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비스트 챌린지 – 후반 (6)
“이야... 이번에는 진짜로 죽는 줄 알았어. 아이고 다리야..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잘 풀렸네.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야.”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비스트의 공략이었어. 도저히 잘 풀렸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야.”
“여동생 양은 여전히 고지식하네. 그렇게 인상을 써대면 주름살이 늘걸?”
“니아, 너는 정말..”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전원이 살아 있잖아. 모두의 노력이 모두의 목숨을 지켜냈어. 이 이상의 결과를 바라는 건 욕심이야. 아니면 뭐? 우리 중 한두 명이 목숨을 잃더라도 비~ 양을 공략하는 편이 나았다는 거야?”
“그, 그런 말은 아니지만..”
지면에 털썩 주저 않은 니아가 뭔가 석연치 않아하는 코토리를 질타하자...
“속으면 안 돼요, 코토리. 모두의 노력 같은 소리를 하지만, 니아는 영력을 되찾은 후로 비스트와의 전투에서 별다른 공헌을 하지 않았어요.”
“뜨끔.”
마리아의 차가운 반론이 통신으로 들려왔고, 의성어를 입에 담으며 부르르 떤 니아가 도끼눈을 자신을 노려보는 다른 이들에게 변명을 했다.
“그, 그게, 너희도 알잖아!? 내 라지엘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단 말이야~! 미래기재에는 시간이 걸리고, 애초에 영력을 지닌 사람에게는 효과가 그다지 않는데다, 마지막 희망인 양산형 마리아는 출연 금지를 당했거든?!!”
“당연히 무리죠. 저의 연산 기능은 위그드 라무스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더 유지하기 위해 풀가동되고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할애할 여력은 없었어요. 그리고 남에게 기대지 말아줬으면 좋겠군요.”
“으, 으윽.. 그, 그렇게 치면 나뿐만 아니라 쿠루밍도 아무것도 안 했잖아!!”
“어머어머, 죄송해요. 저의 자프키엘은 영력뿐만 아니라 저의 ‘시간’도 소모한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참전하지 못한 건 인정하겠어요. 여러분과 셸터에 피난한 분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을 이해해주신다면 마음껏 날뛰었을 텐데 말이죠. 후후.”
“아..”
“뭐, 쿠루미는 어쩔 수 없지.”
쿠루미의 어쩔 수 없는 이유에 정령들이 납득하면서 식은땀을 흘렸고...
“하지만, 아무것도 안 했단 말은 좀 너무하군요. 여러분의 활약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을 먹는 성’으로 비스트 씨의 발을 최대한 묶었답니다. 또한..”
“또한?”
쿠루미가 뭔가 더 있는 걸 암시하자...
“우후후, 아직은, 비밀이랍니다.”
일단은 감췄다.
“뭐어~! 너무해! 완전 약았어~! 거창한 뭔가가 있는 척 말 끝을 흐리면 다들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마~!!”
“뭐, 그래도 쿠루미니까..”
“뭔가 사정이 있을지도.. 몰라.”
“왜!? 오 다들 쿠루밍만 봐주는 건데!? 그렇게 치면 나도 그냥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거든~?!”
“어, 그럼 뭘 했는데, 니아?”
“후, 아직은, 비밀이야.”
니아가 쿠루미에게 열폭했는지 쿠루미처럼 웃음을 흘리며 따라했더니...
“또 그딴 소리 하기는..”
“니아, 솔직하게 사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쿠루밍도 똑같은 말을 했는데, 왜 반응이 천지차이인 건데~!!”
오히려 차가운 반응만 받았고, 벌떡 일어서고는 울면서 내 품에 뛰어들었다.
“우엥~!! 소년~! 딴 애들이 괴롭혀~!!”
“하아.. 진정해.”
그런 니아를 받은 나는 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고, 이를 본 정령들이 다양한 감정이 담긴 시선으로 니아를 노려보자, 니아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들고 내게서 떨어졌다.
“오케이~, 진정해 브라더~. 방금은 내가 경솔했어. 특히 오리링. 진심 어린 살기 좀 뿜지 말아줄래?”
“살기를 뿜은 적 없어.”
“저, 정말이야...?”
“살의를 읽힌다는 건 미숙하다는 증거야. 프로는 그저, 죽음이란 결과만을 남길 뿐이지.”
“고르고13 같은 흉흉한 소리 좀 늘어놓지 마~!!”
