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는 내게 소중한 이야기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넘어갈 때 즈음에 읽은 세계문학전집들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이야기이기도 하며,
마음아픔에 눈물도 나게 만든 작품이기도 했다.
이후로 후속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헌책방을 뒤져서 그 후속편(Good Wives -착한 아내들-)
을 기어이 찾아서 읽고 말았지, 한 예닐곱번은 읽었을 거다.
그리고 그 결말을 보고 '딱 여기서 끊는 것이 좋다'는 기분이 들어서(나쁘게 봤다는 말이 아니다. 이 역시 정말 잘 읽었다.)
그 다음에 나온 3, 4편에 해당하는 Little Men -작은 신사들-과 Jo's Boys -조의 아이들-은 일부러 읽지 않았다.
그 후로 이 이야기가 영화화 되었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내게 있어 이 이야기는 원작 소설이 요새 말하는 '근본'이었다.
일본의 명작만화 애니들도 나름 괜찮게 봤지만
그러던게, 이번 2019년에 요새 핫하다는 여류감독 그레타 거윅에게 제대로 힘줘서 잘 만들어서
아카데미까지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챙겨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10일 전이었으니 코로나 19도 조금 뜸해질 시점이고 (그래도 극장 안에서까지 마스크 쓰고 봤다.)
그래서 2시간 20분 짜리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극장의 한 80 퍼센트 관객은 여성이더라)
이후로는 스포일러가 있다.
잘 만들었다.
흡족했다.
1. 기본 뼈대
이 영화는 원작 2부(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가 독립 여성, 아내들로 성장하는 이야기)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뭔가 포인트를 잡고, 그와 연관된 1부(우리들이 잘 아는 소녀 시절의 네 자매 이야기)의
과거로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전개하고, 다시 2부의 전개로 돌아가서 또 진행하는 식의 구성을 잡았다.
이러면 장점이 평범하게 원작을 따라가는 영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1,2부를 망라하여, 새롭게 조합된 새로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신선함이 있다.
물론 나처럼 1,2부를 깊히 판 사람이 보기에는 그 조합하는 작업이 흥미롭게 보였다.
'이건 살짝 감독의 관점이 들어간 해석이네'
'이 에피와 이 에피를 이렇게 엮으니 또 새롭게 느껴지네'
'이 인물 해석은 원작에 충실했네'
이런 식으로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디테일도 잘 보이고.
여기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게 비유하자면, 명작 2쿨 TV 애니 시리즈를 잘 각색하고 취합하고 요약한 극장판 애니를 본 느낌이랄까?
2. 영화의 기본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떠들썩함을 잘 살렸다.
이러면 인물의 구분이 잘 안가고 벌어지는 사건이 뭔지 잘 안보이는 단점이 있는데,
그 점이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지.
빛을 잘 사용했고, '창가에서 비쳐 오는 빛', '어두운데 켜진 촛불', '저택의 환한 공간', '강렬한 자연광'을 적절하게 잘 사용했다.
마치가의 1층과 2층의 공간을 잘 구분해서 사용했더라
자매들의 사적인 공간 2층과 마치가 가족의 공간 1층의 경계인 그 '목재 계단'을 사건의 중요 전환점으로 잘 사용했더라.
그레타 거윅의 감독 역량에 호평이 많던데, 납득하겠더라.
3. 단점
꼭 모든 점에서 잘 살린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한 '연상을 이용한 과거 사건들 잘라 붙이기' 방식을 효과적으로 쓰긴 했는데,
그 사건들의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원작을 대충이라도 기억하는 관객 쯤 되어야 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따라가는데,
그렇지 않은 관객들은 '지금 전개하는 내용이 과거인가, 현재인가,
이 에피소드가 종료되고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갔나, 아직 이 에피소드 전개 중인가'
로 혼동스럽겠는 장면들이 무척 많이 보인다.
좀 많이 아는 관객이 아니라면 전개를 따라가다가 전개 교통사고를 일으키기 딱 좋은 단점이 있다.
물론 그걸 미연에 방지할 스킬이 있긴 하다.
이를테면 에피소드를 마무리 하면서 대사를 '뭔가 정리하는 느낌의 대사'를 삽입하던가,
카메라로 뭔가 종료 되었다는 식의 기법을 넣는 식으로 하면 관객들도
'일단 이 이야기는 이걸로 마무리하고 넘어가네'하는 느낌을 받는데,
여기서는 그런점이 좀 불분명해서 정신없이 같다 붙인 느낌을 준다.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
가장 단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점 하나를 들면,
2부에서 나온 결혼한 메그가 가난한 살림에도 허영심을 이기지 못하고
50달러 이상의 비싼 드레스를 충동적으로 지르고, 그래서 남편 브룩의 마음을 아프게하고
메그도 후회하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해결되고 부부애도 돈독해지는 에피소드인데,
그건 영화 거의 맨 처음에 나오다가, 그게 어떤 결말로 정리되는 지는
극의 한 3/4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뜬금없이 등장해서 정리된다.
