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군-청군이 입관전 단일 전투를 가장 오래토록 지속한 사례는 무엇일까.
그것은 금주 포위전이었다.
홍타이지는 다섯 차례의 입관전투 이후 드디어 산해관으로 시선을 돌려,
전선을 밀고내려가며 산해관 코 앞까지 청의 영역으로 확대, 이후 산해관의 전면을 봉쇄하는 대전략을 구상했다.
대릉하가 점령된 이후 청군을 향한 명나라 요서방위선의 최전선은 바로 금주. 그리고 그 곳을 지키고 있는 것은 '원숭환의 후계자', 조대수였다.
1640년 홍타이지는 지르갈랑과 도도가 이끄는 금주포위군을 출격시켰고 그로서 금주포위전이 시작되었는데
이 포위전은 2년 가까이 지속된 뒤에야 겨우 조대수의 항복으로 끝났다.
2년 동안 명군의 지원군이 수십번을 왔는데도 모두 격퇴하고 포위공격을 지속한 청군과 2년동안 죽을 힘을 다해 농성한 조대수 모두 자강두천이 따로 없었다.
한편 조대수는 항복한 뒤에 여러 청나라 제장들로부터 "조대수를 죽여버리자!" 라는 야유를 받아야만 했다.
2년 동안 문을 걸어잠그고 끈질기게 버텨서 청나라 장수 및 버일러, 왕들의 스팀을 머리끝까지 올려놓은 데다가, 이미 이전에 후금군(청군의 전신)에 항복했다가
"내가 항복을 한 이유는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라면서 후금군을 엿먹이고 도망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홍타이지는 그런 조대수를 사면하고 그대로 등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