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번호 401294번. 문 앞에 서라.”
방 한구석에 우두커니 누워있던 죄수가 교도관의 앙칼진 목소리에 가늘게 신음하여 문 앞에 섰다.
교도관은 문 아래로 난 구멍으로 팔을 내놓으라 명령했고 죄수는 익숙하다는 듯 몸을 숙여 팔을 내었다. 곧 구속구가 단단히 채워졌다. 팔뚝에 새겨진 검은 색 줄들. 문신이라 하기엔 해괴한 그림이었다. 교도관은 가져온 기기로 그 문양에 붉은 빛을 쬐었다. 곧 듣기 껄끄러운 전자음과 함께 기기 상단에 있는 액정에 화면이 생성되었다. 죄수는 반투명한 강화 아크릴 벽에 난 틈새를 통해 그것을 흘깃 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감옥에 수감되기 이전의 모습. 그의 젊은 날이었다.
교도관은 그 사진과 죄수의 얼굴을 몇 번이고 비교해보더니 얼마 안 있어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움직여도 좋다.”
싸구려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진 탓에 손목에는 빨간 자국이 남았다. 죄수는 그 자국을 매만지며 방금 누워있었던 그 자리에 다시 드러누웠다. 조그맣게 난 문구멍 너머로 교도관이 다른 죄수의 번호를 부르는 목소리가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메아리가 되어 들려온다. 처음에는 총에 맞은 여우가 내는 비명과 같이 거북했지만 시간이 쌓일 만큼 쌓인 지금에 와서는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죄수들에게는 팔뚝을 내어 보이는 것과 그들의 메마른 말을 듣는 일은 하루의 시작이다.
교도관들은 매일 아침 8시 정각을 시작으로 40분까지 죄수들을 일일이 확인한다. 밤새 그들이 탈옥하였는가 방을 바꾸었는가 등등 속임수를 쓰는 것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감옥에서는 그럴 일은 없다. 이곳은 바다처럼 넓은 미시건 호수의 한복판. 철제 구조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인공 섬 위에 지어졌다. 설사 교도소에서 탈출을 성공한다 하더라도 한 달에 한번씩 오는 정기선 이외에는 육지에 다다를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최근에 들어서는 반출된 향정신성 약물 옥시콘틴을 수거하기 위해서 시행할 뿐 명목만 남은 일이 되어버렸다.
4층 높이부터 시작된 독방들에 난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차가운 수평선뿐. 401294번은 빠져나갈 수 없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꿈 속에 펼쳐진 세상도 어느새 감옥에서의 풍경. 지겹디 지겹도록 살아와 버린 교도소의 모습에 죄수는 히죽 헛웃음을 지었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는 아크릴 문을 나와 하루 30분씩 주어지는 자유시간, 먹을만한 점심, 독방, 문 아래로 배급되는 말린 당근으로 만든 맛없는 레토르트 저녁. 그리고 떠오르는 달. 닳아서 흩어져 버릴 것만 같은 일상을 담은 꿈은 그대로 비춰진다. 꿈은 깊어졌고 401294번은 그에 따르려 했다. 그렇지만 귀를 울리는 귀찮은 소리가 그를 방해했다. 사각거리는 그 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의 정신을 흐트러뜨린다.
“……꿈인가?”
죄수는 잠에서 깨어났다. 형광주황색 수의는 식은땀으로 송송 젖어있었다. 땀으로 끈적거리는 손을 내려다 보고서야 현실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때는 정오가 가까운 시각이었고 곧 자유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철창에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의 기울기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햇살이 들러붙은 콘크리트 벽 아래 귀퉁이에 난 조그만 구멍을 찾아낼 수 있었다.
“뭐야, 저건.”
