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썻는데 자꾸 묻혀서 재업로드함
세종대의 신미대사는 유학자출신이었고 청년시기 절로 들어감 그렇게 중이 되었다가 어떤 계기로
1.세종의 형 효령대군의 인연이었더라
2.본래 세종과 인연이 있었더라 조선왕조실록 세종 28년(1446년) 한글창제 반포시기 세종이 신미대사를 칭찬함(그리고 이때 이미 신미대사가 궁궐안에 있었다는것),때문에 이전에 이미 세종과 인연이 있었다는건데 이전의 기록은 없음.
당시 세종의 아들 광평,평원과 소헌왕후가 줄초상치르고 그 여파로 몸,마음 병을 앓던중 신미대사의 법회(세종이 신미대사를 불러 궁궐 안에서 법사를 열다 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세종32년),치료를 하면서 세종의 정신적 위안,안식처가됨
신미대사가 궁안에 머물고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이 신미대사를 상석에 앉히고 법회(예배)를 열어 사림(유학자)들이 땡중을 스승으로 모신다고 비웃었다(조선왕조실록 기록), 세종이 자주 신미대사를 불렀다, 이에 신하들이 신미대사는 요승이니(땡중) 내쫒으세요, 후에 신미대사의 동생 김수온이 형 덕에 당상관,호조판서(현 기획재정부 장관)오르니 신하들이 불효를 이유로 파직하라는 상소가 끊이질 않음.
이후의 기록들은
간승 요승 신미대사와 제자와 그 동생 김수온을 파직하라, 그러나 윤허하지 않았다 (세종)
간승 신미한테 법호가 왠말이냐,그러나 윤허하지 않았다(문종)
간승 신미와 동생 김수온을 파직하라, 그러나 윤허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철근 33톤,쌀 40톤,면포와 정포(베) 500필을 줌 (세조)
그리고 이때 세조가 신미대사한테 산(과 땅,밭)을 주었는데
세종,문종,세조가 신미대사를 쉴드쳐줌
이러다가 세조가 죽고 손자대까지 가서 예종이 즉위하자마자 간악한 신미대사가 받은 땅을 몰수해서 백성한테 나눠줘야한다는 상소가 올라오고 이 와중에 예종이 불교를 탄압(불경을 전부(한글자도 빼지않고)외우고 있는지 시험봐서 틀리면 강제로 환속시키려하자 신미대사가 언문(한글)로 너무 심한 조치라고 상소하자 예종왈 아직 법이 만들지도 않았는데 누구한테 들었냐 그 말한놈을 족치겠다면서 엮어 신미대사를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의 사저에 구금함
이렇게 예종이 신미대사를 족치려다가 즉위 1년만에 급사하고 세종의 중손자 성종이 즉위하면서 없던일이 되버림
이러다 또다시 성종 즉위하고 신하들이 제발 신미대사좀 족치세요 상소를 올리지만 성종은 선왕들의 유언을 이유로 윤허하지 않았고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 성종 15년인가 16년에 신미대사가 죽고난뒤에 신하들이 이젠 신미대사도 죽었는데 신미대사가 받은 땅(승지, 이 땅이 계속 문제가 되는 이유가 신미는 중이고 중은 자식이 없으니 이 땅이 계속 절간에 상속되기때문) 몰수하라고 하지만
역시 선왕이 주신땅이라며 윤허하지 않음
또 세월이 흘러
성종이 죽고 세종의 고손자 연산군 즉위 3년 아직 미치지 않은 성군시절이었던 연산군때 신하들이 다시 연산군한테 신미대사가 받았던 땅 몰수하라고 상소하지만 연산군 역시 지나간 일이라며(선왕들의 유언) 윤허하지 않았다.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신미대사라는 이름은 더이상 언급되질 않음.
무려 세종부터 연산군까지 7대까지 신미대사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왕들의 쉴드를 받은 조선 역사에 보기힘든 대단한 인물이다. 그것도 승유억불 불교 졸라 패던 조선시대에서 스님이
한글창제에 대한건 기록이 전무하니 이렇다 뭐 말할껀덕지가 없긴 하지만 공식 기록으로 보면 한글창제중이던 시기 이미 신미대사는 세종과 인연이 있었고 조력자였던 소헌왕후나 정의공주 문종 세조 안평대군 왕실 가족 전부와 친분이 있었으며 한글창제 반포 이후 신미대사가 나서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에 앞장섰으며, 신미 본인도 사대부 출신이고 젊었을적 유학자였고 그 동생도 호조,공조판서까지 올랐던만큼 박식하고 한자를 몰랐을리 없었으나 왕, 예종한테 올리는 상소문을 굳이 한자로 하지 않고 언문, 한글로 썻다는점때문에
신미대사 본인이 한글창제의 주력은 아니어도 어떻게든 연관은 있었으리라 보는게 합리적 추론이긴함
한줄요약
사대부: 저 땡중 신미좀 쫒아내라고
세종: ㅗ
문종: ㅗ
세조: ㅗ
예종: ㅇㅇ 그러다 급사
성종: ㅗ
연산군: ㅗ
음..지식이 늘어따
토코♡유미♡사치코
1446년에 한글을 반포했는데 이때 세종이 신미대사를 칭찬했다는 조선왕조실록 기록이 있음, 그리고 이게 왕조실록에서 신미대사에 대한 첫 기록임. 1446년 이전의 행방은 조선왕조실록으론 모름 여기서 더 알려면 이제 정사가 아닌 야사를 찾아봐야지(신미대사와 김수온의 본가의 족보라던가 이런것들) 그리고 저 야사에서는 신미대사가 과거 집현전 학자였더라, 이런식이니까
토코♡유미♡사치코
신미대사가 갑자기 뭔 빽으로 느닷없이 1446년에 세종과 함께 법회를 하진 않았을테고 그 이전에도 세종과 신미가 서로 인연이 있었으니까 저렇게 궁에서 법회를 열었다는건데 그러면 그 과거가 뭐였는지는 궁금한거지 1446년 이전에 신미는 무얼 했나? 아무도 모르니까 영화 광해처럼 스토리를 써내려갈수 있겠지
잼있는 스토리였네 ㅊㅊ
꼭 한굴 자체보단 월인천강지곡 같은 불교계 서적 편찬에 일조 했을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