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하다. 요즘 따라 이 말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깜깜하다란 뜻은 까맣게 어둡다. 그리고 희망이 없다. 또 앞날을 전혀 모르는 상태를 깜깜하다라고 한다. 그래 지금 내 상황처럼.
나는 지금 쉴 새 없이 달리고 있다. 눈앞에는 양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가로등이 빛을 내려 땅거미를 쫓아내고 있었다.
내게 전혀 도움을 줄 의사는 없어 보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햇빛을 내리쬐고 있을 것 같은 시내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분 정도. 이렇게 숨이 턱까지 차오를 달려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지금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3분 남았어요. 과연 당신은 할 수 있을까요? 기대되네요.]
“케헥…, 조금만, 허억. 봐줄 수 없을까?…. 흐읍. 이제 거의 다 와 가는데.”
[이제 다 왔으니까. 3분이면 충분하실 테죠. 안 그런가요? 으음…. 뭐 안 된다면 오히려 제가 더 기쁘거든요.]
나는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산한 웃음소리를 덮어버리고 다시 달렸다.
폐가 터질 것 같고 심장은 입 밖으로 토해낼 것 같았다. 나는 그다지 운동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폐활량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휴대폰에서 나온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지금 10분가량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지금 이렇게 개가 되도록 고생하면 내일이 편안하고 안락한 일요일을 보낼 수 있으니까. 잠시의 고통을 희생해서 내일의 행복을 만든다. 며칠 전에 바꾼 내 인생의 모토다. 노 페인 노 게인.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굉장히 잘 만든 말이다. 지금 내 절실한 상황을 단숨에 표현하는 이국의 선조가 지은 속담이다.
삐익-!
어디선가 거센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마지막 1분이라는 신호다. 달려야한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 5분가량 되는 거리를 달리고 또 달렸지만 시내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저 멀리서 한 줄기의 빛만 보일뿐이다. 내 새끼손가락의 손톱의 때만도 못한 빛이 저 멀리서 보이고 있다. 이대로 달린다면 도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악!”
목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짜고 묘한 맛이 입을 감돌았다. 공포스럽고 두려운 1분의 시간에 나는 달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처럼 지나가는 가로등도 아예 없어지고 이제부터는 어둠의 구간이다. 한 줄기의 빛조차 내리지 않는 시내로 통하는 기다란 거리였다.
여기서 부터가 시작이었다.
삐익-!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비명을 질렀다. 이제 50초 정도 남았다는 신호겠지. 어제도 엊그제도 일주일 전에도 들어본 최악의 신호다. 차라리 독방에다 가둬놓고 혼자서 불을 끈 상태로 촉감도 느껴지는 4D의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 나을 정도다. 실제로 경험했지만 말이다. 대신 4D가 아니라 어떤 미소녀를 옆에 끼고. 미소녀면 뭐하나 그게 더 최저였으니까. 다시 끔 생각나는 기억에 온 몸에 소름이 끼친다. 더더욱 생생해지는 기억에 다리에 조금 더 힘을 실었지만 이제는 다리도 한계였는지 나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어머, 이제 한계인가요? 안타까워요. 정말로.]
“제가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깝네요. 밝은 햇빛이 내리고 있는 곳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정말이지.”
삐익-!
그녀는 내 앞에서 나타났다. 방금까지만 해도 휴대폰으로만 들리던 그녀의 음성이 내 위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주저앉아 땅에 박혔던 시선에 들어온 것은 파란색의 밝은 계통의 운동화의 코였다.
“40초 남았는데. 더 안 뛰실 건가요?”
“허억…허억. 켁켁. 네가, 한계란 걸, 더 잘 알텐데.”
“항상 여기서 끝나네요. 조금만 더 괴로워하신다면 불행해 지실 수 있을 텐데. 그 멍청한 여자랑 말이죠.”
간신히 토해내는 숨 사이사이에 말을 했더니 정말로 위 안에 있는 내용물이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숨을 깊게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삐익-!
“30초 남았어요. 곧 좋은 시간이 올 것만 같아요. 정말이지.”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애완동물을 다루듯 귀엽다는 듯이. 음산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삐익-!
“20초 남았어요. 조금만 있으면 내일이네요. 아아! 도대체 뭘 해야 될지 기대 되요. 당신은 기대되지 않나요? 당신과의 데이트라니. 이건 신이 내려주신 기회가 아닐까요!? 역시 신은 있었어요!”
“시끄럽고. 나 잡아가려면 빨리 잡아가라고 젠장.”
“왜 제가 당신을 그렇게 빨리 잡아가야 되나요? 이렇게 벌벌 떠시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우신데.”