사각사각 까마귀가 사과를 파먹는 것 같은 소리가 연거푸 나더니 어느새 먼지가 펑하고 튀어나왔다. 자신이 잠에서 깬 원인이라 짐작한 401294번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감옥 안에서 흥미거리는 찾는 것은 출소한 뒤 밖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먼지를 입으로 불어가면서 그 구멍을 좀더 확실하게 보려고 노력했다. 먼지를 치워내자 손이 조금 들어가다 말 크기의 구멍이 파여져 있었다. 구멍 너머를 보려 자세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엉덩이를 씰룩씰룩 거리는 게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반대쪽을 향하는 통로가 무너져 내린 것일까 구멍 너머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검은색뿐이었다. 어리둥절한 401294번은 몸을 일으켜 앉아서 그 구멍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곧 점심식사를 알리는 종이 감옥 안에 울려 퍼졌고 얼마 있지 않아 문 아래 배급 창으로 식사가 들어왔다. 흐릿한 형체만을 볼 수 있는 강화 아크릴 벽 너머로 검은 형체와 커다란 수레가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오늘의 점심은 푸석푸석한 인조단백질 스테이크. 오래된 병아리 콩을 갈아 만든 듯한 육질은 푸석푸석 입안에서 부서져 내렸다. 그래도 이 또한 1년에 몇 없는 호화식이다. 그렇지만 401294번의 관심은 오직 방 한구석의 쥐구멍에 쏠려있다. 무딘 플라스틱 칼에 썰려 무너지는 고깃점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왜 저런 구멍을 만들었을까? 새로 들어온 녀석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채 날뛰고 있는 것일까? 이곳에 들어왔다면 이미 끝장을 본 것이거늘. 어찌되었던 그렇다면 혈기왕성한 신입이겠지? 그럼 최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겠군. 녀석도 이곳에 대해 뭔가가 궁금할 터이니 교환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구멍 하나가 빚어낸 궁금증과 생각들은 무궁무진하게 꼬리를 물었다. 40년간의 독방생활은 그로 하여금 흥미와 관심에 대해 끊임없는 갈증을 만들어 내었고 반투명한 강화 아크릴 벽은 그가 항상 감시 당하고 있다는 불안함과 무기력함으로 그 욕구들을 잠재웠다. 401294번 그에게 있어 구멍은 아크릴 벽의 존재를 잊게 해주는 달콤한 속삭임과 같았다.
“쉿. 티를 내지 마시오. 간수들이 지켜보고 있단 말이오!”
구멍의 저편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그맣게 들려왔지만 발음은 정확하고 억양은 절제된 신사의 언어(Oxford English)였다. 401294번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건너편의 남성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점심시간. 교도관들이 최고로 집중할 시간이었다. 죄수들의 식사가 끝난 뒤에야 그들은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1294번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이불 속에 묻혀있던 구약 성경을 꺼내 읽었다.
시간은 흘렀고 교도관은 식판을 수거해갔다. 말을 꺼낸 것은 건너편의 남성이 먼저였다. 그는 스스로를 잭 필립스맨 이라 소개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다. 그는 교도관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좋아. 잭 필립스맨 너의 죄수번호는 뭐지?”
“186415번이오.”
“흐음. 난 폴이야. 성은 마약을 너무 해댄 탓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을 지도 모르겠어.”
401294번은 허물없었다. 그에게는 잭 필립스맨이란 남자는 수감된 이래 처음 만나는 다른 수감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남에게 경계를 해야 할 이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설령 옆방의 그 남자가 자신을 놀리려 드는 교도관의 끄나풀이라 하더라도, 혹은 죽고서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원령이라 할지라도. 귀천은 상관없었다. 그저 말벗이라면 누구라도 좋았다. 콘크리트 벽에 파묻혔던 마음이 둥실 떠올랐다.
“잭, 이 구멍은 왜 파낸 거야? .”
“지금은…… 안전한 거요?”
폴은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은 교도관들이 점심을 먹을 차례지. CCTV에 남아있는 녀석들은 도넛이나 물고서 트럼프나 치고 있을 거야. 이곳에 관심 가질 놈 없어.”
“크하하하하으하 으흐흐흐하 하하하핫하”
옆방으로부터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넘어서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폴은 갑작스런 웃음소리에 그자가 미친놈이 아닐까 싶었다. 이 외지의 감옥에도 옥시콘틴,모르핀 이 있는 이유가 이런 녀석들을 잠재우기 위한 것 인가라고도 생각하기도 했다.
