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글을 올렸는데 너무 길다고 지적을 많이 받아서 ㅠㅠ. 내가 읽어봐도 길기는 줜내 길더라.
베스트 가기는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니 필요없는 부분 좀 쳐내고 다시 올린다.
조회수 욕심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조회수가 생각보다 안 나오니까 글 쓴 거 아깝기도 하고.
평소 루리웹 눈팅을 많이 하는데 예전과는 달리 요즘 부정적인 게시글이나 댓글이 많아진 걸 느낀다. 그만큼 사는 게 힘들어졌다는 거겠지?
이 글을 얼마나 볼지는 모르겠지만 내 별 것 아닌 경험이라도 루리웹 유게이들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썰을 좀 늘어놔 본다.
한국에서 안 되면 다른 데서 방법을 찾으면 된다. 글로벌 시대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잖아? 모두들 희망을 잃지 말고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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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한 게임 기획자다.
2005년부터 온라인 게임 개발을 시작하여, 근 10여년 이상을 게임개발에 쏟았지만 ‘내가 만들었소’ 할만한 게임을 한 번도 내 보질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박근혜 정부 당시 ‘창조기업’을 육성한다면서 벤처기업들에 돈을 마구마구 뿌렸는데, 그 당시에 지원받은 자금으로 ‘For Kakao’ 게임 하나를 내 이름을 달고 시장에 선 보였다는 것이었다.
루리웹에서 기사도 내줬다. 땡큐 루리웹~!!
게임 자체는 별로 재미를 못 봤지만, 그 게임을 커리어 삼아서 후속작을 개발하며 근근히 명맥은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부지원사업만 계속 받아서 개발하고, 말아먹고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여느날처럼 사무실에 앉아(사무실이라고 하기는 뭐하고, 박근혜 정부 당시 ‘1인 창조기업’을 키운다고 1인 개발사들에게 책상 하나를 내줬었다. 공유 오피스에 있는 책상)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던 도중 가끔 사용하던 네이트온 메신저에 [내 결혼 점수는?] 막 요렇게 써 있는 광고가 내 눈을 사로 잡았다.
당시 30대 초반이었고 아직은 혈기가 왕성할 나이였으니 결혼에 자연히 관심이 있었다. 비록 실패한 인생이지만,
결혼? 생각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모쏠아다였고. 꼴에 결혼은 하고 싶었던 나는 그 광고를 나도 모르게 클릭해 버렸다.
광고를 누르니 웬 설문이 나왔다. 나이, 종교, 키, 학력, 수입따위를 물어보는 설문지였다. 설문지에 정보를 넣으면 결혼 점수를 측정해 주는 모양이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되는 실패로 자신감이 많이 하락해 있었던 나는 내 스펙을 곧이 곧대로 적기가 무서웠다. 내 실제 스펙에서 계산되어 나오는 결혼 점수를 보는 것도, 그걸 다른 사람이 보는 것도.
그래서 실제 스펙(스펙이라고 할 게 사실 없었다. 학력도 고졸, 개발한 게임도 잘 된 게 없었고) 대신 내가 상상한, 내가 만약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아버지가 보내주시는 대로 미국에 유학을 갔다면?을 가정한 가짜 스펙을 입력했다.
대학은 미국에서 좀 괜찮은 대학교 졸업. 한국에서 직업은 펀드 매니저(게임 만들기 전엔 펀드 매니저 하고 싶었었다.), 연봉은 대략 펀드 매니저 평균 연봉.. 뭐 그렇게 ‘가상의 나’를 만들어서 결혼 점수 테스트를 한 거다.
그런데 설문이 다 끝나도 바로 점수를 안 주고 기다리면 전화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게 사실은 결혼점수 테스트라고 사람들 유도해서 전화번호 꼭 기입하게 만든 다음에 전화해서 고객을 유치하는 영업수법이었는데, 당시엔 그걸 몰랐다.
아무튼 좀 있다가 결혼 정보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상담원 아주머니는 내게 나 같은 조건이면 진짜 좋은 배필을 만날 수 있다고. 자기도 성심성의껏 도와주겠다고 상냥하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애당초 거짓말로 작성한 테스트였다는게 마음에 걸려서 대화를 하면서도 말을 좀 틱틱 거렸다.
하지만 상담원 아주머니는 내가 계속 틱틱대는데도 한 번을 짜증내지 않고 상냥하게 대답해 주셨다. 공감도 잘 해주시고. 양심에 찔렸던 나는 결국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저기요 상담원님. 제가 사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네. 뭐든 말씀해 보세요~”
“제가 사실은 결혼점수 테스트에 넣은 스펙 있잖아요? 그게 사실이 아니에요. 좀 뻥튀기를 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남자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싶은 심리가 있잖아요. 조금 뻥튀기 했어도 괜찮아요.”
“사실 그게…”
비록 스펙을 뻥튀기 했지만 상담원 분이 다 이해한다고 하자 마음이 편해진 나는 모두 사실대로 털어놨다.