오리가미의 무서운 소리에 니아가 또 울었고, 그런 니아를 본 정령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30화 비스트 챌린지 – 후반 (7)
“꺄아~! 여러분, 정말 멋졌어요~! 지이이이이이인짜 끝내줬다니까요~!! 오래간만의 보는 영장 차림도 최고네요~! 이참에 사진 좀 찍어두죠! 혹시나 카메라나 스마트폰 가지고 계신 분 없나요!? 아! 녹트 씨, 스마트폰 빌려주세요!!”
“웃기지 마, 이 변태 아이돌아! 절대로 안 빌려줘!!”
“에에~, 제발요~!!”
“너 저번에 소닉의 우주산 초고화질 카메라를 훔친 걸 들켜서 소닉에게 잡혀 게이물이란 게이물을 강제로 시청했다면서!!”
“윽!!! 그건.. 말하지.. 마세요..”
녹트 씨가 눈을 반짝이며 스마트폰을 빌려달라는 미쿠의 요청을 강하게 거부했고...
“그나저나 합체한 야마이라..”
“야마이 씨라고 부르면 되는 거죠? 덕분에 살았어요.”
“네가 아니었으면 싸움이 더 오래 걸렸을 걸?”
“부정, 나는 너와 녹트와 같이 마무리를 했을 뿐이다, 네로. 포석은 그대들이 전부 깔아줬지. 자랑스러워해라, 소녀들이여. 이것은 그대들의 승리다.”
“윙크까지 한 네가 스타일리쉬해보이네.”
나와 네로 씨는 카구야 씨와 유즈루 씨가 합체한 모습인 야마이 씨를 봤다.
“그럼 야마이 씨는, 카구야 씨와 유즈루 씨가 인간이었던 시절의 모습인가요?”
“‘드래곤볼’의 퓨전?”
“설명, 나는 카자마치 야마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 카자마치 야마이와 동일한 존재는 아니다. 이 몸은 어디까지나 제각각 성장한 야마이 카구야와 야마이 유즈루가 융합한 형태지. 적어도, 생전의 나는 이렇게 네로처럼 키가 크지 않았으며, 이렇게 ‘끝내주는 걸’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그 풍만한 가슴을 만지지 마라 야. 저기 ‘쟤’가 반응했다고.”
다른 정령 분들도 야마이 씨를 보고 있을 때...
“우효~!!”
“고전 만화의 괴성?”
“야, 야야, 야마이 씨! 저, 저기, 허그 좀 해도 될까요...?”
“특별, 못 말리는 아기 고양이구나. 이리 오렴.”
“하아아아아앙!! 언니이이이이이이이이!!!”
미쿠 씨가 안면으로 흘릴 수 있는 다양한 액체들을 흘리며 야마이 씨의 가슴에 뛰어들었지만...
“우왓!?”
“경악.”
갑자기 야마이 씨의 몸이 갑가지 옅은 빛을 뿜다가 카구야 씨와 유즈루 씨로 나누어졌고...
“깜짝 놀랐네!!”
“이건..”
두 사람이 분열되면서 떨어진 후에...
“우꺄~!!!?”
야마이 씨의 품속으로 뛰어들려했던 미쿠 씨는 두 사람 사이에 뛰어들어서, 그대로 지면에 내동댕이쳐졌다.
“뜻밖의 감촉!!?”
“이놈아, 침이란 침을 다 흘리고 다닐거면, 그냥 아이돌 그만해라. 추잡하게스리.”
“언니는요!? 언니는 어디 가신 거죠!!?”
“아~, 미안해. 시간제한이 다 된 것 같아..”
“사죄, 원래 억지로 융합을 했던 것이니까요. 지금까지 유지된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마, 맙소사.. 이렇게 되면, 카구야 양! 유즈루 양! 두 분이 양쪽에서 저를 꼭 안아주세요!!”
벌떡 일어선 미쿠 씨가 꿩 대신 닭 심상으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왓! 잠깐, 진정해!!”
“전율, 굴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카구야 씨와 유즈루 씨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그렇게 달려들고 싶으면...”
네로 씨가 미쿠 씨의 뒤에서 미쿠 씨의 허리를 양팔로 감아 잡고는...
“!! 남자의 허그!!?”
“수플렉스 시티로 달려들라고!!”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미쿠 씨를 들어 올려서 위로 올리고는 그대로 뒤로 넘겨서 바닥에다가 찍었다.
“아아아아아...”
“우와.. 브록 레스너를 직접 보는 것 같네.”
“의문, 수플렉스 시티라는 단어를 써도 괜찮아요, 네로?”
“걔는 다른 세계의 레슬러니까 괜찮아. 게다가 걘 날 못 이기거든.”
