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하아
꽁꽁 언 손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딱히 따뜻하진 않았다.
공모전에서 낙선했다.
별로.
별로 놀랍거나 한 사실은 아니었다.
매년 수많은 예비 작가들이 공모전에 도전하고 좌절을 맛본다.
10년동안 이짓거리를 반복해온
내겐 더 이상 새롭지도 씁쓸하지도 않은 맛이었다.
나는 언제나 다수에 속해있는걸 좋아했고
이번엔 소수이길 바랬지만 나는 여전히 다수에 속해있었다.
제기랄
벌써 10년이었다.
강산이 바뀌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뀌고 죽은 사람을 잊기엔 충분한
그런 시간이었다, 10년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상아 너 잘들어라. 이 아버지 죽고나서도 절대로 글쟁이 짓은 하지 말아라. "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모라기보다는 과시를 위한 글쓰기였다.
아버지 당신은 기어코 절 반대하셨지만 보십시오 전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죽은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나? 볼수도 없는 사람한테? 아무튼간에 보여주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썼고 닥치는 대로 지웠다. 머리를 벽에 찧고 강박적으로 손목을 주물렀다.
첫줄은 무슨 말로 시작할까 필명은? 후기는? 묘사는 어떻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아버지는 틀렸을까? 그 만류는 정말로 흔한 노인내의 불필요한 걱정이었을까? 옛날 친구들은 뭘 하고 있지? 서른살? 마흔살?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데뷔할 수 있을까? 설사 등단을 한다 하더라도 돈을 벌 수 있을까?
단편을 썼다. 수없이 많은 엽편을 썼다. 중편을 썼다. 10편의 장편을 썼다. 좆같음을 표현한 시를 썼다. 이따금 시조를 썼다. 수필을 썼다.
동화를 썼다. 썼다. 입 안이 썼다.
배가고파 밥을 지으려 했다. 쌀통은 눌러도 눌러도 쌀이 나오지 않았다.
집에 쌀이 다 떨어졌다. 나는 짜증을 내며 욕지기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짜증을 내는 시선 사이로
어머니 눈가에 새겨버린 깊은 주름을 보았다.
주름이 울었다.
우리 아들 엄마가 아들 정말로 열심히 하는거 알아.
그런데 미안한데 정말로 미안한데 이제 그냥 다른 집 애들처럼 평범하게 돈 좀 벌면 안됄까?
절대 거부할 수 도 회피할 수 도 없는
그런 음성이었다, 어머니는.
나는 익숙한 공모전 기획서 대신 자기소개서의 낯설은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화면이 떠올랐다. 이런건 많이 써봤어.
자기 소개서를 썼다.
내가 왜 이 늦은 나이에 취직을 시작했는지 왜 글을 썼었는지.
아버지를 사랑했고 어머니를 사랑했고 그 글을 사랑했는지는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것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나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썼다.
다시 처음이다.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는 시도를 했고 멋지게 패배했다.
아니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멋지진 않았다.
오히려 추했다. 나의 패배는 좀 더 현실과 맞닿아 있는 그런 패배였다.
나는 애초에 소설 속의 주인공 같은 거는 아니였으니까.
주린 배를 잡고 눈앞에 내려온 빚을 끌어올리며 익숙한 화면을 띄웠다.
그리고 픽 웃는다. 아직 안죽었어 새끼들아.
"슬슬 다시 시작해볼까."
손가락을 우두둑 꺾고 다시 컴퓨터 앞에 자리했다.
어느새 내 마음속을 가득채우던 권태와 불안은 사라지고
오로지 오늘과 내일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요컨데 좆같아 졌으면 더 좆같아졌지 딱히 더 행복해졌다거나 한건 아니라는 거다.
인생은 때로 공모전이다.
모든 사람이 성공하지 않고 일상속에 언제나 산재하며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우리는 자신이 그것에서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공모전에 '공모' 하는 것은 꿈을 위해서인가?
진짜 꿈을 위해서였나?
미안하다 사실 나도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잘 알고 그랬으면 그게 인생인가.
모르니까 인생이지.
공모전에서 떨어졌다고 낙심해도 좋다. 하지만 자살하진 마라.
공모전은 하나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80%의 좆같음과 19%의 엿같음 사이로 보이지도 않는 1%의 흥이 저기요 죄송합니다 잠시만 지나갈게요 하고 끼어든다.
"뭐 이따구야."
피식 웃곤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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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30살의 저를 생각했는데 늘 느끼지만 미래는 무섭습니다.
등단이라는 길목을 실제로 재단할 수 있어서 그 좁음을 눈앞에 들이밀면 얼마나 가늘고 긴 틈일까여..ㅠ 글쟁이를 업으로 삼고자하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