엎드려서 꺽꺽거리는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내도 멈추지 않던 웃음소리는 시간이 꽤나 지나고 나서야 그쳤다. 그제서야 진정이 된 건지 잭 필립스맨은 콘크리트 벽을 퍽퍽 주먹으로 치면서 다시 말했다.
“후우…… 시원하군.”
“교도관이 몰려올 것 같군.”
“저 녀석들은 내가 뭘 하던 신경을 쓰지 않소. 내가 여기서 바닥에 오줌을 누던 하루 종일 벽에 대고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도 그들에게는 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오 무슨 일을 했길래?”
“별거 아니오. 난 원래 지하에서 왔거든. 아시오? 이 건물아래에 특수감옥이 있다는 거.”
폴은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인공 섬인 이곳에 지하가 있다니 의심부터 들법한 말이다.
“인공섬은 완전히 물위에 부양한 것이 아니오. 뜨는 곳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곳을 희생해야 희생해야지. 빙산도 그렇잔소? 아르키메데스는 2천년전에 그것을 알아냈지. 그리고 더군다나 이곳은 민물이잖소. 강철 케이블이 수십개 매달려 있진 않는 이상 떠있기는 힘들지..”
폴은 침묵했다.
잭은 헛기침을 했다.
“……나는 요리사(COOK)요.”
“정확히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지. 나는 이세상 무엇보다 맛있는 것을 조리해낼 수 있소.”
“옥시콘틴을 빼돌릴 게 네 녀석인가?”
교도관들은 사라진 옥시콘틴을 찾기 위해 매일 아침을 돌아다닌다. 그렇지만 그 병들을 수거했다는 소식을 들어보진 못했고 근 1년간에 계속된 일의 원흉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폴은 허무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정신과의사들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그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지 안하는 지는 신경쓰지 않소. 그냥 펜만 굴리면서 앵무새처럼 공식화된 질문만 하지. 그런 한심한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만날 속고 사는 거요.”
“그런가?”
“그렇소. 지금 나는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소. 사람의 말은 이렇게 간사하지. 머리가 똑똑하고 조금은 배운 사람이 아닌 이상 이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는 살아갈 수 없을 거요. 그렇지만 세상에 하나 남은 진심이 있지. 바로 혀요. 혀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 맛이 없는 지 있는 지 확실하게 구별하지. 누구도 이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 없소. 맛이 없다면 아무리 참으려 한 들 그의 표정은 거짓말하지 않지. 아이들은 고기를 찾소 그것은 당연한 결과요. 아이는 성장해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하니까 고기를 먹소. 그것은 몸이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다는 말이오. 진심은 사람을 끌어당기지. 누구나 한번쯤은 운명이라 생각한 대상이 있을 것이오. 그것이 허영심에서 비롯되었든 과시욕에서 시작되었든 비참하게 끝을 맺었든 그들은 진심이었기에 그것에 고락을 같이 했소. 불이라도 뛰어 들었을 거란 말이오. 혀는 진심이오. 만약 내가 신의 눈물을 핥을 수 있다면 혀만은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잭은 입에 달려있던 댐을 무너뜨린 것과 같이 쉴새 없는 말을 뿜어내었다. 정말 거짓말쟁이였다. 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일관되게 헛소리 같았다. 그렇지만 도저히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진심과 같이 순수했고 깔끔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딘가 그리운 느낌도 들었다. 어째서 일까. 폴은 귓구멍으로 분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많은 량의 단어들을 차치한 채 생각했다.
“나는 여행을 준비 중이야.”
그러자 잭은 입을 다물었다.
“여행?”
“사형수들은 집행을 앞두고서 마지막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지지. 그걸 여행이라 불러 듣기로는 인권운동가들이 만들어낸 헛짓거리중 하나라는 데, 그래도 고마울 따름이지. 하루는 이곳에서 썩지 않아도 되니까. 그 하루를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거야.”
“이 곳에서 나갈 수 있는 거요?”
폴은 눈을 지긋이 감고서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지는 않아. 그냥 이 감옥 안에서 목 씻는 걸 도와주는 정도지.”
“잘 모르겠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자기 목을 걸 교수대 앞에서 샤워를 하는 짓 같군.”
“뭐 그런 셈이지.”
