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 않는 삶
#스물다섯의밤
지금 이 순간 내가 비루하고, 나태한 삶에 자..,살이라는 종지부를 찍어서 끝장내 버리지 않고, 이토록 무익한 존재의 실마리를, 빈사의 노예처럼 붙들고 끌고 가는 이유는 ㅡ 기실 삶이라 함은, 구태여 애써 죽을 만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는 까닭이다. 죽음이 곧 삶이고 삶은 죽음이다.
비현실적인 존재의 사다리꼴에서, 쇠잔해 버린 지리멸렬한 영혼을 에워싼, 애수에 찬 불가사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 쓸쓸하게 무너져 가는 비스듬한 울타리다. 어떤 모순되는 관념들조차도, 궁극에 있어서는 일자로 수렴하는 방향장 속에서, 무한대로 뻗은 직선의 의미축 상에 가지런히 포개서 놓여져 있다.
(따라서) 살고 죽는다는 한 가지의 추상적 개념은 보이지 않는 육신의 베일 아래, 단단한 지각의 이면을 흐르는 지류처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진실로 이 세상에서 나의 소유란 단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어느 경우에나 예외를 두지 않고 꼭 똑같은 만큼 무의미하다. (...)
(...) 이러한 삶의 질곡에 저항하는 유일한 태도가 있다. 필연적으로 내게 주어지는 모든 사건이나 자극에 대해, 편견 없이 개방된 태도로 수용하는 것이다.
거기서 제일 기본적인 전제는, 나는 내 운명을 선택할 수 없으며, 세상 만물에는 무엇 하나 더 낫고 못함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배달 음식의 철가방 속 내용물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즐긴다. 택배 상자 속에 내가 주문한 물건이 잘못 왔음을 깨닫는 순간은, 스스럼없는 친지로부터 예기치 않은 방문을 받은 사람이 느끼는 신선한 기쁨에 가깝다. ㅡ 전화위복, 새옹지마적 세계관의 超적극적 수용이다. ㅡ 차라리 일종의 숙명론적 태도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그 이상의 어떤 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즐길 따름이다. 모든 기대를 버려라. 그게 어떤 것이 되었건 간에. 지상에서 소망하기를 단념한 그대, 두 번 다시 실망하지 않으리라.
"어쩌면 우리의 삶은, 억만년이 걸려도 그 정답을 알 수 없는 ㅡ 최초의 존재에 의해 잘못 쓰여진 ㅡ 하나의 수수께끼 같은 걸지도 몰라. 어쨌든, 당신이 어떻게 살든지 간에 다가오는 결과는 같아. 그러니 고민하지 마. 그 어떤 것도 후회하지 마.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것, 그게 당신이 쥘 수 있는 유일한 무기거든."
지.랄 났군
역시 죽보다는 볶은 밥이지.
시발 맨날 25번째 밤이야
누가 떡밥 던지니까 신나서 뛰쳐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