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야코의 생일이었던거야."
하천 위를 지나치는 다리 밑 어두침침한 굴다리, 한 때에는 미야코 혼자만의 비밀장소 였지만, 이제는 유우키와 미야코 둘만의 비밀장소가 된 그곳에서 미야코는 말했다.
그 말을 너무 재활용한 나머지 누렇게 색이 떠버린 플라스틱 스푼으로 푸딩을 퍼 입안에 넣으며, 아무런 감정도 없다는 듯 덤덤히 미야코는 말하고 있었다.
그 덤덤함이 연기라는 것이 너무나 티나, 귀와 볼이 토마토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미야코에게 생일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축하 받지 못하고, 선물 받을 수도 없는, 그저 여느때와 같은 365일 중 하루.
하지만 축하 받아야 마땅한 날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생일 파티를... 아니 그저 자신이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해주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라 동경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은 희망일 뿐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미야코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어쩌면 이루어 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작은 꿈 정도는 꿀 수 있는 것도 아닌가?
외톨이 미야코는 그런 망상조차 할 수 없다면 더이상 살아갈 기력을 쥐어 짤 수 없는 곳에 살고있었다.
그 희망은 시간이 지나가고 자신의 환경이 점점 더 끔찍하게 변해가면서 개미가 갉아먹듯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지만, 반년 전부터 자신의 비밀기지에 불현듯 찾아와 사무친 외로움을 상냥히 달래주는 이 남자아이를, 유우키를 만나고나서는 작은 욕심이 생겼다.
미야코는 자신의 기념할만한 생애 첫 축하를, 감사를.
유우키에게 받고 싶었다. 그런 욕심이 생겼다.
"서.. 선물 같은걸 바라는게 아닌거야, 그.. 그냥.."
미야코의 목소리가 소심히 기어들어간다. 혹시라도 너무 많은 것을 바란게 아닌가, 유우키가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치솓았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이 괜한것이라고 증명하듯 유우키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생일 축하해 미야코, 미안해 미리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
생일이라는 것도 지금에서 알았으니 선물을 준비할 수 있었을리가 없다. 하지만 유우키는 그렇게 사과했다. 미야코가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를 바랬기 때문일 것이다.
미야코의 얼굴이 터져버릴 것처럼 붉게 올랐다. 눈 안쪽에서 수도꼭지가 파열해 버린 것처럼 눈물샘이 열린다.
미야코는 그 눈물을 들키지 않게, 그 감동의 잔해가 세어나오지 못하게 있는 힘껏 눈을 감았다. 들고 있던 푸딩을 자랑하는 것 처럼 유우키에게 내 보이며 말했다.
"선물은 매번 사주는 푸딩으로 충분 한거야! 더 이상 바라지 않는거야!"
"아니야 미야코, 일년에 한번 있는 축하 받아야하고, 선물 받아야 하는 날이잖아. 푸딩으로는 부족한것 같아."
'무엇보다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 유우키가 그렇게 작게 속삭이듯 말을 마무리 지으며, 조금은 더러운 굴다리 바닥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며 유우키는 잠깐의 이별을 말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네, 이만 갈게."
'아..' 미야코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세겨진다. 유우키와 함께 있는 시간은 미야코에게 하루 가장 행복하고 마음 편한 시간이며, 그와 비례하듯 유우키가 없는 나머지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를 듯한 괴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우키를 붙잡지 않는다. 더 오래 있어달라고 때 쓰지 않는다.
혹시라도 유우키에게 민폐 끼치고 미움받는다면, 미야코는 무너져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을테니까. 현재의 미야코를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기둥은, 부모, 형제 따위가 아닌 유우키 였다. 하루에 한번, 길면 이틀에 한번 자신을 보러 이 굴다리에 와 주는 순간이, 미야코의 짧디 짧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자.. 잠깐.."
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유우키를 불러세운다. 유우키는 왜 그러냐는듯 지그시 미야코를 바라보았다.
"미야코는.. 나중에 공주님처럼 아름답게 될꺼야, 노조미 같이 화려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수-퍼 아이돌도 될꺼야, 메이드처럼 가정적인 여자도 될꺼야.. 그러니까... 나중에.. 나중에.."
그 말은 언젠가 누군가 자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리라 희망한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걸 알면서 간절히 원하던 미야코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유우키가 그, 가장 소박하며, 가장 원했던 그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 그러니 다른 꿈도.. 이루어 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미야코는 생각했다.
미야코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우물쭈물 했다. 유우키는 안달내지 않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미야코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겨우 수줍게 미야코의 입이 열린다.
"나중에.. 미야코를 유우키의 신부로 삼아주는거야..."
