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된 지금에야 친구 사이의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는 가벼운 이야기였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제법 진지하고 필사적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 얼굴에 자연스레 웃음이 떠오른다.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몇 권의 노트였다.
괜스레 큼지막한 글씨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림일기장,, 그림이 사라지고 조금 글씨가 작아진 일반적인 줄 노트,, 검은색에 금박 장식까지 박힌 특이한 노트까지. 각각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 중학교 시절에 적은 일기장이다.
매일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점이나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친구가 등장하는 둥, 역시나 어디까지나 방학 숙제라 적었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럼에도 선생님의 한 줄 코멘트만은 굉장히 정성스러웠고, 그게 미안해서 조금씩 노력을 들여 썼던 기억이 났다.
그 덕분일까, 조금씩 글 쓰임새와 어휘력도 좋아졌고, 글씨체도 꽤나 괜찮아진 것 같다. 다만 좋은 일에도 안 좋은 것은 항상 따라붙는다고 하던가,
“으익.”
중학교 시절의 일기를 펼쳐본 내 입에서는 그만 그런 말이 나온다. 나는 그렇게 좋아진 글 쓰임새와 어휘력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폭발시킨 것이다. 주로 어둠의 방향으로.
“큭큭, 나는 고독한 황자……”
“네가 나의 어둠을 아느냐? 그 영겁의 어둠 속에서 혼자 갇혀 있는 괴로움을 아느냐? 알 리가 없지……”
“자, 사라져라. 그리고 울부짖어라. 이 고독한 황자의 이름을.”
응, 그렇게 적혀 있다. 어쩐지 빨간색으로, 어쩐지 글씨체도 뾰족뾰족 세우면서.
심지어는 이걸 쓰면서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것 때문에 불려간 선생님 앞에서 비슷한 대사를 했다는 것이다.
젠장, 이불, 이불은 어디냐.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제법 오랜 시간을 오로지 노트가 넘겨지는 소리만이 이 귀에 남았다. 어느새인가 노트의 글에서는 어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조금 영향은 남아 있었으나 평범한 일기로 보였다.
“처음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지.”
그리고 그걸 끝까지 읽은 감상이 그것이었다. 어둠의 글귀를 읽는 사이 다시 그 어둠에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인지도 모르나,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말투도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팔락, 팔락. 이번에는 어느샌가 바뀌어버린 글귀의 원인을 찾아 적당히 노트를 훑어본다. 그러니 하나 변한 점이 드러났다.
선생님의 코멘트였다.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일기 한 편 한 편에 글귀를 적어주신 것이다. 그 이후로는 선생님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조금씩 평범한 일기로 변해갔다.
“……아.”
횅한 집에서 나의 목소리만이 괜스레 크게 들린다. 어쩐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단순히 방학 숙제 때문에 억지로 하던 일기가 변한 이유도, 중학교 일기가 변한 이유도, 그리고 지금 일기를 쓰지 않는 이유도. 그때는 알지 못 했지만 새삼스레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외로웠던 것이다.
일찍 부모님을 여윈 나는 결국 바쁘신 친척들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 했고, 조부모님과 친척들이 모아 보내주시는 생활비로 혼자 생활했다. 삼시 세 끼, 옷, 냉난방은 물론이고 여흥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기에 그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괴로웠던 것은, 그런 여유로운 생활에서도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이었다. 친구를 사귀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 그 나이 때에는 별의별 이유로 놀림을 당하고,, 따돌려지고는 하는 법이다. 나도 그런 케이스였다.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어릴 때야 그걸 어떻게든 인정하지 않으려 기를 쓴 모양이지만, 결국 드러나 버린 모양이다. 비록 어린애 일기라도 글에서 묻어 나오는 법이겠지. 선생님은 귀신같이 그걸 체크해주었고, 방학이 끝난 이후로도 나에게 일기를 써보지 않겠냐고 권하셨다.
그로부터 일기를 통한 나와 선생님의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중학교 때도 일기야 썼지만 그걸 보여줄 사람이 없었다. 아마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해버린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런 와중에 우연히 당시의 선생님이 내가 일기를 쓰는 것을 보았고, 어쩌다 보니 초등학교 때 선생님처럼 일기를 봐주며 코멘트를 해주셨다.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도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를 배려해주신 것 같다. 매우 귀찮은 일인데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런 일기를 쓰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아마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녀석이 늘어, 주변에 친구들이 있게 된 이후인 것 같다. 더 이상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대화에 빠져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까운걸.”
하지만 일기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일기란 선생님과, 혹은 나 자신과 하는 대화였지만 그럼에도 일기 그 자체의 기능은 충실하게 실행했다. 이제는 흐릿해졌을 기억이 또렷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이라. 제법 성장물을 읽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노트를 내려놓고 시계를 본다. 어느새 오후 9시가 지나 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막바지인 이때에,, 이 시간까지 밝을 리도 없으니 밖도 어느새 어두워졌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 일기에 적은 시간이 9시 반인가로 되어 있었다. 몇 년 전의 나는 지금쯤, 지금도 쓰고 있는 책상에 앉아 머리를 써가며 펜을 놀리고 있을 터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성히 글이 그리워졌다. 가만히 자리에 앉으니 지금도 그날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때는 높아서 간신히 팔을 올리고 쓰던 책상도, 어느샌가 불편해져 있었다. 펜도 그 시절에 쓰던 건 죄다 몽당연필이 되어 있다. 손은 이렇게나 커졌는데, 어쩐지 세상이 나만 두고 멈춰버린 것만 같다.
책상에 가만히 노트를 편다. 몇 월 며칠 몇 시, 날씨는 맑음, 기분은 좋음. 거기까지는 일사천리다. 막상 첫 줄을 적자니 손이 멈추고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때와 똑같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오늘을 만든다. 괜히 좋은 일이 생기고, 괜히 웃을 일이 생기고, 그때의 나는 언제나 이렇게 즐거운 나날을 보낸 것이다. 여차 쓰기 시작하니 어쩐지 펜이 가볍다.
여름 방학 늦깎이, 나는 새로운 방학 숙제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