물론 그 전후로 메그가 어떤 남자와 어떤 가정을 꾸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전개가 있기 때문에
그 시점을 절호의 기회로 여긴 듯한데,
작은 아씨들의 이야기를 모르거나, 기억력이 좋지 않은 관객들은 갑자기 여기서 왜 이게 나오나? 하는 의아함이 들 법한 연결이었다.
이야기의 밀도가 높은 이 영화에서 그 전후로 다룬 조와 에이미의 이야기가 한창이라서
그걸 열심히 따라가는 관객들에게 어리둥절할 법한 전개였지.
물론 이 지적하는 단점이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옥의 티 정도 수준으로 느껴진다.
허나, 나같이 작은 아씨들을 좀 파던 사람이 하는 말이라서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느껴질 지는 잘 모르겠다.
4. 덕심
작은 아씨 덕후로서 말하는 거니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어가도 좋다.
솔직히 베어 교수, 너무 미청년으로 한거 아니냐? 원작에서 느낀건 좀 나이도 있고, 자기 외모에 둔감하고,
'은근히 진국인' 괜찮은 남자지, 저렇게 대놓고 미청년을 하면 어떻게 하냐
로렌스 할아버지는 조금더 덩치크고 위압감있고 무게감 있고 정적이게 묘사되었으면 했다.
조금은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원작의 이미지와 행적을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납득이 가긴 했다.
로리는 어린 시절 로리는 그 개구장이의 밝고 활기 넘치는 미소년 이미지에 딱 어울리게 연출되었는데,
그게 커서도 그 이미지가 그대로 같다.
그 시점의 로리는 맘 고생 많이하고, 좀 방탕하게도 살고, 약간 시니컬 해진 느낌을 살려서
메이크업이나 의상이나 CG 후보정도 좀 하지 그랬나 싶었다.
메그는 작중 최고의 미소녀 답게 엠마 왓슨을 캐스팅한 건 좋은데, 어째 작중에서 미묘하게 푸대접 받은 느낌이다.
작은 아씨들의 묘사를 보면 조는 스스로의 여성성을 약간 체념한 대신,
그걸 착하고 예쁜 언니를 소중히 함으로, 성녀같이 착한 동생 베스를 목숨처럼 아낌으로 대리만족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언니 결혼식 날에 언니를 떠나 보내기 싫어하고 그 착한 브룩에게 (귀엽게) 츤츤 거리는 모습을 보인건데,
영화 전개에서 조-메그의 관계가 비교적 덜 다루어지는 느낌이라서 그 메그의 결혼식 날의 중증 시스콘으로 보이는 조의 대사가 뜬금없이 느껴진다.
이는 전반적으로 영화상에서 해석된 메그의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약해서 그런 듯 해 보인다.
에이미는 일단 드는 생각이 눈이 크고 부리부리했다.(물론 플로렌스 퓨가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에이미는 그런 캐릭이기는 했다.
그런데, 에이미는 막내답게 눈치 빠르고 응석도 많으면서 챙길건 잘 챙기는
약간 소악마적인 기질도 밉진 않게 있는 소녀 아니었나 싶었고
그 점에서 신경쓰지 않은 것도 부정할 순 없는데,
그 눈 때문에 똑 부러지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약간 시니컬한 느낌도 없진 않게 느껴졌다.
물론, 그런 면모가 없는 캐릭도 아니라서 넘어 갈 만한 수준이었다.
어디까지나 덕후의 갬성으로 하는 소리다.
베스의 캐스팅과 외모 연출에 대해서 말하면
베스가 원래 화려한 캐릭은 아니라서 납득은 하지만
그래도 약간 청초하고 순수하고 성녀 같은 이미지를 고려해서 과장은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리얼하게 묘사된 것 같다. ㅠㅠ
납득은 한다. 어짜피 어느 나라 영화계의 코스프레 쇼도 아니니까
조? 훌륭했다.
'미인은 아니지만, 활기 넘치고, 자기 주장 분명하고, 위트있고, 싫고 좋은 것에 분명하고, 말괄량이지만, 주위에 사랑을 받을 만한 빨강머리 캐릭터'
그런 캐릭상에 완벽히 부합한 캐스팅에 외모 연출이었다.
시얼샤 로넌? 잘 봐놔야 겠다.