폴에게는 마땅한 계획은 없었다. 그 하루 24시간은 모든걸 비워두는 시간이다. 이 답답한 독방을 나와 호수의 찬물을 타고 날아오는 바람을 맞을 수 도 있고, 아래의 미디어실에서 옛날에 들었던 음악을 찾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그에게는 뭔가 할 의욕이 들지 않았다. 끝이 정해져 있는 자유는 자유가 아닌 듯했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아니 이제는 있었는 지 없었는 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나 험한 삶을 살아온 걸까. 무너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약으로 달래왔다. 그런 결과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오직 저 높은 빛을 증오하며 살아왔다. 이 독방 안에서.
“여행이 언제요?”
“내일이지.”
“그럼 이걸 마셔보시겠소?”
잭은 구멍아래로 뭔가를 밀어 보내왔다. 조그만 유리병이었다. 교도관게시판에서 떼어낸 톱밥을 코르크 대용으로 막아두었다. 그 안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형체를 가지지 못한 채 출렁거렸다.
“이게 뭐지?”
“신의 눈물이랑 비슷한 것이오. 원래 있던 층에서는 꽤 인기가 좋은 물건이었지”
“옥시콘틴은 투여하는 것일 텐데.”
“마셔보시오. 고객에게 주는 샘플이지. 단 병은 다시 주시오. 구하기 힘드니까.”
폴은 나중에 마시기로 하고 이불 속에 감췄다.
“고맙지만 다음 기회로 하지.”
“고객의 마음대로”라면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폴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것이 옥시콘틴으로 제조한 마약의 일종이라는 걸 곧바로 짐작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더 이상은 영혼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사형 집행 일이 3일 앞으로 다가온 오늘에까지 몸을 청결히 했다. 온몸을 벌겋게 될 때까지 스펀지로 닦아내었고 눈으로 좆을 수 있는 모든 곳을 세밀히 관찰하고 손질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는 깨끗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죽을 때 몸 속에 감춰둔 모든 곳을 쏟아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존심이었다.
“여행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후의 만찬은 무엇으로 할 생각이오?”
“글쎄. 이젠 진짜 스테이크가 어떤 맛이었던 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 나는 무엇을 좋아했었던 건 지도. “
“나는 죽기 전이라면 영국음식을 먹을 거요.”
“왜?”
“오래 먹을 수 있거든.”
둘은 서로 할 것 없이 끌끌 거렸다.
“폴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사형을 받게 되었소?”
“나? 기억 안나. 사람이라도 죽였겠지.”
그것 참 이상하다는 듯 잭은 잠시 뜸을 들였다.
“나는 마약밀매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소.”
“그럴 것 같더군.”
당연하다는 듯 폴은 말했다.
“월스트리트의 자본의 화신들이 내 주 고객이었소. 내가 조리해낸 음식들을 그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거든. 엄청나게 강력하지만 뒤끝은 없는! 얼마나 최고의 쾌락이란 말이오. 온 세상이 벌렁거리면서 끝내주기 좋은 기분이 들었을 거요. 더군다나 주사를 한다거나 코로 들여 마셔야 하는 추태도 부릴 필요도 없어서 각광을 받았지. 그들은 쾌락의 노예였소. 돈을 위해 사는 인생이었지만 돈도 어디까지나 수단이었소. 오직 쾌락을 즐기기 위해 살았지. 하지만 추락은 한 순간이었소. 그들은 트렌드에 민감하오. 모든 것이 트렌드지. 새로운 기똥찬 것이 나오자 곧 나의 시대가 끝이 나고 말았소. 그 끝이 보이는 순간 그들은 미련 없이 돌아섰지. 그걸 위해 내 음식을 먹었던 게 아닌가 싶었소. 한달 전까지 나의 고객이던 사람들은 나를 법정에 세우고 몰아 붙이기 시작했소. 나를 지옥의 끝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라고 몰아 세웠지. 나에게는 어떠한 방법이 없었소. 내가 팔았던 막대한 량의 약과 내가 벌었던 돈다발은 징역이 되었고 징역은 짧게 바뀌어 돌아왔소. 사형으로 말이지.”
“그리고 이곳으로 왔고?”
