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늙은 하녀 안나가 병원에서 온 편지를 내밀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를 돌봐주었던 안나의 눈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편지는 사촌 에밀리의 부고를 알리고 있었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나를 안나는 서글프게 바라보았다. 이제 내 곁을 지키는 사람은 얼굴에 굵은 주름이 가득한 안나와 수염이 허옇게 센 톰 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분홍빛 장미 향기와 햇살이 가득하던 옛 집도 이제 남의 집이 되어 버렸다.
그 겨울 짐을 싸고 기차표를 끊어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안나와 톰은 사촌의 빚을 갚느라 빈털터리가 된 나를 따라 여기 저기에서 찬 바람이 새는 낡은 연립주택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바람이 새는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달고 삐걱거리는 마루바닥 위에 카펫을 깔았으며 차가운 내 남은 시간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려는 듯 매일 아침 뜨거운 야채 스튜를 끓이고 셔츠를 따뜻하게 다려주었다.
사촌 에밀리는 들장미처럼 우아하고 활력이 넘치는 숙녀였다. 어린 시절 정원에서 뱀과 개구리를 맨손으로 잡아 나와 다른 사촌 형제들에게 던질 정도로 왈가닥이었긴 하지만 성장하고 나서는 그런 모습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품위 있고 예의 바른 아가씨가 되었다.
겨울이 되어 우리 집에 놀러온 에밀리는 마침 여우 사냥을 즐기고자 머물고 있던 대학 동기 리차드를 만났고 둘은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지 육 개월도 지나지 않아 결혼에 골인했다. 두 사람이 결혼하던 날 며칠 째 계속되던 비가 걷히고 맑은 햇살이 내리 쬐어 모두가 신의 축복이라며 이야기하던 것이 엊그제 같다. 둘은 새로 지은 저택에 신혼 살림을 차렸고 남녀 쌍둥이와 아들 하나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다. 에밀리가 막내를 임신하기 전 까지는. 그 여자가 그 저택에 발을 들이기 전 까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연예계 가십기사를 쓰며 바쁘게 살고 있던 내게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다. 가업을 잇지 않아 한창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있던 나는 ‘또 그런 전화겠지’ 하며 퉁명스레 받았다가 뜻밖의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귀여운 조카가 한 명 더 늘어난다니!
선물을 사 들고 방문하자 조카들이 먼저 달려 나와 나를 반겨주었다. 조카들은 뺨이 통통하고 뽀얀 손가락 끝이 장밋빛으로 물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당시 허름한 하숙집에서 가정부도 없이 생활하던 내게 아이들의 구김살 없는 웃음은 기쁨을 넘어 하나의 위안이었다. 아이들은 보더 콜리처럼 진중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리차드와 종달새처럼 활력이 넘치는 에밀리를 닮아 예의 바르면서도 활기찬 성격으로 자라났다.
“아무래도 애들을 봐 줄 보모를 한 명 구해야 할 것 같아.”
즐거운 저녁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시러 응접실로 들어가자 에밀리가 입을 열었다.
“뭐? 로즈마리랑 테일러 양은?”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귀향했어. 테일러 양은 지난 달에 결혼했고.”
리차드가 대신 대답했다.
“이런, 둘이서 힘들겠구만.”
“큰 애들은 괜찮은데 앨리스가 문제지. 귀신이 나온다고 잠을 못 자. 하녀들이 불침번을 서고는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뭐 하러 해. 신경 쓰지 마.”
리차드는 에밀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둘의 낯빛이 밝지 않은 것을 보아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걱정이 된 내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캐묻고 나서야 그들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창 밖에 마녀가 있대.”
에밀리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윗층에서 앨리스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짜증을 내는 듯 했지만 점점 울먹이더니 곧 목놓아 우는 소리로 변했다.
“이런.”
리차드는 큰일이라도 난 것 처럼 윗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를 따라 올라가보니 앨리스는 거의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온 가족, 고용인들까지 매달려도 아이는 계속 비명을 지르며 울 뿐이었다. 에밀리는 재빠르게 아이를 안아 들고 달랬다.
“왜 왜 왜 누가, 응? 누가 그랬어.”
“내가 그랬잖아, 혼자 두지 말라고 그랬잖아! 미워!”
그 원망과 서러움이 섞인 목소리란.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서 비통에 찬 고함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고용인들이 몰래 아이에게 손찌검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에밀리에게서 아이를 받아 들고 달랬다.
