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프라는 90년대에 시작해놓고선 먹선, 데칼을 제외한 도색은 아예 시도 조차 해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크롬 마커펜 리뷰 동영상을 보다 T-1000이 생각나는 강렬한 색상에 눈이 번쩍 뜨이게 되었고
때마침 싸게 풀린 RG 크로스본 건담과 함께 주문해버렸습니다.
질러놓고 가만 보니 저 빨간 흉터를 씰로 때우는게 너무 맘에 걸린 나머지 메탈릭 레드 마커도 추가 주문해버렸습니다.
크봉이는 작다 작다 말만 들었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는 그 크기를 가늠키 어려워서 항상 궁금했던 모델인데
싸게 사서 다행입니다.
노안 판독기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조립이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수술 집도하듯이 긴장감을 갖고
조립에 임했습니다..ㅋㅋ
RG퍼스트의 코어파이터를 체험해봐서 크봉이의 그것이 엄청 작다고는 생각이 안드네요.
대신 정밀한 디테일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크기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다리의 디테일이 RG답지 않다는 점에서 좀 불만이었습니다.
RG 특유의 오버 디테일, 투톤 분할이 전혀 없어서 2000년대 MG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꾸로 조립은 역대 RG 중에서 가장 간단했습니다.
반대로 스커트는 손에 꼽을 정도로 디테일 작살입니다.
여기 조립이 참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하체 완성까지 전혀 어려운건 없었습니다.
가슴으로 넘어오면 한가지 주의해야할 파츠입니다.
콕핏해치 옆에 붙는 부품인데 보시다시피 정말 작아서 잃어버리면 찾기 정말로 힘듭니다.
저것만 주의한다면 모든 RG중에서 가장 간단한 구조의 가슴입니다.
소체에서는 어드밴스트 조인트가 가슴 프레임인데 여기다 외장 몇 조각 붙이면 끝이라 HG가 생각났습니다.
다리에서 느꼈던 실망감과는 달리 팔의 디테일이 무지막지하게 정교해서 감동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조립이 조금 어려운 편입니다. 쪼그마한 부품에 언더게이트가 주렁주렁 열려있어서
다듬는데 시간을 꽤 할애했습니다.
팔도 이중관절로 잘 굽혀지는 편이고 특히 뒤꿈치 브랜드마커의 디테일도 우수합니다.
크봉이가 노안 판독기라는 것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할 헤드입니다.
원래라면 씰로 처리할 빨간 흉터를 난생 처음 도색해봤습니다.
대구빡 파츠도 너무 작아서 아예 런너에 붙은 채로 칠했는데 뭐 칠하는 거 자체야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아래 쪽 깊숙한 곳은 일반 면봉이 들어가지를 않아서 극세 면봉으로 덜덜거리며 삐져나온 곳을 지웠습니다.
그래도 결과물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정말 보람이 넘쳤습니다.
모든 부품이 너무 작다는 것만 제외하면 의외로 조립은 금방 끝났습니다.
헤드를 제외한 가조립입니다.
정말 작다는 것 + 상체의 정교함과 다리의 심플함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먹선과 크롬마커펜으로 최대한 커버해보고 싶었습니다.
시험삼아서 버니어에 크롬칠해봤는데 광빨에 뻑이 가버렸습니다.
이런 저주받은 똥손도 맥기 도색을 할 수 있다니.. 기술의 발전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맥기빨에 갑자기 미쳐서 무장에도 마구 칠하다가 마커 지우개 펜이 엥꼬나버렸습니다.
근데 모니터 클리너액으로도 잘 지워지는걸로 봐선 알콜계 용액이면 ok인 것 같습니다.
먹선 + 부분도색 + 씰로 완성했습니다.
다리의 모자란 디테일을 어찌할 방법은 못찾고 대신 무릎 덕트랑 발에다 크롬 매니큐어를 칠해줬습니다.
씰의 양은 여타 동급 모델에 비해 적은 편인데, 킷이 너무 작아서 대부분 재단하는데에서 내공소모가 심했습니다.
특히 스러스터 맨 끝 v자 씰 옆에 미세먼지만한 빨간 점은 압권이었습니다.
제일 걱정했던 곳은 가슴에 크로스본 뱅가드 마크였는데 오히려 이쪽은 각이 정직해서 재단하는게 의외로 수월했습니다.
제가 혈마검을 무서워해서 티타늄 커터칼로 어찌 해보려다 씰이 옆으로 휙 밀려나는 바람에
핀셋으로 들고 쪽가위로 덜덜거리며 잘랐는데 끝내고나니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졌습니다.
미숙하다보니 눈과 손이 참 고생하네요.
그래도 버니어는 첫 연습치고 이쁘게 돼서 만족했습니당.
HG 리바이브버전 퍼스트와 RG 윙건담과의 크기비교를 해보면 머리 하나 차이가 납니다.
RG 중에서 특대형인 지옹과 뉴건담을 놓고 비교해보면 이게 같은 스케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덩치 차이가 많이 나는게 눈에 뜁니다.
그나저나 저 두 킷은 건프라를 취미로 가졌다면 무조건 조립해봐야할 최고의 기체인 것 같습니다.
제가 크로스본에 끌린 이유가 저 간지나는 망토와 빔 잔버 때문입니다.
몸만 보면 영락없는 우주세기 기체인데 흉포한 해적같은 페이스에 후드를 둘러쓰고 거대한 곡도를 든 모습이
너무나 개성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망토가 프라 재질이다 보니 가동이 제한되고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가슴 위로 붕뜨는 단점은 있었습니다.
포즈에 소질이 없어서 건담홀x 리뷰영상 포즈를 참고해서 액션베이스6에 올려봤는데
무게가 피겨라이즈보단 무거워서 부담스럽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간지가 나는 디자인인데 크기가 작은 점이 장점이 돼서 전시하기 부담이 없는 점이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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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디 작은 부품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점을 빼면 조립 자체는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덩치가 작은 만큼 부품의 결합도 빡빡하게 설계되어있고 좁은 면적에 언더게이트 처리된 런너가 많아서
다듬는 것에 일정수준의 도구와 집중력이 필요한 것에서 만만찮은 키트가 맞구나를 느꼈습니다.
프로포션은 단점을 꼽기 힘들 정도로 간지나게 빠졌고 특히 2006년에 발매된 MG 버카에서 지적받았던
색분할을 비롯한 총체적 문제점을 더 작은 스케일로 모조리 보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본체도 그렇지만 무장의 색분할에서 격세지감이 느껴졌네요ㅎㅎ
그런데 유독 다리 만큼은 MG의 축소복사판 처럼 느껴질 정도로 디테일이 밋밋한 점이 개인적으로 좀 그랬습니다..
파츠 고정성은 2010년대 극 후반 키트답게 평균적으로 좋은 편인데 무릎과 헤드 정수리, 빔 잔버 파츠의 고정성이
조금 느슨했습니다.
가동성은 괜찮은 편입니다. 어깨 가동과 발목은 조금 제한된 느낌인데 생긴게 워낙 간지가 나서 조금만 움직여도
역동적으로 보여서 커버가 가능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프라모델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기초적인 스킬을 공부할 수 있게 해준 키트라서
앞으로도 애착을 많이 가질 것 같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요일도 즐거운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