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직접적인 개입)
전편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4869739
1613년 9월, 누르하치는 울아를 정벌한 뒤 채 1년도 되지 않아 예허를 공격하려 했다.
명분은 망국 울아의 한, 부잔타이를 예허가 자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호한다는 것 이었다.
누르하치의 명령에 따라 4만명의 대군이 비밀리에 준비되었고 그에 상응하는 장수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
예허는 이 소식을 건주에서부터 도망친 배신자들로 말미암아 파악하고 누르하치의 침공을 막기 위한 준비를 행했다.
시간이 워낙 없었기에, 예허 지도부는 건주의 침공로로 예상되는 국경 지역의 쟝성과 기당가성, 우수성등에 주둔한 병력들을 철수시키고 아녀자들만 남기려 했다.
일종의 청야전술이었다.
쟝과 기당가외 다른 여러성들은 계획대로 철수했으나, 우수성의 사람들은 하필 역병이 터져 대피시키지 못했다.
예허가 그런 대비를 하건말건, 어쨌든 출병을 한 누르하치는 병사들이 사라져 아녀자들만 남은 쟝성과 기당가성을 손쉽게 손에 넣었다.
이후 우수성을 4만명의 군대로 포위하고 항복을 종용하니, 고작 해야 군민을 합쳐서 1500여명의 사람들만이 있던 우수성 역시 쉽게 항복했다.
당시 우수성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암반(Amban. 장수, 신하, 영주등 여러 의미로 해석됨. 여기서는 장수로 해석) 산탄과 훠시무가
누르하치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자 누르하치는 직접 그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그들의 항복과 귀순을 받아주었다.
이후 누르하치는 앞서의 세 성을 합쳐 총 8개의 성을 함락하고 열 아홉개의 촌락을 일시적으로 손에 넣었다.
그러나 예허의 청야전술로 인해 전쟁의 성과는 그리 좋지가 못했다. 4만명이나 이끌고 왔는데 정작 전리품으로 삼을 만한 것이 거의 없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진격할 수도 없었다. 예허의 지원 요청을 받은 명나라가 드디어 여진간의 싸움에 끼어든 것이다.
지금 본문 내용이 대충 몇 년도쯤 됨? 아직 원숭환이랑 맞붙는 내용 나오려면 한참 멀었나
1613년 9월
와씨 아직 13년이나 남은 시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