“왜 그렇게 뿔이 났어. 삼촌 와서 싫어?”
아이는 거세게 도리질을 했다.
“그럼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우리 공주님이?”
아이를 달래고 있는데 복도 밖에서 펑 하는 파열음이 들렸다. 불이 나간 것을 보아 전구가 터진 모양이었다. 덕분에 숨을 고르며 진정하고 있던 아이가 다시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옳지 앨리스. 공주야 괜찮아, 괜찮아. 그냥 전구가 터진 거야. 오래되서 그런가봐 괜찮아.”
“아냐! 마녀가 그런 거야!”
“응?”
“마녀가 그런 거라구! 마녀가 그랬어!”
사촌 부부는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아이를 겨우 달래고 응접실로 내려가자 리차드가 먼저 입을 뗐다.
“오랜만에 왔는데 미안하게 됐네…”
“괜찮아, 원래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리차드는 한숨을 쉬었다. 이어 그가 꺼낸 이야기는 미신적이고 레이스를 뜨는 노파들이나 감수성 높은 아가씨들이나 꺼낼 것 같은 이야기라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의 시작은 앨리스가 창가에 앉아 밤새도록 조잘댄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숙식을 하고 있던 유모 로즈마리가 앨리스를 재우려고 다가가자 아이가 창 밖에 요정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의 상상 속 친구쯤으로 치부한 유모는 요정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라고 했고 그때까진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 한다. 아이가 요정을 집에 초대해도 되냐고 묻기 전 까지는.
하루는 리차드가 아이를 안고 거실 창 너머로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허공을 가리키며 ‘아빠! 여기 요정이 붙어 있어!’ 라고 외쳤다고 한다. 리차드는 아이의 상상력에 부응해주기 위해 ‘그래, 예쁜 요정이네.’ 라고 말했고 아이는 ‘아빠! 요정이 들어오게 해달래.’ 라고 외쳤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리차드는 ‘요정한테 안 된다고 해.’ 라고 말했고 아이가 ‘안 된대.’ 라고 말하는 순간 거실 창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고 한다. 기겁한 리차드는 아이를 데리고 창에서 떨어졌는데 마치 밖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창을 주먹으로 마구 내리치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고 밝혔다.
창문은 앨리스가 ‘아빠 요정이 화났어!’ 라고 말하자 멈추었다. 괴현상에 기분이 나빠진 리차드가 아이를 안은 채 돌아서는 순간 조용한 거실에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아빠 요정이 창문을 열려고 해.’ 아이의 말을 들은 그는 재빠르게 아이를 내려놓고 창문으로 달려가 반 뼘쯤 열린 창을 억지로 닫고 걸쇠를 걸었다. 창 밖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했지만 기가 질린 그는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고용인들에게 모든 문과 창문을 빠짐없이 잠그라고 지시했다.
그 이후로 아무 일이 없자 사람들은 그저 젊은 사업가가 과로로 헛것을 본 것이려니 치부했다. 다음으로 이상을 눈치 챈 것은 부엌일은 물론 다른 잡일도 맡아 하는 하녀 앤이었다. 동갑내기인 케이트와 같은 방을 쓰던 그 애는 처음에는 케이트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창문을 누군가 ‘똑 똑 똑’ 하고 두드리는 소리에 짜증이 난 그 애가 뒤를 돌아보자 곤히 자고 있는 케이트의 모습이 보일 뿐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등을 돌리자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리고 짜증이 난 앤이 벌떡 일어서 ‘대체 뭐가 문제야!’ 하고 외치는 순간 창문이 거의 떨어져나갈 듯이 흔들렸다고 한다.
그 소리에 케이트는 물론 옆방의 하녀들도 잠에서 깨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유리에 점점 금이 가는 것을 입을 떡 벌린 채 바라보았다. 정체불명의 현상은 창문이 살짝 들리자 멈추었다. 창문이 저절로 올라가자 앤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창문을 눌러 닫으려 했다고 한다. 여자 숙소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그 때부터였다. 앤이 힘껏 창틀을 눌렀지만 창은 닫히지 않고 조금 떠 있었다. 딱 손바닥 한 장 만큼.
