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관둡니다. 애초에 사료를 던져도 읽지 않고 한글 2007 번역기 이용해서 자기 멋대로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는 사람하고 더이상의 토론은 무의한 것으로 판단되어집니다.
위 글은 그동안의 56611336와 제가 토론해왔던 것만을 기반으로 합니다. 자료 가져와도 안 읽으니 그냥 공판기록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1. 중앙정치를 잘 몰랐는데 객기, 영웅심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
' 나의 이번 거사는 개인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한일 관계와 관련해서 결행한 것이다. 그런데 사건 심리에 있어서 재판장을 비롯하여 변호인과 통역까지 일본인만으로 구성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변호인이 와 있으니 이 사람에게 변호를 허가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생각한다. 또 변론 등도 그 요지만을 통역해서 들려주기 때문에 나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람이 봐도 이 재판은 편파적이라는 비방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검찰관이나 변호인의 변론을 들어 보면, 모두 이토가 통감으로서 시행한 시정방침은 완전무결한 것이며 내가 오해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부당하다. 나는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토의 죄상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토가 통감으로서 시행한 시정방침의 대요를 말하겠다.
1905년 5개조 보호조약에 대한 것이다. 이 조약은 황제를 비롯하여 한국국민 모두가 보호를 희망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토는 한국 상하의 신민과 황제의 희망으로 조약을 체결한다고 말하며 일진회(一進會)를 사주하여 그들을 운동원으로 만들고, 황제의 옥새와 총리대신의 부서가 없는 데도 각 대신을 돈으로 속여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이토의 정책에 대해 당시 뜻 있는 사람들은 크게 분개하여 유생 등은 황제에게 상주(上奏)하고 이토에게 건의했다.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 천황의 선전조칙에는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인민들은 신뢰하며 일본과 더불어 동양에 설 것을 희망하고 있었지만, 이토의 정책은 이와 반대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최익현이 그 방책을 냈다가 송병준에 의해 잡혀서 쓰시마에서 구금돼 있던 중 사망했다. 그래서 제2의 의병이 일어났다. 그후에도 방책을 냈지만 이토의 시정방침이 변경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황제의 밀사로 이상설이 헤이그의 평화회의에 가서 호소하기를, 5개조의 조약은 이토가 병력으로 체결한 것이니 만국공법에 따라 처분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그 회의에 물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토는 한밤중에 칼을 뽑아 들고 황제를 협박해서 7개조의 조약을 체결시켜 황제를 폐위시켰고, 일본으로 사죄사(死罪使)를 보내게 되었다.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경성 부근의 상하 인민들은 분개하여 그 중에 할복한 사람도 있었지만, 인민과 군인들은 손에 닿는 대로 무기를 들고 일본 군대와 싸워 '경성의 변'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후 십수 만의 의병이 일어났기 때문에 태황제께서 조칙을 내리셨는데, 나라의 위급존망(危急存亡)에 즈음하여 수수방관하는 것은 국민된 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점점 격분하여 오늘날까지 일본군과 싸우고 있으며 아직도 수습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십만 이상의 한국민이 학살됐다. 그들 모두가 국사에 힘쓰다가 죽었다면 본래 생각대로 된 것이지만, 모두 이토 때문에 학살된 것으로, 심한 사람은 머리를 노끈으로 꿰뚫는 등 사회를 위협하며 잔학무도하게 죽었다. 이 때문에 의병 장교도 적지 않게 전사했다.
이토의 정책이 이와 같이 한 명을 죽이면 열 명, 열 명을 죽이면 백 명의 의병이 일어나는 상황이 되어, 시정방침을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의 보호는 안 되는 동시에 한일간의 전쟁은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토, 그는 영웅이 아니다. 간웅(奸雄)으로 간사한 꾀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 간사한 꾀로 "한국의 개명(開明)은 날로 달로 나아가고 있다"고 신문에 싣게 했다. 또 일본 천황과 일본정부에 "한국은 원만히 다스려 날로 달로 진보하고 있다"고 속이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동포는 모두 그의 죄악을 미워하고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즐기고 싶어하지 않는 자가 없으며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한국민은 십수 년 동안 도탄의 괴로움에 울고 있기 때문에 평화를 희망함은 일본국민보다도 한층 깊은 것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일본의 군인, 상인, 도덕가, 기타 여러 계급의 사람과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토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한일간이 멀어지게 되기 때문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죄인을 처단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일 양국이 더 친밀해지고, 또 평화롭게 다스려지면 나아가서 오대주에도 모범이 돼 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결코 나는 오해하고 죽인 것은 아니다. 나의 목적을 달성할 기회를 얻기 위해 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이토가 그 시정방침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일본 천황이 들었다면 반드시 나를 가상히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 위 발언은 최후 공판에서 안중근이 한 얘기인데 이게 객기로 죽인 사람의 발언이로군요?
2. 살기 위해 일본 천황 만만세를 부르짖었다가 상황이 뜻대로 안가자 자포자기하였다.
루리웹 511336이 근거로 내놓은 문건
'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말하겠다. 나는 일본의 사천만 인민과 한국의 이천만 동포를 위해, 또한 한국 황제폐하와 일본 천황에 충의를 다하기 위해 이번의 거사를 결행한 것이다. '
자 이 문구만 본다면 안중근이 마치 일본천황을 찬양하고 살기 위해서 '대일본 제국 만만세'라고 판단할 수 있는데 그 앞의 문구가 있습니다.