사실은,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긴 했지만 대학은 안 갔고, 사업을 하다가 망했고, 어찌어찌 다시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정상적인 업체에 취직은 어려울 것 같고, 부모님이 내가 결혼할 때 집 해주실 자금을 사업 자금으로 탕진한 덕에 집은 못 해오고 아내가 될 사람과 둘이서 열심히 벌어서 집을 마련하고 싶다. 그 전에는 부모님 모시고 같이 살아야 할 것 같다. 등등…
“저… 이래도 결혼할 수 있을까요?”
“…”
사실대로 다 털어놓으니 상담원 분이 잠깐 침묵하시다가 입을 여셨다..
“OO씨, 나도 장성한 아들이 있어요. 내가 아들 둔 엄마 심정으로 말해주는 거니까 서운하게 듣지 말아요.”
“네.”
“OO씨. 그냥… 동남아 알아보세요.”
“네? 동남아요? 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여자하고는 도저히 결혼이 어려우시니까 동남아 알아 보시라구요.”
“.....”
그 말을 들은 순간 벙쪄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충격을 받건 말건 상담원 아주머니는 말을 이어나갔는데, 요약하자면 나와 ‘결혼을 해 줄’ 한국여자는 없고, 대신 나 같이 스펙이 미달되거나 농촌에 살거나 해서 한국 여성들과는 도저히 결혼할 수 없는 남자들을 위해서 요 근래에 경제적으로 한국에 비해 떨어지는 동남아시아 여성들과 매칭을 해주는 회사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까 결혼을 정 하고 싶으면 그 회사들을 통해 동남아 여성들과 결혼을 알아보라. 라는 이야기였다.
충격이었다. 나도 내 조건이 뭐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한국여성과는 결혼 못 한다.’는 얘기를 들을 줄이야.
그것도 이 상담원은 나를 무조건 꼬셔서 자기 결혼업체에 가입시키는 게 이득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자기 이득도 포기하고 나를 팩트폭행 때린다? 내 형편이 그야말로 개노답이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었다.
그 일 이후 감히 한국 여성과 결혼하겠다는 꿈은 접었다. 하지만 ‘동남아에는 내가 결혼할 수 있는 여자가 있다’는 상담원 아주머니의 말 때문인지 그 때 이후로 왠지 모르게 동남아 쪽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답도 안 보이는 상황에 낙담해 있던 나는 당분간 게임 개발은 Hold 하고, 당시 막 성장을 시작한 베트남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표면적으로는 급성장하는 베트남에서 ‘투자처’를 찾기 위함이었지만, 동남아에는 나와 결혼을 해줄 여자가 있다는 상담원의 말이 내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던 것을 부인하지는 못 하겠다.
내가 당시 ‘던전앤파이터’라는 온라인 게임에서 장사를 해서 돈을 좀 벌고 있었다. 막 엄청 큰 금액은 아니지만 일반 회사원 정도는 되었다. 베트남에 가서도 VPN으로 던파 접속이 가능해서 장사는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인터넷을 찾아보니 베트남 물가가 엄청 싸다고 하기도 해서 자금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혼자 가는 해외여행은 처음인데다 동남아 치안에 대해서 인터넷 괴담도 많고 해서 가기 전엔 겁이 좀 났는데 막상 가보니 너무 좋았다. 음식값도 엄청 싸고. 맛있고. 사람들 친절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베트남에 가서 난생 처음으로 여자에게 대쉬를 받아봤다는 거였다!
유게이들아, 한류는 진짜다. EXO, 슈쥬, 빅뱅(은 좀 요즘 안 좋은 뉴스가 많지만, 동남아에서 빅뱅 인지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등의 동남아 내에서 인지도는 자국 탑 연예인을 가뿐히 즈려밟을 수 있을 정도다.
한국 아이돌과 배우들이 이미 한국 남자 가치를 엄청나게 올려준 덕에 그 버프로 30년 모쏠아다인 나도 베트남에서 거의 카사노바처럼 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연애경험이 좀 있었다면 더 재미있게 놀았을텐데 당시에 너무 순진해서 어버버 하느라 한류 버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아직도 좀 아쉽다.
그렇게 동남아 한류뽕에 빠져서 베트남 여행을 하게 되었다. 자유롭고, 여자가 따르고, 언제든 같이 술 마실 여행자 친구가 있고. 내 생애 정말 이토록 행복한 시간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베트남 남부를 여행다가 칸토(Can Tho) 라는 도시에 들리게 되었다.
이곳에서 백패커들이 자주 찾는 까페에 들렸다가 이 까페에서 백패커들과 영어로 대화하면서 영어를 배우러 오는 베트남 학생들과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연령층은 다양했는데, 대부분 여자였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한류의 진정한 파워를 느끼게 된다. 거의 스무명 가까이 되는 카페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나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상태에서 나에게 호기심 반 꼬심 반 담긴 눈길을 보내는데…. ㅇㅓ우ㅇㅑ 순간 마치 내가 의자왕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의자왕 뽕에 취한 나는 이 도시에 잠시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여행을 계속 다니려니 몸하고 정신이 좀 피로하기도 했고, 잠깐 머무르는 동안 이 카페에 다니는 대학생 친구들과 너무 친해져서 떨어지기가 싫을 정도였다.
이 까페에 고정적으로 오는 멤버들이 있었는데, 다들 재미있는 친구들이라. 매일매일이 시트콤 같았다.