앤은 뭔가 물렁한 것이 창에 끼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한밤중의 소란에 부엌을 담당하는 마리아가 초를 켜 들고 나타나자 창은 스르르 닫혔다. 그녀는 들고 있던 초를 다른 하녀에게 맡기고 성호를 그은 뒤 창가로 다가가 기도문을 읊었다. 기도문을 읊은 그녀는 창을 잠그고 덧문을 닫았다.
‘이제 다들 들어가서 자도록 해.’
마리아가 방에 들어와 하녀들에게 한 첫 마디였다. 그 날 이후로 고용인들에게 창문을 잠그고 잠드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아, 말이 나오니 말인데 사실 테일러 양은 우리가 해고했어.”
“뭐? 언젠 똑똑하고 야무져서 좋다더니.”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좋은 추천서를 써 줬으니까 구직에 어려운 일은 없을 거야.”
테일러 양은 소위 개몽된 사람으로 집집마다 전기를 사용하고 지하철이 땅 속을 누비고 다니는 시대에 흔히 ‘악령’이라 불리는 미신에 얽매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른 고용인들이 창문을 잠그는 것을 비웃으며 꿋꿋하게 창을 열고 잤다. 사촌 부부도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매일 아침 상쾌한 표정으로 내려온 그녀는 고용인들을 둘러보며 마치 ‘봤죠?’ 라고 말하는 듯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 한다. 그녀가 그럴 때 마다 마리아는 묵묵히 큰 냄비에 수프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기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어느 가을날 어느 ‘멋진 아가씨’가 저택의 문을 두드리면서 고난이 시작되었다. 그날 따라 아무도 보이지 않아 대신 나갔던 테일러 양이 했던 말에 따르면 아주 세련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우아하고 고혹적인 여자였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대로 검은 머리를 맵시 있게 자르고 날씬한 몸매에 모피를 둘렀다는 그 여인은 문을 연 테일러 양에게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가다 길을 잃었는데 몹시 지치고 피로하여 물이라도 얻어 마실 수 있을까 하여 염치없게도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비싼 모피를 입고 우아하고 고상한 말투의 여인을 보자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라고 판단한 테일러가 그녀를 잠시 현관에 들이고 에밀리를 불러 왔을 땐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현관은 여전히 열린 채였고 사람이 있었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상하다 생각하며 문을 닫았다.
그들은 ‘그냥 가 버렸나 봐요.’, ‘멋진 분이라기에 기대했는데 아쉽네.’, ‘몹시 예의 바른 분이라 아마 예의에 어긋난다 생각하셨나 봐요.’, ‘그럴 수도 있겠다.’ 같은 대화를 나누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뒤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들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둘 다 잘못 들었나 싶어 갸웃거리며 다시 걷는 순간 ‘또각’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구두 소리는 그들이 걸을 때 마다 뒤따라 나고 있었다. 실내에서 신는 편한 신발을 신고 있던 둘에게서 나는 소리가 아님은 분명했다. ‘그 여자가 구두를 신고 있었어?’, ‘네, 붉은…’ 다시 구두 소리가 들렸다. 다른 곳도 아닌 뒤에서. 그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느릿느릿 리드미컬하게 구두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그들이 잰 걸음을 걷자 구두 소리가 뒤에서 달려왔다. 보이지 않는 것이 에밀리를 덮쳤고 테일러 양은 그대로 도망쳤다. 기절한 에밀리를 소파에 뉘이고 경찰을 부른 것은 마리아였다.
“그 때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리차드는 사색이 되어 떨고 있는 에밀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이야기였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긴 침묵을 깨고 리차드가 입을 열었다.
“지금 방에 앨리스 혼자 있는 건가? 마리아는?”
말이 마치자마자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온 집안을 뒤흔들었다. 다급히 위층으로 올라가보니 마리아가 문 앞에서 기도 비슷한 것을 중얼중얼 읊고 있었다, 문은 잠겨 있었고 방 안에선 겁을 잔뜩 집어먹어 엄마아빠를 부르며 울부짖는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리 비켜요!”
문 앞을 막아 선 마리아가 방해가 되어 밀치고 문을 두드렸다.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는 것이 보였지만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기도 소리가 멈추자 거짓말처럼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방 안에 들어 가자 침대 밑에서 작은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앨리스, 괜찮아 삼촌이야.”
침대 아래에서 하얀 손가락이 나와 긴 시트를 살짝 들어올렸다. 괴물인지 삼촌인지 확인하려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 왜 그래?”
