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남긴 글입니다.
1.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며칠 전, 잠에서 깬 아내가 얘기했다.
'꿈속에서 아침에 일어났는데, 우리가 당장 이사를 가야 한대. 심지어 짐도 다 싸져 있었어. 이렇게 난데없이, 갑작스레 이 집을 떠나야 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펑펑 울었어.'
나는 대답했다.
'엄청나게 좋은 집으로 가는 거면 괜찮지 않을까?'
아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니, 그래도 많이 울 것 같아. 어찌 되었건 내가 여태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집인걸.'
'그러네, 이 시절과 공간을 아주 많이 그리워하게 될 거야.'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살아온 아내와, 자취를 하며 한 해 이상 머무른 공간이 없었던 나에게, 우리가 함께 맞이한 이 집에서의 세 번째 여름은 작년보다 조금 더 반갑고, 소중하며, 그립다.
늦은 오후, 아내가 모처럼 길고 탄탄한 호흡으로 요가 수련을 한다. 생리 전 증후군으로 추워하고 힘들어하던 그의 몸과 마음이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은 모양이다.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시선과 숨에 집중을 담아 크고 부드러운 동작을 하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다워 오늘도 또다시 그에게 반한다. 나는 그가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요가에 몰입할 수 있도록 플로우의 에너지 레벨에 맞춰 배경 음악을 틀어놓는다. 역시 아내의 기운이 집 안에 느껴지는 것이 좋다.
며칠 전, 그가 힘 없이 소파에 누워 있길래 콩 주머니를 뜨겁게 덥혀 그의 다리 밑에 두고, 담요 여럿으로 꽁꽁 감싸 두었다. 그리고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꾹꾹 주물러 주었다. 마사지는 내가 아내에게 전하는 사랑의 언어 (love language)이다. 물을 한 컵 떠다 주고, 그를 안아 주고, 그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몽실몽실하고, 따끈따끈하고, 그릉그릉 거리는 아가 고양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의 품 안에 넣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이런 훌륭한 '복지'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생리 전 증후군을 겪을 일은 없지만, 내 나름대로 종종 걱정과 불안, 우울감, 무기력에 가라앉곤 한다. 그럴 때면 그는 나에게 말한다.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맛있는 것을 먹이는 것 밖에는 없어'.
그렇게 그는 나에게 만둣국을, 마라탕을, 지코바를, 찐빵을, 순대를 먹인다. 맛있는 음식, 아마도 그것이 그의 사랑의 언어일 것이다. 그의 음식을 먹으면 나는 언제나 그 어두운 감정의 골에서 빠져나올 용기를 얻게 된다.
이처럼 살다 보면 둘 다 정말 에너지가 넘칠 때도 있고, 둘 중에 하나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고, 아주 가끔은 둘 다 지쳐 있을 때도 있다. 때때로 어두운 감정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이 또한 내가 조절하고,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감정에 사로잡히고, 먹히는 것이 아니라 객관화하고 나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나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의 아내, 그리고 우리 집 고양이들까지 끌어내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잠깐 산책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테라스에 앉아 우리 집 작은 올리브 나무 '올리볼리'에 예쁘게 핀 꽃들을 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예능을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가 없을 땐 가능한 일찍 잠을 자러 간다. 역으로 아내의 감정선이 평소에 비해 가라앉은 날에는 나의 감정을 잘 유지하고 그를 배려하여 나의 에너지가 그에게 흘러들어 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도 나도 에너지가 없는 날이면, '서로 둘 다 피곤한 날이다', 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서로의 어두운 생각과 말이 서로를 더 어둡게 만들지 않게 마음을 잘 다독인다. 아내는 아내만의 언어로, 그러나 비슷한 모습으로 나와 고양이들을 배려하고 아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집의 따뜻한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는 결국 우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한다.
연말이나 연휴, 혹은 은퇴 후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때 가족 간 싸움도 잦고, 부부의 이혼도 많다고 한다. 나름 '즐거워야' 할 시간에도 그러한데, COVID-19 판데믹으로 집 안에 갇혀 강제적으로 시간, 공간, 그리고 불안을 거의 24시간 내내 공유하게 된 지금, 구성원 간 다툼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정 폭력마저도 늘고 있다는 뉴스를 간간히 접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집 안에서 우리가 갖는 역할과 관계에 대해 조정이 필요했다. 내가 밖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집안일을 거의 모두 담당하고 있는 아내의 터전에 불쑥 하루 종일 자리 잡아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지, 이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빵도 많이 굽고, 파스타도 만들고 싶은데 기본적으로 집안일 레벨은 낮아 뭐가 어디 있는지는도 몰라 다 물어보면서 아내가 '잔소리'를 하는 것을 성가셔하는 모습이 성가셨을 것이다. 두, 세 번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때론 같이, 그리고 때론 따로 시간과 공간을 보내는 법을 익혔다. 이 경험은 나중 되돌아보았을 때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를 나누며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고, 배려하고 싶고, 나를 배려해주는 사람과도 쉬운 일이 아닌데, 서로 배려할 일 없는 사람들끼리, 혹은 심지어 싫어하는 사람들끼리 지금 같이 갇혀서 살고 있다면 얼마나 돌아버릴 것 같을까?'
