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C] 세기말의 음울함을 담아낸 어드벤처, 레인98(Rain98)
부산인디커넥트 페스티벌 2026을 방문하기에 앞서, 일본의 어느 독특한 인디 게임 하나를 소개 받았다. ‘Rain98’ 이라는 이름의 어드벤처 게임이었다.
‘Rain 98’ 은 언뜻 보면 비주얼 노벨 같지만, 그보다는 여러가지 요소가 섞여있는 어드벤처이다. 플레이어는 현대에 살고 있는 주인공으로, 집에 있던 어느날 갑자기 과거로 타임슬립하게 되고, 거기서 방금 막 목을 메려던 여고생 레이나를 만나 이야기가 시작된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하나씩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주인공이 옮겨간 시간대는 98년도의 세기말이라는 것, 이 여고생은 세상의 멸망을 바라고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앙골모아라는 것. 그리고 역시 현실에 지친 주인공은 레이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을 멸망시키기로 한다.
이렇게만 보면 뭔가 거창한 내용같지만, 실제로는 플레이어와 레이나가 보내는 일상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레이나는 자기 입으로 스스로를 앙골모아라고 소개하지만, 무언가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거나 구태여 그를 증명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저 담배를 필 때 집안을 치워주고, 세탁소도 같이 가고, 양말도 신겨주고, 온갖 잡일을 해달라고 한다.
‘Rain 98’ 은 푸른색을 기본으로 하여 우울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의 아트를 보여준다. 게임 내에서는 그 당시의 풍경을 반영하듯 여러가지 오래된 전자기기가 놓여있고, 레이나의 모습도 그렇고 세기말의 음울한 감성을 아트스타일과 비 내리는 풍경, 그리고 도시의 삶과 연결지어 잘 그려냈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하나로 이 게임의 플레이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데모에서 보여준 모습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비주얼과 캐릭터로 관심을 끄는 것 같으면서도 여러가지 흥미로운 분위기 조성과 이야기 흐름 때문에 다음 플레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BIC 2026 현장에 출품한 ‘Rain98’ 을 보고, 제작팀 C#4R4CT3R 와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었다.
■ 인터뷰
● 반갑습니다. 먼저 ‘Rain98’, 그리고 개발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CHI쨩 : 시부야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게임 레이블 C#4R4CT3R(캐릭터) 입니다. 팀 이름이 말그대로 캐릭터인 이유는 게임을 만드는 팀이지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캐릭터이기 때문으로, 우리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사랑받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었습니다.
저는 CHI쨩으로, 게임의 프로모션과 마케팅, SNS 및 디스코드 관리, 모더레이팅 등 커뮤니티 매니저 역할을 담당하며 게임이 이러한 이벤트에 출품할 때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 계획하고 실행하며, 팬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Shoon T 는 우리 게임의 디렉터로서 전체 스토리와 음악, 비주얼 및 게임플레이 등 게임 전반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Rain98’ 은 우리의 첫 작품으로, 처음에는 세명이서 시작하여 점점 인원이 늘어나 20명 정도가 현재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정한 ‘Rain98’ 의 장르는 로파이 사이코 스릴러 & 로맨스 어드벤처로, 언뜻 보면 비주얼 노벨 같은 게임이지만, 좀더 인터렉티브하고 상호작용이 있는, 많은 미니게임과 야외 활동 등 어드벤처 파트가 많은 게임입니다. 단순히 스토리만 즐기는 비주얼 노벨이 아니라 레이나와 함께 생활하고 시간을 보내는, 그런 몰입이 있는 타이틀이라고 생각합니다.