잠이 덜 깬 셋째 알렉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바탕 일어난 소란에 잠이 깬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아냐. 들어가서 더 자렴.”
“시끄러워서 못 자겠어.”
“이제 조용해질 거야. 들어가서 자야지?”
“그치만 누나가 내 침대 뺏었단 말야.”
“야, 엄마한테 얘기하지 말랬지! 배신자!”
밖에서 쌍둥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쌍둥이 아니랄까봐 동시에 외치다니. 앨리스가 뜻도 모르면서 “비겁해 배신자!” 라고 따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귀여운 녀석들. 잠시만, 앨리스가 저 쪽에 있다는 것은.
침대 쪽을 돌아보자 시트가 완전히 걷혀져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도 어느새 멈췄고 방과 복도 모두 침묵에 잠겼다. 묘한 기분이 들어 방문 쪽에 선 사람들을 돌아보자 알렉스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이 쪽을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애가 보고 있는 쪽을 천천히 돌아보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혔다.
“윌리엄!”
에밀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질렀다. 문 손잡이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다급한 발소리들 너머로 낮은 웅얼거림이 들려왔다.
“안 열려, 도끼 가져와! 마리아, 그 주문 좀 그만 외워요!”
리차드의 목소리였다.
“비켜요! 마리아.”
“세상에 무슨 노인네가 꿈쩍도 않네!”
마리아가 주문을 외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마리아! 비켜요 누가 이 사람 좀!”
에밀리의 말이 비명으로 이어졌다. 문 밖에서 거친 고함과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에밀리!”
나는 문이 부서져라 두드렸지만 다들 소란에 정신이 팔려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피가 많이 난다.’ 라던가 ‘의사를 부르겠다.’ 하는 목소리가 어지럽게 흩어졌으나 마리아는 꿋꿋하게 이상한 주문 같은 것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경외는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악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변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이교도의 샤먼이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그녀의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에 건장한 사내들도 기가 죽은 모양이었다.
“리차드, 듣고 있어? 난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에밀리를 병원으로 데려가.”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크게 외쳐도 아무도 들은 기색이 없었다. 결국 하인들에게 끌려 나가는 듯 마리아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더니 결국 멈추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녀는 주문을 멈추고 살짝 웃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구두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구두 소리는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는 몰랐지만 뭔가 단단히 잘못 된 것 같았다. 구두 소리와 함께 점성이 있는 액체가 바닥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부패하고 있는 듯 시큼하고 역겨운 비린내가 등 뒤에서 나고 있었다. 등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피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뭔지 모를 것이 내 뒤에 서서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음날 마리아는 경찰서로 이동되었고 에밀리는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마리아가 에밀리에게 달려들어 팔을 거세게 물어 뜯었지만 신의 보살핌 덕분인지 아이는 무사했다. 정말 신이 가호 덕분이었다. 나는 휴가를 내고 사촌 부부의 새 고용인들을 찾기 위해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며 신문에 광고도 냈다. 광고를 낸 지 며칠 되지 않아 새 고용인이 집에 찾아왔다.
그녀는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칼을 짧게 자르고 붉은 모자를 쓴 멋진 아가씨였다. 갈색 가죽 가방을 다소곳하게 들고 서 있던 그녀는 노크 소리에 문 밖으로 나온 나를 보고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가 리차드 씨 댁인가요?”
“그렇습니다만…”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왔어요. 보모와 가정교사를 구하신다면서요.”
그녀는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신문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녀의 나비처럼 우아한 손짓에 정신이 팔려 그녀가 ‘선생님?’ 하고 물은 뒤에서야 신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아, 들어오세요. 들어와요. 오시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셨나요?”
“그럼요, 요즘은 기차라는 게 있어서 정말 좋네요. 앞으로 편히 여행할 수 있겠어요.”
먼 시골에서 온 것일까 특이한 아가씨였다.
사촌 부부는 그녀의 단정한 행동과 세련된 말씨에 몹시 감화를 받았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살뜰히 돌봐주었고 고맙게도 새 요리사를 구할 때까지 요리사 역할도 자처하였다. 다른 고용인들과의 사이도 좋았고 이웃의 평가도 좋았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오고 나서 괴현상도 쥐 죽은 듯 사라졌기에 사촌 부부는 신이 보내주신 선물이라며 기뻐했다.