'이번의 거사는 나 일개인을 위해 한 것이 아니고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다. 러.일전쟁에 대한 일본 천황의 선전조칙(宣戰詔勅)에 의하면, 러.일전쟁은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개선했을 때, 한국인은 마치 자국인이 자국이 개선한 것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이토가 통감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의 상하(上下) 인민들을 속여 5개조의 조약이 체결됐다. 이는 일본 천황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민은 모두 통감을 원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어서 또 7개조의 조약을 체결 당함으로 인해 한국은 더욱더 불이익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있어서는 안될 일로, 황제 폐위까지 행해졌다. 그래서 모두 이토 통감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삼년간 도처에서 유세도 하고, 또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각지의 싸움에도 참여했다. 이번의 거사도 한국 독립전쟁의 하나로,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한국을 위해 결행한 것이지 보통의 자객으로서 저지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지금 피고인이 아니라 적군에 의해 포로가 돼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요 문구를 보아도 뭔가가 희한합니다. '분명히 56611336님이 말한 것처럼 일본 천황 만만세로 보이는데요?'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당대 조선의 지식인들과 일본 지식인들, 중국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사상적 한계 아니 19세기의 전 세계 지식인들이 가졌던 한계라고 보셔야합니다.
당시 19세기에서 가장 화두가 되었던 이론은 사회진화론으로 인종간의 매꿀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며 백인이 황인, 흑인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스럽게 여기는 지금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뭐 병 같은 주장이 다 있지?하고 싶을 정도의 주장이지요.
근데 당시 동북아에서는 이걸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왜 심각하게 받아들였냐면 서양 제국의 침탈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이 파도를 막기 위해 각국이 취할 수 있었던 정책이 굉장한 한계성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국, 일본, 한국의 각 지식인들은 머리를 쥐어짜서 하나의 이론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바로 한중일제휴론이었습니다. 언어도 비슷하고, 문화권도 비슷하고, 사상적 배경도 서로 비슷비슷했으니 당연히 서로서로의 힘을 합치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지요.
물론 처음에는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중국이 그 주도권을 잡아야한다는 의견이 대세였지만 중국이 계속해서 허무한 삽질을 하고 결국에는 비교적 근대화가 잘 된 일본이 동맹의 주도권을 잡자는 일본 맹주론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 이론의 선두했던 학자는 누구나 잘 알고있는 후쿠자와 유키치입니다. 이후 일본의 학자들이 관심깊게 보던게 조선의 근대화였고 당시 조선에서 벌어졌던 갑신정변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표명합니다.
근데 이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고 민씨 정권이 장대한 삽질을 계속적으로 하자 일본의 학자들은 굉장히 실망하게 되지요. 이후에 나타났던게 '나는 아시아와는 다르다.'라고 주장하는 탈아론이었고, 이후에 나타난게 대동아 공영론이었고 제국주의로 가는 첫 걸음이 되었지요.
이후 청일전쟁을 통해 일본은 탈아론을 굳히게 됩니다. 청나라는 저 무서운 서구를 상대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을 잡을거라는 어찌보면 오만한 사상이었지요.
러일전쟁이 일어나고나서 조선은 일본의 (겉으로 보기에는) 놀랍도록 성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게되고, '야 일본이 저러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라는 인식에 따라 일본을 지지하게 됩니다. 당대의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에 따라서 서구 코쟁이 vs 동양 멋쟁이로 보는 시선도 유행했고요.
간단하게 말해 당시 안중근이 가졌던 아니 조선의 지식인들, 그리고 청일전쟁 이전의 일본 지식인들이 가졌던 사상은 '일본이 잘되면 우리 조선도 잘 이끌어주겠지'하는 인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걸 현대적 관점에서 본다면 오판으로 보기 쉽습니다만 청일전쟁 이전, 아니 갑신정변 이전까지 일본 지식인들의 바라보았던 조선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고려해본다면 오판을 낼 수 밖에 없었지요. 설마에 당한겁니다.
자 그렇다면 안중근이 해당 발언을 한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셨을거라고 봅니다. 안중근이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한중일 우호론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각국 지도자들이나 지식인들은 이걸 원했으나' 이토 이 죽일 놈이 이걸 다 망치고 있구나. 저 놈 저 죽일 놈이 됩니다. 일본 황실과 이토 히로부미를 따로 놓고 본 것이지요
절대로 56611336이 말한 것처럼 '구차하게 살기 위해서' 한 발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사람은 그냥 씹더군요. 이번에도 아마 씹을겁니다.
그리고 이거는 개인적인 견해가 아닌 논문으로 이미 수차례 연구되어 온겁니다. 당장 구글에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사상만 치더라도 수십건은 나올겁니다. 근데 56611336이 지금까지 가져온 논문이 있던가요?
3. 뤼순 공판에 관한 내용들
어제 좀 문제가 되었던 내용입니다만 56611336이 또다시 이러한 문구를 첨부해주셨더군요.
1. 伊藤 公을 지난달 16일 하얼빈에서 장남 重根이 살해한 사실은 제가 모르는 바입니다. 실제라면 실로 나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2. 한 사람은 학교의 교사가 되고, 한 사람은 법률학교에 다니고 있어 모두 좋은 자식들인데 유독 重根만이 나쁜 사람이 된 것은 어떤 이유인지. 유소년 시기의 성질을 말하라고 신문하시지만, 重根이라고 해서 다른 아이와 다른 데가 없었는데 집을 나간 것이 그와 같이 나쁜 사람이 된 원인입니다.
여기서의 나쁜 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살인을 금하는 천주교 신자인데도 살인을 저질렀던 행위에 대해서 나쁘다고 언급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에 대해서는
'만주에서 이사를 가는데, 마차에다 이삿짐을 잔뜩 싣고 가는데 마적들이 나타났어요.
총을 마구 쏘면서. 그러니까 같이 가던 청년들 수십명이 전부 땅에 엎드려서 꼼짝 못해요. 이 때 그(안중근:필자주)의 어머님이 척 내려오더니 ’이 놈들아, 독립운동한다는 놈들이 이렇게 엎드리기만 하기야? 이렇게 엎드려 있다간 다 죽어‘라고 대성일갈했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벌벌 떠는 마부를 제치고 스스로 말고삐를 촥 쥐더니 ’죽는 한이 있어도 가고 보자‘고 소리를 질렀다죠. 에야 소리 지르며 마차를 몰아 결국 무사했다는 것 아닙니까? 보통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㰡ԭ명가들의 항일회상㰡լ「정화암」편)'
라는 일화가 전해질정도로 독립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이었기 때문이지요. 저 위의 발언도 잘 따지고보면 모호하기 짝이 없는데 뭐가 잘못된 일인지 그걸 조마리아는 명백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럼 너는 왜 천주교 교리 쪽에 더 강조를 두느냐? 저는 어느정도 심증적근거가 있기 때문이지요. 당시 거사를 치르기 전 안중근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빌렘과 안중근의 일화를 든다면
빌렘: 너 잘못했지 짜샤? 천주교에서 그렇게 금하는 살해를 저질러? 빨랑 참회하라잉?