'아 진짜, 너 예전에 같이 살던 [검열 - 열여덟] 새끼들이랑 너 방문 앞에 똥 싸놓던 걔네 치와와 새끼.'
화장실에 난교 후 별의별 타액을 묻혀놓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맥주 캔 던지고, 오줌 싸던 새끼들과 같이 살던 때였다.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니라 너무나 다행이다.
2.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빵을 굽기 위해 일찍 일어난 아침, 오븐에서 새어 나오는 남은 열기를 느끼며 집안일 몇 가지를 해 놓고, 마침 일어난 아내와 같이 빵을 먹었다. 꾸준히 사워도우 빵을 굽고 있는 요즘, 매번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배우지만 어찌 되었건 그 나름대로 맛있다. 바삭하고, 고소하고, 살짝 시큼하고, 쫄깃한 나의 빵에 아내가 만든 레몬 제스트 딜 버터를 곁들이면 빵 한 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겠다, 탄수화물로 한가득 배를 채웠겠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마루 소파에서 선잠을 잘까 하다가 안방으로 가 커다랗고 뭉실뭉실한 이불, '클라우디오' 안에 몸을 묻었다. 클라우디오 안을 다리로 휘적거리며 느끼는 보드라운 시원함이 기분 좋았다. 열린 창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담긴 햇살의 냄새를 맡으며 잠에 들었다.
사실 나는 낮잠을 꺼려해 왔는데, 이는 내가 밤에 자고 일어나는 것만큼이나 잠에서 깨어나는데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고작 30분 정도 낮잠을 잤을 뿐인 데도 제정신이 들 때까지 거의 한 시간 정도를 멍하게 앉아 흘려보내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러다 어떤 날, 너무나 졸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선 정신을 차리려 기를 쓰지 않아 보기로 했다. 해야 한다 생각했던 일은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멍하게 뒹굴거리고 있으려니 햇빛에 빛나는, 흔들거리는 나뭇잎들이 예뻤다. 겨울에도 낙엽이 지지 않는 나무지만, <마지막 잎새>의 존시인척 이파리들을 한참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왠지 심심해져 마루로 나갔다. 정신이 맑았다.
꺼려한 것은 낮잠이 아니라 초조함이었다. 밤엔 네 시간씩 자며, 낮잠이라곤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서 10분쯤 졸다 일어나 카페인과 당이 흘러넘치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고 공부하던 치열한 시절, 시간에 공백을 두면 안 될 것 같던,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도태될 것 같던 그 때의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여유가 있듯, 10년 후의 나를 위해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조금 더 있다가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의 낮잠에서 깨니 오늘도 햇빛과 바람이 따스하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나의 눈에 어른거리는 이파리들이 f/1.4로 조리개를 활짝 열고 찍은 사진의 보케처럼 예쁘게 부하다. 눈을 찡그리니 저 회색 소파 한가운데 갈색, 흰색 뭉치가 있는 것 같다. 보리와 같이 낮잠을 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내가 낮잠을 자건 말건 보리는 어차피 거기서 낮잠을 잘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내가 어릴 적, 아니, 성인이 되고도 아빠는 꼭 그렇게 소파에서 졸았다. 그냥 침대에 가서 자면 될 것을 대체 왜 가족들도 부스럭거리고, TV 소리도 나고, 빛도 밝은 마루의 소파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아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다. 아는 데도, 왠지 나 또한 소파에서 그렇게 선잠을 잔다. 잠결에 들려오는 집의 소리가 좋다.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소리, 그리고 그가 틀어 놓은 노동요의 소리, 보리에게 쫓기다가 하악질하는 구름이의 소리, 가끔은 내 명치 위로 올라와 그릉그릉거리는 보리의 소리가 좋다. 어릴 때나 부리는 줄 알았던 잠투정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자더라도 집의 따스함을 계속 느끼고 싶은 투정.
아내가 이 집에 처음 오자 마자 꾸몄던 '창 속 고양이'. 이 녀석이 우리가 자는 동안 나쁜 꿈으로부터 지켜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지만, 고양이가 다 그렇듯 늘 제멋대로이다. 여전히 나쁜 꿈을 꿀 때도 있고, 어쩌면 원래는 훨씬 더 많이 나쁜 꿈을 꿀 것을 이 녀석 덕분에 덜 꾸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정말 잘 자는 편이었다. 아내 말로는 내가 잘 잘 때에는 기절하듯 3초 만에 잠든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 밟아도 잘 안 깨고 잘 잘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잠을 잘 자지 못하다 못해, 불면증을 경험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캔 던지던 놈들이랑 살던 때였다. 밤 내내 너무 시끄럽고, 냄새나고, 불쾌해서 그 밤이 찾아오는 것들이 무서웠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음악 소리, 병, 캔을 던지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신음 소리,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고, 그 '재미'를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신경과민으로 몰아버리는 그들 때문에 우울과 분노에 차서 지낸 시절이었다.