그녀는 특히 앨리스와 사이가 좋았다. 둘은 정원이든 식사 때든 항상 붙어 다녔고 앨리스는 그녀가 없으면 잠을 자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릴 정도로 몹시 따랐다. 앨리스와 그녀가 함께 있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젊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다정하고 평화로웠다. 정원에서 앨리스와 함께 여름딸기를 따고 있던 그녀는 나를 보자 환히 웃으며 말했다.
“어머, 오셨어요? 지금 당장 주인님께 말씀 드릴게요.”
“아뇨,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미소가 아름다운 여자였다. 어쩌면. 이 여자라면. 앨리스도 잘 따르니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막내 조카는 시월 달이 되자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렸다. 조산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건강한 사내아이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 에밀리는 묘하게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기에게 손을 대려고 하거나 아기와 단 둘이 있는 것을 교묘하게 막는 그녀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일이었다. 에밀리가 아기를 데리고 자리를 피할 때 마다 그녀는 멋쩍은 듯 쓴 웃음을 지으며 아기를 안으려던 손을 내려놓았다.
에밀리가 그녀를 멀리하는 것에 리차드는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당시 가업인 통조림 사업에 골몰하고 있었고 투자자들과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마 그런 그의 무신경함 때문에 에밀리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은 나는 자주 사촌 부부의 집에 방문하였다. 방문할 때 마다 나를 맞아주던 그녀의 화사한 미소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하진 않겠다.
“오빤 몰라.”
보모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에밀리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 애는 고된 육아에 지쳤던 모양인지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언제는 마음에 든다며 매번 이런 식이니. 얼마 전 테일러 양도 그렇고.”
“아, 테일러 양. 그래, 테일러 양 때문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얼마 전에 백화점에 나갔다가 테일러 양을 만났어.”
에밀리가 꺼낸 이야기는 신경증 환자의 광기 어린 기록 같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온 에밀리는 테일러 양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앨리스를 안고 거리 구경을 나온 보모를 보았다. 에밀리가 보모를 부르려는 순간 테일러 양이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테일러 양은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에밀리를 급히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가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여자예요, 사모님. 그 여자라고요. 절대로 잊지 못해요. 검은 단발에 붉은 구두. 맞아요, 그 여자예요.’
“에이 설마, 잘못 본 거겠지.”
에밀리는 고개를 거세게 저으며 역시 나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나를 흘겨보았다.
“절대로 그 여자와 애들을 함께 두지 않을 거야.”
리차드는 리차드대로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었다. 그는 집안 문제에 대해서는 에밀리에게 위임해버렸고 날마다 밤을 새 머리가 듬성듬성 빠져 두피가 드러나고 있었다. 금전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모양인지 그는 집안의 하인들을 하나 둘 줄이고 있었다. 리차드와 이야기해보는 것은 그에게 또 다른 골칫거리를 안겨 줄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그만 두지 말았어야 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니 크리스마스. 자정이었으니 크리스마스 당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리차드가 술김에 모든 고용인들에게 휴가를 주지만 않았더라도. 내가 이브를 사촌 부부의 집에서 지내기만 했어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에밀리는 맨발로 밤거리를 달려 우리 집까지 찾아왔고 나는 급히 경찰을 불렀다. 수사가 계속 되는 동안 그 애는 오열하다 혼절했고 또 다시 깨어나 목놓아 울다가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여느 때보다 잔잔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에밀리는 가족들끼리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결정했고 그녀의 결정을 들은 리차드는 무심결에 하인들에게 유급 휴가를 주어 버렸다. 고용인들은 들뜬 마음으로 짐을 싸서 고향으로 떠났지만 한 명은 남아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에 가지 않냐는 물음에 그녀는 고향이 전쟁 중이라 돌아갈 수 없다고 대답했고 가엾게 여긴 리차드는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에밀리는 그의 결정이 탐탁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보모를 내보내기로 했기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놔 두었던 모양이었다.
에밀리는 집이 멀지 않아 저택에 남아 크리스마스 만찬 준비를 하던 요리사와 식당에서 보모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흑인 요리사는 그녀의 말에 씨익 웃으며 맞장구를 쳤고 밤이 깊어 돌아갔다. 요리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던 그녀는 집이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한 동시에 아기를 방에 놔두고 왔다는 것을 퍼뜩 깨달았다.
