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퇴는 중국 쓰촨 지역(삼국지 촉나라 지방)에서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유적이며
발굴이 진행되면서 중국은 물론 전 세계 학계가 경악했다.
삼성퇴 발견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문명은 황하 문명 - 상나라(은나라) 테크가 원톱이고
그 밑에 중국 각지의 자생 문명은 황하 미만잡이라고 생각되었는데
황하에서 멀리 떨어진 쓰촨 지역에 황하-상나라 시절에 버금가는
완전 독자적인 청동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워낙 유적과 유물들의 수준도 높고 의미가 큰 발견이었기에
대영박물관에서 병마용갱보다 대단한 발견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삼성퇴에서 유물 양도 엄청나서 한반도에서 발견된 청동 유물 다 합쳐도
삼성퇴 한 곳에서 발견된 청동 유물 숫자에 못 미친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질과 양을 자랑했다,
삼성퇴의 발견으로 황하 문명에 버금가는 쓰촨 문명이 존재했다는 건 명확해졌다.
이제 그 문명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흥했으며 어떻게 사라져갔고 다른 문명에 영향을 끼쳤는가는
앞으로 계속 연구를 해 봐야 할 것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삼성퇴는 '홍위병' 당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 유물이 최초로 발견된 건 1929년이지만 이후 잊혀졌으며
삼성퇴 유적이 재발견되고 본격적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건 1986년 부터였다.
즉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의 일이다.
만에 하나 삼성퇴가 '홍위병' 당했다면 쓰촨 문명 자체가 영원히 어둠 속에 묻혔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당시 중국 기록에 삼성퇴나 쓰촨문명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고,
삼성퇴 유적에 독자적인 문자가 발견되었지만 아직 해독이 안 되었다.
따라서 사서를 통한 연구는 새로운 기록이 나오지 않는 한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고
철저히 유물과 유적만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
즉 삼성퇴가 일찍 발견되고 그 존재가 알려져 '홍위병' 당했다면
삼성퇴나 쓰촨 문명에 대한 연구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을 테고
오늘날 우리는 삼성퇴가 뭔지도 모르거나
예전에 그런게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알 수 없다는 미스터리로 남았을 것이다.