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A의 흉을 신나게 보고 있었다. A는 185의 훤칠한 키와 유명한 모 연예인을 닮은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와 가는 선을 가져 지나가는 여자들이 꼭 한번씩은 돌아본다는, 나름 우리 학교 근방에서는 유명했던 사람으로,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나의 친구와는 가까운 사이이지만 나와는 별 친분이 없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우리들끼리 만날 때 꼭 한번씩은 화젯거리로 오르곤 했는데, 이번에는 군대에 갔다 온 그 동창은 그를 기다려 주었다는 여자친구에게 두 번째 이별통보를 날렸다는 내용이다.
A의 외모는 학창시절에도 이미 평판이 드높았다. 그의 지독한 여성편력은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우상으로 숭배될 정도였고, 여학생들 사이에는 악명이 자자했지만 막상 자신의 일이 되면 한번쯤 사귀어보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는 학창시절을 통틀어 한 손으로 세기 힘들 만큼의 여학생을 만났고, 두 손까지 써도 힘들 정도의 대상에게 고백을 받았다고 하며, 아마 우리의 추측컨대 양 발까지 동원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성에게 선물을 받았을 것이다.
많은 평범한 여자아이들조차 아이돌 스타처럼 빛나는 그의 눈에 들기 위해, 혹시 모를 단 한번의 가능성을 꿈꾸며 선물공세를 퍼부었다. A가 아닌 다수의 남자들은 당연히 소외의 대상이었고. 사실 그와는 거의 반이 달랐던 나로써는 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지만, 짝사랑까진 아니더라도 호감 정도는 있었던 여자애가 그의 서랍 속에 초콜릿을 넣어 두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뒤 느낀 감정은 묘한 씁쓸함이었다. 세월이 흘러 언급했던 여자애와 그 어떤 썸씽은커녕 접점조차 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A가 재수를 거쳐 지방에 있는 별 이름 없는 4년제에 겨우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저열한 우월감일지 모를 묘한 쾌감까지도 포함해, 결국 나의 인생에서는 스쳐가는 바람보다 작은 비중을 차지한 체 지나갔다. 그러나 다시는 서로 실물로 마주할 일 없을 A의 연애행각 소식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내 친구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확실하지 않은 기억을 뒤져보건데, A는 재수생활 내내 뒷바라지를 해 주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가 제일 오래 사귀었던 여자친구였기에 그의 가까운 지인들은 다들 둘이 아마 대학까지도 같이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한쪽의 일방적인 바람이었다나보다. 대학에서도 입학하자마자 학과의 아이돌로 부상했고, 1학년이 끝나고 군휴학, 그 과정에서 사귀던 대학 선배는 정리했지만 선배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부대에 면회를 찾아갔고 정성을 보아서인지 정 때문인지 허전해서인지 A는 이제 직장인이 된 그의 선배와 다시 만남을 이어갔고, 그러나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곧바로 이별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휴가때마다 받았던 용돈이나 기념일 혹은 그냥 선물로 받았던 명품지갑, 시계와 같은 것들의 행방은 그 둘만이 알겠지.
아무튼 복학하자마자 A는 자신보다 두살 어린 신입생과 2학년들의 마음을 멋지게 사로잡으며 십수명에게 동시에 연락을 받는 그런 화려한 솔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마치 영화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글쎄, 친구의 증언이 너무도 생생하니 그야 믿을 수밖에.
0.사실 이런 말을 하는 친구 B도, 비록 A만큼은 아니지만 내 기준으로는 제법 많은 여자를 사귀었고 지금은 1년째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다. 본인의 연애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는 편이기에 그 자세한 내역은 모르지만 고등학교 이후 페이스북에 '연애 중'으로 뜨는 대상이 몇 번이나 바뀌었던 것을 생각하면 최소 3명 이상일 것이다. 여태껏 사귀었던 여자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다고, 자기도 예쁜 여자를 사귀고 싶다면서 A에게 대한 질투를 일삼는 B는 A의 후광을 받아 클럽에도 같이 가고, 같이 다니는 클럽팸에서 항상 제일 예쁜 여자는 A와 매치라고, 자신들은 술을 많이 먹고 허용도가 낮아진 그녀의 친구들과 만날 뿐이라며 그것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불문율이라는 것이 너무도 질투가 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로써는 하나부터 열까지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다. 첫째로 그의 여자친구들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내가 보기엔 다들 예뻤다. 둘째로, 나는 클럽에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가 봤자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을 알기에 가끔 생기는 호기심조차 꾹꾹 누르곤 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예쁘지 않은 여자는커녕 그냥 보통 여자와도 그 어떠한 접점도 없는 나로서는 그가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비하적으로 이야기할 때 가끔 다른 술자리에 가서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을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가끔 있다.