'풋!' 하고 유우키가 작게 웃었다. 이내 '아하하' 하며 크게 웃는다. 유우키는 웃었지만, 미야코의 안색이 창백해 졌다. 유우키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런 미야코의 안색을 눈치챈 유우키는 정돈하지 못해 조금 헝클어진 미야코의 머리를 손으로 부드럽게 빗으며 대답했다.
"공주님 처럼 되지 않아도, 아이돌이 되지 않아도, 가정적이지 않아도 신부로 맞이해 줄게."
'시간이 늦어서 이만 갈게, 내일 생일선물 줄테니까 기대해줘!' 유우키가 미야코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들며 달려 나갔다.
아마 그 말은 진지하게 생각해서 말한 대답은 아닐것이다. 그저 어린 미야코의 마음이 귀여워서,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 그 사실을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미야코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해준 것 만으로도 너무나 기쁘고, 설레여서, 미야코는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하아..' 그 즐거운 순간들이 거짓말이 었던 것처럼 미야코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이 어두운 표정이다.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이제 집에 가야한다.
근처에만 가도 퀴퀴한 냄새가 날것 같이 낙후된 연립맨션의 한 문을 열고, 미야코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쓰레기 투성이다. 정말로 쓰레기장이라 불러도 될만큼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피묻은 생리대, 악취를 풍기는 휴지, 컵라면, 봉투에 밀봉된 음식물 쓰레기 까지 가리지 않고 마구 널부러져 있었다.
미야코는 그 틈새에 자신이 앉을 만한 자리에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았다.
과거 지금도 어린 미야코가 더욱 어렸을 때, 어머니를 돕기위해서, 어머니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방청소를 나선적이 있지만, 어머니의 전부 사용했다고 착각한 화장품을 잘못버려 죽을 만큼 두드려 맞은 이후부터 미야코는 감히 쓰레기 하나 마음대로 만지지 못하게 되었다. 이 집에서 미야코의 지위는 쓰레기 이하였다.
잠시간 넋을 잃어버린 사람인것 처럼 묵묵히 앉아있자, 또각또각하고 조금 화난것 같은 구두소리를 내며 누군가 다가와 집의 문을 열어 젖힌다.
신경질적여 보이는 40대 초반 즈음의 여성이다. 젊었을때는 아름다웠음이 분명하지만 눈가와 입 근처에 고생의 흔적이 깊게 패여 짙은 화장으로도 숨기지 못한게 눈에 띄였다.
미야코가 쭈삣거리며 일어선다. 흘깃거리며 그 여성,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뒤를 보니 오늘은 어머니 혼자다. 몆개월 전부터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집에 같이 오곤 했다. 그는 틈이 있으면 미야코의 가슴이나 가랑이를 만지려고 하는 파렴치한 사람이었다.
미야코는 그 남자가 끔찍히도 싫었기 때문에 악을 쓰며 남자를 피하고 도움을 요청하곤 했지만, 돌아오는건 뺨을 치는 어머니의 손바닥 뿐이었다.
특히 어머니가 그 남자와 알몸으로 뒹굴때 나는 교성이 미야코에겐 너무나 역겨워서, 수 시간동안 좁은 장농안에 들어가 귀를 막고 있어야만 하는건 큰 고역이었다.
미야코가 말이 없자 어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는 인사도 안하니?"
"아.. 잘.. 다녀.. 오신 거야.."
미야코가 쭈삣거리며 대답하니 어머니의 눈가가 확실히 주름이 지며 찌푸린다.
"거야?"
아,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오지 않은 것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었다.
"죄.. 죄송한거.. 죄송해요."
미야코의 얼굴이 공포심에 일그러졌다.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선 어머니가 손을 까딱이며 미야코를 부른다. 벌써부터 미야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이리 오라고!!"
두번 말하게 하지 말라는 듯 호통을 친다. 미야코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쪼르르 달려가 어머니의 앞에섰다. 어떤 일이 있을거라 예상했는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
"팔 내려."
그런 어머니의 말에 팔을 내리다, 완전히 다 내리지 못하고 움찔거린다. 다시한번 호통이 터져나왔다.
"팔! 내려!"
움찔! 하고 놀라 크게 몸을 떤 미야코가 급히 얼굴을 막고 있던 팔을 내린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의 손바닥이 크게 돌며 미야코의 뺨을 후려쳤다.
짜악-!!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빈약한 미야코의 몸이 나뒹굴듯 땅바닥을 굴렀다.
처량하게 엎드려 뺨을 감싸쥔 미야코는 훌쩍였다. 입 안에서 피 맛이 느껴지고, 볼이 떨어져 나갈것같이 아팠다.