1년을 어떻게든 견뎌내고, 계약이 끝날 때 즈음이 되었다. 필사적으로 아파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대학원생으로 받는 쥐꼬리 봉급(stipend)으로는 너무 비싸거나, 만약 싸다면 '사실이기엔 너무 조건이 좋은 (too good to be true)', 즉, 허위 매물이었다. 스무 번, 거의 서른 번을 당하고 나서 거의 포기할 때쯤, 사기의 온상인 온라인 거래 사이트 Craigslist에 매물 하나가 올라왔다. 아파트의 이름, 주소, 간단한 설명, 그리고 전화번호가 아주 촌스럽고 의심스러운 폰트로 적혀 있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too good to be true'였다. 내가 그간 자취를 하며 그리던, 그리고 이제 곧 결혼할 사람과 같이 살 때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든 조건을 갖춘 매물이었다. 그로 얘기하자면,
적당한 월세
반려 동물 가능
방 하나, 화장실 하나
학교에서 자전거로 30분 반경
클라이밍 짐 30분 반경
바다 30분 반경
트레이더조, 랄프 등 식료품점 걸어서 10분 반경
걸어 다니기 좋은 치안
주차장
고속도로
아파트 짐, 수영장...
아무리 그전에 고생했다고 하지만, 사치스럽고 욕심 많기 그지없는 조건의 리스트였다. 허위 매물에 이제 충분히 당했으니 더 당하는 것도 피곤하지 않아 바로 전화를 했는데, 아무 때나 신청 서류를 작성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어느 흐린 날 아침, 아직 익숙하지 않은 지리에 한참 헤매며 아파트 앞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분명 아무도 문 안 열어주고 나는 엿이나 먹겠지, ' 했는데 웬걸, 매니저가 반갑게 맞아주더니 아파트를 소개해 주었다. 아무리 텅 비었다지만 생각보다 마루가 너무 넓어 내 목소리가 울렸다. 건축된지 오래 된 아파트라 방도 크고, 수납 공간도 (그때 생각하기에는) 많았다. 카페트도, 가스레인지도 다 새 것, 미안하지만 냉장고만은 내가 사야 한다는 말에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떼는 말이야' 급으로 아내에겐 몇 번도 더 한 얘기지만 이사하는 날은 정말 힘들었다. 아싸 중에서도 아싸 인 데다 중요한 시험 전 주말이라 도움을 요청할 동기도 없어 혼자서 소파나, 침대, 테이블 등을 커다란 렌털 트럭에 싣고, 비루한 운전 실력에 핸들을 땀나게 꽉 잡고 덜덜 떨며 새 아파트로 옮겼다. 힘들었으나 그 새끼들에게서 해방된다는 사실에, 나와 아내만의 첫 보금자리를 준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신이 나고 가슴 벅찼다. 해 뜰 무렵 시작한 이사는 렌털 업체가 영업을 마친 후에야 끝나, 트럭을 반환하고 키는 보관함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내 아파트 열쇠를 트럭 안에 놓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재수가 안 좋다가도 좋게도 세상 초짜로 보이던 내가 걱정되었다며 마침 잠깐 나오신 업체 사장님 덕에, 나는 열쇠를 찾고 해 질 무렵 드디어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피자집에 가서 피자 한 판에 시원한 밀맥주, 바이엔슈테판너 (Weihenstephaner)를 꿀꺽꿀꺽 마셨다.
내가 처음으로 살게 된 원베드, 원 배쓰 (one bed, one bath) 아파트였다. 그 전에는 늘 원룸이나 다른 사람들, 혹은 사람도 못한 놈들과 살았다. 동부에 있을 시절 잠시 여자 친구가 미국에 놀러 왔을 때엔 아주 작은 원룸 (studio)에서 지냈는데, 몸 돌리기도 어려운 싱글베드에, 부엌도 없어 아파트 측에서 준 2구 작은 전기 히터를 가지고 여자 친구가 나에게 음식을 해 주었다. 그런 아내가 이제 그만의 부엌을 가져서, 그의 음식 세계를 어마어마하게 확장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뿌듯한지.
한편, 원룸이라는 것은 분리된 공간이 없음을 의미했다. 우리가 다퉜던 어떤 밤, 아내는 나의 미지근하고 부족한 사과에 화는 나고, 잠은 안 와서 나초 칩을 먹고 싶으나, 나는 또 내일 일을 하러 가야 하니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우기 싫어 무려 화장실에서 칩을 먹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너무나 미안하고 그가 가엽다.