2-1."신은 원래 불공평해". 세상은 불공평하다. 공평함이 무엇인가, 나는 무언가를 나의 노력 여하로 이뤄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공평과 불공평으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재능才能, 영어로는 gift라 함은 불공평 그 자체다. 한국어로는 단지 재주와 능력이라는 뜻밖에 없지만 영어로는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즉 그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대신 얻어낸 불로소득인 것이다. 여기서 재능이란 단어의 뜻의 범위를 단지 타고난 능력에 한해 제약하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이나, 축복받은 외모, 쉽게 겪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나, 하다못해 부모의 존재 그 자체에서 오는 정서적 발달까지도 모두 gift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메이플스토리나 배틀그라운드는 모두에게 공평한 능력치를 주고 시작한다. 물론 육성과정에서 캐쉬템을 지르느냐는 점이 플레이에 큰 영향을 주고, 샷빨이 좋냐 나쁘냐가 생존률에 많은 변동을 주겠지만, 어쨌건 모두가 LV1의 초보자와 무기 없는 맨손으로 낙하산을 타고 시작한다는 점에서 게임은 그 누구에게나 공평한 출발선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사회는 그렇지 않다. 2-2.굳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500억대 자산가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물질적인 걱정이라곤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이 풍족한 삶을 살 것이다. 누군가는 A와 같은 외모와 키를 타고나서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할 걱정은 단 한번도 해본 적 없이 끊임없이 더 좋은 여자를 선택하기 위한 삶을 살 것이다. 누군가는 꽤나 적당한 노력으로 시험에 나오는 대부분의 것들을 모두 습득하고, 자신은 순전히 뼈를 깎는 노력만으로 S대학교에 진학했다고 자부하리라. 누군가는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가정에서 양친 모두 건강한 채로 태어나 화목한 가정에서 때로는 굴곡과 풍파도 있지만 대부분은 따스하고 다정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리라. 누군가는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거부감 들지 않는 외모와 적당한 키로,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고 꾸미면서 이성에게 많은 거절과 밀어내기를 겪은 끝에 자신을 사랑해주는 한 여자를 만났으리라. 누군가는 적당히 좋은 머리를 갖고 적당히 공부해서 적당히 이름있는 대학에 진학했고 내가 비록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더 높은 대학에 왔다고 안심하리라. 그리고 그 누군가는, 편부편모,조손가정에서 태어나 반지하방에서 그 어떠한 경제적 풍요도 맛보지 못하고 자라며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멤돌다가 그 위의 세상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나름대로의 행복을 즐기리라. 누군가는 작은 키와 나쁜 비율, 거부감 드는 외모로 여자와는 접점조차 가지지 못한 채 자신은 이대로도 행복하다고 자위하며 살아가리라. 누군가는 제 아무리 책을 들여다보아도 곧 까먹는 머리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이름없는 지방의 대학에 입학하고도 그것이 자신의 최선임을 자각하고 체념한 체 살아가리라. 중간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위를 바라보면서 한탄하지만 자신의 밑을 보면서는 안심한다. 동정하든, 멸시하든, 자신이 저 위치에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본인의 위치가 자신의 희망보다 너무 낮다는 것에 대해서 좌절하곤 한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조금 더 평등하면 좋을 텐데! 애초에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절대로 공평할 수가 없다. 이미 인류는 부와 외모와 지능 중에서도 가장 물질적이라 할 수 있는 property에서조차 공평함을 이루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망했다. 그것도 가장 처참한 형태로. 하물며 손재주, 동체시력, 유연성 같은 운동신경의 부분부터, 심지어는 '노력'이라고 하는 부분,노력을 얼마나 끈기있고 길게 유지할 수 있느냐도 재능의 영역이라는 연구결과 또한 있다.