안중근: 더는 참회할게 없는데 뭘 참회하라는 것인지?
라는 대화가 나옵니다. 여기서의 빌렘과 안중근의 대화도 여러모로 신학적 논쟁이 많이 오가는 주제지만 빌렘은 안중근의 죄의 경중을 따지면서 천주교 신자의 살해라는 죄에 다 중을 두고있는데 아마 조마리아도 이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해석은 집어치우더라도 1910년 싱가폴 기사에 실린 조마리아가 보낸 편지로 비추어보아서도 56611336이 말한 것처럼 '대일본제국의 위대하신 이토님을 죽이다니 나쁜 놈' 이 뜻이 아니지요.
대한매일신보 1909년 2월 15일자에서도 미소를 머금고 태연자약,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나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라고 적고있습니다. 이런데 살기위해서 발버둥치다가 자포자기해서 죽었나요? 아니죠.
근데 이렇게 다양한 사례를 들고와도 56611336이는 한글 2007로 번역한 일본 공판 기록만 주구장창 가져오면서 제가 가져온 사례들은 다 왜곡된 거라고 주장할겁니다. 안봐도 뻔해요.
추가: 당시 안중근 공판에서의 일본의 어설픈 모습
'나는 검찰관의 논고를 듣고 나서 검찰관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하얼빈에서 검찰관이 올해로 다섯 살 난 나의 아이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이 네 아버지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는데, 그 아이는 내가 고국을 떠날 때 두 살이었는데 그 후 만난 적도 없는 나의 얼굴을 알고 있을 까닭이 없다. 이 일로만 미루어 봐도 검찰관의 신문이 얼마나 엉성한지, 또 얼마나 사실과 다른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출처
' 안중근 공판 기록 '
' 안중근의 하얼빈 대첩, 평화주의 ' - 이태진
' 안중근의 국제정세 인식과 동양평화론 ' - 서영희
' 안중근이 순국 전에 겪은 내적 시련' - 최재건
' 한국 근현대사 속의 안중근 일가 ' - 박태균
토론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죠..
순수 쪽빨이 거든요,,일본 법정이 조작한 법정 기록만 진짜라고 믿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566은 되도않는 우기기를 시전하겠죠. 고생하셨습니다.
566한테 이런 자세한 글 안써주셔도 되는데...어차피 그새1끼 하나도 안읽고 복붙해서 글 퍼나르는 국정원직원 같은 새1끼라...
그사람 안중근 관련으로 대던 근거들이 가해자측(일본측) 자료 뿐이고 중,러 측 자료는 전혀 제시하지 않더군요. 한심하더이다.
하지만 566은 되도않는 우기기를 시전하겠죠. 고생하셨습니다.
566한테 이런 자세한 글 안써주셔도 되는데...어차피 그새1끼 하나도 안읽고 복붙해서 글 퍼나르는 국정원직원 같은 새1끼라...
토론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죠..
3줄 요약을 해 줘야 그 죄수번호 놈이 읽을꺼 아닙니까?
그사람 안중근 관련으로 대던 근거들이 가해자측(일본측) 자료 뿐이고 중,러 측 자료는 전혀 제시하지 않더군요. 한심하더이다.
순수 쪽빨이 거든요,,일본 법정이 조작한 법정 기록만 진짜라고 믿는 인간입니다.,.
폐기물 같은 글에 비추 버튼 누르고 싶은데 비추버튼이 없네요. 제가 비추버튼이 되겠습니다.
저도 방금 이글의 비추, 아니 논파가 되겠습니다.
조선족이던 친일파던 한글 공부 더 하셔야겠어요.
제가 어제 566 허위사실 유포로 신고해서 글 잘라버렸습니다. ㅋㅋㅋㅋ
잘 하셨습니다,,일제 시대 였으면 독립군 이시네요,,
논파할 자신이 없어서 아예 삭제를 시키고 자랑하다니 보통 멘탈로는 불가능한 자랑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이 어떻게 허위사실 유포이지? 사기꾼인가? 하지만 내가 갤로그에 쓴글은 남아있으니 이것도 신고해서 지우렴 gallog.dcinside.com/dlcjfdnd/264311561454
언제부터 지 맘대로 상상해서 그걸 사실이라고 우기는게 역사적 사실이 되었나? 그런 헛소리를 링크 둘어가서 읽어줄 정도로 시간이 썩어나는 사럼은 없을껄. 딴데에서 무슨 광란을 벌이던 알바 아니고.
566님의 폭발적인 반응에 웃으면서 답글드리겠습니다. 제가 어제 566님 똥 치워서 부들부들 거리셨죠? 네 그리고 님 사기꾼 맞는데 이제 아셨나요? 그리고 님이 디시에 싼 똥을 링크 해주셨는데 안타깝게도 디시는 제 홈그라운드가 아니라서 님 똥을 치울 방법이 없군요. 566님 님이 디시에서 설사를 싸던 피똥을 싸던 상관없는데 그 똥 좀 루리웹으로 안들고 왔으면 좋겠네요. ㅋㅋㅋㅋ 부들부들 잼
너의 궤적// 아니지! 팩트를 들이대면 삭제하는 너가 선동꾼. 불리한 사실은 말하지 않는 일은 선동 사기
루리웹-56611336 //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니 뇌내 망상속에서나 팩트겠지.
