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S] 무엇에든 빙의하고 무엇이든 던져, 팬텀 브레이브 유령선단과 잃어버린 영웅
소위 ‘노가다’ 게임이 거의 사장된 요즘이야 듣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야리코미(やり込み, 파고들기) 플레이라는 일본식 용어를 곧잘 썼다. 그리고 파고들기하면 가장 먼저 니폰이치 소프트웨어가 떠올랐으니. 끊임없는 전생으로 누적 레벨 9,999를 돌파하는 ‘디스가이아’의 명성, 아니 악명은 당시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다. 그렇다고 무조건 레벨업에 매몰된 건 또 아니라 ‘라 퓌셀’, ‘마알’ 시리즈 등 독특한 게임을 곧잘 만들었다. 2004년작 ‘팬텀 브레이브’ 역시 그 중 하나다.
죽은 친구와 약속을 지키려 그들의 딸을 찾아간 유령-팬텀- 애쉬. 마침 유령과 소통하는 능력을 지닌 소녀 마로네. 둘이 함께 여러 사건을 겪으며 팬텀 동료를 모으고 각종 사물에 빙의-컨파인-시켜 싸우는 RPG가 ‘팬텀 브레이브’다. 특유의 파고들기도 충실해 갈수록 좋은 도구를 합성하고 무한히 이어지는 던전서 점점 더 큰 힘을 추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과연 20년 만에 속편 ‘유령 선단과 사라진 영웅’이 전작의 매력을 잘 이었는지, 정식 출시보다 한 발 앞서 잠시나마 살펴볼 기회가 닿았다.
[인터뷰] 20년 지나도 사랑받는 ‘팬텀 브레이브’, 제대로 부활시킨다
무려 20년 만에 속편이 깜짝 발표된 니폰이치 SRPG '팬텀 브레이브'
'유령선단과 잃어버린 영웅'이란 부제처럼 바다와 해적을 소재로 삼았다
이번에는 귀여운 팬텀 소녀와 해적단 결성
먼저 배경 설정을 간략히 소개하겠다. 드넓은 바다 위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이부아. 전작이 마무리된 후 마로네와 애쉬는 여러 섬에 들러 사람의 바람을 이뤄주며 지냈다. 그러나 평화로운 나날도 잠시, 갑작스레 뻗쳐온 유령선단의 마수로 인해 애쉬가 실종되고 마로네 역시 외딴 섬에 떠밀려간다. 불행 중 다행으로 거기서 만난 팬텀 아프리코가 전설적인 해적 선장의 딸임을 알게 된 마로네는 둘이 함께 해적단을 부활시키자 설득한다. 물론 살아 숨쉬는 선원이 아니라 팬텀들로 말이다.
그렇게 바다로 나선 두 소녀는 설원부터 사막에 이르는 다양한 풍광의 섬들을 방문하며 루안, 헨나, 우루미, 메이페어 등 든든한 팬텀 선원을 늘려간다. 다만 여기까지 내용은 공식 소개 자료에 따른 것으로 실제 TGS 2024 미디어 프리뷰 빌드의 경우, 이미 애쉬만 빼고 네임드 멤버가 다 합류한 채였다. 메뉴는 절반가량 잠겨 있었으나 다행히 팬텀 생성, 정박지, 인양 등 주요 기능은 확인 가능했다. 아쉬운 점은 항해가 오롯한 콘텐츠라기보다 한 장의 월드맵서 배 모양 커서가 움직이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
TGS 2024 시연은 이미 어느 정도 해적단 규모가 갖춰진 상태로 시작했다
항해는 이 정도인 모양이다. 뭐, 항해를 즐기려고 하는 게임은 아니니까
메인 스토리를 이끄는 네임드 멤버 외에 수많은 양산형 동료가 존재하는 건 ‘팬텀 브레이브’나 게임성이 비슷한 ‘디스가이아’의 오랜 전통이다. 본작 역시 50종이 넘는 범용 팬텀-시연에선 27종- 가운데 하나를 고른 다음 색상, 이름을 정하고 추가 능력치를 부여해 새로운 동료로 삼는다. 추가 능력치나 후술할 컨파인도 무척 중요하긴 하나 각 팬텀마다 장, 단점이 분명한 편이라 이 시점에 어느 정도 역할이 정해진다. 가령 노파는 지능, 속도, 저항이 높은 반면 HP, 방어, 공격력이 낮고 골렘은 그 정반대인 식이다.
이어서 정박지는 해적단의 상징인 배를 선택하고 꾸며주는 메뉴다. 물론 진짜 항해다운 항해를 지원하는 게임은 아니므로 배의 존재가치는 각종 버프에 있다. 자원을 들여 배를 강화할수록 스테이지 보상과 경험치 획득량, 마나 회복량, 주요 능력치 상승량이 커진다. 필요한 자원이나 도구는 메인 스토리서 얻는 것 외에도 의뢰, 인양을 통해 수급 가능하다. 앞서 항해와 마찬가지로 인양하러 직접 바다에 나가진 않고 몇 시간마다 일정 확률로 보상이 딸려오는 방치형 콘텐츠라 이해하면 되겠다.