시트콤 하면 연애가 빠질 수 없는데. 음… 아쉽게도 연애는 잘 할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분명 여자애들을 만나는 것도 쉽고, 호감을 얻는 것도 쉬운데. 너무 오랜 솔로 생활 기간 동안 연애세포가 다 뒤져버렸는지. 여자랑 밀고 당기기가 도저히 익숙해 지지가 않았던 거다.
막 여자애들이 나를 한국남자라고 주변에서 꺅꺅 거리는 걸-농담같지만 진짜다.-볼 때는 약간 우월감? 같은 거에 너무 기분 좋고 그런데. 막상 연애를 하려고 하면 너무 귀찮고, 걸리적 거리고, 자유가 억압 받는 거 같고 그랬다.
게다가 30대가 되면서 성욕도 확 줄어들어서 예전처럼 공격적이지 않게 된 것도 있고....
그렇게 한량처럼 1년 정도를 지냈다. 비록 연애는 안(못) 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자유롭고 재미있는 나날들을 보냈다. 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잘 살고 있던 어느날, 친구 하나로부터 농구 하러 가지 않겠냐고 전화가 왔다. 나이는 나보다 10살이나 어렸지만 베트남에서 만나 영어로 소통하면서 지냈기에 자연스럽게 친구 먹게 된 녀석이었다.
딱히 할 것도 없는 차에 좋다고 하고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부릉부릉 달려서 대학교 농구장으로 향했다.
대학교 여자 농구팀과 친선전(?) 비슷하게 하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이번에 학교 대항 시합이 있어서 연습상대를 찾던 중에 발이 넓던 친구놈에게 연락이 닿았고, 친구가 카페 패거리들을 모아서 시합을 하기로 한 거였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와이프 대학생 애기 시절)
당시 너무 오랜 솔로 생활로 연애세포가 다 죽어서 이제 연애는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었었는데, 이 아이를 보는 순간 한 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다.
내가 원래 이상형이 아이유같은 베이비 페이스 얼굴에 강소라처럼 늘씬한 몸매(특히 잘빠진 다리)를 가진 여성이었는데 이 아이가 그랬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우리 팀에서는 내가 키가 제일 컸고(내 키는 174센치로 한국에선 보통이거나 그 이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꽤 큰 편이다 ㅋ) 여자팀에서는 아내가 제일 컸다(와이프의 키는 167센치인데 베트남 여자중엔 엄청 큰 편이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마크하게 되었는데...
이 아이의 체취가... 생긴 건 사람인데 꽃향기가 나는 듯 했다. 모쏠아다 갬성에 좀 오바 같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그렇게 느꼈다.
(와이프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실친들이라 초상권 보호를 위해 친구들 얼굴은 가림-)
아무튼 친선전을 끝 마치고 엄청 더운 와중에 목이 마르다는 제스쳐를 취했더니 우리랑 맞상대를 했던 여자 농구팀 애들이 내게 물이랑 타월을 가져왔다. 더운데 운동하느라 고생했다고 ㅋㅋ 하늘에 맹세코 진짜 구라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꼭 안 믿고 ‘베트남 여자도 눈이 있습니다.’ 라든지 ‘한국에서 안 되면 베트남에서도 안 됨 ㅋ’ 이러면서 분위기 조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국에서나 한남 한남 거리면서 욕 쳐먹지 외국-특히 아시아. 일본 중국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남자’ 이미지는 그야말로 절대존엄이다.
진지하게 얼굴이 갑오징어 수준으로 빻은 유게이라도 한류버프와 함께라면 솔로탈출은 물론이고 결혼까지 바로 직행하고도 남는다. (유독 한국사람들이 외모를 지독하게 따진다.)
아무튼, 다른 여자애들 모두 내게 관심을 표하는데 오직 내가 마음에 들어했던 그 아이만 샐쭉한 표정을 내게 비치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가버렸다. 안 그래도 한 눈에 반한 상태였는데 츤츤대니까 나는 더 애간장이 타서 친구를 통해 그녀의 페북을 물어봤고, 페북 메신저를 통해서 작업을 걸었다.
[썸녀의 유혹]
메신저로 대화할 때 서로 가끔 사진 같은 걸 보내곤 했는데 꼭 얼굴이 안 나와 있는 사진만 보냈다.. 내가 나중에 사귀고 나서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니 내가 자기를 보고 싶어 안달나게끔 하고 싶었단다. ㅋㅋㅋ
그리고 사실은 자기도 농구 끝나고 ‘한국남자’를 처음 봐서 호기심도 있고 해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경쟁자가 많아서 오히려 새침한 척 하여 내 관심을 노렸단다. ㅋㅋ 귀여운 것.
당시 아내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구글 번역기를 써가며, 잘 하지도 못하는 베트남어 써가며 메신저로 꾸준히 대화를 했고, 그 결과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골 출신에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도시로 상경하여 이모네 집에 얹혀 산다는 것부터, 용돈을 벌기 위해 새벽 5시부터 반미집에서 알바를 하는. 엄청 열심히 사는 소녀라는 것까지.