“그렇소. 그것은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하시오?”
폴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그걸 대답할만한 자격이 있는 지가 의문이었다. 그도 사형수이고 자신도 사형수인데 누군가의 응보에 대해 정당성을 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방금 대답할 수 없었던 건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보내고 싶지만 내보낼 수 없는 답답함은 그의 입을 다물게 했고 기억이 나지 않고 뜬구름만 남은 느낌은 찜찜함만 남겼다.
그것으로 낮은 끝이 났다. 교도관들의 식사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만약 잭의 말대로 그가 자유롭게 활개를 칠 수 있다 하더라도 이쪽은 그럴 수 없는 입장이었다. 더군다나 사형의 집행은 3일뒤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흠이 나고 싶지 않다. 깨끗한 채로 죽고 싶다. 검은 범죄자의 최후의 발악이었다.
달이 떠올랐고 푸른 빛이 하늘을 감쌌다.
폴은 누워서 오렌지색 수의를 만지작거렸다.
저녁은 굶었다.
입맛이 없었다.
플라스틱 쟁반과 식기는 들어온 그대로 수거되었다.
오늘은 구름에 가여 달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다.
“어째서 교도관들은 당신을 쫓지 않지?”
“이곳에도 내 요리를 팔았지.”
“옥시콘틴으로도 만들 수 있나? 하! 정말 사람은 어디까지 단순한 것에 놀아나는 거지. 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나? 그것을 먹고 그들은 뭐라고 했지?”
“아무 말하지 않소. 그것들을 가져가는 대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주었지.
“포르노 잡지라도 받았나?”
“먼저 독방을 얻었소. 나는 혼자 있고 싶었다오. 다른 사람들은 보고 싶지 않았어. 모두 돈 덩어리로 보였거든..”
“여기까지 와서도 장사를 하고 싶었나? 이해할 수 없군.”
“이것은…… 내 전부였소. 내가 만들어낸 전부였으니까. 비록 나를 흥하게 하고 쇠하게 했다 하더라도 내가 만든 것이었으니까…… 누군가 즐겨준다면 그것으로 족하오”
“사람은 진심이 되면 오히려 입을 다물게 되지. 행복하다면 더더욱. 그 심정을 잘 알 테니까 무엇인지. 하지만 나는 그것에 공감을 할 수 없군. 나는 네 입장이 된다면 그런 약물 따위 버려버리겠어. 그런 걸 어찌 요리라 부르나?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축내는 기생충 같은 거야.”
잭은 침묵했다.
“하지만 난 내거니까. 그것만은 내 진심이니까. 놓을 수 없소.”
“…… 창작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거야. 왜 그를 생각하지 않지? 네 녀석이 만든 것 때문에 고통……”
“내가 만든 약은 고통 따위 없소. 오직…… 영원한 쾌락뿐이지.”
폴은 무엇 때문에 자신이 화를 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다 같은 인간 말종인 사형수다. 누군가의 부정함에 대해 분노하고 훈계를 둘 명분이 없는 자들이다. 그리고 가시지 않는 이 찜찜함. 폴은 도대체 어떻게 이를 어떻게 떨쳐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나는 디트로이트의 비루한 가정에서 태어났소. 아니 그건 가정이라 부를 수 도 없겠지. 아버지는 약쟁이에 어머니는 창녀. 그마저도 어머니는 내가 2살이 되기 전에 성병으로 죽어버렸소. 아버지는 매일 나에게 약을 사올 것을 요구했소. 코카인, 모르핀, 헤로인 등등. 왜 그렇게 지은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이름들의 약들을 사오라고 강요했고 만약 사오지 못한 날이면 나를 두들겨 팼소. 그을음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나는 생각했지. 무엇을 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소. 그 약을. 다행히 나는 한 미친 놈 아래에 들어가 약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지. 다행히 나는 그에 재능이 있었소. 복잡한 화학구조와 그를 제조하기 위한 수단을 빠르게 익혔지. 매일 매일을 단련하면서 그 정밀함과 순도에 목숨을 걸었지. 하지만 단숨에 익혀낸 기술은 기술일 뿐이었소. 팔아먹을 수 없었던 것이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오리지널리티와 그것을 팔기 위한 방법을 생각했지. 그게 바로 월 스트리트였소. 극과 극은 통한다고. 그들은 치명적일 정도로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지. 주체할 수 없는 테스토스테론, 코카인, 헤로인, 모든 것이 들끓는 곳이었소. 그리고 나는 팔아먹을 수 있는 물건을 뽑아냈지. 그리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지”
잭은 뜸을 들였다.