불길한 기분이 든 그녀는 식당에서 빠져 나와 층계로 향했다. 계단에는 보모가 짐 가방을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에밀리가 의혹에 찬 눈빛으로 그녀에게 어딜 가냐고 물으려는 순간 보모가 붉은 입술을 길게 늘어뜨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 한다. 그 미소를 보자 에밀리는 온 몸의 신경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보모는 가방을 들고 현관 쪽으로 사뿐 사뿐 걸으며 에밀리에게 속삭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에밀리는 그녀가 나가고 나서야 겨우 몸을 움직였다. 집 안은 여전히 정적에 싸여 있었다. 시간은 열 시라 모두 잠들어 있을 법한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늘 밤 늦게까지 노느라 열 시에도 잠들지 않았다. 개미가 등을 기어가는 듯한 불안감에 에밀리는 층계를 올라갔다. 윗층에서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고 아이들 방으로 올라갔다.
복도의 불은 꺼져 있었다. 문 틈으로 빛과 방 이곳 저곳을 신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의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안도한 그녀는 문 손잡이를 잡았다.
“너희들 안 자고 뭐 하는 거니? 산타 할아버지께서 선물 안 주신다.”
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고 그녀는 숨을 멈추었다. 온 몸의 혈액이 거꾸로 솟고 사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사물이 흐물흐물 제 모습을 잃고 그녀는 바닥에 쓰러질 뻔 했지만 간신히 벽을 짚고 일어섰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보낸다면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솜씨 좋은 의사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병원에 보낸다면. 어서 응급 처치를 해야 했다. 피를 멎게 하려면 아이들의 머리를 찾아야 했다.
에밀리는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찾아 집안을 헤맸다. 그녀는 욕실에서 아이들의 머리를 발견하고 나서야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눈물은 그때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낱 같은 희망을 잡고 아기 방으로 들어갔다. 경찰들은 현장 수사 도중 벽의 손자국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기 방에 들어간 에밀리는 비명을 지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오열하는데도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집에는 오랜만에 모인 형제들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도 응접실에서 다과를 나누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편 역시 응접실에 있을 터였다. 그녀는 응접실로 달려갔다. 이 때 그녀의 구두 굽이 부러졌다.
응접실은 조용했다. 가족들 모두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벽난로 불빛이 미동도 하지 않는 그들의 얼굴에 물결 같은 그림자를 만들며 일렁거리고 있었다. 에밀리가 들어왔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응접실 안엔 불안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리차드는 창 밖을 응시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
에밀리는 찻잔을 든 채 눈을 감고 있는 고모를 불렀다. 금방이라도 차를 마실 듯 찻잔을 입에 대고 있는 고모는 말이 없었다. 에밀리는 고모가 든 찻잔에서 김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엄마, 지금…”
에밀리가 고모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고모의 찻잔을 든 손이 스르륵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고모뿐이 아니었다. 사촌과 고모부도 손목이나 팔 같은 신체 토막을 후두둑 떨어뜨리더니 결국에는 바닥에 쏟아졌다. 에밀리는 그 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 애는 울면서 가족들의 몸을 다시 제자리에 붙이려고 했다. 아버지의 머리를 목에 붙이려고 했지만 자꾸만 미끄러져서 소파에 기대 울었다는 그 애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뜨거운 감자였다.
“여보, 여보. 아빠가… 아빠가 자꾸 머리가 떨어져… 도와줘….”
에밀리는 울면서 남편에게 매달렸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팔을 잡은 그녀를 스르르 돌아보더니 부챗살이 펴지는 것처럼 가로로 동강나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밤 거리를 달렸다. 침침한 가로등 불빛과 개 짖는 소리 밖에 없는 밤 거리를 달리고 달려 내 하숙집에 도착했다. 하숙집 주인은 피투성이인 그녀를 보고 얼른 나를 깨웠다.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다.
에밀리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고모의 시신을 직접 봐야겠다고 우기던 아버지는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리차드의 사업은 망했다. 사건 현장을 빠져 나간 보모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와 리차드의 집을 팔아 리차드가 남긴 빚을 갚고 에밀리의 병원비를 댔다. 한동안 유령처럼 살았던 것 같다. 그 애에게 앨리스를 맡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숙집 여주인에게 맡기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데리고 있었어야 했다.
앨리스의 시신은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솜씨 좋은 장의사도 그 애의 목에 있는 바느질 자국을 숨길 순 없었다. 그 여자가 한 짓임이 분명했다. 증거는 없었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런 여자에게 한 순간이라도 호감을 품었다니. 나 자신이 지독하게 원망스러웠다. 월급이 두 달째 밀리자 고용인들은 말없이 떠났다. 남은 것은 어릴 적부터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안나와 톰 뿐이었다. 그 외 나머지는 진과 압생트였다.