[베트남의 평범한 반미집 알바녀 -와이프 대학교 다니던 시절 알바]
여기서 얻은 가장 중요한 정보는, 그녀가 요 근래에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랑 심하게 싸우고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찬스도 이런 찬스가 없었다. 나는 자꾸 이유를 만들어 내 그녀를 불러내었다. 밥을 먹으러 가거나, 밀크티를 마시러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와이프와 썸탈 때 찍은 사진. 조그만 선물에도 너무 기뻐함)
정식으로 사귀는 건 아니었고 썸? 비스무리하게 탄 거였는데. 나는 내가 한국인에, 나이도 훨씬 많고. 남자이기까지 하니 매번 나갈때마다 내가 좀 사려고 했었지만 그녀는 철저히 더치페이를 고수했다. 새벽 5시부터 뼈빠지게 알바 하고 겨우 시급 500원 받는 아이가 말이다. 그것도 처음 한 두번이 아니라 계속.
나는 여기서 직감했다. 이 여자구나!하고
혹시나 베트남 여성과 사귀려고 하는 게이가 있을 것 같아 좀 정보를 보태자면, 베트남은 한국보다 훨씬 더치페이를 하는 문화다.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 쏘고 그러는 경우보다는 더치를 하는 경우가 많고. 남녀사이에서도 정식으로 사귀는 게 아니면 더치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가 사는 건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을 때부터인데. 베트남에서 나이 스물이 넘어서 정식으로 교제를 한다는 건 ‘결혼’을 전제로 하는 좀 진지한 관계를 의미한다. 베트남은 남녀 모두 한국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결혼하니까.
만약 베트남 여자랑 만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니가 돈을 내는데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거나 딴 짓을 하거나, 아니면 밥을 다 먹기 무섭게 ‘고마워요 오빠’ 이따위 말을 한다면 너를 개호구로 보고 있는 거니까 빠른 손절을 하기 바란다.
아무튼, 그렇게 썸을 타다가 서로가 정말 잘 맞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정식으로 고백하여 사귀게 되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첫 연애를 시작한 거다. 그것도 10살 차이나는 파릇파릇한 여대생하고 ㅋㅋㅋ
(생애 처음으로 생긴 여친과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여행도 가고)
(여친 고향집 가서 닭도 먹고)
(다른 커플들 다 하는 커플짓도 해보고)
(연애하면서 찍은 여러 사진들 -유게이들 토 쏠릴지도 모르니 내 얼굴은 가렸다-)
내 생애 가장 즐겁고 찬란한 날들이 시작되었다. 이 아이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새롭고 재미있고 행복했다.
아마 내가 20대의 젊은 나이에 같은 20대의 여성과 데이트를 했다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내가 30대 아재가 되었기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의 연애가 더더욱 재미있고 특별하게 느껴진 것 같다. 반쯤은 아빠 같고, 반쯤은 연인인 듯한 느낌? 게임으로 치면 갓띵작 육성 시뮬레이션과 연애 시뮬레이션을 동시에 하는 느낌이었다.
뭐 하나 해줄때마다 보여주는 리액션이 얼마나 상큼하고 사랑스러운지. 디카프리오 성님이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사귀는 여자는 맨날 20대 초반인 건 이유가 있었다. 역시 오스카 상까지 수상하신 형님이라 그런지 선견지명이 있으시다.
바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당시 아내는 아직 대학교 3학년이었고, 장인어르신과 장모님이 아내가 대학은 졸업하기를 원하셔서 약혼식은 일찍 하되 결혼식은 대학 졸업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그래서 와이프가 아직 대학생이었던 작년 6월에 약혼식을 올렸다.
(와이프와 약혼 사진. 무려 현역 여대생과의 약혼이었다.)
그리고 그해 말에 대학을 졸업한 아내와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아내 나이 꽃다운 스물셋이었다 ㅋㅋㅋ
(와이프와 결혼 사진)
사실, 우리의 연애&결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당시에는 내가 베트남어도 잘 하지 못할 때라 처갓집 식구들과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었고. 아내의 할아버지께서 아내가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탐탁치 못해 하셔서 그걸 설득하느라 애도 먹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 쪽에 있었는데... 약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어머니가 치매의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거다. 나는 아내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보내주려고 했다.
‘어머니가 저렇게 되신 이상 우리 둘이서 살 수는 없다. 누가 항상 케어를 해야 하는데, 나와 결혼하면 우리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살아야 한다. 어머니가 정상이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건 힘들텐데 장애까지 있으시니. 나와 결혼하면 너까지 불행해 질지 모른다.’
나는 진심으로 아내를 위하는 마음으로 설득했다.
하지만 아내는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자신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도 괜찮다고, 어머니가 아직 완전히 치매에 걸리신 것은 아니니 우리가 이제부터 잘 케어하면 나아질 수도 있을 거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의 마지막 한 마디가 완전 감동이었다.
‘내 남은 일생에 이제 남자는 오빠 한 명 뿐이야.’