이런 원룸에서 나는 고양이 임보를 시작했다. 혼자 있을 시절에도 그 작은 침대에 아가 고양이 셋, 넷 올라오면 몸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래도 잘 자는 편이었지만, 아내가 와 있을 때 임보를 하며 두 아가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에 아내는 잠을 뒤척이곤 했다. 이런 이유들로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아내가 미국에 오게 되면 제대로 된 방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나는 쉬고 싶은데 상대는 집중해야 하거나, 어쩌면 다퉜거나, 아니면 그냥, 어떤 이유로건 한 공간을 필요에 따라 분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공간을 분리했을 때 각자 편안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내는 요즈음, 굉장히 내성적인 나와, 늘 내성적, 외성적 경계에 있는 아내, 우리 둘에게 각자의 시간 또한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모처럼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일 때도 있고, 아내가 일어나기 전 모든 집안일을 마치고 싶은 우렁각시의 마음일 때도 있고, 그냥 혼자이고 싶을 때도 있다. 아내 또한 신나게 만들기를 하건, <부부의 세계>를 시청하건, 또 혀를 내두를만한 요리를 준비하건, 마찬가지로 우렁각시가 되고 싶건, 역시나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공간도 공간이지만 시간으로도 각자의 시간을 이루어 내고 있는데, 나는 비교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아내는 조금 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다. 아침에 내가 혼자 신나게 뭘 하는 동안 아내는 방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밤에 아내가 신을 내는 동안 나는 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잔다. 방문이 닫혀 있는 동안엔 우리는 고양이들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들과 침대에서 같이 자면 좋겠지만, 이 녀석들은 자다, 놀다, 그리고 놀 때는 난리 법석을 피기 마련이다. 그러니 미안해도 잘 때만큼은 안방은 우리 인간들의 성역이다. 모두가 같이 보내는 낮 시간엔 고양이들을 쓰다듬어주고, 우리도, 고양이도 밥을 먹고, 장도 보고, 고양이들에게 귀엽다고 399번 정도 말하고, 그렇게 같이 논다.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자유는, 방의 존재는 그리하여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룸메이트가 아닌, 삶에서 어느 정도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서로를 이기려는 것이 아닌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를 하는 부부의 사이로서 같이 산다는 것은 제법 행복한 일이다.
동그라미 세모 세모들이 많이도 컸다. 나는 별 것 안 한 것 같은데 녀석들은 하루가 다르게 고양이가 되어 가고, 오늘 낮엔 결국 고양이 여섯이 안방을 차지했다. 누구는 신나게 뛰어다니고, 우리 까북이는 클라우디오에 폭 묻혀서 몇 시간을 잘도 잔다. 그래, 편하지 이 자식아.
우리는 캠핑을 종종 간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이상한 곳이면 더욱 좋다. 꾀죄죄해져도 씻지도 못하고, 바람도 불고, 벌레도 가끔 있고, 추운 그런 곳, 텐트를 쳐 놓고 우리의 침낭 안에 들어가면 그렇게 치유가 된다. 그리고 엄청나게 잠을 잘 잔다. 역시 이렇게 좋은 것이 없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그러다 캠핑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구정물 한가득 나오게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한 다음 침대에 누우면 클라우디오에 배인 아내와 나의 숨과 삶의 냄새가 난다. 너무나 폭신폭신하고 포근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편안함을 되새기기 위해 캠핑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모처럼 친구와 함께 친구와 함께 트레일을 걸으러 가서 나는 모처럼 길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신나게 맥주를 마시며 일을 했지만, 무엇보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그날 밤, 모처럼 같이 일찍 침대에 누웠다. 아내가 나갈 때부터 예상했듯, 어김없이 그가 말했다.
'아, 역시 집이 최고야...'
3.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인터폰 벨이나 학교 종 소리로, 아니면 트럭이 후진할 때 자주 들리던 단조로운 8화음의 띵똥거림 덕에 아주 익숙해진 멜로디에 반해, 되돌아보니 '즐거운 곳에서 나를...', 혹은, '내 집뿐이리' 말고는 이 노래의 가사를 떠올릴 수 없었다. 한동안 피아노를 쳤어서 그런지,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듣더라도 항상 멜로디만 기억하고 가사는 정말 못 듣는 나로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찾아보게 된 번안된 이 노래의 가사 세 번째 구는 이러했다.
'...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
성인이 되어 미국에 산지 딱 10년이 되었다. 어릴 때 지낸 것까지 합치면 내 삶의 딱 반을 미국에서, 그리고 나머지 반을 한국에서 살았다. 미국이 '내 나라'인가 하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 '내 나라'인가 하면, 마찬가지로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의 삶을 그릴지, 한국에서의 삶을 그릴지 결정해야 했던 시점, 너무나 익숙하지만 나를 끌어내리던 환경에서 도망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몇 문단을 쓰고 보니 이게 별 일인가 싶었다. 차라리 굉장히 드라마틱하면 자랑이라도 하지, 너무나 현실적이고, 평범하고, 재미없는 굴레였다. 그러나 이대로는 평생 은근한 질척함과 끈적임에 내 일상이 삼켜질 것은 분명했다.
학창 시절, '너는 안 된다,' 라는 얘기를 끝도 없이 들었다. 잘난 '전교 1등'을 해도, 뭔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타도, '그것 밖에 못하냐', 'S대는 너에겐 턱도 없다'와 같은 부정과 한편 부모의 '너는 어쨌던 S대는 가야 한다,' 라는 은근한 기대에 나는 나의 될 수 없음과 되어야함 모두와 싸워야 했다. S대는 나의 부모의 큰 컴플렉스였다. 결국 이루어내니, 왜 다른 더 좋은 과를 못 갔냐고 하였다. 미적분 첫 수업을 들었을 때, 과학고 출신이 80%였던 동기들에게 교수는 '이거 다 알지?' 하며 다섯 챕터를 뛰어넘었다. 조교에게 나는 문과 학교의 출신이라 하나도 모른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너 같은 놈이 이 대학을 깎아 먹는다고 하였다. 나는 다 때려칠 각오를 하고, 강의실 대신 학교 옆 산의 계곡에 앉아 여자 친구가 준비해 준 도시락을 먹으며 둘의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1.4란 화려한 학점으로 학교를 때려 치고, 미국으로 도망갔다.