“납득, 확실히..”
“힘 쌘 레슬러가 어떻게 네로를 이겨? 빅 쇼도 못 이길 것 같고..”
“이 세계에도 WWE가 있으시군요.”
31화 비스트 챌린지 – 후반 (8)
“? 시도?”
“왜 그래?”
“아, 아니.. 비스트를 공략하지 못한 건 유감이지만, 모두가 무사해서 기뻐. 그런데..”
“신경 쓰이지?”
“나도 네로도 그 반응을 눈치 챘어. 그건..”
“그래.. 목소리와 눈에 어린 빛. 둘 다 이전의 ‘그녀’와는 명백하게 달랐어. 그건 마치... !!”
네로와 녹트의 Jackpot의 힘을 받은 야마이의 공격을 받은 후의 비스트의 반응을 떠올린 나는 어떤 생각을 했고...
“저기, 마리아. 비스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인계(隣界)는... 이미, 존재하지 않잖아?”
마리아에게 통신으로 이런 걸 물어보자,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크게 놀랐다. ‘비스트가 어디로 향했냐’는 것에...
“적어도.. 아까 전의 반응은 미카엘로 공간에 낸 ‘구멍’이나 일반적인 로스트(소실)와는 명백하게 달랐어요.”
“그 말은..”
“... 이제까지의 정보만으로는 불명, 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네요.”
“윽..”
이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스트는 이레귤러 그 가체라고 과언(過言)이 아닌 정령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마리아를 통해 확인하자, 내 속이 옥죄어드는 것 같았다. 비스트가 상처를 치유하게 위해 퇴각한 것이라면 그나마 났다. 그렇다면 그녀를 구원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사라지기 전의 표정.. 어쩌면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시도.”
“코토리?”
“너무 자책하지 마. 너는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나는..”
구원하지 못했다. 그 정체불명의 정령을.. 절망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애를.. 그 검을 지닌 소녀를..
“? 뭐야!?”
“유성!?”
“!?”
이때, 내 앞에서 유성이 떨어지더니...
“저건!?”
그 유성에서 나오는 빛에 내 시야가 가려졌고, 그 빛이 잦아들자...
“이건..!”
“비스트.. 씨의 검!?”
내 앞에는 한 자루의 검이 지면에 꽂혀있었다.
“설마, 그 광년의 10개의 검들 중 열 번째 검!?”
“게다가 외날의 대검..”
“!! 그러고보니, 이 검만은 전투 도중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비스트의 손톱들이 합쳐져 산달폰으로 변한 것에 뭔가 이상했는데..”
“그러게, 녹트. 그럼 이건..!?”
이제야 나타난 검을 모두가 보았고, 가까이서 본 나는...
“아! 시도, 조심해.”
“그래..”
각오를 다지고는 그 검의 자루를 잡았다.
“!!!”
그랬더니, 검이 맥박 치면서 변모하여...
“나헤마(포학공)...!!?”
또 하나의 토카.. 텐카의 검. 산달폰과 쌍을 이루는 ‘마왕’ 나헤마가 되었다.
“어째서 나헤마가..? ?”
이때, 나헤마를 잡은 나는 나헤마에서 무언가가 스며들어오는 듯 한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가 머릿속에 말을.. 내게 호소하는 듯한..
“할 수 있어.. 이 나헤마만 있으면.. 그 애를 쫓을 수 있어..?”
그런 호소를 내가 반쯤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 시도?”
“뭐라고 했어?”
“산달폰은 원래, 보이지 않는 것을 베는 검.. 온갖 조리, 개념, 그리고 세계와 세계 사이의 ‘벽’마저.. 그런 산달폰과 쌍을 이루는 나헤마도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상냥한 토카는 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권능을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또한 너는 미숙해서 그 힘을 사용하지 못했던 거다, 인간.”
“!! 그 말투..!!”
“토카의 또 따른 ‘이면’.. 소닉이 늘 다크 토카라고 부르며 경계시했던..!!”
“것보다, 말이 너무 심한 신 거 아닌가요!?”
“!!”
머릿속에 떠오른 목소리를 그대로 중얼거리다보니...
“야 시도, 괜찮냐?”
“어.. 어, 네로..”
모두가 나를 걱정했고, 정신을 차린 나는 마음을 다잡고 나헤마를 뽑아 들어봤는데...
“마왕을 손에 쥐는 건 처음이야..!”
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헤마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기운의 중압에 눌려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 좋아, 이제... 갈 수 있어. 나 혼자.. 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