그 이후로 아내에게 정말 잘 하면서 살기로 다짐했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원래 베트남에서 하고 싶었던 사업 아이템이 있었지만 이제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로 결정하였으니 모든 계획을 바꾸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게임 만드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게임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고, 아내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다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내게 자극 받았는지 아내가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 도움이 좀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돈을 벌고 있는데 왜 굳이 여보가 돈을 벌려고 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내는 자신이 일도 안 하고 밥값만 축내는 우리 집안의 짐이 되기는 싫다면서 이 일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베트남에 여행 가 본 사람은 알테지만 베트남은 여성들이 대단히 독립적이고 경제활동 참가율도 매우 높다. 결혼하고 집에서 편하게 전업주부 하고 싶다? 그런 생각하는 여성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국은 카페나 맛집 가면 죄다 아줌마들이지만 베트남 가면 아줌마들은 죄다 일하느라 바쁘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노가리 까고 있는 사람을 살펴보면 죄다 아저씨다. ㅋㅋㅋ
가정주부인 아내는 가끔씩 콧바람 쐬야 한다며 백화점에서 한끼에 수만원씩 하는 밥 먹을 때 밖에서 일하는 남편은 단돈 1000원이라도 아끼려고 싼 구내식당 찾아다니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문화와 풍경이다.
아무튼 고사리 같은 손으로라도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기특하게 느껴져 내가 지원을 해줄테니 잘 해보라고 했다. 이런 경위로 나는 다시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아내는 유튜브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아내가 운영하는 유튜브와 & 내가 개발한 게임의 현재까지 성적)
내 게임이 겨우 10만 다운로드 정도 찍을 때 아내는 구독자수 29만명의 유튜버가 되어 버렸다. 사실 내 게임의 10만 다운로드도 아내 유튜브를 통해서 우리 구독자들이 다운 받아 준 것이 많아서 아내 덕이 크다 하겠다.
10만 다운로드의 인디 게임 개발자.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사실은 빛좋은 개살구였다. 게임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이나 정성에 비해 수익이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유튜브 채널에 꾸준히 우리 게임 홍보를 해주어 많은 구독자분들이 우리 부부를 응원하기 위해 게임을 다운 받아 주셨다. 그것까지는 좋았으나, 아내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의 상당수가 여성이고 논게이머였다. 게임을 다운만 받고 바로 지우거나, 다시 플레이를 하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실제 매출로는 연결이 안 된 거다.
거기에 더해 구글 플레이 스토어가 추천 알고리즘을 게임 다운로드 수 중심에서 리텐션, 즉 재방문율 중심으로 변경하면서. 우리 게임의 경우 직격탄을 맞게 된다.
다운로드는 많이 발생했지만 대부분의 유저가 우리 부부를 응원하기 위해 받아준 사람들이다 보니 리텐션은 그야말로 처참할 지경이었다.
문제는 리텐션뿐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다운로드가 베트남에서 난 바람에(이건 당연한 거지만) 게임에 돈을 지불하는 유저가 거의 없었고, 광고 단가또한 한국의 10분의 1정도로 낮아서 매출까지 폭망이었다.
총각때라면 게임이 좀 안 되서 손해를 보더라도 나 혼자 몸이니 어떻게든 추스리고 할 테지만 결혼까지 한 상태에서 이렇게 되었으니 걱정거리가 많아졌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밥만 축내는 식충이라며 나를 괄시할까? 아니면 이제 돈 못 버는 남편, 미래 없는 남편은 필요 없다며 도망가 버릴까? 갑자기 이혼서류라도 내밀면 어떻게 하지? 아직 신혼인데?
행복한 결혼생활이 깨질까 두려워 게임의 성과가 저조하다는 걸 아내에게 말하는 것은 망설여졌지만 끝내는 말하기로 결정했다. 나를 믿고 응원해준 아내를 차마 속일 수는 없었기도 하고, 결국에는 들통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저러 해서... 그 동안 열심히 개발한 오빠 게임이 좀 수익이 안 나 . 미안해 여보.”
“.....”
그 말을 들은 아내는 하루 동안은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학력도, 경력도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 게임 하나 성공을 바라보고 지금까지 달려 왔는데, 그리고 그 꿈에 자신도 동참해 왔는데 그게 여기서 갑자기 급브레이크가 걸려 버렸으니...
나는 아내가 원한다면 막노동이라도 나가서 너를 먹여살리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아내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내가 입을 열었다.
“오빠, 오빠가 게임 정말 좋아하고, 만들고 싶어하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결혼도 했고 또 내후년이면 아기도 가져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당분간 그 꿈은 접어줘요.”
“어… 응! 접어야지.”
“게임 좀 잘 안 됐다고 쳐져 있지 말아요. 아직 내 유튜브로 수익이 제법 나니까 걱정할 거 없어요.”
“어? 어!”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서 이제 쭉 살려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게 필요해요. 그렇다고 오빠가 취직하기는 어려우니까... 내가 장사를 할게요. 한국에서 보니까 쌀국수 집이 잘 되는 거 같은데. 내가 어머니한테 요리를 배워서 좀 할 줄 아니까 쌀국수 집을 하면 괜찮을 거에요. 내가 한국에서 장사할 수 있게 오빠가 알아봐 주세요.”
“어. 어어어... “
“힘내고 우리 다시 화이팅 해요!!”
사실 아내가 원한다면 바로 막노동이라도 나갈 생각이었는데 아내가 이리 쿨하게 나오니 당시 약간 벙 쪘었다.