● 게임의 아트 스타일이 전체적으로 푸른색을 기반으로 도시적인 풍경을 많이 담고 있는데요. 이러한 테마 컬러의 선택 이유, 그리고 전체적인 아트 스타일은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CHI쨩 : 일련의 푸른 이미지는 Shoon T 디렉터가 여러가지 매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치면 ‘퍼펙트 블루’, ‘바다가 들린다’, ‘시리얼 엑스페리먼츠 레인’ 등의 작품과. 영화로 치면 키타노 타케시의 ‘하나비’ 등을 뽑을 수 있겠네요. 또한 게임이 비를 주요 테마로 하기에 파란색이 많이 쓰이더라도 각각의 결과 느낌이 다른 색상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 하나의 색상을 컨셉으로 잡으면 그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표현의 제약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CHI쨩 : 우선 우리 게임의 이야기 자체는 보다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정립되어 있고, 비가 내리는 세기말의 분위기다보니 오히려 이렇게 확고한 하나의 색상을 강조하는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러한 강렬한 하나의 색상 톤이 이러한 오프라인 이벤트나 온라인에서 플레이어들의 뇌리에 각인되기에 더 좋았다고 생각하고요. 뭔가 제약으로서의 느낌을 크게 받지 않았습니다.
● 세기말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그 당시의 세기말적인 감성을 담아서 게임의 구성을 잡은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게 거의 30년 전이라는게 놀랍네요. 시간 배경을 현재가 아닌 그 당시로 잡은 이유가 있을까요?
CHI쨩 : 확실히 Shoon T 디렉터도 어렸을 때이기에 그때를 구체적으로 경험했다기보다는 막연히 어떠한 이미지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어렸을 적의 느낌, 그 정도의 감성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초 아이디어부터 세기말을 배경으로 극을 진행시키려던 것은 아니었고,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답답함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들을 어떻게 더 이해하기 쉽고 공감하기 쉬운 이야기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까 고민하다가 닿은 것 같아요. 2, 30년 전의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죠. 그렇게 세기말의 98년도를 배경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게임 상 2025년도 현대에 살고 있는 주인공이 1998년도로 타임 슬립을 하게 되는데, 지금 우리의 이야기와 그 당시 사람들의 이야기, 걱정이 그리 다르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시대에 갖고 있는 불안함 등을, 치유까진 아니더라도 누군가 공감을 해준다는 그런 느낌을 유도했습니다.
● 앙골모아, 레이나는 평범한 여고생 같고, 하는 말은 들을 가치도 없는 거짓말 같은 면이 있지만 묘하게 설득이 됩니다. 레이나의 캐릭터성을 잡을 때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CHI쨩 : 레이나 자체가 처음부터 주인공을 쏘아붙이거나 하는 말을 하고 주인공에게 빨리 세상을 멸망시키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 멸망을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론 일상을 주인공과 함께 보내면서 점점 드러나게 되는 그녀의 일상과 면모를 발견하였으면 합니다. 레이나에게는 어린애 같은 면도 있고, 음울한 면도 있고, 그녀가 말하는 것들 사이에 모순되는 이야기들도 있죠. 이런 느낌이 핵심이 아닐까 싶어요.
● 데모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과 플레이가 있다면 세탁소에서 주인공이 레이나에게 양말을 신겨주는 장면이었는데요. 여러모로 야하게 볼 사람들은 야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이 레이나를 ‘돌본다’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CHI쨩 :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장면이 구도적으로는 어떤 주종관계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SNS에서 눈길을 끌기 위해서 만든 장면은 아니에요.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의도적으로 설계된 장면 중 하나죠. 그런 행동으로 주인공과 레이나 사이의 유대감이나 세탁소에서의 공간적인 일상감 등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데모를 플레이하고나서 이건 미연시냐, 호감도가 오르면 어떻게 되냐 하는 반응들도 있었지만 그게 메인이 되는 게임은 아닙니다.
● 레이나에게 칭찬 스티커를 받는게 게임의 핵심이지만, 어떤 식으로 극이 전개될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대사를 들어보면 같이 놀이공원을 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돈을 보는 요소가 있으니 경영적인 요소도 있나? 싶습니다. 본편의 전개에 대해 조금 힌트를 주실 수 있을까요?
