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경술 2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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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실록에 훈민정음을 창제한 과정에 상세히 나와있다는 애들이 있던데
그런거 기록에 없음
실록 읽다보면 갑자기 이 기록이 튀어나옴.
그러고 나서 1년 뒤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가
훈민정음 만든건 부당하다고 글을 올리면서 제작 과정을 추론할 수 있는 떡밥을 던진거.
세종 26년에 최만리가 이의를 제기한 내용 중에 보면
중요한 일도 아닌데 의정부에 국가 주요 기무는 떠넘기고 행재에 짱박히셔서 비밀리에 만드시는데
그게 올바른 일입니까?
시전하면서
세종이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건 확정이고
임금이 직접 만든 것도 맞는데 문제는 이 시기에 세종은 안질 즉 눈병으로 시력이 거의 안 보여서 혼자 작업하는게 불가능하다는게 쟁점이 되는거임.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 후 곧바로 세종이 수양 대군으로 하여금 직접 석보상절을 만들게 했고
그 전후로 왕자들 특히 안평과 수양의 지위가 급상승했기 때문에 이들이 어느 정도 훈민정음 제작에 참여했을 거라는 점이 제기되는 거임.
그리고 확실한건 문종은 참여했을 공산이 큰 게
행재에 행차하거나 세종이 저 시기에 어디 갈때 문종이 건강상태가 양호하면 같이 따라가서
기록이 남아있는데
최만리가 행재에서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라고 지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행재에 수행을 따라간 세자 문종이
참여 안 했다고 하면 그것도 이상한 부분이 되서
기본적으로 아이디어나 순수하게 제작 자체는 세종 혼자 한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는 없음.
문제는 당시 세종이 사실상 혼자서 작업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걸 옮겨 적고 여러 사람의 발음을 확인하려면
혼자서는 힘들다는 게 함정이고
훈민정음이 문자라기 보다는 언어의 정확한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발음되는지 알려면 혼자서 발음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후 과정을 따져보면
왕자들이 참여했을 공산은 높을 수 밖에 없는 거임.
ㅇㅇ 이게 맞는 접근이긴 하지...
루리웹에서 팩트체크없이 날조하는건 일상이죠
ㅇㅇ 이게 맞는 접근이긴 하지...
왕자들이 참여했다고 하니까 비추폭탄이랑 실록에 창제과정 나온다고 ㅈㄹ해서 올린 거. 실록 좀 읽어보면 그냥 훈민정음은 갑자기 왕이 만들어서 들고 나오고 나중에 신하들이 비밀리에 만든다고 난리를 피우는데 전후 관계를 지들 입맛대로 뜯어고치고 있더라.
루리웹에서 팩트체크없이 날조하는건 일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