그날 이후 아내는 바로 베트남 요리 연습을 시작했다. 못 미더운 남편을 대신해 하루라도 빨리 쌀국수 장사를 시작하고 싶은가 보다. 베트남 여자들의 생활력이란... 참 존경스러울 정도다.
게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유게의 정을 빌어 우리 유게이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내가 지금 분에 넘치게 예쁘고 어리고 거기에 착하고 현명하기까지 한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이놈의 게임 개발한다고 연애때 이후로 아내에게 제대로 뭔가를 해준 적이 없었다. 이제라도 제대로 뭘 해주고 싶은데 가진 거라곤 이놈의 몸뚱이 하나랑 달랑 이 게임 하나 뿐이다.
[스카이파이터 2 : 레볼루션]이라는 게임이고, 비행 슈팅 장르의 게임이다. 위의 플레이 영상을 올리니까. 혹시 보고 재미있어 보이면 아래의 링크로 다운 받아서 플레이 좀 부탁한다.
안드로이드 :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sw.ko.appdevhunk.skyfighter2r
아이폰 : https://apps.apple.com/us/app/sky-fighter-2-revolution/id1460066661?l=ko&ls=1
요즘 한국의 모바일 인디 게임은 방치형, 키우기 이런 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거 같은데. 이런 장르가 나하고는 잘 안 맞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할 때 게임 본연의 재미라고 할 수 있는 ‘컨트롤’의 재미에 집중을 해서 게임을 만들었다.
‘궁수의 전설’ 같은 컨트롤 중심의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취향에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많이 부족한 게임이지만, 2명이서 개발(그래픽은 아는 형한테 외주 맡김)한 걸 감안해 주면 좋겠다.
참, 영상에 나오는 모델은 우리 아내다. 홍보 영상 제작 비용 절약을 위해 우리 아내가 또 헌신해 주었다. 고마워 여보 ㅠㅠ
유게의 덕으로 단돈 몇만원이라도 더 벌리면 아내한테 예쁜 옷을 좀 사주고 싶다. 더운 나라 살다와서 겨울옷이 없다 ㅠㅠ 너무 이쁘고 착한 여자인데 못난 남편을 만나는 바람에 고생만 시킨다. 미안해 여보. 그리고 사랑해.
주제에서 벗어나는 우리 게임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베트남 여자에 대한 안 좋은 글들이 가끔 보인다.
‘한국에서 돈 벌려고 결혼한다.’
‘남자랑 좀 살다가 국적만 받으면 도망간다.’
‘돈 받아서 처가집에 죄다 갖다 준다.’
중매업체를 통한 결혼의 경우 여성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십대 후반~스무살 초반의 꽃다운 나이에 열살, 스무살, 많게는 서른살 까지도 차이나는 한국 아저씨를 기껏 한 두번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는 게 가능할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일반적인 베트남 아가씨들은 정말 순수하고 밝은 성격이다. 한국에서는 빼빼로 데이날에 손수 만든 빼빼로 갖다 주면 싸대기 맞겠지만 베트남 아가씨들은 그거에 감동해서 눈물 흘린다. 서로 멀리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날은 여친의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날이다. 그 정도로 순수한 애들이 많다.
명품? 그런 거 모르는 애들이 허다하다. 내 아내만 해도 명품까지는 아니더라도 DAKS 백(별로 안 비쌈. 20만원 정도되는 거)을 선물로 줬었는데 이런 비싼 걸 왜 사냐면서 혼나기만 했다.
그뿐 아니다. 시부모님 모시고 사느라고 불평불만이 있을법 한데도 나한테 짜증 한 번 안 낸다. 이건 우리 아내가 착한 것도 있겠지만 베트남 문화 영향도 있을 것이다. 베트남은 우리 옛날 부모님 세대처럼 집안의 아들 중 하나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아들하고 결혼한 며느리들도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남자들 역시도 ‘한류 버프’를 제외하더라도 최고의 남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서양권은 나도 안 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가까이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이고 아시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한국남자가 단연 최고다.
책임감 있고, 스스로 관리 잘 하고, 깨끗하고, 상냥하고, 매너 좋고, 자기 여자한테 아낌 없이 쓰고, 순정이 있고, 양보할 줄 알고. 여자가 말 하는 거 다 들어주려고 하고. 가사도 잘 도와주고.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나라 남자들과 비교도 안 되게 뛰어난 게 우리 한국남자들이다.
내가 85년생인데. 우리 세대가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 세대여서 죄다 아들만 낳으려고 하는 바람에 남녀성비가 엄청나게 컸었다. 여자가 귀하니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관리니 매너니 빡세게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여자 비위 맞추기’ 스킬을 만땅 찍어버렸으니 당연히 한국 남자가 최고 퀄리티일 수 밖에 없는 거다.
예를 들어 여성과 데이트를 하는 중에 벤치에 앉을 때 여성이 앉을 자리를 남자가 소매나 가지고 있는 손수건 따위로 닦아주는 것이나, 추울 때 여성에게 외투를 벗어주는 행동은 한국에서라면 남자가 ‘당연히’ 여자한테 해주어야 하는 일이고 그렇게 안 하면 욕을 쳐먹지만 반대로 베트남 여자들은 남자가 그렇게 해주면 엄청 감동한다.
