세월 시련을 겪은 거친 남자의 느낌을 주기에 수염만한 것이 없더라. 거의 목숨을 잃을 정도의 고통을 겪고 황량한 땅에 정착한, 늙었지만 동시에 현명해진 ‘크레토스’의 노련함을 표현하는 시각적 장치다.
● 성장 시스템이 상당히 다채로워졌다
카우프만: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싶었다. 선형적으로 공격력만 올리면 금새 지루해진다. 최신 액션 RPG에 걸맞게 여러 룬을 수집, 강화하여 공격에 치중할지 방어를 챙길지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스킬 트리 등도 마찬가지다.
● 아들 ‘아트레우스’의 AI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카우프만: ‘아트레우스’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AI를 만들었다. ‘크레토스’가 적의 목을 조르며 ‘아트레우스’쪽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트레우스’가 ‘크레토스’를 밟고 뛰어오르며 사격하기도 한다. 다만 협동 플레이가 늘 완벽한 것은 아니며, 플레이어는 어디까지나 ‘크레토스’로서 아들의 보호자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 ‘갓 오브 워’하면 초반 거대 보스인데 이번 작에서는 안 보인다
카우프만: 새로운 ‘갓 오브 워’를 만드는 만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번 초반부는 아버지와 아들이 맺고 있는 유대 관계와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또한 시연을 해봤으니 알겠지만 30분 내로 아주 강렬한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몸집이 거대하지는 않아도 그 이상으로 막강한 적수다.
● 신작은 오픈월드 게임인가, 지나친 지역으로도 돌아갈 수 있나
카우프만: 오픈월드는 아니지만 매우 넓고 선형적인(Wide-linear) 게임이다. 버스 여행으로 비유하자면 세계의 정상으로 향하는 도중에 언제든 내려서 전투를 벌이거나 수집을 하고, 다시 탑승해 목적지로 진행하는 느낌. 물론 이 과정에서 지나친 지역으로도 돌아갈 수 있다.
● PS4 프로 한정판도 나왔는데 얼마나 성능 향상이 이루어지나
카우프만: 알다시피 4K 해상도 HDR 지원 등이다. 향상된 그래픽과 프레임으로 최고의 ‘갓 오브 워’ 플레이 경험을 선사하리라 단언한다.
● 끝으로 한국 게이머들에게 ‘갓 오브 워’ 출사표를 던진다면
카우프만: 이번 작을 통해 ‘크레토스’의 변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때 “어? 이거 정말 다른데. 그렇지만 굉장히 좋아”라고 느끼길 바란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갓 오브 워’를 만들고자 했고 액션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되었으면 한다.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