3-1."나는 재능이 없어도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어"의 허상. 하지만 노력을 하는 능력조차 재능이라니, 그렇다면 결국, 무언가에 대해 재능이 없지만 노력으로 이뤄냈다고 하는 것조차 사실은 재능에 가깝지 않은가. 이런 광범위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평등함을 보장할 것인가. 어떤 종교인들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무소유를 주장한다. 껍데기에 불과한 물질적인 것들은 아무 의미없기에 해탈하고 열반에 이르는 것이 최고의 답이라고. 그러나 그렇다면 사회가 돌아갈 리가 없지. 애초에 평등할 수 없기에 불평등함을 인정하고 그것이 무의미하고 다른 것에 더욱 가치를 두는 것은 비록 종교적 신념으로써는 존중받을 만하다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을 설득이다.
3-2.한편, 자유주의자들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고 난 다음에 재능을 통해 벌어지는 격차는 손대어야 할 부분이 아니라는 주의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가장 최소한의 출발선을 설정하고, 이 능력치까지 도달하기 위해 국가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저소득층 학습지원이나 생활보호정책은 이런 이유가 있다. 하지만 편모가정에서 자라 정규교육이라곤 중등교육(=고등학교)까지밖에 나오지 않은 아이와,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4개 국어를 하며 국내의 이름 있는 대학에서 고등교육까지 충실히 받은 아이가 똑같이 공정하게 경쟁했다고 볼 수 있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모가정의 아이가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외교관의 아이가 4개 국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말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외교관 개인이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인데, 본인들 역시 남보다 우위에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을 충실히 누렸을 것이기에 누군가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꺼려지는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 - 즉 질투심은, 왜 나는 가지지 못했고 저 사람은 가졌지? 에 대한 갈망을 끊이질 않게 한다. 그것은 마냥 추하다고 평가받을 감정은 아닌 듯 싶다.
4-1."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이제 이 긴 글에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다. 그것은 내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 불교의 마음수련에서 따 온 부분도 있고, 어느 정도는 현실과 타협한 부분이 있다. 주어진 한계 내에서 최대한의 몸부림을 쳐 보고 그래도 안 되면 포기하자는 것이 내 해답이다. 사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긴 하다. 여우가 나무를 긁어 오르다가 포도를 먹지 못하니 결국 신포도일 것이라고 욕을 하며 가지 않는가. 그것이 가엾고 굶주린 여우의 마음을 보호하는 최대한의 발악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이 격차를 어떻게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니 결국 침이나 뱉고 돌아서야 하지 않겠는가? 4-2.유니스트 학우 여러분. 여기까지 오시느라 대단히 수고가 많으셨다. 하지만 이쯤 되서 상당한 실패를 겪어 본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강변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부가티 베이론은 타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태화강변 신축 아파트에 살면서 포르쉐 911 카레라 정도야 어떻게 탈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름다운 여자들 수십명이 먼저 톡을 보내서 약속을 잡는 남자는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성형과 미용의 도움을 받는다면, 처음 만난 수십 명 중 한 명 정도는 꽤나 호감을 갖고 다가오게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악을 쓰고 발악해도 SCI급 논문을 척척 써내며 해외의 유명대학에서 수만불의 장학금을 제시하며 모셔가려 하는 인재가 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는 영역에서 4점대를 받고, 제법 좋은 대학원을 가거나 남들이 선망하는 나름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다음에는, 신포도에 침을 뱉자. 한강변 펜트하우스? 부가티 베이론? 사람 바글거리는 곳에서 쉬면 편해야 얼마나 편하겠고, 속도내기 힘든 곳에서 장식용으로 타면 재밌어야 얼마나 재밌겠나? 여자들이 좋다고 먼저 달라들면 뭐 어때. 어쨌거나 나이들고 나면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데, 다 똑같지 뭘. 머리가 좋아서 논문도 척척쓰고 화려한 삶을 살지만, 머리가 좋지 않은 다수는 하지 않을 고민이나 고충이 분명 있겠지. 천재들은 많이 앓는다던데 그게 다 스트레스 때문 아닐까? 이제 나무를 더 올려다볼 필요는 없다. 안락한 여우굴로 돌아가서, 따 놓은 산딸기를 배불리 먹으며 겨울잠을 자면 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돈주면 읽음
일단 포르쉐 가정하는거부터가 ㅂㅅ인데?
읽을수록 개소리네
포르쉐 가정 뭘 말하는거지
3줄 요약좀
적당히 만족하고 살자 이거임
결론 : 포도는 시니까 딸기를 ㅁ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