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3D 미소녀가 2D로 나풀나풀, 히어로 슈터 ‘스트리노바’
우리가 흔히 미소녀, 서브컬처 게임으로 부르는 작품군을 중국에선 2차원 게임이라 한다. 어떤 맥락인지 대번에 이해되긴 하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좀 이상한 표현이지 않나. 근 몇 년간 국내외서 맹위를 떨친 중국 2차원 게임이 실은 다 3D 그래픽인데. 여기서 D가 곧 차원(Dimensions)이니 결국 3차원을 가리켜 2차원 게임이라 하는 꼴이다. 일러스트가 2차원이면 모델링은 3차원이라도 통과인가? 차라리 2차원인 동시에 3차원인 게임은 없는 걸까?
…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본 사람은 드물지 싶은데, 어쨌든 실제로 2차원이자 3차원 게임이 존재한다. 아이드림스카이 산하 데이원 스튜디오가 개발한 멀티플레이 TPS ‘스트리노바(卡拉彼丘)’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첫째, 이 장르서 보기 드문 애니메풍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둘째, 근데 그 캐릭터들이 2D로 변한다. 퍽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거짓은 일절 없다. 총격전을 벌이던 미소녀들이 창졸간 껌딱지마냥 납작해져 나풀나풀 바람에 날아다닌다.
2차원과 3차원을 오가는 이색적인 멀티플레이 TPS '스트리노바'
이 황당한 상황에 대해 필자가 이해한 배경 설정은 다음과 같다. 구세계가 어떤 재앙으로 멸망한 이래 인류는 스트리노바라 명명된 다차원 공간으로 이주한다. 다만 갑작스런 이주에 모두가 동의한 건 아니었던지라 곧 세 개 파벌로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다. 공식 정부로서 질서와 집단주의를 표방하는 유토피아 묘사 안보기구(PUS), 진정한 고향 지구로 귀환을 꿈꾸는 시저스, 예술과 기술을 숭상하고 당장의 현실보다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우르비노가 그들이다.
요컨대 너도나도 부피감을 지닌 3D와 납작한 2D를 자유롭게 오가는 게 다차원인이기 때문이라고. 스토리 영상을 보면 적진에 잠입할 때 정말 진지한 얼굴로 납작해져 날아간다. 실제 게임서도 활공, 틈새로 지나기는 물론 벽화마냥 밀착한 후 높은 장벽을 오르기까지 2D 상태의 효과가 굉장하다. 연배가 좀 높은 게이머라면 2000년대 중반 한게임서 운영한 FPS ‘페이퍼맨’을 기억할 텐데, 그 영향을 받았을 리 없겠지만 상당히 닮았다. 2D 상태로 총격을 피하는 것도 똑같다.
시점이 다르긴 하지만, 과거 한게임이 운영한 '페이퍼맨'을 닮았다
그리고 2D화를 제쳐두더라도 ‘스트리노바’ 자체가 히어로 슈터다. 세 진영에 속한 캐릭터들이 저마다 고유한 스킬과 무기로 싸운다. 기존 흥행작과 비교하자면 다들 몸집 즉 히트박스가 비슷하고 팀파이트보다 건플레이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발로란트’와 가깝다. 스킬은 액티브, 패시브, 궁극기 하나씩. 무기는 주력, 보조, 투척 2종까지 네 개인데 주력은 모두 총이며 보조로 SMG, 권총, 칼 등을 찬다. 캐릭터 게임인 만큼 기본적으로 3인칭이지만 정조준 시 1인칭으로 전환된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캐릭터는 뱅가드, 서포터, 가디언, 컨트롤, 듀얼리스트의 다섯 역할로 나뉜다. 먼저 이니시에이터라고도 불리는 뱅가드는 전황 파악 및 개전에 특화됐다. 궁극기로 일정 구역에 자신을 사격할 수 없는 자기장을 깔아버리는 라윈, 강렬한 음악으로 적 전체에 디버프를 거는 카나미가 대표적이다. 서포터는 말 그대로 서포터. 구출 속도 증가 패시브, 힐링 드론 액티브, 즉시 부활 궁극기라는 아주 모범적인 스킬셋을 지닌 코코나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
히트박스가 비슷하고 팀파이트보다 건플레이, 즉 '발로란트'에 가깝다