“주인님, 손님이 오셨어요.”
안나는 주정뱅이가 된 나를 보살폈다. 안나의 옆에는 에밀리와 이름 모를 키 큰 사내 한 명이 서 있었다. 에밀리는 이유 모를 희열에 차서 나를 사내에게 소개했다.
“이 분은 그런 문제에 전문가셔, 성함이 어떻게 되셨죠 선생님?”
남자의 이름은 이상하게도 기억나지 않았다. 녹색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는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뭐, 이젠 내 집에서 교령회라도 하자는 거냐? 썩 꺼져, 난 이제 먹고 죽을 돈 한 푼도 없으니까.”
“아냐 오빠 들어봐. 이 분이 도와주신다고 하셨어. 이 분이 그 여자가 어디 있는 지 알고 계신대.”
그는 나와 에밀리를 이상한 건물로 데려갔다. 거기엔 그와 같이 녹색 로브를 걸친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심도 있게 토론하고 있었다. 혹시 에밀리가 이상한 종교에 빠진 것은 아닌 가 걱정이 되었지만 사냥개 같은 사내의 태도에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그는 보모의 정체를 이교의 망령이라고 밝혔다. 태어난 에밀리의 아이가 성스러운 아이라는 것을 알아챈 이교의 신이 망령을 보내 가족들을 모두 해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엔 광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아 집어치워, 네 놈들 속셈이야 뻔하지. 이 더러운 놈들. 잘 들어 난 이제까지 너 같은 놈들을 한둘을 본 게 아냐. 개 같은 자식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서 돈푼이나 뜯어내려고 혈안이 된 모양인데 본인 꼴이 더러운 줄 아쇼. 난 가겠어 에밀리.”
“살아 있었으면 지금 자네 나이었겠지.”
남자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우리 아들 말이오. 늦둥이에 외아들이었지만 그 여자 손에 죽어버리고 말았지. 나는 지난 삼십년 간 그 괴물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써왔다네.”
“윌리엄, 제발 가지마. 오빠가 없으면 복수할 수 없어. 제발. 제발 가지마.”
에밀리는 내 소매를 붙들고 늘어졌다. 결국 나는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 여자를 잡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마스였다. 우리는 계속된 추적 끝에 그녀가 이집트에 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제 내 삶의 목표는 그녀에 대한 복수가 되어 버렸다. 일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지금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삽을 들고 있었다. 나와 에밀리는 녹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묵묵히 땅을 파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곧 비라도 쏟아질 듯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우습게도 그녀는 여전했다.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신성한 밧줄로 포박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는 억울한 듯 몸을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에밀리는 손톱을 물어 뜯으며 그녀가 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습게도 우리는 그 여자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없어요, 자네도 삽을 들게.”
나는 마지못해 삽을 받아 들었지만 땅을 팔 엄두는 나지 않았다. 에밀리 역시 그걸 원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 애는 모래 위에 주저앉아 나를 끌어당겼다.
“윌리엄 나 토할 것 같아, 옆에 있어줘.”
사내는 혀를 차더니 내게서 삽을 빼앗았다. 땅이 어느 정도 파였는지 누군가 그녀를 봉인할 석관을 가져오겠다고 외쳤다. 그러자 한때 보모였던 그녀가 크게 몸을 들썩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녀의 눈물이 모래 위에 떨어졌다.
“아버지, 진정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녀가 하늘을 향해 외쳤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러다 해가 다 가겠군. 어서 관을 내려놔!”
사내가 거칠게 그녀의 목을 잡아채는 순간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뜻밖의 지진에 에밀리가 겁에 질려 내 손을 붙잡았다. 겁에 질린 것은 에밀리 뿐이 아니었다. 짐을 매고 서 있던 낙타들은 공포를 느끼고 사막 너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석관이 모래밭에 떨어졌다. 사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관을 옮기라고 소리쳤다.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석관을 들어 올렸다. 땅이 점점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칠어진 진동에 사람들은 석관을 놓쳤고 누군가 석관에 깔려 비명을 질렀다.
“멍청한 놈들! 빨리빨리 옮기지 못해!”