566님 또 글 신고해서 삭제하게 빨리 정성스러운 글 써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ㅋㅋㅋㅋ
1차 근거를 보면 안중근은 중앙정치도 모르고 객기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법정에서 천황을 위해 그랬노라고 주장하는데 어디서 확대해석한 걸 가지고 우기는가?
gallog.dcinside.com/dlcjfdnd/210262492320
저거 님이 쓴 것 같은데 님의 근거가 될만한 증거가 없잖아요. 정말 이해를 못하시네. 풀어 써 드릴까요? 당시 안중근이 즐겨보던 대한 매일 신보, 황성 신문, 그 외에도 제국 신문, 블라디 보스크에서 출판되던 대동공보의 을사조약 관련 기사를 보았을 때 심각할 정도의 카더라 소문이 떠도냐 이 말입니다.
1차 근거 즉 공판에서의 안중근이 보고 들었던 정보(주로 을사조약에 관련해서)가 다 카더라였다라는 재판장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적증거가 있냐고요. 지금까지 님이 꺼내든 카드는 주구장창 '공판 근거, 일본 재판장 무조건 옳아, 걔 말은 의심하지 않아도 돼' 이거였잖아요. 제가 지금 님한테 요구하는건 공판 기록이 왜곡이 되었네 안 되었네가 아니라 논문까지 발췌해가면서 그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저 재판장의 개인적 사견이 들어간 의견의 증거물을 가져오라는건데 이걸 여태 못 앟아듣네요. 이러니 상대하는 제 입장이 너무 답답하잖아요.
앞에서 이야기한거 다 필요없고 지금까지 님이 주장한 그대로를 담은 학술저서나 논문 들고 오시면 인정해드리겠습니다.
문 지금부터 27년 전 임오란이 있었음을 알고 있는가. 답 알고 있다. 문 : 그 후 제물포조약이 되었는데 그 중의 1조항에 조선이 일본에 대한 50십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답 : (안중근)조약이 있었던 일은 알고 있지만 50십만원 운운의 일은 모른다. http://db.history.go.kr/id/tcmd_1882_09_16_0010 1882년 09월16일(음) 수신사 박영효·부사 김만식, 일본외무경 井上馨과 회동, 제물포 조약 제4조의 塡補金 50만원 상환기간을 10년 연장. [출전] 고종시대사 2 답 이등(이토 히로부미)을 죽인 것은 인도에 반하는 것으로 믿지 않는다. 이등 때문에 피살된 몇 만인을 대신하여 이등 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요약 : 이토 히로부미에게 죽은 수만명을 대신하여 이토를 암살 문 어떻게 이등이 수만인을 죽였는가. 요약 : 이하동문 답 메이지 유신에 즈음한 변란 청나라, 러시아, 일본 양역에서 수만인의 인명을 잃게 하고 일본의 선제를 독살하고 통감으로 한국에 와서부터는 수만의 인명을 죽였었다. 문 어떻게 선제(메이지 황제)를 독살한 일을 아는가. 답 서명은 잊었지만 일본인이 만든 서적에 기재되어 있었다. 요약 : 나도 잘 모른다. 문 나라가 있으면 전쟁은 피치 못할 경우에서 전쟁이 있고 인명을 잃음은 당연한 일이며 전쟁은 이등 한 사람의 소위라고 말할 수 없는게 아닌가. 요약 : 그게 어떻게 이토 탓인가? 답 그것은 그러하나 청일,러일전쟁은 한국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일으켰던 것이다. 문 한국인으로서 피살되었다고 하는 것은 폭도를 처형한데 불과한 것으로 잘못 폭도로 간주되어 피살된 자에 대해서는 사실이 발견된 후 금품을 주어 유족을 두터이 위로하였고 멋대로 선량한 백성을 죽인 일은 없는데 여하한가. 요약 폭도를 토벌했을뿐이고 오해로 죽인 사람은 위로금을 줬다.
답 이등이 한국을 위해 인민을 죽였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이등을 죽인 것도 한국을 위해서며 결국은 동일한 수단에서 나온 것이다. 요약 이토가 한국을 위해 사람죽인건 나도 안다. 그래서 나도 한국을 위해서 죽였다. 문 한국을 위해서 라는 생각에서 나온 점은 이등과 같으나 이등을 죽인 것이 한국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의 완고한 생각에서 나온 것으로 사실의 관찰을 잘 못한 곧 무지 천박한 까닭일 것이다. 요약 한국을 팔아먹지마라. 답 사람에 따라서는 생각을 달리 하고 수단을 따로 한다. 나는 이 수단을 취하는 것이 동양의 평화를 얻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등이 수단이 맞지 않는다 하여 폭도를 죽였으나 내가 한국을 위해 이등의 소위가 수단에 맞지 않는다 하여 죽인 것도 결국 동일하다. 요약 나도 한국 위한거라니까? 문 정부의 행위와 일개인의 행위와는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요약 너 개인이 그런 일하면 안된다. 답 한국 현시의 제도로는 과연 완전한 정부의 행동이라고 하고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결국 이등의 장력으로 어떻게라도 되는 것으로 곧 이등 한 사람이 한 것이나 동일하다. 요약 : 이토가 한거나 정부가 한거나 그게 그거지. 나는 3년 이전부터 국민의 진의를 성명하기 위해 만약 자주의 전함과 병력이 있으면 이등을 부근 해상에서 영격할 희망으로 있었다. 그러나 여사한 일은 할 수 없는 일이므로 지금까지 눈물을 삼키고 있었는데 이번에 겨우 그 목적을 달한 것으로 나의 이번 행위도 나 일개의 생각 뿐만 아니라 곧 한국 2천여만 동포의 대표로 결행한 것이다. 문 일국의 정치를 함에 당하여서는 반대자가 있음을 면치 못하는 것이나 당국자는 자기의 경험과 지식에 기초를 두고 국가의 리해득실에 따라 일부의 의향에 반하여도 외교조약을 체결하고 내정을 개정하는 일이 있다. 그대가 자기의 의견에 맞지 않는다 하여 반대하고 과격한 처치를 취함은 의사가 천박 편협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금일도 아직 깨닫지 못하는가. 요약 : 정치를 하면서 모든 사람 동의는 받을수없는데 니 혼자서 그렇게 하나