삐익-!
“10초.”
삐익-!
“9초.”
그녀는 다시 호루라기를 불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호루라기 소리가 열 번을 셀 때까지 그녀는 운동화로 리듬을 탔다. 기쁜 듯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아,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제 것이에요.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나의 것. 단 하루뿐이지만. 당신은 나를 위한 것이라고요. 자 예정대로 여기로 들어가시면 되요.”
그녀는 내 앞에 언젠가 봐왔던 사람 한 명 비집고 들어가면 딱 맞을 정도의 포대자루를 내려놓았다.
“여기 말고 좀 더 안락한 건 없을까? 전에도 그랬고 그 전에도 그랬는데. 여기에 있으면 나 진짜 골격이 바뀔 것 같단 말이야.”
“괜찮아요. 다치면 제가 치료해 드리고 걷지 못하면 제가 업어드리고 뼈가 으스러져서 흔들거리면 제가 잡아드리고 죽으실 것 같으면 제가 살려드릴게요. 오히려 다치신다면 제가 영원히. 영원히 옆에서 간호해드릴게요.”
나는 그녀의 말에 포대자루에 들어가기 위해 엎드린 채로 올려다보았다. 그 영롱한 초록빛을 눈은 매력적이고 또 고혹적이었다. 잡아먹을 듯 한 웃음 짓는 눈이 이 어두컴컴한 밤에서 보일정도로 밝고 눈부셨다.
“그렇게 쳐다보시면 안 돼요. 그런 레어한 표정은 내일 두고두고 봐야하니까 지금은 아껴두세요.”
그녀의 눈이 조그맣게 변했다. 웃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일단 포대자루에 들어가기로 했다.
“착해요. 착해. 자 그럼 오늘을 기약하며 가자고요.”
삐익-!
그녀는 들어가고 있는 나의 발을 잡고 그대로 깊숙이 쑤셔 넣었다.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때까지 접히지 않으면 뼈라도 튀어나갈 정도로 밀어 넣었다.
“아파! 아파! 아프다고!”
“괜찮아요. 처음에만 아프지 나중에는 괜찮아져요.”
“그런 대사는 여기서 쓸게 아니잖아.”
“예전부터 연습해 온 거라서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절대 너한테는 듣고 싶지 않아.”
“그 멍청해 보이는 여자한테 듣는 것보단 저한테 듣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나요?”
“걔보고 멍청해 보인다고…으악!”
“룰루~ 자자 이젠 놀 시간이라고요. 그런 사소한 건 모두 저 멀리 날려버려요! 오늘은 일요일이에요. 신께서도 쉬라고 만드신 일요일! 즐겁게 쉬도록 하죠!”
그녀는 포대자루를 들쳐 메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지 뼈가 정말로 으스러질 것 같았다.
“어이어이, 잠시만. 조금만 기다려. 아파 아프다고!”
“아아, 이거 정말 오래가네요. 보통은 아프다하면 조금 있다가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기분 안 좋아! 좋아질 리가 있나. 엄청 아프다고!”
“남자가 무슨 엄살이 그렇게 심해요. 사실은 기분 좋은 거 아니에요? 이런 걸 즐긴다던지. 제가 앞쪽이 뚫렸을 때도 그렇게나 오랫동안은 안 아팠다
고요.”
“무, 무슨 그런 소릴 남자 앞에서 해!”
“뭐가요? 당연히 거짓말이죠. 그런 뻔한 거짓말을 설마 믿으셨어요? 제가 비 처녀였다면 전 당신 앞에 나타나지도 못했을 걸요.”
“그거랑 이거랑은 무슨 상관인데.”
“제가 여기에 출연하지 못할 거란 소리죠.”
“알아듣게 얘기해줄 수는 없을까?”
“그 항상 나오는 그 커다란 기업의 비밀 같은 것이니까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아요.”
“아주 자기 혼자서만 입을 나불….”
“시끄러워요. 더 이상 떠들겠다면 저도 방방 뛰어다닐 거예요.”
“그럼 지금은?”
“자루를 들고 빙빙 돌리고 있는 중이죠.”
“알았으니까. 얌전히 가줘. 더 이상은 아무 말도 안할게.”
“네에~, 그래야 착한 아이랍니다.”
나는 이렇게 그녀의 말에 승복한 채 빙빙 돌려지고 있는 자루에서 새우자세를 취했다. 그녀에게 붙잡혀 살고 있는 것도 어언 4주나 되었다. 매일 밤마다 그녀에게 잡히는 날에는 그 날이 다시 생각난다.
그때도 이런 한밤중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