사람들은 다시 석관을 들어 올렸다. 몇몇은 부상자를 들어 옮겼다. 들것에 실려가는 그 남자의 다리에서 부서진 뼈가 드러났다. 나는 에밀리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얼른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에밀리의 시선은 그녀에게 박혀 있었다. 에밀리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녀와 모래밭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푸른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파도다!”
누군가 외쳤다. 파도였다. 바닷물이. 사막에 바닷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성난 들소 떼처럼 밀려오는 파도가 사람들을 덮쳤다. 사람들은 쓰러지고 저마다 무슨 소리를 외쳤다. 사내는 고함을 지르며 무엇인가를 지휘했다. 나는 에밀리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았다. 비록 내 딸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녀는 내 유일한 혈육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아 물을 뚝뚝 흘리는 우리에게 찾아와 당신들 덕에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악수를 청하는 듯 손을 내밀었지만 우리는 외면했다. 그녀는 이제 땅 속 깊이 석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에밀리를 용서했다. 무사한 것은 사내와 우리 둘뿐이었다.
뉴욕으로 돌아가고 나는 새 일자리를 찾았다. 이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 저곳 이력서를 넣은 보람이 있었는 지 나는 새로 창간된 작은 신문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머리가 벗겨지고 금색 안경을 쓴 편집장은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그는 이전 직장에서 좋은 소개를 많이 들었다며 나와 악수했다. 따뜻한 손이었다.
에밀리는 내가 장만해 준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아직은 충격이 큰 모양인지 그녀는 집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간병인을 붙여주었고 간병인은 내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에밀리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애가 죽기 며칠 전 그 애는 한밤중에 내게 달려와 공포에 가득 찬 호소를 터뜨렸다. 그 애는 간호사는 아무것도 모른 다면서 심각한 불안을 호소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실신하는 바람에 독한 브랜디를 꺼내 먹여야 했다. 그 애는 안나가 덮어준 담요를 끌어안고 안절부절하며 말을 쏟아냈다.
“그 여자가 살아 있었어, 나는 알아. 그 여자는 새야, 어디든지 쫓아와. 그 여자가 내 창문에 왔다 갔어. 내가 느꼈다고, 윌리엄. 오빠 만은 날 믿겠다고 약속해줘. 길을 걸을 때마다 그 여자 발소리가 들린단 말야. 의사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아. 그 사람들도 한 패일 거야. 제발 윌리엄 내 말 좀 믿어줘. 오빠라면 날 믿어줄 거지? 오빠도 봤잖아.”
“그래, 네가 불안해 하는 건 알아. 하지만 이제 그 여잔 없어. 너도 그 여자가 묻히는 걸 봤잖아. 충격이 너무 커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거야. 너무 불안해 하지마. 괜찮을 거야.”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밤 거리에서 허공에 식칼을 휘두르며 발작을 일으키다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 그 애의 부고가 전해져 왔다.
답답한 기분이 들어 어딜 가냐는 안나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밤 거리는 고흐의 그림처럼 밝고 아름다운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에밀리, 불쌍하기도 하지. 나는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이야기 하는 커플 한 쌍을 지나쳐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 안은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빛나 사색하기에 좋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공원을 순찰하는 관리인의 손전등 불빛이 보였다. 홀로 걷고 싶었던 나는 관리인의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발걸음을 한 발짝 떼는 순간 뒤에서 ‘또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 누가 있었던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사람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밤 공원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보며 스쳐 지나갔다. 나는 멋쩍게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씁쓸한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워드 그대로 복붙했더니 띄어쓰기가 붙어서 나오네요:3..... 일일히 수정하기 어려워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앜ㅋㅋㅋㅋㅋ 제가 아무리 띄어쓰기를 수정을 해도 새로운 붙여쓰기가 또 다시 생겨낰ㅋㅋㅋ욬ㅋㅋㅋ 이게 무슨 일이죠ㅋㅋㅋㅋ
으핰ㅋㅋㅋㅋㅋㅋㅋㅋ 띄어쓰기 붙는 거 수정했어요! 블로그에 복붙해서 띄어쓰기 후루룩하고 다시 복붙!
근데 이거 댓글이 안써지는데 원래 그런가요:3....? 자꾸 막 댓글 오류나고:3... 댓글쓰고 싶은데....! 으앜ㅋㅋㅋㅋㅋㅋ 이게 뭐짘ㅋㅋㅋㅋㅋ
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