미국에 와서 다시 처음으로 미적분 수업을 다시 들었을 때, 정말 차근차근, 고작 12주 수업에서 첫 4주를 누구나 알 것 같은 기초를 다지는 데 굉장히 정성을 들이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서 시작하여 12주차 즈음엔 굉장히 고차원적인 내용까지 다루는 것이 놀라웠다. 마지막 주, 조교에게 질문을 하러 갔더니, 이건 자기도 잘 모르겠다면서 이 다음, 심화 강의의 교수에게 가서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시험'을 위한 학습이 아닌, 학문의 이해를 위해 머리를 싸매는 일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학부 시절, 여름은 학기가 아니니 장학금이 지급되지 않아 한국에 돌아가야만 했다. 부모의 집에 가는 것은 늘 늪 같았다. '이번에도 4.0이지?' 라고 부모가, 조부모가 묻는 것이 피곤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과 노력을 쏟아부어 힘들게 공부했던 학기의 기말고사 마지막 날, 꼬박 몇 날 밤을 새었으나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모든 과목 'A'를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여자 친구에게 영상 통화를 하며 펑펑 울었다. 그는 나를 위해 같이 울어 주었다. 아빠는 '실망이네,' 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때 '전교 1등이 2등이 되고 [...] 128등이 되고, 그렇게 망하는 기다'라고 했듯 여전히 '4.0이 [...] 그렇게 망하는 기다'라고 말하였다.
내가 집을 떠나 처음으로 생활하게 된 기숙사에서 나는 빨래도 할 줄 몰랐다. 4L짜리 빨래 세제를 통째로 넣고 세탁기에 돌렸더니 빨래가 그렇게 끈적끈적해질 수 없었다. 여덟 명이서 쓰는 공용 주방에서 뭣도 모르고 요리를 하다가 연기로 인해 뺵빽 울어대기 시작한 화재 경보기의 소리에 놀라 던져버린 후라이팬에 타버린 바닥 카페트를 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맘대로 실수하고, 내 맘대로 고생하고, 내 맘대로 그 다음번에는 개선하는 과정이 얼마나 자유롭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미국에서의 삶은 그 나름대로 힘든 점이 많다. 아마 그것이 다 응집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이 COVID-19 사태일 것이다. 그럼에도 학부 시절, 아무것도 없던 시절, 여름 방학이 끝나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 아닌 돌아오는 길, 공항 셔틀버스에 앉아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편안했다. '아, 집이구나.'
대학원 입학식날 아빠, 엄마는 그들이 바라던 대로 아들이 진학함에 뿌듯해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으로 미국에 와선, 왜 내가 '스탠포드'에 갈 수 없었냐고, '그럴거면 차라리 S대로 돌아가지,' 라고 말했다. 도망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70센트짜리 요거트를 먹다가 15달러짜리 라멘을 얻어 먹으니 맛있었다. 그러나 70센트 요거트를 먹어도 좋으니 일단 어서 경제적으로라도 독립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도 나의 아빠, 엄마를 괴롭힌다. 나는 그것에서 도망친 비겁한 사람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 수록, 왜 그들이 그러하였는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이 진득한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다. 그리운 부분이 아주, 너무나 많지만, 나에게 아직 한국은 '내 기쁨 길이 쉴', '내 나라'는 아니다.
4.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여유롭고 평화로운 늦은 오후, 베란다에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은 마루 한켠까지 적시며 여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구름이는 손, 발을 배 아래에 꽁꽁 숨겨놓고 그릉그릉, 그 햇살의 온기로 식빵을 굽는다.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고, 흔들리는 초록 잎들을 눈으로 좇으며, 실려오는 냄새에 콧구멍을 씰룩인다. 한참 늘어져 있다가도 이 아파트 어딘가에 거주하는 새들 몇 마리가 잠깐 베란다 울타리에 앉으려면 언제던 뛰쳐나갈 것 같이 몸을 딴딴하게 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그들을 지켜본다. 해가 지고 나서도 구름이는 그 창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나에겐 어둠의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는데, 구름이의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이 커다란 창은 아마 구름이의 TV인 것 같다.
한편 보리는 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랑 친하다. 정말 기가 막히게도 '아이들'을 잘 파악해서, 그들이 베란다 바깥에서 쫑알거리고 있으면 창 앞에 앉아 본인도 뭐라고 한참을 말한다. 지나가던 새들을 볼 때 채터링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말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성인에게도 가끔 말을 걸곤 하지만, 아이들한테 유난히 그러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다. 이 아이들은 커다란 보리를 '마마캣'이라고 부른다. 고정관념적인 성역할을 뛰어넘어 우리집 모든 고양이들을 돌봐주고, 고양이로서의 롤모델이 되어주는 이 시대의 참된 생물학적 남성 고양이다. 역시 내 새끼는 천재다.