답 나는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확신하고 있다. 이등은 정부를 압박하여 하였으므로 정부 본래의 진의가 아니고 보호협약도 동양이다. 문 1883년 8월8일 지금부터 26년 전에 프랑스가 베트남 정부와의 사이에 보호조약을 체결 시킬 때의 경우는 상당히 엄한 방침을 취하여 24시간내에 회답하라, 승낙하지 않을 때는 안남의 수도 순화부를 파괴한다고 말했고 1881년 5월 지금부터 28년 전에 프랑스가 아불리가의 듀니스국에 대해 보호조약을 체결할 때는 오후4시에 조약의 조건을 말하고 그날밤 9시까지 그대로 승낙하지 않으면 동국의 도부를 병력으로 탈취하겠다고 말했다. 일한보호조약은 다소 이해득실을 말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고 해도 저와 같이 가엄하지는 않았고 취사선택의 여유를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37년에 공수동맹이 되어 일본의 충언을 받아 들인다는 약속에 따라 한국도 그 제안을 용납한 것으로 폭행 협박 때문에 불득이 협약한 것이 아닌 일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대는 자기의 생각만을 정당하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고집하고 있음은 잘못이 아닌가. 요약 : 프랑스는 폭력적으로 했는데 일본은 평화롭게 했다. 답 일한조약도 결코 평온하게 체결된 것이 아니다. 병력으로 협박하고 체결된 것이다. 문 그대는 이와 같은 상황을 실제 목격하고 말하는가. 답 보지는 않았으나 실제의 상황은 누구나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 단지 항간에서 전하는 풍설만에 의한다면 사실의 유무는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답 풍설만을 믿고 또는 신문에 의해서만 아는 것이 아니다. 학교의 역사교과서에도 게재되어 있어 숨김 없는 사실이다. 문 그대는 어떤 신문을 보았는가. 답 여러 종류를 보고 있었다. 문 어떤 신문의 기사를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가. 답 신문은 사람에 따라 그 선택을 달리 하고 있다. 실제 한국 인민은 러일전쟁 전까지는 호개의 친우로 일본국을 좋아했고 한국의 행복으로 믿고 있었다. 우리들 따위도 결코 배일사상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러일전쟁 후 일본이 러시아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분요가 생겼으므로 이등은 그 대신 한국을 탈취해버리자고 주장하고 그 결과 한국에다 그 방침을 채용하게 되었다. 금일 내가 이와 같이 몸을 그르치게 된 것도 다 이등의 소위에 기인하는 것이다. 요약 : 안중근은 신문 카더라만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중략) 문 신문을 사회의 목탁으로 함은 신문의 이상이다. 세상의 문화가 진보함에 따라 이 역에 달하는 일도 있으나 일본 신문이 비롯한지 30여년 아직도 이 이상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일본 뿐만 아니라 3,4백년 이래 없다. 서양신문 특히 런던타임즈 같은 것도 사실과 틀림이 있어 세간을 미혹케 하는 일이 있다. 한국에 신문지사업은 있으나 작금의 발달로 극히 유치한 시대에 있어 그 틀림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여사한 것을 정실착오가 없는 것으로 함은 과신이 아닌가. 답 세계의 대신문인 런던타임즈 같은 것에도 틀림이 없다고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점은 알고 있지만 금일 한국인이 신문을 믿음은 곧 일본이 신문을 믿어야 할 것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금일 발행한 신문은 믿고 명일 발행한 것은 믿지 말라고 하는 따위는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문 이제까지 설명해 왔으나 그래도 불명인 듯한데 잘 숙고하면 좋을 것이다. 답 알았다. 요약 : 안중근, 너는 신문 카더라만 봤는데 앞으로 그러지마라. 안중근 : 응, 미안.
논문말고 1차 자료는 안되나?
하아.. 저기 런던 타임즈가 왜 언급이 되시는지는 아세요?
쪽발이 논문 찾느라고.. 뭐 수고는 했어요,,
사진검/ 지금 저분 논문 못 들고와요. 왜냐면 자기 주장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연구결과나 논문이 없거든요. 학계에서 저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받아줄리가 있겠습니까.
근거라고 들고나온 1차 자료도 저거 자세히 뜯어보면 재판장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제가 위에서 대한 매일 신보, 황성 신문, 하다못해 제국신보에서 을사조약 관련 오보가 났는지 들고 오라는데 주구장창 1차 공판만 들고 오잖아요. 까놓고 말해서 56611336님이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밑천이 바닥나는겁니다.
물론 56611336님이 찾는다면 얘기는 달라지고 또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겠지만 현재로서는 바닥이 난 상황이네요.
daswahres//아 맞다,,제가 실수 했네요,, 논문이 아니쪽발이들이 안중근 의사의 정당성을 없애기 위한 허위자료죠,, 역사적 가치도 없는 허위자료를 진짜라고 믿는 꼴 보니 한심 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쯧쯧
논문 가져오세요. 저도 논문 가져오고 출처 다 밝혔습니다.
가해자의 입장은 일단 철저하게 배제되는게 현실인데. 가해자는 자기죄값을 덜기위해서 거짓을 말하거나 불리한 사실은 은폐엄폐조작하는게 일반시되기때문에 알리바이가 성립되지않으면 가해자측의 증언은 거짓증언이되는거임. 100%완벽한 진실이 밝혀지면 좋겟지만 덜진실에가까운것과 조금더 진실에 가까운것이존재하면 당연히 조금더 더진실에가까운것이 유효함. 이세상에 all or nothing같은거는 거의존재하지않기때문에 증명되지못한 가설은 거짓이다 라는 논리의기본은 알아보길. 가설을 증명하는것은 주장을 하는자의 의무임. 일본이 얼마나 거짓말쟁이이고 허위사실을 잘날조하는지는 말할것도없음. 난징대학살도 위안부도 10년전만해도 없는일마냥 혹은 축소은폐하기 바빳음.