"너는 어쩜 애가 그렇게 멍청하니? 몇번이나 경고했지, 그 등신같은 말투 좀 고치라고?"
미야코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울음소리를 최대한 참으며 어머니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게 노력할 뿐이다.
"씨가 ㅂㅅ이니 애도 ㅂㅅ이지, 저런게 어떻게 내 몸에서 나왔는지 몰라."
미야코는 아버지가 없다. 정확히는 있지만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젊었을적 미야코의 어머니는 소문난 미인이었다. 그녀의 행적은 하나하나가 너무 화려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그녀를 마주보기도 어려워 했다.
어중이떠중이같은 남자들에게 떠받들여지며 돈 많은 사장님께 스폰을 받았다. 그녀에게 돈은 마를 날이 없었고, 다른 여자들은 그녀를 시기하며 눈만 흘겼다.
그러다 임신했고, 버려졌다.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흔한 이야기다.
낳으면 다시 자신을 되돌아 볼줄 알았다. 그래서 낳았더니 아니었다. 미인은 그녀 말고도 많았고,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미야코가 태어났다. 어머니에게 미야코는 원하지 않은 아이었고, 자신을 버린 ㅁㅁ의 아이었다. 취한 어머니의 입에서 몇번이나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에 미야코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으.. 흑.. 으윽.."
오늘따라 울음이 잘 멈추지 않아, 미야코는 스스로도 당황해 하고 있었다.
너무도 서러워서 눈물이 계속 흐르고, 목 아래서 흐느낌이 세어나온다. 이래서야 어머니에게 너욱 혼날것을 잘 알지만 참을 수 없어 계속해서 울음이 나온다.
"뭘 잘했다고 울어?! 조용히 안해!?"
역시나 어머니에게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 즈음에 미야코는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서러운지.
미야코는 오늘 너무나 큰 존중을 받았다. 언제나 유우키를 만나오며 느꼈던 평소보다도 더 큰 존중.
오늘의 자신은 축하받아야 하고, 선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어버렸다. 조금 더 자신이 소중해져 버렸다. 그래서 더더욱 서러운것이다.
"마.. 마마.."
너무도 서러워서,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아서, 평소에는 절때 하지 않을 말을 해버린다.
"마마.. 미야코 오늘 새.. 생일인거에요..."
그건 분명 해선 안되는 말이었지만, 봇물이 터진듯 울음보와 함께 그 말이 계속해서 입밖으로 나왔다.
어머니의 얼굴에 혐오가 깃들었다. 입가가 분노한 짐승의 그것처럼 기이하게 뒤틀렸다.
"그래서 응? 뭘 말하고 싶은건데? 내가 널 때려서 화났니? 응? 생일인데 맞아서, 싫어? 응?!"
벌떡 일어난 어머니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쓰레기더미 사이에 손을 집어 넣어 뒤지더니, 과거에 방범용이라고 버려진걸 줏어왔던 찌그러진 알루미늄 배트를 집어들었다.
미야코는 흘러넘친 눈물에 시야가 흐릿해,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미야코는 그냥.. 마마에게 축하 받고 싶."
으직하고 미야코의 팔과 옆구리를 한번에 배트가 때렸다.
'끄- 아으아악!' 미야코가 하던 말도 다 끝내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뼈가 부러진 느낌이 너무 생생했다.
조금 맑아진 시야로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귀신과도 같은 표정으로 미야코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손에 들린 배트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미야코는 급히 몸을 웅크렸다.
퍽, 퍽, 퍽 몸을 둥글게 감싼 미야코의 몸을 계속해서 배트로 내려친다. 어머니의 눈에는 이미 이성의 빛이 남아있지 않았다.
"생일? 생일이라고?! 생일!? 네가 태어난 것도 끔찍해 죽겠는데 내가 그걸 축해해줘?! 이 정박아 같은 년이,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 줬더니 어디서 반항이야!? 네가 태어나고 되는게 하나도 없어 이 역ㅂㅅ같은 년아!! 죽어! 제발 죽어-!!!"
'아아아아악!! 아악!' 너무 끔찍한 고통에 미야코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쉴새없이 내려쳐오는 배트 때문에 몸부림 치지도 못하고 그저 몸을 웅크리며 계속해서 맞았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다.
미야코의 의식이 희미해지고, 그 배트가 피투성이가 될 때 즈음에, 어머니는 지쳐 바닥에 배트를 떨궜다.