이 장소는 보리, 구름이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고양이들이 좋아한다. 우리 집을 거쳐간 거의 모든 임보 고양이들이 햇빛이 들 무렵이면 꼭 창문 옆에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장난을 치거나, 가만히 앉아 밖을 쳐다보곤 했다. '누가, 누구, 니니'같이 시커먼 녀석들은 이러다 자연발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늘 장난스런 걱정을 했는데, 그렇게 햇빛에 구워진 녀석들의 북실북실한 털에 코를 쿡, 가져다 대면 보송보송하고 따스한 햇빛의 냄새가 가득했다. 그들은 어이없다는 듯, 성가시다는 듯 쳐다보면서 내가 닿았던 자리를 열심히 그루밍한다.
베란다, 아내의 정원에서 오늘도 많은 초록들이 한껏 햇빛에 신나하고 있다. 며칠 고생하던 로즈마리는 비료 덕인지 다시 조금 기운을 차렸고, 타임과 오레가노는 물이 부족했는지 한껏 축 쳐져서 물을 흠뻑 주곤 부디 그들이 회복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아무리 과학, 의학, 식물학 등 세상이 발전해도 결국 생명을 유지하는 데엔 그 생명 자체의 회복력이 가장 중요하다. 아내도 나도, 컨디션이 안 좋은지 집안일을 하다 손가락 몇 군데를 베였다. '자고 일어나면 많이 붙어 있겠지,' '내일은 컨디션이 조금 더 낫겠지,' 하고 바란다. 오늘도 내 몸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아내가 묻어놓은 파에 보송보송하게 꽃이 폈다가 어느덧 거의 다 지고, 씨방에 까만 파 씨가 예쁘게도 영글었다. 힘을 다한 파는 그 날 저녁, 닭 한마리에 넣어 소중하게 먹었다. 씨앗들을 이 다음 세대의 파가 될 수 있도록 키워보겠으나 역시나 이 또한 이 녀석들의 생명력에 달려 있다.
하늘하늘한 작은 관상용 올리브나무 '올리볼리'에 꽃이 피었다. 처음 보는 올리브 꽃은 너무나 신기하고, 예뻤다. 아주 작은 꽃잎에 노란 수술, 짧게 피어 있던 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꽃이 진 자리에 무엇이 남을지 궁금하다. 오늘도 아내의 정원은 태어나고, 지고, 피고, 죽고, 회복하고, 그렇게 자란다.
구름이의 TV 앞에는 나의 던전이 있다. 내가 어질러 놓아도 아내가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한 곳이다. 재택 근무로 인해 주 업무 공간이 되고, 나도 집안일을 도울 수 있게 된 뒤로는 조금 더 잘 정돈하면서 지낼 수 있게 되었으나, 엄청나게 카오틱한 시절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아내가 나보다 정돈에 있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안다. 아내는 내가 아주 너저분하게 늘어놓고 일을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타협점을 찾고, 앞으로 일생을 공존해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대화를 한다.
정말로 집중하고 컴퓨터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일을 해야 할 때는 나의 던전에서 업무를 보지만, 그래도 나, 아내, 그리고 고양이들이 같이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공간은 아마도 이 식탁인 것 같다. 식탁 내 자리 뒤로 아내가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붙여둔 수많은 사진들, 하나, 하나 볼 때마다 우리가 가진 추억들을 되새기며 그 때의 마음, 경험을 잊지 않으려 한다.
함께한 지 어느덧 10년차, 우리는 같이 또는 따로 아주 많은 경험을 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사이 우리의 추억이 깃든 많은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았다. 처음으로 같이 파스타를 먹은 <소렌토>라던지, 파스타로 유명했던 이라던지, 식사 하기 전 간간히 피아노를 칠 수 있던 파스타집 <바쥬>라던지, 마찬가지로 피아노를 칠 수 있었던 환경이었다가 완전히 모던한 스타일로 리모델링된 찻집 <티포투>라던지, 어느날 투표를 하고 몽골리안 비프를 먹으러 간 <라이스 스토리>라던지. 방금 찾아보니 내가 그에게 프로포즈한 헤이리의 <루미 케익>은 아직 닫지 않았다. 왠지 다행이다.
아내에게 미국이 '내 나라'인 부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순전 내가 여기에 터전을 자리잡고자 했으니 같이 온 것 뿐이다. 연애 초반엔 절대로 미국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는 '내 나라', 한국을 떠나서 나와 함께 해 주기로 했다. 집 안이라는 환경에서 나는 그의 방식에 맞추게 된다. 그러나 그는 내가 그리는 삶의 모습 때문에 그의 터전 자체를 바꿔 버리게 되었다. 아주 어려운 일일텐데, 그는 여전히 나와 함께 해 주고 있다. 그 나름대로 서핑도 하고, 같이 캠핑도 가고, 고양이도 돌보고, 파머스 마켓에 가서 수박 주스도 시음하고, 한 시간씩 산책을 하고, 너서리에 가 수국도 구경하고, 그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는 모습에 나는 그저 고맙기만 하다.