이건 비공개 공판조서이다.
증언 같은것도 얼마든지 지어낼수있기때문에 녹음이나 CCTV가 중요한거임. 육하원칙에따라서 철저하게 증명된 증언아니면 막말로 내가 안중근 너는 일본군위 이렇게해서 그럴듯한 증언하나만들어내는건 아무나다할수있음 그렇기때문에 증거가되지못함. 소설과 증언의 차이는 알리바이가 성립되는건 기본이고 "얼마나 객관적인 상황에서 증언되었나" 임. 일제의 증언은 거의 망언이라고보는게좋음
그렇긴 한데 루리웹-56611336 에겐 그 상식이 안먹히죠,, 무조건 쪽빨이 만세 쪽발이들이 만든 허위자료가 진실이야 이러고 있으니..
다스와흐레스// 문 신문을 사회의 목탁으로 함은 신문의 이상이다. 세상의 문화가 진보함에 따라 이 역에 달하는 일도 있으나 일본 신문이 비롯한지 30여년 아직도 이 이상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일본 뿐만 아니라 3,4백년 이래 없다. 서양신문 특히 런던타임즈 같은 것도 사실과 틀림이 있어 세간을 미혹케 하는 일이 있다. 한국에 신문지사업은 있으나 작금의 발달로 극히 유치한 시대에 있어 그 틀림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여사한 것을 정실착오가 없는 것으로 함은 과신이 아닌가. 답 세계의 대신문인 런던타임즈 같은 것에도 틀림이 없다고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점은 알고 있지만 금일 한국인이 신문을 믿음은 곧 일본이 신문을 믿어야 할 것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금일 발행한 신문은 믿고 명일 발행한 것은 믿지 말라고 하는 따위는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문 이제까지 설명해 왔으나 그래도 불명인 듯한데 잘 숙고하면 좋을 것이다. 답 알았다. 요약 : 안중근, 너는 신문 카더라만 봤는데 앞으로 그러지마라. 안중근 : 응, 미안. 답변 : 안중근은 자기가 신문 카더라만 보고 왔다는게 잘못되었다고 인정한다.
역시 예상대로 1차 공판 자료만 주구장창 가져오는군요. 슬슬 밑천 다 떨어지시나 봅니다. '서양신문 특히 런던타임즈 같은 것도 사실과 틀림이 있어 세간을 미혹케 하는 일이 있다.' 이 말이 일본인한테서 왜 나왔는지 아세요? 자기한테 불리한걸 모르면서도 카드 계속 꺼내는게 안쓰럽습니다.
첫번째로 너님 공판 해석은 아주 엉망진창이고요. 그 다음에 제가 너님 공판 해석을 지지해줄 논문이나 학술자료 가져오거나 저 재판장의 개인적인 사견을 지지하는 신문기사 들고오라 그랬는데 아직도 들고 오지를 못하시고 저기서 언급된 런던타임즈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입니다.
이런 엉망진창 해석이 받아들여지는 커뮤니티는 디시 역갤이 유일할 겁니다. 다음 토탈워, 다음 유로파 등 다른 커뮤니티에서 이런 해석 들고와보세요. 받아들여지나.
루리웹-56611336 // 내가 이전에 너님 대면했을때 이야기 했던거지만 너님은 자료쓰는 논리자체가 글러먹었어요. 너님이 내세우고있는 '당시기록은 모두 진실이다'라는 대전제를 내가 친절히 논파시켜줬는데도 아직도 그거들고 이 지랄하는거 보면 애잔하냐.
루리웹-56611336 //이분 자료 요약-쪽발이 만세 쪽발이가 진리..쯧쯧
사견이 아니라 안중근 스스로도 신문 카더라만 본걸 반성
관동대지진사건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타고 일본인을 죽기고 재산을빼앗는다고 언론이앞장서서 거짓을말해서 관동대학살 사건을 만들어낸 식민정부의 꼭두각시언론과 그와한통속인 일제정부의 자료는 일단 정황상 증거가될수없다니까요???우리나라 정식정부는 그당시에는 김구선생이만든 임시정부일뿐이고 일제는 그냥 강탈자일뿐이라니...나찌전범을 재판할때 나찌관계자들과 어용언론이 말한 자료와 근거 증언을 토대로할까요? ㅋㅋ 가해자의 증언은 대부분 위증이나 은폐축소의 우려가크기때문에 고려대상도안됩니다. 멍청한님아.가해자들은 자기가 ㅁㅁ피의자라고해도 피해자가 먼저 유혹했다느니 자기를꼬셧다느니 거짓말만 늘어놓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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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이 청국에 여순(뤼순)을 돌려주고 개방하여 한국, 청국, 일본 3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하고 이 곳에 3국이 대표를 파견하여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고 세계에 공표한다. 또한 3국의 회원들을 모집하여 회원 일당 회비로 1원씩을 모금하는 것으로 재정을 충당하면 수억 명의 3국 인민이 가입할 것이다. (뤼순에는 평화회의체 본부를 두고 각국에 지부를 두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뤼순을 평화의 근거지로 삼는 것이 결과적으로 일본에게 오히려 이익을 주는 것이 되고 세계는 일본의 영단에 놀랄 것이다. 또한 뤼순을 돌려주는 것에 불안해 할 것을 감안하여 일본 군함 5, 6척을 상주시켜 뤼순항이 일본 영향권에 이상이 없다는 점도 지적) 2. 3국이 공동으로 은행을 설립하고 3국이 공용하는 화폐를 발행한다. 3. 3국 공동의 군단을 편성하고, 이들에게 2개국 이상의 어학을 가르치면 서로 우방으로 생각하게 되고 형제의 관념도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일본이 한다면 "세계는 이에 감복하여 일본을 존경하고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며 수출도 늘고 나라 재정도 풍부해져서 태산과 같이 나라가 안정될 것) 4. 한국, 청국 두 나라는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의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요약 : 한일합방
루리웹-56611336/쪽빨이 인증 하는구만,, 안중근 의사가 일본 지도아래 발전,,하자고 했다니 에라이 미친 쪽빨이 놈아,,
다스와흐레스// 판사 : 신문을 사회의 목탁으로 함은 신문의 이상이다. 세상의 문화가 진보함에 따라 이 역에 달하는 일도 있으나 일본 신문이 비롯한지 30여년 아직도 이 이상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일본 뿐만 아니라 3,4백년 이래 없다. 서양신문 특히 런던타임즈 같은 것도 사실과 틀림이 있어 세간을 미혹케 하는 일이 있다. 한국에 신문지사업은 있으나 작금의 발달로 극히 유치한 시대에 있어 그 틀림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여사한 것을 정실착오가 없는 것으로 함은 과신이 아닌가. 안중근 : 세계의 대신문인 런던타임즈 같은 것에도 틀림이 없다고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점은 알고 있지만 금일 한국인이 신문을 믿음은 곧 일본이 신문을 믿어야 할 것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금일 발행한 신문은 믿고 명일 발행한 것은 믿지 말라고 하는 따위는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재판장 : 이제까지 설명해 왔으나 그래도 불명인 듯한데 잘 숙고하면 좋을 것이다. 안중근 : 알았다. 문제점 : 안중근은 신문의 카더라만 봤는데 앞으로는 카더라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State=2&mTree=0&clsName=&searchType=a&keyword=%EC%9D%84%EC%82%AC%EC%A1%B0%EC%95%BD 고종 46권, 42년(1905 을사 / 대한 광무(光武) 9년) 11월 17일(양력) 1번째기사 한일 협상 조약을 체결하다 한일 협상 조약(韓日協商條約)이 체결되었다. 〈한일 협상 조약(韓日協商條約)〉 일본국 정부(日本國政府)와 한국 정부(韓國政府)는 두 제국(帝國)을 결합하는 이해공통주의(利害共通主義)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국이 실지로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때까지 이 목적으로 아래에 열거한 조관(條款)을 약정한다. 제1조 일본국 정부는 동경(東京)에 있는 외무성(外務省)을 통하여 금후 한국의 외국과의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監理指揮)할 수 있고 일본국의 외교대표자와 영사(領事)는 외국에 있는 한국의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전히 하는 책임을 지며 한국 정부는 이후부터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을 기약한다.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서 한국 황제 폐하의 궐하(闕下)에 1명의 통감(統監)을 두되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하여 경성(京城)에 주재하면서 직접 한국 황제 폐하를 궁중에 알현하는 권리를 가진다. 일본국 정부는 또 한국의 각 개항장과 기타 일본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곳에 이사관(理事官)을 두는 권리를 가지되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 밑에 종래의 재한국일본영사(在韓國日本領事)에게 속하던 일체 직권(職權)을 집행하고 아울러 본 협약의 조관을 완전히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체 사무를 장리(掌理)할 수 있다. 제4조 일본국과 한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의 조관에 저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 그 효력이 계속되는 것으로 한다. 제5조 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함을 보증한다. 이상의 증거로써 아래의 사람들은 각기 자기 나라 정부에서 상당(相當)한 위임을 받아 본 협약에 기명(記名) 조인(調印)한다. 광무(光武) 9년 11월 17일 외부 대신(外部大臣) 박제순(朴齊純) 명치(明治) 38년 11월 17일 특명전권공사(特命全權公使) 하야시 곤노스께〔林權助〕 【원본】 50책 46권 27장 A면 【영인본】 3책 400면 【분류】 *외교-일본(日本) / *왕실-종사(宗社)