헉, 헉 하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옆으로 누운 미야코의 배를 발로 차 밀어내곤, 땅바닥에 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그 숨이 안정되가며, 잃어버린 이성도 조금씩 되찾아갈 때 스스로 무슨짓을 해버렸는지 깨달은 어머니의 눈에 혼란이 깃들었다. 흐트러진 머리를 쥐어 뜯으며 미야코를 내려다 보았다.
이렇게 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 훈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화를 내다 보니 어느센가 눈이 돌아갔다.
고통에 찌들어 반쯤 감긴 눈에선 눈물이 계속 줄줄 흘러내리고, 입에선 '그르륵'하고 긁는 소리를 내며 피거품을 내뱉는 미야코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귀에 울릴 정도로 크게 두근거리는 심장에 가슴을 부여잡고 당장 챙길 수 있는 짐을 가방에 쑤셔 넣는다. 자신이 중범죄자가 됐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별거 없는 재산을 모조리 챙긴 어머니가 조금 쉼 호흡을 하며 집을 나설 각오를 다진다. 그 와중 작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 마.."
미야코는 피거품이 올라와 숨도 제대로 쉴수 없음에도 끝까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며 찾고 있었다. 그런 미야코의 모습에 어머니는 약간의 공포심을 느끼며 냉장고 앞으로 갔다.
그 안에서 푸딩 하나를 꺼내 미야코의 옆에 놔두며 말했다.
"미야코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있지? 조금 흥분 한 것 같아, 지금 의사를 불러올테니까 조용히 여기 있어, 알겠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기다? 나중에 좋아하는 푸딩도 마음껏 먹게 해줄 테니까."
그리고는 도망치듯 맨션을 떠났다.
미야코는 바보가 아니다. 이제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쯔음은 알 수 있었다.
'그륵, 그르륵' 숨 쉬는게 버거웠다.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에 희미한 정신상태가 각성한다.
어머니가 놔두고간 푸딩이 눈에 띄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그나마 멀쩡한 쪽 손을 뻗어 그 차가운 촉감을 느낀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어머니가 가져와 던져주듯 했던 유통기한 지난 푸딩.
아주 드물어 가끔씩이었지만, 이게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 했던 푸딩.
이제는 유우키와의 연결점이 되어버린 푸딩.
"유.. 우.. 키..."
숨은 더 가빠오고, 괴로운 고통마저 의식을 붙잡지 못하고 희미하게 만들때에, 미야코의 눈 앞에 주마등이 스쳤다.
예전 외톨이였을때 어두운 굴다리 아래 혼자서, 소리죽여 통곡하고 있던 자신을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서, 자신이 울리기라도 한것 마냥 당황해하던 그 모습이.
울지 말라고 다독여주곤, 혹시 뭐 먹고 싶어하는 것 있냐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푸딩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왜 울고있는지는 묻지 않고, 그저 어깨를 감싸주며 달래주었다.
사준 푸딩을 입안에 욱여 넣고, 너무 맛있어서, 너무 기뻐서 그제서야 눈물을 멈추었더니, 너는 웃었다.
그때 사준 푸딩에 곁들어 있던 플라스틱 스푼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누렇게 때 타버린 그 스푼을, 너무 아까워서 다시 하얗게 만들어보려 찬물에 손이 얼 정도로 문질렀던 그 스푼을.
날 신부로 삼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유.. 우... 키이..."
생일 선물을 주겠다고 했는데...
"미.. 안... 한거.. 야.."
가지 못하게 되버렸어.
"미.. 안...."
미야코의 몸은, 온기를 잃고 차갑게 식어갔다.
***
"선물용으로 포장 해주시겠어요?"
은제품이라거나, 비싼 장신구 같은게 아니건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미야코가 기뻐할 생각을 하니 조금도 아깝지 않다.
구입한건 스푼이다. 성인의 손가락쯤 되는 길이의, 푸딩 용기의 바닥을 긁기 딱 좋은 길이의 스푼이다. 여자아이에게 어울리게 하얀 리본이 작게 묶여 있고, 끝에 귀엽게 푸딩 모양이 세공된, 미야코가 정말 좋아할 것 같은 스푼.
미야코가 묘하게 낡은 플라스틱 스푼에 애착을 가진게 안쓰러워서 스푼으로 골랐다.
케이크도 살까 고민을 해보았지만, 분명 미야코라면 케이크보다는 푸딩을 사가는게 기쁠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차라리 프리미엄 푸딩을 사가자.
점원이 예쁘게 포장한 스푼을 내민다. 미야코는 기뻐할까?
분명히 기뻐할 거다. 확신한다.
환하게 웃는 미야코의 얼굴을 떠올리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내일이 기다려진다
3줄 요약좀
유령인 미야코의 생일이니 인간 미야코의 기일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