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염(177년? ~ ?)
그는 본래 채옹이라는 관리의 딸이었으나
채옹은 본리 뛰어난 관리였으나 동탁이 그가 유능하다는 것을 알고 채옹에게 자기밑에서 일을 하라고 했다 안그러면 일족을 몰살시킨다 협박을 하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동탁의 밑으로 들어갔다.
채옹이 얼마나 유능했냐면 이 서예기법을 창시한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동탁이 죽고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는 탄식을 했고 이것을 본 왕윤이 화가나서 그를 죽이라고 명령을 했다,
후한의 마지막 충신 중 한명인 왕윤(137년 ~ 192년)
채옹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한나라의 역사서를 편찬할 때 까지 살려달라하고 왕윤의 부하들도 그의 능력이 아까우니 살려달라고 하나 왕윤은 그 모든것을 그를 무시하고 죽여버린다.
그리고 얼마안가 이각과 곽사가 왕윤을 죽이고 정치를 개판으로 치면서 채옹의 자식인 채염은 장안을 탈출하고 고향인 낙양으로 대피를 가는 도중 흉노족에게 납치를 당해 흉노의 왕인 유표에게 아내로 바쳤다 당시 195년 이었다.흉노족 왕의 아내가 되었다 하니까 상당히 미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여자다.
동명이인 유표(? ~ ?)
그리고 12년후 207년 원소의 세력을 박살낸 조조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마침 조조는 채옹과 친분이 있어서 그녀의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여겨서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채염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자식들은 왕의 자식들이라 데려갈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때 채염은 자식들을 데려갈 수 없어서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랑캐들에게 당한 굴욕을 기억하며 시를 썻다고 한다
그 후 조조는 채염에게 둔전도위 동사라는 인물을 소개시켜주고 둘을 혼인을 시켜준다.
+동사라는 인물은 기록이 너무없어 삼국지 게임에서도 안나오지만 그 조조가 소개시킨 인물이니 유능한듯하다.
조조가 채염을 데려온것이 당시 파격적인 이유는 조선시대 당시 병자호란 때 끌려간 여자포로들을 아이도 낳지 않았는데 무시하고 멸시했다 그러나 채염은 아이도 낳고 10년이란 세월동안 있었으나 멸시하지 않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년후 채염의 새 남편 동사가 법을 어기고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채염은 남편을 구명하기 위해 조조에게 달려갔다. 조조는 당시 몰려온 손님들에게 채옹의 딸이라며 채염을 보였고, 채염이 맨발에 머리를 풀고 땅에 조아려 명석하고 비통하게 말하니 거기 사람들이 모두 숙연할 정도였다. 조조가 채염에게 딱하지만 이미 사형 집행의 문서를 보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으나 채염이 조조의 기병을 언급하니 조조가 감동하여 사자를 달려보내 동사의 사형 집행을 멈추게 했다.
그 후 그녀는 흉노에게 붙잡혔을 때 에 비통한 마음을 담아 비분시.호가십팔박 이 두개의 시를 쓰고 현대까지 남아있다 하고 그 밖에 수많은 시를 쓰고 그 시들은 현대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게 후한의 마지막 충신 왕윤이고 흉노에게 거액을 주고 그녀를 고향으로 돌려보내준게 망탁조의의 멤버 조조다
사람이 가끔 착한일도 좀 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