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멸망.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 단어는 그 어떤 예고나 전조조차 없이 불쑥 찾아왔다.
그 누구도 본적없는 괴상한 곤충떼와 함께 찾아온 치사율이 90%가 넘는 공기전염 형태의 정체불명의 신형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인류의 90%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너무나도 빠르게 지구의 모든 것은 하나 둘 정지해갔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살아남았을 그 순간. 정지되었던 지구의 모든 것들은 다시 살아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주라는 이름의 형태로.........
죽음을 맞이한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의 단말마를 울음소리처럼 내며 꽈배기처럼 사지를 뒤틀은 질병의 희생자들은 살아있는 존재들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독한 고열로 익어 터져버린 눈대신 극대화된 청각과 후각으로 인간의 숨결. 땀냄새 그 하나하나를 쫓아 끝까지 추적해오는 그들앞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하나 둘 갈기갈기 찢겨 사라져갔다.
그렇게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리기 직전, 수원의 한 고등학교를 거점으로 삼고, 가까스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현수의 일행은 너무나 우연히도 발견하고 만 것이었다.
도로에서 괴물들에게 쫓기던 남자가 결국 궁지에 다다르자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고 권총으로 자살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놈들은 남자의 시체를 달려들어 조각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러운 무언가가 있다는 듯 주위를 빙빙 멤돌더니 대략 2-30분이 지나서야 하나 둘 다가와 남자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오대식과 윤현수는 각자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한 남자의 죽음으로부터 우연히 발견한 산물.
그것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 담배였다.
"시발 그만좀 쫓아와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담배는 놈들을 물리쳐주는 무기는 아니었다. 그저 청각과 후각으로 쫓는 사냥꾼들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지독한 악취의 도구 정도였다.
지금도 녀석들은 현수로부터 4-50미터 거리를 유지한채 단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살금 살금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차라리 좀비처럼 우어거리던가... 이것들은 울음소리부터 재수가 없어."
현수는 녀석들과 거리를 더 벌릴 생각으로 담배갑 하나를 거꾸로 뒤집었다.
지금까지 사용한 담배는 총 다섯가치. 현수는 남은 15가치중에 5가치 정도를 더 꺼내서 전부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것을 한꺼번에 불을 붙인 후 입으로 쭈욱 빨고선 자신의 주위에 원형으로 걸쳐서 주욱 둘러놓았다.
현수의 주위를 담배로 둘러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벽을 만듬과 동시에 현수 자신은 담배연기의 중심에 있음으로써 놈들로부터 아예 존재를 감춘다.
한번에 사용하는 담배의 양이 많고, 담배의 가운데에 있어서 공기가 매우 안좋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가지 확실한 장점은 있었다.
온 몸에 담배냄새가 배겨서 최소한 3-40분동안은 놈들은 얼씬도 못한다는 점.
그리고 주위의 담배가 저절로 연소되는 5분 정도는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현수는 처음의 전력질주로 상당히 지쳐있었다.
달려온 거리는 비록 400미터 남짓한 거리였지만, 이리저리 깨진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으로 결코 달리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고 게다가 꾸준한 흡연으로 인해 폐활량도 상당히 좋지 못한 편이었다.
'출발할 때가 4시반. 지금이 거의 다섯시... 해가 뜨기전까지는 한시간남았는데... 아직 목적지까지는 1/3도 못갔어. 경사났네. 경사났어.'
교대하기전 영진이 충고했던 오늘은 특별히 상태가 심각하다는 말을 깊게 새겨듣지 않은게 문제였다.
처음 쫓아오던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사라지긴 했지만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의 수는 어림잡아도 세자리수에 가까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께 트럭타고 여기온 멍청이들 때문에 불어난거 같은데...'
원래 이 동네의 괴물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한국의 경우 질병의 근원지가 서울쪽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수원에 살던 많은 사람들도 짐을 꾸려 남쪽으로 피신을 했고 그 와중에 죽었다.
남아있던 환자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고 남아있던 면역자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저께 새벽.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두세대의 트럭이 대로변을 따라 요란하게 달려오더니 결국 녀석들에게 둘러쌓여 뒤집히고 구르고 난리가 나고 말았었다.
총성이 요란하게 울리고, 소리에 놀란 녀석들은 이곳저곳에서 더 튀어나오고.. 결국 트럭에서 급히 내린 몇몇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디론가 달려간 듯 했지만, 현수를 비롯한 일행은 그저 그 모습을 커튼 너머로 지켜보기만 할 뿐 뾰족한 방법은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그 트럭들이 몹몰이를 했는지 이전의 몇배나 되는 수의 녀석들이 학교 근처에 바글바글 서식하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나랑 영진이가 이 지랄을 하고 있는거고 말이지...'
현수의 첫번째 임무는 괴물들의 주의를 끌어 최대한 멀리 이끌고 돌아오는 것.
'그렇지만 두번째는 무리겠네...'
현수는 두번째 임무를 생각하곤 고개를 저었다.
영진이는 현수보다 발이 더 빠른 청년이었다. 그런 영진이 담배 세갑을 두시간동안 쓰고도 못간 상황이라면 반대편인 이쪽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 일행은 10명도 안되고 놈들이 불어나기전에 근처 편의점도 털어놧으니 먹을게 부족한 편은 아니야. 다소 춥긴하겠지만 여길 강행돌파하다간 가기도전에 우리가 다죽겠지.'
생각을 마친 현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에서 여기까지 온거리는 대략 1키로 정도. 걸린시간은 한시간 남짓.
앞으로도 그정도 시간이 소요된다는걸 생각하면 이제 슬슬 움직여야만 할 시간이 온 것이다.
해가 뜨기전엔 돌아가야만 했다.
낮이된 이후엔 놈들보다 더욱 끔찍한 존재가 현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거센 바람과 함께 현수의 뺨을 촉촉하게 적시는 것이 있었다.
바람과 함께 흩날리기 시작한 차갑고 하얀 것. 그것은 바로 눈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시발!!'
눈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현수는 다급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바닥에 차곡 차곡 쌓이기 시작했고, 현수가 뿌려놓은 담배를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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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1일전까지 완결은 못내겠습니다.
탈락하겠네요 ㅎㅎㅎㅎ
*주석
-오대식과 윤현수는 담배 이외에도 많은 것으로 실험을 했는데, 냄새를 심하게 풍기는 것들은 뭐든지 동원을 해보았다.
인형에 향수를 잔뜩 뿌려 던져보기도 했고-인형은 땅에 착지한 순간 걸레가 되었다. 향수는 기각되었다- 김치나 젓갈류도 별 효과가 없었다.
그외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냄새가 나는 부분들을 동원해 보았으나 결국 담배만한게 없었다.
담배는 맨솔이든 무엇이든 종류 불문하고 동일한 효과를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