조약문 가져와서 저보고 어쩌라는겁니까-_-;;
한일 협상조약이랑 안중근이랑 무슨상관입니까..ㅋㅋ????
http://www.mediagaon.or.kr/jsp/sch/mnews/gonews/goMain.jsp?go_code=C 황성신문 > 1905년 > 11월 > 18일 1면pdf 파일 2면pdf 파일 3면pdf 파일 4면pdf 파일 매일발간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사고 제이천일백호 01면 01단 궁정록사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관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1단 서임급사령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관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1단 법률제오호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관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2단 각학교의 폐쇄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외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2단 아국조선부원의 면관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외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2단 교주철병의 협상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외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2단 일청협상과 아공사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외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2단 견청대사의 수원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외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3단 장관의 승임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외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3단 일미의 판권조약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외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3단 모집계화의 변개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외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3단 재고설명 원문보기( 1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1면 03단 사유영어생지악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논설 제이천일백호 02면 01단 일아의정서삼건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2단 사령관체임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2단 미사청(폐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2단 봉박경산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3단 청잉한감리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3단 일병순유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3단 [ 전체 55건 / 21~30 ]
숙고해봐라 - 알았다를 이렇게 해석할수도 있구나. 대다나다 ㅋㅋ
사세가민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3단 의인북어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3단 련산일병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4단 향산사간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4단 태학존성회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4단 채합엄사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4단 한성각소학교륜牃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2면 04단 [기서]일진회이원식(속) 원문보기( 2면 ) [황성신문] 19051118 투고 제이천일백호 02면 05단 철도감도연설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잡보 제이천일백호 03면 01단 본교회에셔 일어학교를 기설하야 속성법으로 륙삭졸업하게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3면 03단 본회야학교를 수하동소학교로 이설하고 래이십일월요브터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3면 03단 본인로친이 거을미분이은화일천량세거북서대안동사십일통륙호민영헌가라가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3면 03단 주식회사공립한성은행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3면 04단 애급근세사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3면 04단 셔실광고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3면 05단 본교에셔 학도를 증모하오니 원학하시이는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3면 05단 본인장질병두년소몰각이거구월의 상경의경거정종륜이 백반유인야 원문보기( 3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3면 05단 특별광고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1단 민사상사소송대리와 형사변호급감정고문과 제문안기초등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1단 금일천원야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1단 생이 불재지질로 공부도업나옛 제선생세지술을 평생흡모터니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1단 평안북도의주와 부근각군에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사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2단 신하광고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2단 대동기년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2단 대한지지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3단 계자본호유려송국재래려송지권연려송초수종도표품해애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3단 입치충치기술소개시광고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3단 특별고백 원문보기(4면 )[황성신문] 19051118 사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3단 스도ㅣ 신물도착광고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4단 상품당사향병발매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4단 본인제삼자룡두아명틈부 년금십구세독서공부폐지여부랑잡류지유인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4단 대동력사발수광고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4단 회중시계|사진기계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5단 본인신발명 별고약과 신보환은 대소악종과 당창제질에 극히 신효고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5단 인항륜선출범광고 원문보기( 4면 ) [황성신문] 19051118 광고 제이천일백호 04면 05단
제가 원한건 이게 아니잖아요. 이건 증거 자료도 아니라는거 뻔히 아시면서.