연애할 당시에 내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배운 그대로 행동했더니 아내는나에게 혹시 예수의 환생이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사랑의 왕’ (베트남어 : vua Tình yêu)이라나? ㅋㅋㅋ
모쏠아다인 유게이도 베트남에 오면 예수의 환생이자 사랑의 왕이 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정작 본진인 한국에서는 한국남자의 가치가 엄청 저평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일부(겠지??) 정신 나간 여성들에게 ‘한ㅁㅁ’이네 ‘200충’이네 ‘300충’이네 같은 욕지꺼리를 듣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도 착해빠진 우리 한국남자들은
‘그래. 월 300도 못 버는 나 같은 건 결혼할 자격도 없지.’
‘겨우(?) 수억 밖에 안하는 집도 마련 못하는 내가 등신이지. 나 같은 등신은 결혼하면 안 돼.’
‘차도 없는 나같은 놈한테 연애는 사치지. 나같은 놈하고 사귀면 뚜벅이 데이트를 할텐데 여자 다리가 불쌍하다.’
이러면서 스스로의 탓으로 돌린다. 이 정도면 착한 걸 넘어서 병이 아닌가 싶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는 말처럼 이제 한국에선 그 누구도 남자의 희생에 대해 제 가치를 쳐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남자들 자신조차 말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덕분에 한국 남자는 외국에서 충분히 먹히는. 아니, 차고도 넘치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유게이들도 정 한국에서 내가 원하는 짝을 못 찾을 것 같으면 일찌감치 외국으로 눈 돌리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월 300 버는 게 벌레면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벌레인게 아닌가??)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사람들의(특히 남자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건 결혼이란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남자들에게서 모든 힘과 권위를 빼았아갔음에도 의무는 옛날 우리 아버지 시절, 가부장제 시절의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녀평등의 시대가 왔다는데 우리 남자들은 여전히 여성에 비해 엄청나게 큰 짐을 지고 있다.
여자는 꼴랑 수천만원의 혼수 준비할 때 남자는 수억의 집을 준비해야 하고, 각종 기념일에 여자는 ‘손수 만든’ 초콜렛이나 사탕 따위 준비할 때 남자는 데이트 비용을 풀로 쏘는 건 물론 명품백 정도는 준비해야 센스 없다는 소릴 안 듣는다.
도대체 이게 어디를 봐서 남녀가 평등하다는 건가?
인터넷을 보면 동남아 여성과의 결혼을 ‘매매혼’이라며 싸잡아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남성이 돈을 지불하고 여자를 사온다’고, 사랑이 없이 돈으로만 이루어진 결혼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국에서의 결혼 역시 그와 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남자가 집값 3억 해가고, 여자가 혼수 비용으로 3천만원 해오면 이건 ‘온전히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고결한 결혼’인가? 아니면 ‘2억 7천만원짜리 매매혼’인가?
그 ‘고결한 결혼’이 베트남 여성과 매매혼하는 비용보다 수십배는 더 드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인가???
게다가 더 슬픈 것은 이렇게 한국 남자들이 거의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집에서 가장 대우조차 못 받는다는 거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유부남들 이야기(유부남 중고거래 썰, 유부남 결혼생활 썰. 결혼하지마 xx새끼야 썰 등등)가 유행하고 그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그리 많은 걸 보면 한국 유부남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행으로 가득찬 것 같이 보인다.
아마 한국여성과 결혼한 한국 유부남들의 대부분은 나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텐데 인간극장급으로 안 좋은 환경의 우리보다도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 환경이 도대체 어떻길래 ‘인간극장’ 급이냐고?
1. 시부모에 시조모까지 모시고 3대가 한 집에서 같이 삶,
2. 시어머니는 치매 전단계라 30평 짜리 집에서 당신 방도 못 찾을 정도,
3. 시조모는 95세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하셔서 어디 가시면 꼭 누가 같이 가야 하고 자주 아프심,
4. 남편은 지꿈 쫓는다며 취업 안 하고 인디 게임 쳐 만들고 자빠졌고, 수입은 고작 용돈 수준,
5. 부부가 거주하는 공간은 남편이 총각때부터 쓰던 3평이 채 안 되는 코딱지만한 방,
6. 내가 장손이라 우리 집안 제사까지 모셔야 함,
7. 집은 당연히 없고, 차도 없어서 필요할 때면 아버지 차 빌려 탐.
이 중 하나만 해당 되어도 아내가 한국 여자였으면 진즉에 파혼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것도 없이 결혼한 나도 가장으로서 존중 받으면서 잘 사는데, 남편이 차에 집까지 준비하고 화려한 결혼식까지 올려주고도(우리 부부는 아직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미안해 여보. 내년엔 꼭 한국에서 결혼식 올려줄게 ㅠㅠ) 그런 취급을 받는다고??? 그리고 그걸 참고 산다고?
불쌍한 유부남 썰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사실이라면... 한국 유부남들이 인내심이 보살을 넘어 살아있는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마 이분들 돌아가시면 유골에서 사리 나올 지도 모른다.