CHI쨩 : 기본적으로 천사의 패스포트에 스티커를 받는게 전체적인 게임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이 스티커를 받는 과정 자체가 어떠한 노동이나 돈벌기가 아니라 레이나와의 일상, 그리고 유대에서 나온다는게 핵심입니다. 게임이 더 진행되면 나오지만 같이 외출하는 어드벤처 요소가 추가될 예정이고, 레이나가 뭔가 새롭고, 이러한 일상을 보낸다는 감각을 느낄 때 받는 스티커입니다. 아르바이트 요 소도 돈이 없다고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고 단지 액티비티를 할 때 선택지가 늘어나는 그런 느낌이죠.
헤븐즈 패스포트(ヘブンズパスポート)는 20세기말 당시 일본에서 실제로 유행했던 물건이에요. 당시 갸루 등 10대에게서 인기 있었던 물건이자 활동으로 자신의 소원을 쓰고, 스스로 좋은 일을 할 때마다 스티커를 한 장 씩 붙여서 100개를 모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컨셉의 물건이었어요.
심지어 위키피디아에도 서술되어 있는 헤븐즈 패스포트.
CHI쨩 : 네, 천사의 패스포트는 이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이처럼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서도 현재의 일본 아니메 등 문화를 여러모로 즐기고 있지만 정말로 당대의 일본에서 어떤 것들이 있었고 유행했는지 모든 문화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당시 일본의 실제 현실상이라는거죠. 뭔가 살아본 적은 없지만 막연히 노스텔지어를 느끼는 감성을 원했어요.
● 현재의 개발 진척도, 그리고 앞으로 출시 일정에 대해 알려주세요.
CHI쨩 : 최초 25년 4월부터 개발을 시작했고, 만들다 보니 본래는 훨씬 작은 규모로 25년도 내에 출시하고자 했었습니다. 그때 계획으로는 3시간 정도의 분량이었어요. 하지만 쇼 이벤트에 출품하다보니 반응이 좋아서 좀더 스케일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 게임의 첫 아이디어 자체는 더 큰 게임이었기 때문에, 당초의 계획처럼 10시간 정도의 플레이 타임을 가지는 게임으로 계획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현재 어느정도다, 라고 수치로 말하기엔 어려운데 먼저 이번 가을에 플레이타임 3시간 짜리 데모를 배포할 예정이고, 거기서도 피드백을 받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일단은 올해 안에 정식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데모를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비주얼 노벨처럼 캐릭터 스프라이트만 나오는 정도로 연출이 끝나는 게임이 아니어서 품이 많이 들어가는 편입니다. 장면, 이미지, 애니메이션, 음악까지 모두 세세하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Shoon T 디렉터가 욕심이 좀 많은 편이어서요.
일단 이제는 게임의 결말도 정해진 상태여서 이에 따라 이미 만들어진 초반부를 손보는 경우도 있고, 전체적으로 완성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CHI쨩 : 스티커를 모으는게 중요한 축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당연히 이러저러한 분기들이 있으며 반드시 스티커의 매수와 관계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게임들처럼 본인의 선택에 따른 멀티 엔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정해놓았지만 반드시 해피 엔딩이다, 배드 엔딩이다라고 확언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일단 무엇보다 이 게임은 결말을 향해 스피드런으로 달려가기보다는 레이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느끼는 플레이어의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한마디 말씀 부탁드립니다.
CHI쨩 : 아무래도 현재 게임의 데모가 퍼블릭하게 공개된 상황이 아니고, 한국에서는 BIC 가 첫 출품이다보니 이번에 현장에서 게임을 플레이해주시는게 첫 만남일 것 같습니다. 이번 BIC 에서는 한국어 버전 데모를 선보일 수 있었는데요, 이전 BIT 서밋 등의 행사에서도 한국어판 데모를 원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스팀 페이지에서도 한국에서의 위시리스트가 상당했기에 많은 분들이 기대해주시는 것 같아 정말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번 가을에 공개 배포될 플레이 데모는 현재의 데모보다도 더 확장되고 많은 분량을 담아낸 버전이고 변화도 있을 겁니다. 그때는 전세계 게이머들과 함께 할 수 있을테니 많이 기대해주시고 출시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기다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