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14년
유럽은 인류역사상 최악의 재난중 하나인 1차 세계대전의 불길에 휩싸였다.
흔히들 참호전과 가스전을 떠올리게 되는 이 전쟁은 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참사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드는 전쟁 속에서 피어난 인류애가 있었으니
훗날 크리스마스 휴전이라 불리는 1914년의 크리스마스가 바로 그것이다.
▶크리스마스 소포를 받고 웃음짓는 영국군 병사
기독교 문화가 뿌리깊은 서구권에선 크리스마스는 무척이나 특별한 의미를 둔 날이라 한다.
그렇기에 전쟁 중에도 크리스마스엔 조촐한 기념행사를 하곤 했다 한다.
▶참호와 참호 사이, 살아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구역을 일컫는 무인지대(no man's land)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의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벨기에 Ypres 전선에선 독일군과 영국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각자 참호에서, 무인지대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참호전이 진행되며 의미없는 소모전에 지쳐가던 그곳의 병사들은
저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조촐한 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때 병사들은 상대방의 참호로부터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듣게 되었다.
▶연합군 참호로 다가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건네는 독일군 병사
이어서 독일군 참호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들.
더욱 놀라운 것은 독일군들 중 하나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참호에서 나와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누구인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독일군 병사는 용기를 내어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연합군 참호를 향해 다가왔다.
참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자1살행위였지만
그 누구도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독일군 병사를 쏘지 않았다고 한다.
그곳의 모든 이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을 크리스마스 이브.
죽음을 두려워하지않고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어온 독일군 병사의 용기를 시작으로
죽음의 땅이었던 전쟁터 한복판에 한줄기의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참호에서 나와 서로 마주한 독일군과 영국군 병사들
크리스마스 이브의 일을 계기로 일선부대의 지휘관들은 서로 신사협정을 맺는다.
크리스마스 당일날만큼은 서로에게 어떠한 적대 행위를 하지 않기로.
그리고 무인지대에 너부러져 있던 전사자들의 시체를 수습하기로 한다.
▶참호에서 나와 함께 사진을 찍은 양국 병사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죽이려 들었던 적국 병사들을 직접 대면하게 된 병사들.
서로, 적개심으로 인한 대한 증오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고단함과 연민이 더욱 컸던 것일까?
그렇게 속해있는 편이 다를뿐, 마찬가지의 처지였던 병사들은 크리스마스의 휴전을 계기로 서로 교류를 하게된다.
서로의 보급품(초콜릿, 술, 담배 등)을 나눠먹고
저마다의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단추와 같은 기념품을 교환하기도 했다한다.
▶전사자를 수습한 무인지대에서 축구를 벌인 독일군과 영국군
그리고 전사자들을 수습한 무인지대의 공터에서 축구경기를 벌였다는 소문이있다.
하지만 이러한 휴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일이 높으신 분들 귀에 들어간 것이다.
당연히 높으신 분들은 빡쳤고 상대 군과 크리스마스 휴전을 맺었던 부대들을 완전히 해체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른 부대들을 배치하고, 행여 상대에게 딴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부대배치를 수시로 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이후로 상대 진영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곳에 가차없이 포격을 가했다고 하니....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이지만 크리스마스 휴전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전쟁이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싹튼 한줄기의 인류애를 기억하고 전해들은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날의 짧지만 아름다웠던 평화를 기념하고 있다.
▶리버풀에 위치한 크리스마스 휴전 기념동상
▶플랜더스 필드라는 곳에 UEFA가 세운 크리스마스 휴전 기념동상.
▶벨기에 Ypres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휴전 기념비
▶2008년의 기념식에 참가하여 악수를 나누는 당시 병사들의 후손들
▶이 이야기는 메리크리스마스(Joyeux Noel)이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진짜 전쟁은 ㅈ같은거야..
저런 휴전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가 참호전을 치르는 양측 병사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수년간 대치했기 때문이라더라. 그래서 저 멀리 편안한 곳에 있는 사령관 대신 가까이서 같이 고생하는 적병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 거지.
그래서 저런 '일탈행위' 이전에도 포격은 정해진 장소에 정해진 위치에만 한다거나, 참호 밖에 나와 똥오줌을 누는 적병은 저격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