2년 정도 여친/아내와 같이 살아보니(결혼은 작년말에 했지만 그보다 1년 전쯤부터 동거했음) 결혼이야말로 남자의 행복의 완성이라는 것을 느낀다.
사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결혼을 하고도 행복하지 않은 게 비정상이다.
결혼하면 내가 세상에서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항상 같이 지낼 수 있고, 야한 짓도 실컷 할 수 있고(ㅎㅎ), 아침에 일 나갈 때면 나를 위해 따뜻한 밥과 뜨끈한 국을 준비해 주고, 흠이 많은 내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돌봐주며, 일에 지쳐 집에 돌아오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맛있는 음식으로 응원해 주는 아내가 생긴다.
그런데도 불행하다고? 아내가 처갓집에 가는 날만 기다려 진다고?? 도대체 왜? 난 이해가 잘 안 된다.
내가 볼 때 한국의 유부남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같이 사는 게 아니라 ‘마님’이나 ‘주인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노예의 삶이 행복할 리는 없으니.
그래서, 나는 국제결혼을 추천한다. 중매결혼 말고 연애결혼.
결혼한 뒤에도 제대로 가장 대접 받으면서 잘 살 수 있는 능력자 게이야 알아서 잘 할 테지만.
월수입이 200, 300 정도인 일반적인 유게이(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남성들)의 경우, 한국에서 연애하면서 데이트 비용은 비용대로 쓰고 결혼하기 위해 집 살 돈 모은다고 하고 싶은 거 다 참고 수도승처럼 힘들게 산 끝에 집에 차에 월급통장까지 죄다 갖다 바쳐서 어떻게 결혼한다 해도 배우자가 니 맘에 차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배우자의 외모이든 나이든 성격이든)
그러니 아싸리 한국에서 여자 만나는 건 포기하고 거기에 쓸 시간과 돈을 해외 여행도 할 겸, 식견도 넓힐 겸 해서 베트남에 투자하면 삶의 질 자체도 높아질 뿐더러. 니가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여자보다 훨씬 이쁘고(1), 어리며(2), 참한(3) 여자와 재밌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너를 닮은 예쁜 아기도 낳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다. 한국여성과 결혼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덜 들어간다는 건 덤이다.
베트남 여성들은 매우 열정적이고 순정이 있어서 서로 사랑만 있다면 집? 차? 그런 거 없어도 결혼할 수 있다.
단, 결혼할 여성을 고를 땐 신중해야 한다. 유게이가 ‘한국남자’라는 이유로 호감을 가지고 접근해 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 특히 술집여자들 조심해라.
가능한 일반인 여성만 만나고, 되도록이면 아직 사회물을 먹지 않은 어리고 순수한 여성을 만나라. 그 편이 연애할 때도 훨씬 재미있고, 통수 맞을 염려도 적다.(‘어린’ 여성이다. ‘젊은’ 여성이 아니라. 베트남은 한국보다 훨씬 젊은, 20 초중반의 나이에 결혼한다는 걸 명심해라.)
나이가 좀 있는 아재면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들과 연애하기가 부담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 한국남자들이 자기 관리를 잘 하는 편이라 베트남 가면 실제 나이보다 엄청 젊게 본다. 40대 이전까지는 20대 여성하고도 충분히 연애해서 결혼 가능하니까 쫄 필요 없다. (우리 와이프 피셜)
일본 여성들이 남편 내조를 잘 하고 최고의 신부감으로 유명한데 내 생각엔 베트남 여성도 이에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결혼 대상으로는 베트남 여성들이 훨씬 나은 부분이 있다.
게임 직업군으로 비유하면, 일본 여성들이 순수 서포터, 힐러 계열이라면 베트남 여성은 서포팅 능력은 순수 서포터보다는 좀 떨어질지 몰라도 탱도 되고(악조건도 잘 버티고 남자에게 의존 안함) 딜도 하는(근로의욕이 강하고, 집에서 쉬기보다는 뭐라도 하려고 함) 만능형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파티장이 좀 삐리하다 싶으면 파티장 역할까지 소화 가능하니. 이런 직업이 게임에 있다면 그야말로 사기캐일 거다.
BTS가 글로벌 초대박을 터뜨려준 덕분에 세계에서 한국남자의 가치가 극상한가를 치고 있다.
본진인 한국에서나 ‘82년생 김지영’ 같은, 말도 안 되는 여성들의 피해망상 때문에 한국남자 가치가 똥값이지 해외 어디를 가도 우리 한국남자 절대 꿇리지 않는다. 동남아 한정으로는 갓양남도 개찌발라버리는 게 우리 대한민국의 ‘갓한남’이다. 국뽕이 아니라 레알 참트루다.
고졸에 모쏠아다. 거기에 결혼하기에 악조건이란 악조건은 다 갖춘 나도 지금 결혼해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세계로 나가서 한 번 도전해보길 바란다.
용기 있는자가 미녀를 얻는다는 말도 있지 않나.
솔로인 유게이들아. 한국 여자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꼭 ‘좋은 여자’를 만나서 결혼해라. 결혼해서 행복해져라.
반전 없다. 진심이다.
결론은 영어를 잘해야한다는 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