작은 아씨들은 네 자매 이야기지만,
작가부터가 원래 조를 오너캐로 한 자서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의 심리 묘사나 사상 묘사가 가장 섬세하고 싶다.
그러니 영화도 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렇다면 그 점을 재해석하지 않는 한은, 조 역에게 정말 무게가 무거운 영화가 된다.
그런데, 시얼샤 로넌은 그 역할을 멋들어지게 잘 수행했다.
만약에 이 영화가 다른 것들을 다 잘하고 조 역의 캐릭터에서 무너졌다면,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5. 민감한 이야기
클로저스 사태 이후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이후로
이제 한국의 문화 유저들도 소위 말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말이 많아지고 있다.
나는 이런 것을 '진보의 관점을 베이스로 하여 정치적 올바름의 근본 취지에는 찬성하나,
정치적 올바름이 자주 일으키는 유형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걸 전제로 말하자면, 이 영화의 페미니즘은 납득이 되고 설명이 된다.
첫째로, 이 영화의 배경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미국 북부의 이야기다.
그 시대에 조라는 여성이 혼자서 사회에 나가서 여류 작가로 독립하며 서 나가는 이야기에 당연히 그런 점을 다루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로, 원작 역시 이는 분명히 다룬 부분이다.
물론 원작은 조가 겪은 고민들은 여성으로서 겪은 부분만이 다가 아니다. 사상적으로,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도 다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성차별에 대한 고민점 역시 원작 작가 본인부터 헤쳐 나온 문제다. 원작에서 잘 다룬 점을 포인트로 찝어내서 잘 묘사했다.
셋째로, 그런 부류의 문제들이 흔히들 답습하는 망하는 포인트는 바로
'주변의 남성 캐릭터 부정적으로 망치기', '지들 사상적 관점에서 벗어나는 여성 캐릭터 망치기'인데, 그렇다면 어머니인 마치 부인이나
그런 관점에서 좀 벗어난 메그나 베스에 대한 캐릭터를 부정적으로 붕괴시키는 경우, 로리나 로렌스 할아버지나 브룩이나 베어 교수를
부정적으로 망가뜨리는 경우가 동반된다.
물론 현미경을 대고 보면 내가 위해서 덕심으로 말했던 부분에서 메그 같이 아주 약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일반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겨우 이정도의 묘사 밀도 차이 가지고 자캐딸, 페미딸이라고 말하기에는 한참을 멀다.
오히려 마치 부인의 어머니로서의 메그의 아내로서의 베스의 선인으로서의 장점을 잘 묘사하는데 있어 훌륭했고
로렌스씨, 로리, 브룩, 베어 교수에 대한 묘사가 '바보만들기, 악역만들기'라고 생각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에 따라서 '정치적 올바름'이 들어간 정도에 대한 기준은 다를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는 대안우파들처럼 아예 '정치적 올바름'의 낌새가 살짝 느껴져도 들고 일어나는 부류 있고,
또한 유명한 원작 1부만 읽고,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원작 2부를 보지 않고 '어? 이 네 자매가 이런 캐릭이었나? 의도적으로 변경 시킨 것 아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류에게 있어서는 내가 오해라고 말해 주고 싶다.
6. 이 이야기의 근본
그렇게 곁다리로 자꾸 이야기 했다.
이 영화의 잘한 점, 다소의 옥의 티, 덕심으로 말하는 점, 요새 민감한 점등을 말했지만
이 이야기의 근본은 결국 '따뜻한 사람들의 훈훈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소녀에서 여성과 아내로 일어서 가는 네 자매에게 응원하고 등을 떠밀어 주고 싶고 토닥여 주고 싶어지는
그런 따뜻한 이야기가 이것의 '근본'이고
이 영화는 그 근본을 잘 사수한다.
7. 아카데미?
글쎄, 이건 좀 이견이 있다.
이 영화를 와닿게 말하자면... 잘 만들었긴 했는데, 그 방향성이 클래식이나 말죽거리 잔혹사, 써니같은 방향성이 느껴진다.
아카데미하면 거기에 딱 맞을 것 같은 아이리쉬맨, 원스 어폰 어 타임, 1917같은 영화들과는 약간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비슷한 케이스로 아카데미 여러 부분에 노미네이트 된 '포드 V 페라리'처럼 말이다. 이 역시 정말 가슴뛰는 재밌고 훌륭한 영화긴 한데,
아카데미가 잘 선택하는 방향성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 그런 것 말이다.
그놈의 코로나 19 때문에 이런 좋은 영화가 피해보는 것이 참 안타깝다.
엠마 왓슨이 벌써 장녀 역할을 맡을 나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