“내가 만든 것은 요리였소. 누군가를 행복과 쾌락에 빠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단 말이오. 대체 내작품이랑 요리가 다른 게 무어란 말이요. 거짓말은 잘한다면 예술이 되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개소리가 될 뿐이오. 나는 중간이었지. 잘 팔아먹었으니까. “
폴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느꼈던 찜찜함의 정체는 익숙함이었다. 콘크리트 벽을 맞대고 있지만 그와 자신은 닮아 있었다. 마치 투명한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동질감은 느끼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 이제서야 알았어.”
“뭐를 말이오?”
“아까의 대답.”
“말하시오”
“인과응보로군.”
“어째서?”
“아직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평생 거짓말을 하니까 그곳까지 밖에 다다를 수 없는 거야. 아름다워 보이지만 네 녀석 말에는 네가 하고 싶어하는 진심이 담겨있지 않아. 그런 녀석이 이곳까지 도착했는데 무슨 말을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그만둬. 마음을 정리하라고. 나는 내일 여행을 떠날 테니.”
“…….”
밤은 깊어갔고 하루가 지났다. 폴은 여행을 떠난다. 그렇지만 떠나 보낸 잭을 생각하자 마음은 좋지 못했다. 그는 별 수 없이 이불 속에 감춰둔 신의 눈물을 삼켰다. 첫 맛은 썼지만 곧 달콤함이 입안에 감돌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쾌락은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동공이 확장되고 핏줄이 곤두서는 그러한 징후는 없었다. 신의 눈물은 식도로 넘어가면서 뜨거운 화상을 남겼다. 타는 듯한 감각은 차갑게 식어 목이 시원했다.
“이건……. 보드카잖아.”
그때 그는 생각이 났다. 잭은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 했다. 모든 예술가는 거짓말쟁이다. 그들은 허풍을 그럴듯하게 하기 때문에 돈을 벌었고 돈을 위해 허풍을 친다. 하지만 그 거짓말은 진심이 담겨야 한다.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허풍쟁이가 헛소리를 하나보다 싶었지만 여행은 시작되자 그 말은 진실처럼 다가왔다.
“개자식. 완전히 장사치로군.”
폴은 속으로 킥킥 웃었다. 그것은 칭찬이었다.
죽는다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 적어도 이 콘크리트로 된 벽 사이에서는. 그는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오늘 그는 그냥 그대로 평소대로 살기로 했다. 새로이 주어진 독방에 앉아서 출애굽기를 읽고 헐어버린 스펀지대신 푹신한 스펀지로 몸을 씻었다. 그리고 교도관이 최후의 만찬에 대해 물어왔다.
“보드카! 그리고 티본 스테이크!”
폴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믐달이 떴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푹신한 침대에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교수대 앞에 섰다.
교도관은 검은 복면을 씌웠고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숨을 들이 마시자 복면은 입안으로 불룩 들어왔다가 내쉬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제 죽음이 온다.
발은 무겁고 손은 떨렸다.
차가운 쇠고랑은 철근처럼 무거웠고 숨이 가빠왔다.
어디선가 잭의 목소리가 들렸다.
“......6월 21일 부로 사형을 집행한다.”
폴은 피식 웃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이런 의미였나?”
“그래. 좋은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군. 사심은 없었어.
그리고 내가 했던 이야기들은…...”
“ 내 이야기라고? 알고 있어. 고맙다. 거짓말쟁이”
“잘 가시오. 예술가 양반.”
레버가 돌려지는 소리가 들린다. 삐익 울리는 경고음도 울린다. 바닥이 꺼지고 폴의 몸이 고꾸라진다. 하지만 몸에 걸려있던 줄은 그것을 저지했고 목을 강타했다.
의식은 수면아래로 천천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