다음으로 센티넬이라고도 하는 가디언은 화물을 지키거나 공세를 저지하는 상황에서 활약한다. 주요 캐릭터는 총기 전면에 방패를 설치하여 굳건히 버티는 오드리, 자동으로 공격하는 터렛과 드론을 설치하는 미셸이 있다. 컨트롤러는 모래 바람으로 적의 시야를 차단하는 메러디스, 빙판을 깔아 미끄러지도록 만드는 이벳, 거품과 도료를 마구 뿌려대는 마델레나처럼 전장 환경을 일시적이나마 통제한다. 당연히 그 효과가 강력한 만큼 1:1 교전 능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끝으로 듀얼리스트는 단순히 잘 싸우는 역할이라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꽤 난해하다. 그야말로 결투사답게 킬 캐치에 뛰어나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일인분이 가능하기 때문. 가령 바이모의 액티브 스킬인 미스틱 댄스는 적 근처로 순간 이동하며 샷건을 곧장 재장전하는데, 적이 쓰러질 때마다 쿨다운이 사라진다. 퓨시아는 적의 HP를 수정 형태로 빼앗아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고. 서로 방향은 좀 달라도 공격 일변도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윤용법은 대동소이한 셈이다.
2D화와 별개로 각자의 고유 스킬을 얼마나 잘 쓰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게임 모드는 섬멸, 수송, 폭파까지 이 장르의 PvP서 기대할 법한 콘텐츠는 거진 존재한다. 차이가 있다면 맵 곳곳에 평범한 뜀박질로 넘기 힘든 간극, 그냥은 지나기 힘든 틈새 등 2D화를 염두에 둔 지형이 많다는 것. ‘페이퍼맨’과 달리 2D로 싸울 순 없어 계속 상태를 바꾸며 전황 살피고 총 쏘랴 스킬 사용하랴 은근히 바쁘다. 대신 액티브 스킬이 하나뿐이라 너무 피곤하지 않고 어느 정도 균형이 맞는다. 소위 ‘샷빨’ 운운하는 손맛과 기본적인 조작감도 의외로 준수하다.
과거 하이퍼 슈터나 아레나 슈터가 유행하던 시절부터 이동기로 +α를 주려는 작품은 많았다. 미끄러지거나 밟고 오르는 거품, 상하좌우로 밀고 당기는 중력, 심지어 시간을 역행하며 싸우자는 아이디어도 나온 바 있다. 다만 어떤 것은 너무 어렵고 또다른 것은 너무 정신없어 흥행에 실패했다. 작금의 히어로 슈터 역시 기본적으로 사격, 스킬 두 가지를 신경 써야 하는지라 추가 기믹이 너무 어렵거나 정신없어선 곤란하다. 자칫 주객이 전도되기 쉬우니까.
익숙함과 색다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으려는 고민이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리노바’의 2D화는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으면서 +α를 실현한 좋은 예시다. 활강, 틈새 비집고 들어가기, 히트박스 줄이기-는 부수적인 효과지만-가 각기 다른 능력이 아니라 2D 상태로 통합되어 조작 체계의 과잉을 방지했다. 물론 이것도 실력 여하에 따라 향후 진입장벽이 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당장은 여느 히어로 슈터보다 어려울 게 없다. 무엇보다 2D화된 미소녀들이 은근히 웃기고 귀여워 서브컬처 게임의 정체성과 무척 잘 어울린다.
짧은 시연이라 자세히 살피지 못했으나 그 외에 서브컬처 게임다운 요소도 마련됐다. 캐릭터를 모으고 메신저로 대화하며 친해지는 호감도 시스템은 수집형 RPG로 다들 익숙할 터. 서로 덕심, 아니 정체성만 통한다면 슈터라고 다를 건 없으니까. 서브컬처 팬덤의 화력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작금의 시장에선 ‘스트리노바’가 ‘발로란트’, ‘오버워치 2’를 꺾을 수 있을지도. 필자 역시 한 명의 덕후로서 글로벌 서비스, 나아가 한국 서버 오픈을 기다리는 바다.
작금의 세태에, 이런 캐릭터만 나오는 슈터도 하나쯤 괜찮지 않나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