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의 여명은 야요이시대에 한반도에서 대규모의 도래인이 건너간 직후였으며,
고훈시대에는 전방후원분이라는 거대한 무덤을 만들정도로 힘을 갖춘 국가들(쿠니)이 등장하게 된다.
강성한 중앙집권국가와 그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 왕이 존재하는 고대국가의 성립요소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법(율령), 종교, 세습제, 정복(땅)의 요소를 보편적으로 꼽을수 있는데, 그 중 종교는 거의 필수요소였다.
- 고구려계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 -
유럽의 큰 흐름에 기독교가 있다면, 동아시아의 큰 흐름에는 반드시 빼놓을수 없는 정신문화가 바로 불교로서,
우리나라에는 서기 372년 여름 6월, 중국 전진의 부견이 승려와 불상, 경전을 보낸 것이 해동불법의 시초였으며
이 불교가 삼국에 전파되는데 또 1세기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에서 왜에 달솔 노리사치계와 불상 및 불구를 보낸것이 552년으로,
왜에 비로소 당시에는 선진문화이자 종교였던 불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불교가 당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경전과 전각, 불상을 만드는 기술과 권력을 뒷받침하고 사람을 모으는 이데올로기의 등장을 말함이다.
도래인 집단은 당시 이러한 선진문물을 가져오고 중개해오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일본 역시 수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에서 선진문물을 수용하는데 온 힘을 쏟아부었던 것으로, 불교의 수용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에는 거센 반발이 뒤따르는데, 신라에서도 불교 수용을 두고
고유 산천신앙을 숭배하던 귀족들의 반대가 강경하였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이차돈의 순교라는 극적인 이야기로 전해지는데,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왜(야마토) 조정의 스슌왕과 외척가문인 소가씨(蘇我氏)는 국가 차원에서 불교를 수용하려는 뜻을 보였으나,
당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가문 중 모노노베씨(物部氏)와 나가토미씨(中臣氏) 등은 이에 크게 반발하였다.
"어찌 나라의 신을 등지고 다른 신을 섬기리오?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 용명 2년, 여름 기사 중에서 -
치열한 숭불전쟁이 벌어졌고, 결국 소가씨와 조정이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숭불파의 대표격인 쇼토쿠태자와 소가노 우마코 대신은 각자가 사찰을 건립했는데,
그것이 법흥사(法興寺, 호코지, 훗날의 아스카데라)와 사천왕사(四天王寺, 시텐노지)이다.
- 일본 최초의 절, 법흥사(후에 아스카데라)는 1탑 3금당 양식이었다 -
- 1탑 1금당 양식으로 지어졌던 오사카의 시텐노지 -
아직 왕권이 그렇게 강력하지 않았던 당시, 숭불전쟁에서 승리한데다 외척가문이기까지 했던 소가씨족을 비롯해
당시 '귀족'들이 주체가 되어 절을 많이 짓기 시작했고, 이를 귀족들의 '씨사(氏寺, 우지데라)'라고 한다.
일본 최초의 사찰 법흥사(아스카데라)는 소가씨족의 가문의 절이었던 것이다.
- 일본 최초의 절, 법흥사에 안치되었던 아스카 대불 -
그러나 일본 제일의 실세인 소가씨의 절 답게, 법흥사에서는 당시 드물었던 기와가 올라갔으며,
이를 위해서 도래인들의 도움을 많이 얻었다. 백제에 와박사, 노반박사와 화공을 청했으며, 도래계 조불사(불상을 만드는 사람)인
도리불사를 모셔와 당시 최대 크기의 청동불상인 '아스카대불'을 조성하였다. 
전하는 바에는, 불상이 너무 커서 건물을 다시 허물고 안치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울상이 되자,
도리불사는 신묘한 솜씨로 불상을 이리 저리 돌려 대불을 금당 안에 무사히 안치시켰다고 한다.
절이 완공되던 날, 낙성식(완공을 축하하는 법회)에는 조정 대신들이 백제의 옷을 입고 모여 춤추며 기뻐하였고
당시 소가씨 가문 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스이코 여왕도 참여하여 축하하였다.
이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아스카시대(飛鳥時代)의 개막이었다.
한편, 소가씨족의 권세는 불교 전래 이후 다이카 개신(646년)까지 약 1세기 가량 이어졌다.
그러다가 귀족인 나가토미노 가마타리와 조정의 나카노오에 왕자가 소가씨를 축출하는 을사의 변을 일으켰고
조정의 정치를 일신하기 위해 수도를 천도하며 칭제건원(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정함)을 하는 다이카 개신의 조칙을 선포한 것이다.
조세제도와 행정체제를 개편하였으며, 오오키미(대왕)이라 불리던 왕호에서 비로소 미코토(천황)라 칭하고 12개의 관위를 개편하였다.
이를 통해 유력씨족의 연합정권 성격이 강했던 왜가 비로소 보다 진일보한 고대국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503박근혜는 스무살
가장 큰 동지라 할 수 있던 백제가 하루아침에 망하는거 보고 식겁했을거임 그리고 일본에 있던 백제계 도래인들의 영향력이나 목소리도 무시 못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