어제 <삼시세끼>를 시청하고 있으려니 차승원 배우가 두부를 만드는 장면이 나왔다. 그 섬에서 처음으로 두부를 만드는 장면에 출연자 모두가 놀라고 설레는 모습에 나의 아내가 두부를 처음으로 만들었을 때의 생각이 났다. 그 때 나 또한 너무나 신기하고, 너무나 맛있었다. 아내도 이젠 만들다보니 익숙해졌지만, 처음엔 진짜 신기했다고 했다. '한국에 살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거야,' 라고 그가 말하면서 두부, 청국장, 콩국수, 순대, 족발, 막창, 만두, 곱창, 김치(배추, 깍두기, 파, 오이소박이, 부추, 무생채, 갓, 열무, 알타리 ...), 찜닭, 고등어 조림, 인절미, 꽈배기, 쭈꾸미, 치킨, 지코바 등등을 요리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미국에 지내며 이런 것을 먹게 되어서 너무나 좋지만 아내는 이럴 일 없이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러나 아내는 그건 모르겠고, 이 다음 넓은 집으로 이사할 때엔 꼭 김치냉장고나 커다란 냉동고를 사야겠다는 포부를 밝히곤 한다.
우리의 식탁 옆에도 동쪽을 바라보는 제법 큰 창이 있어, 아침에 쏟아지는 햇빛이 너무나 뜨겁고 예쁘다. 고양이들은 아침 시간, 이 햇빛 안에 누워있곤 한다. 부드러운 자연광을 제공해주는 이 창 덕에 나는 아내가 하는 요리들을 가능한 예쁘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이 상 위에서 아내는 라탄 공예도 하고, 재봉도 하며, 퀼트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가끔은 순대나 만두도 빚어내고, 아가 고양이의 맘마를 먹이고, 배변 유도도 한다. 이렇게 바쁘게 무언가 하고 있으면 꼭 고양이들은 우리가 앉아 있는 식탁에 와 얼쩡거리며 칭얼거린다. 그러면 아무리 바빠도 그들을 무릎에 앉히거나, 식탁 위에서 한참 쓰다듬어주고 놀아준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 계속하여 우리의 집을 채운다. 나에게 인상깊었던 맥주 라벨을 떼어 벽에 붙이고, 라탄으로 예쁜 전등 갓을 만들고, 가끔씩 아내가 구해 오는 책으로 주워 온 책장을 채워 나간다.
'우리가 이사가게 되면 뭘 가져가지?'
아내가 물었다.
'글쎄, 아마 일단 우리가 주워 온 건 대부분 버리거나 팔테고, 돈 주고 산 것만 고민해 보면 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이 마루라는 생활 공간, 우리가 우리 돈을 주고 산 것은 소파 뿐이다. 그마저도 최근에 큰 맘 먹고 산 것이지, 그 전에 쓰던 것은 친구에게 20달러에 얻어온 것이었다. 내 던전의 책상도, 책장도, 모든 의자들도, 거대하고 무거운 식탁도, 흔들의자도, 전자렌지도, 전기 포트도, 모두 주워 온 것이었다. 아내의 정원에 있는 많은 수납 선반들, 화분들도 어디서 주워 왔다. 잘 이해할 수 없지만 고맙게도 이 동네 사람들은 뭘 그렇게 잘도 버린다. 몇 주전 급히 집에 있던 프린터를 쓰려고 해 보니 고장이 나서 가져다 버려야만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아파트 쓰레기통 옆에 상자채로 프린터가 버려져 있었다. 혹시나 싶어 가져와 연결을 해 보니 너무나 멀쩡하게 작동하는 데다 잉크도 반 쯤 차 있었다. 아내와 함께 양 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요가를 마친 아내가 매트에 누워 있으려니 또 고양이들이 몰려든다. 그들의 비호를 받으며 낮잠을 잔다. 이 다음엔 어디로 가게 될까. 언젠가 한국에 다시 가게 될까. 지금 이 지역은 혼돈이 가득하다. COVID-19 감염, 사망 케이스는 여전히 늘고만 있다.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 사건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고, 중국과 미국 간엔 냉전이 고조되고, 미국은 자국민에게 신나게 돈을 뿌려 댄다. 아마 이 곳도 '내 나라'는 아닐 것이다. 다만 이곳엔 나와 아내, 보리, 구름, 그리고 몽, 뭉, 복, 북이가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지금 이 곳 만큼은 즐거운 우리의 집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대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국제 기구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요즘 뭐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역행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멋진 사진과 문학같은 글 그리고 구여운 고양이 까지 완벽한 집이에요~
갖고싶다 고먐미 나만없어 고먐미 고먐미 냐몸..뚱냥이한테 깔려 가위 눌리고 싶다.
반려 동물과 함께할 수 있을만한 책임감을 갖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책임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막중하지만, 이 덕분에 행복합니다.
트럼프가 트위트 잘쓰더니 진상조꾸며서 검찰에 이관한다는데 나라 대통령의 두얼굴 잘보고있습니다 CNN
대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국방력에서는 트럼프 높은점수 받았던데 경제나 외교는 오마바에 못 미치네요
국제 기구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요즘 뭐가 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역행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마지막 돼냥이좀봐!!!
ㅋㅋㅋㅋ 보리가 한 덩치 합니다.
멋진 사진과 문학같은 글 그리고 구여운 고양이 까지 완벽한 집이에요~
말씀 고맙습니다! 하루 하루 조금 더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상을 아름답게 보는 이에게 행복은 햇살처럼 자연스레 비춰지는것 같네요. 따뜻하고 소중한 모습 너무너무 좋네요
말씀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고맙습니다.