11월 17일에 조약 체결했는데 18일에 조약문에 관해서 코빼기도 안 보이더라 이 말하고 싶어서 가져오셨어요?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 대한 매일 신보 1905년 11월 21일하고 11월 27일자 찾아보세요. 거기 나와있을겁니다. 갑자기 11월 18일은 왜 넣은겁니까?
나오긴 나오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안중근 자신이 신문 카더라를 본건 사실. 그러니까 중앙정치를 전혀 모르고 정치인을 암살한건 사실. 안중근 : 세계의 대신문인 런던타임즈 같은 것에도 틀림이 없다고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점은 알고 있지만 금일 한국인이 신문을 믿음은 곧 일본이 신문을 믿어야 할 것으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금일 발행한 신문은 믿고 명일 발행한 것은 믿지 말라고 하는 따위는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재판장 : 이제까지 설명해 왔으나 그래도 불명인 듯한데 잘 숙고하면 좋을 것이다. 안중근 : 알았다.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152319&q=%EC%88%99%EA%B3%A0 숙고 어려운 문제나 일 따위를 곰곰이 잘 생각함.
그 신문 카더라가 진짜 신문 카더라인지 증명하라고요. 증명 못하면 계속 쳇바퀴 굴리는거고요. 그럼 여기서끊겠습니다 전 할 말 다했어요. 런던타임즈는 을사조약에 대해서 비판적인 논조를 실은 신문이고, 지금 저 재판장의 논조는 아전인수입니다. 자 이걸로 마칩시다. 계속해도 시간 낭비예요.
daswahres (daswa****) 그래봐야 했던말 또 가지고와요 ㅋㅋㅋ 단골임
haken45/ 다시 가져오면 진짜 지긋지긋하네요. 그래도 56611336이 이번 토론으로 깨달은 바가 있어서 당분간은 토론 게시판이 조용해 질거라는 자그마한 희망 가져봅니다.
하켄 // 했던말 또 가지고와요 ㅋㅋㅋ 단골임 답변 : 이미 답은 정해졌는데 당연히 일관적으로 말해야죠. 천안함 사건이 북의 소행이 아니라고 우기면 북의 소행이라는 증거를 일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스와흐레스// 문 그대는 어떤 신문을 보았는가. 답 여러 종류를 보고 있었다. 요약 : 안중근도 어떤 신문인지 정확히 답변안함 답 명치유신에 즈음한 변란 청나라, 러시아, 일본 양역에서 수만인의 인명을 잃게 하고 일본의 선제를 독살하고 통감으로 한국에 와서부터는 수만의 인명을 죽였었다. 문 어떻게 선제를 독살한 일을 아는가. 답 서명은 잊었지만 일본인이 만든 서적에 기재되어 있었다. 답변 : 자기도 책 제목을 잊어버림.
너님이 이전에 괜히 답정너라는 소릴 들은게 아니지. 우기는건 지면서 그걸 다른사람한테 뒤집어 씌우는 꼴이란 ㅉㅉㅉㅉㅉ.
실제 안중근 공판기에 있다.
ㅋㅋㅋ 말돌리는 꼬라지 봐라. 내가 지적한 부분이 공판기에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게 아닐텐데? 그리고 '과거기록은 다 믿어줘야하고 진실이다'라는 대전제는 내가 이전에 친절히 논파까지 시켜줘는데 또 들고 나오네? 너님은 왜 자꾸 논파당한걸 다른사람들한테 휘두루고 지랄임? 우기면 먹힐줄 아냐?
그냥 쪽빨이 만세라니까요,,
황성신문이 일제통치와 2차세계대전기간에 한짓거리. 1. 대부분 조선인들이 일제수탈에 힘겨워했지만 보도하지않음. 2.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인들에게는 축복이라는점을 거짓보도함. 3. 위안부 물자수탈을 자발적이고 당연한것으로 선전함. 4. 조선인은 열등한민족이고 일본의 지배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계속주입함. 이것만 봐도 황성신문은 언론이아니라 식민정부의 나팔수인걸 알수있는데 그걸 증거라고채택하다니... 당시에 동아일보가 손기정선수 일장기하나지웠다고 강제폐쇄당하고 일제의 부정적인 묘사한 신문들은 폐쇠되고 잡혀가던시절의 황당무계한 야만의 시절에 일본정부가 인정한 황성신문과 입만열먼 거짓말만 하던 일본정부의 공판기록이 증거가되다니.
황성 신문은 1910년에 폐간된 신문. 그러니까 한일합방때 폐지 http://www.mediagaon.or.kr/jsp/sch/mnews/gonews/goMain.jsp?go_code=C
의사자 이전에 일단 안중근은 살인자 아닌가요? 단순히 말하면 파키스탄에서는 빈 라덴이 의사자지만 다른 나라 미국에서는 태러리스트 아닌가요? 안중근의 국내선 위인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보면 태러리스트 살인범인데. 살인은 안 좋은거죠. 제국주의 일본을 욕하면서 똑 같이 칼을 드는건 안 좋다고 봅니다. 3.1 운동이 멋있고 아름다운 행동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