양산형 동료는 먼저 어떤 팬텀인지 고르고 색상과 능력치를 조정 가능하다
배는 전체 버프를 제공하여 스테이지 보상이나 경험치 상승에도 기여한다
무엇에든 빙의하고 무엇이든 던지며 싸우자
요컨대 해적, 항해 같은 요소는 이번 작의 컨셉일 따름이고 결국 핵심적인 게임 플레이는 전투와 육성으로 귀결된다. 메인 스토리나 의뢰에 따라 스테이지로 들어서면 우선 전장 환경을 원경으로 비춘다. 어떤 순서로 무엇에 컨파인해야 좋을지 미리 계획하란 것. 몇몇 사물은 프로텍션이라 부르는 빛나는 선으로 연결됐는데, 거기 컨파인한 팬텀끼리 특별한 효과를 얻는다. 컨파인을 쓸 수 있는 건 오직 마로네뿐이며 -소환 가능한 팬텀이 남았다면-횟수 제한은 없으나 사거리가 길지 않아 계속 움직여줘야 한다.
마로네의 사거리로 들어온 사물이라면 돌멩이이든 나뭇가지든 다 컨파인 대상이다. 바위는 방어력+, 꽃은 지능+ 같은 식으로 깃드는 사물에 따라 팬텀이 강화되므로 무작정 머릿수만 늘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반대로 컨파인에 소홀하다 마로네가 일점사 당하면 사실상 스테이지 공략은 물 건너가니 언제, 누굴, 어디에 컨파인할지 잘 안배해야 한다. 또한 보통 컨파인은 말이 빙의지 내 팬텀을 소환할 뿐인데, 대상이 통 로봇이나 화포처럼 특수한 경우라면 그 자체를 조종할 수 있다. 이는 따로 가젯 컴파인이라 부른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 스테이지 상황을 원경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마법사 + 지능 상승처럼, 팬텀과 궁합이 좋은 사물에 컨파인하는 게 요령
일단 얼마간 아군을 전개했다면 전투 자체는 여느 SRPG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특기할 점은 대다수 스킬이 범위기라 자기 차례에 허용된 범위 내에서 이리저리 움직여 최상의 각을 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디스가이아’마냥 땅에 떨어졌거나 자신이 장비한 도구는 물론 적과 아군까지 모조리 들어 던지는 게 가능하다. 굼뜬 동료를 재빨리 옮기거나 까다로운 적을 스테이지서 장외시키는 비교적 평범한 활용법부터, 집중적으로 합성한 도구 하나를 차례가 끝날 때마다 서로 던져주는 극한의 절약 플레이도 허용된다.
끝으로 본작서 새롭게 추가된 인연(絆) 컨파인이 있다. 팬텀을 다름아닌 마로네 자신에게 빙의시켜 능력치를 대폭 끌어올리는 일종의 변신 합체다. 우선 보통 컨파인으로 팬텀을 불러낸 뒤 마로네가 다가가야 하는데, 아무나 되는 건 아니고 애쉬나 아프리코 같은 네임드 멤버여야 한다. 인연 컨파인 중인 마로네는 빙의된 팬텀과 반씩 뒤섞인 모습을 취하여 성능 향상과 함께 연속 행동이 가능해진다. 필살기급 위력의 합체 공격은 덤. 수인 팬텀 루안과의 인연 컴파인이 위험할 정도로 귀여우니 꼭 확인하길.
'디스가이아' 프리니 던지기로 친숙한 기능, 본작에서도 요긴히 쓰인다
인연 컨파인은 귀엽다냥, 수인 팬텀과 함께라면 몇 배로 더 귀엽다냥~
그래도 야리코미 RPG는 역시 니폰이치니까
20년 가까이 해묵은 IP를, 심지어 당시 썩 잘됐다 평하기 힘든 작품을 발굴하는 건 니폰이치보다 훨씬 큰 회사도 드문 일이다. 앞서 본지와 인터뷰를 나눈 호소노 유야 디렉터는 팬 앙케이트 결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인기 투표에 관한 이야기인데, 쟁쟁한 ‘디스가이아’ 캐릭터들을 제치고 ‘팬텀 브레이브’ 마로네가 고순위에 올랐다고 한다. 혹자는 그래서 뭐? 싶을지 모르나 작금의 니폰이치에게 꼭 필요한 자극이었지 싶다. 전성기 시절 니폰이치를 지탱한 힘이 바로 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니까.
무엇보다 ‘팬텀 브레이브’는 ‘디스가이아’와 형제 관계라 그나마 완성도 걱정은 덜었다. 비록 ‘팬텀 브레이브’ 자체는 단편으로 종결됐-을 뻔했-지만 이어진 ‘팬텀 킹덤’서 ‘디스가이아’로 적잖은 설정 및 기능이 넘어갔다. 그리고 이제 다시금 ‘디스가이가’의 최신 요소를 본작으로 가져왔고. 근래 니폰이치 신작이 족족 좌초되는 와중에 작년 ‘디스가이아 7’만큼은 호평 받았음을 기억하자. 팬텀 브레이브 유령선단과 잃어버린 영웅’은 내년 봄, 아크시스템웍스 아시아지점을 통해 국내 정식 발매될 예정이다.
'디스가이아'와 비슷한듯 다른 매력이 있는 만큼 본편을 기대해도 좋겠다
향후 선보일 DLC 동료 팬텀 가운데 라하르도 있다고 슬쩍 알려주더라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