갖고싶다 고먐미 나만없어 고먐미 고먐미 냐몸..뚱냥이한테 깔려 가위 눌리고 싶다.
반려 동물과 함께할 수 있을만한 책임감을 갖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책임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막중하지만, 이 덕분에 행복합니다.
사진 보니 구 발라스트 포인트 포스터 가지고 있는데 코팅해서 벽에 붙여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발라스트 포인트 정말 좋지요 :)
와... 글 잘 쓰시네요. 술술 읽었습니다. 사진도 너무 좋고... 집도 따뜻한 느낌이 물씬 풍겨납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눈팅만 3년째 오늘 결국 회원가입했습니다 저는 방사진 갤러리가 좋습니다 글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인생이 녹아있습니다
집은 정말로 소중한 공간입니다.
아... 신문에 올라온 에세이인 줄 알았어요.. 담담하게 글 정말 잘 쓰시네요. 외국생활을 조금이나마 해본지라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네요.
말씀 고맙습니다! 외국생활은 즐거운 부분도, 힘든 부분도 있어 참 복잡한 감정을 들게 합니다.
뭔 가 에세지 느낌 32분 간 봤네요 ㄷㄷㄷ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잠깐이나마 따뜻함과 여유를 느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따스한 말씀 고맙습니다.
집안의 때깔이 익숙하지 않아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미국이군요.. 노래 가사를 이리 감칠맛 나게 섞어서 사진에 묻혀 놓으니 글의 배경으로 노래가 절로 들립니다. 집구경 잘 하고 갑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글 쓰면서 이 노래의 전체 가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나만 고양이 없어...ㅠㅠ
부디 언젠가!
사진, 글, 고양이, 아내분과 일상.. 다 멋지군요.
말씀 고맙습니다. 나름대로 고된 부분이 있으나 삶의 밝은 부분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귀국해서 음식,집이야기,사진,미국생활 등을 엮어 에세이책을 내시는게 어떨까 싶은데요...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시간되면 책한번 내도 되겠어요
많이 부족한 글에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언젠가 많이 읽고 쓰고, 글에 대해 조금 더 이해가 생긴다면 무엇인가 엮어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흑 꼬물이들봐
너무 귀여워서 힘이 듭니다.
마냥 행복한 이야긴가 했는데... 가슴속 한구석 어딘가 박힌 납덩이 같은 그런 뭔가를 담담히 들여다보며 쓰신 글이네요. 그래도 이제는 행복하시니 앞으로도 행복하실거라 기원해봅니다.
누구나 그런 '납덩이'를 가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삶에 존재하는 빛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게 행복에 대해 잊는 사람이기에 제가 느끼는 행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담담하게 기쁨과 슬픔을 써내려간 글 치고는 조금 이질감이 드는 문체다..했더니 해외에 오래 계셨나봐요.. 앞으로도 행복하시길 빕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어쩌다 갑자기 글을 하나 둘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보니 문체가 딱딱하고 거친 것 같습니다. 잘 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 사료 값이 사람 한명 값은 하겠네요 집에 평범 하면서 안락 함이 있고 따스함이 있어서 좋아 보여요~ 소소하게 보통사람들 처럼 살아 가시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
정말 고양이들 이 자식들은 일은 하나도 안하고... ㅋㅋㅋㅋ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
사람 호흡기는 안녕한가요?
피곤할 때 알레르기가 찾아올 때도 있지만 거의 늘 괜찮습니다!
글을 올리시는 빈도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글을 정말 잘 쓰시네요. 저는 글로 뭔가를 정리하는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어릴때는 문학이나 국어가 싫고 수학 과학이 더 좋아서 글쓰는 것을 등한시 했는데, 결국 어딜가나 글쓰기로 무언가를 남겨야 하는 것은 똑같더라고요. 오늘도 좋은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내일로 미루고 잡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저도 이공계라 역사, 인문, 문학을 무시했던 부끄러운 시절이 아주 길게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글'이 인간에게 얼마나 본질적인가 깨닫고, 제 삶을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술 먹고 인스타그램에 뻘글 남기면서 시작했는데, 점점 더 진지하게 제 삶을 돌아보면서 글을 쓰게 되네요.
저런 파란 하늘을 보고 살 수 있는게 부럽네요.
이 지역의 날씨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척 따뜻한 공간입니다~
그렇게 유지하기 위해 아내가 늘 열심히 신경써주고 있습니다.
집은 왜 이리 이쁘고 고양이는 왜 이리 많습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좋네요
꾸준히 아가 고양이들 임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할 일도 많지만 웃을 일도 많습니다 :)
와이프랑 개한마리 키우며 살고 있는데 왠지 공감이 많이 가는 글입니다 ㅎㅎ
세상엔 내 가족, 내 집만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집
그렇습니다. 이자식들...
고양이들이 이 짜 돌림이군요 'ㅁ'/.. 다음엔 돼냥이 어떻습니까..
본명(?)은 까복, 까북, 까몽, 까뭉, '까'자 돌림입니다! 돼냥이는 없고... 돼지 인간 둘만 있습니다 ;)
냥이들이 부럽습니다....
다음 생에선 고양이로 태어나야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고양이 집 소개죠?
중간에 노트북 고양이가 떨어트릴거 같아 너무 무섭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