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는 빅토리아 시대의 청교도적인 금욕 문화,
두번째는 도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
세번째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비부담 때문임.
빅토리아 시기 당시 영국인들의 훈육법이 문제가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절제력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음. 그래서 당시 영국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는 걸 잘못된 행위로 봤어.
덤으로 많이 때리는 건 덤. 그러다보니 굶주림과 맞는 것을 쾌락으로 승화시킨 변태들도 은근 많았다고 함.
암튼, 그래서 그 당시 베스트셀러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에게 빵 정도만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음. 덤으로 말라서 맛없으면 더더욱 좋다고 함.
이런 교육철학에 따라서 유명 사립학교에서도 먹을 게 없어서 화단의 튤립 뿌리 몰래 뽑아서 먹었단 이야기도 있으니,
사람들이 뭐가 맛있고 뭐가 맛없는지 모르고 클 가능성이 높음
그리고 이 당시 도시 노동자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가난하고 비참했기에, 이것도 음식문화 발전에 악영향을 미침.
드라이진으로 대표되는 술 문화, 그리고 오염된 템즈 강에서 유일하게 잡히는 장어를 연료가 적게 필요한 방법으로 요리하다 생긴 장어 젤리 같은 것.
지금이야 음식의 칼로리 표기가 다이어트 용으로 쓰이지만, 19세기에 처음 칼로리 측정이 시도될 때의 목적은 정반대였음.
돈없으면 가성비 높은 고칼로리 음식을 찾아먹으라는 것.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1,2차 세계대전 사이 전간기의 경제정책 실패와 전비부담 때문에 배급제가 실시됨.
이게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먹였음.
1939년부터 1953년까지 14년간 배급제가 실시되어서 구입할 수 있는 식료품, 식당에서 시킬 수 있는 음식이 제한됨.
당시 영국에서 식당에 가면 3접시의 음식을 시킬 수 있었는데, 이 중에는 빵이 한 접시로 취급되었음.
서양 식사가 에피타이저, 본요리, 디저트로 구성된단 걸 생각하면 뭐 하나를 빼먹고 먹어야 한단 뜻.
그 빵은 곡물을 아끼기 위해 껍질까지 갈아넣은 거.
이러니 한 1935년 전후로 태어난 사람은 철들고 대학 입학할 때까지 뭐 맛있는 걸 먹어본 기억이 없음.
부모들의 '전쟁 전 먹어봤던 파인애플 맛있었는데...' 하는 과거회상을 들으면 상상이 안 갔다니
그냥 그거 아니라도 영국요리는 그 전부터 맛없었다고 하던데
금욕:메이드 겁탈
당시 부유층 남자가 정부 노릇하던 메이드에게 각종 코스프레 시키고 찍은 사진도 남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